18장 토기장이 되신 하나님(18장)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땅을 따라 토기장이의 집에 내려갔고,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만든 그릇을 깨뜨리고 다른 그릇을 만드는 광경을 지켜봤다. 토기장이의 작업장은 하시드 문(질 그릇 조각의 문) 근처에서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내려가는 비탈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19:2).
거기서 계시를 받은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민족이나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주권자이심을 선포한다. 예레미야는 제도적 기득권층인 제사장, 선지자, 지혜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2:8: 8:8~11). 이로 인해 이 세 계층은 음모를 꾸미고 예레미야를 반역죄로 몰아 생명의 위협을 가했을 것이다(37:13). 이에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그들을 징벌해 주시기를 탄원한다(15:15: 17:18:20:12).
<<예레미야서에 나타난 주요 비유와 의미>>
<<<비유>>> <<< 의미 >>>
살구나무가지의 비유(1:11~12) 예레미야의 소명에 대한 확신
끓는 가마의 비유(1:13~16) 북방민족 바벨론의 침략
썩은 베띠의 비유(13:1~11) 유다의 영적 상태와 하나님의 심판
포도주로 가득찬 가죽 부대의 비유(13:12~14) 혼란과 충돌이 극심할심판
토기장이와 진흙의 비유(18:1~11) 하나님의 절대주권
깨진 옹기의 비유(19:1~13) 확정된 유다의 파멸
무화과두광주리의 비유(24:1~10) 바벨론에서의 귀환과 회복에 대한 약속
진노의 잔의 비유(25:15~38) 모든 민족이 받을 심판
줄과멍에의 비유(27~28장) 바벨론 포로와 노예 생활
19장 깨진 옹기처럼 돌이킬 수 없는 심판(19장)
토기와 관련한 상징 행위가 두 번째로 등장한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을 따라 토기장이에게서 용기를 사서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가서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하며 깨뜨린다.
옹기는 구운 것이라 한번 깨뜨리면 복구할 수 없다. 이처럼 유다는 회개하기에 너무 늦었으며 심판이 이미 확정되었다는 선언을 들을 수밖에 없다. 심판받은 유다는 도벳과 같이 될 것이다. 유다 백성은 우상에게 자식들을 제물로 바치며 다산의 복을 바랐던 바로 그곳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죽여 그 살을 먹는 끔찍한 재앙을 맞을 것이다. 이 예언은 실제로 BC 586년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게 포위당했을 때(애 2:20: 4:10)와 AD 70년 로마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이루어졌다.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와도벳>>>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는 예루살렘의 서쪽에서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예루살렘남동쪽에 있는 기드론 골짜기와 연결되어 있다. 이곳에는 어린아이들을 불살라 제물로 드리던 도벳이라는 산당이 있었다(왕하21:6:렘 7:31~32). 고대 근동 지역에 널리 퍼져 있던 인신제사는 이스라엘에서는 금지되었지만(창 22:1~19), 아하스(왕하16:3)나 므낫세(왕하 21:6) 때는 시행되었다. 요시야는 후일의 우상숭배를 막기 위해 이 도벳 산당을 무너뜨리고 부정하게 만들었다(왕하 23:10). 그 후 힌놈의 골짜기는 묘지와 쓰레기 하치장으로 쓰였다. 힌놈의 골짜기는 지옥의 대명사가 되었는데, 그것은 이 집기를 뜻하는 히브리어인 ‘게힌놈’ 이나 이에서 비롯된 헬라어 ‘게헨나’(지옥)에서 유래했다.
*도표참조: <히스기야가 확장한 때부터 느부갓네살이 파괴한때까지의 예루살렘>
20장 선지자와 심판을 비웃는 교만(20장)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는 교만한 인간에게는 조롱거리가 되고 만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학대한 바스훌에게 심판의 상징으로 ‘마골밋사빕’(사방으로 두려워함)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셨다. 제사장이면서 성전의 총감독이던 바스훌은 유다 백성과 함께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고 그가 지키던 성전과 제의와 전통은 사라질 것이다. 교만한 유다 백성은 임박한 심판을 깨닫지 못하고 어리석게도 예레미야와 그의 메시지를 모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꿋꿋하게 선포하며 순종의 걸음을 이어간다.
21장 생명의 길은 항복하는 것(21장)
시드기야는 BC 589년 애굽 왕 바로 호브라를 의지해 바벨론에 바치던 조공을 철회했다.
이로 인해 느부갓네살은 군대를 이끌고 와서 티쉬리력으로 BC 588년, 니산력으로는 BC587년 1월 15일에 예루살렘을 포위했다(왕하 24:15~20:렘 37:1~2:52:3~5). 그로인해 예루살렘 주민은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해 굶주림으로 허덕이게 되었다. BC 586년 8월 중순경에는 바벨론 군대가 북쪽 성벽에 구멍을 뚫었다. 시드기야는 말기야의 아들 바스홀과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를 예레미야에게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BC 701년 앗수르 왕 산헤립이 침입했을 때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간구해 구원받은 것처럼(왕하 18~19장), 그는 예레미야의 기도를 통해 환난에서 벗어나기를 바랐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과 대항해 싸우시고 그들을 약속의 땅에서 몰아내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을 받아들이는 것만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선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