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상상을 했을 것이다. 만화의 주인공과 만나는 상상, 혹은 만화의 주인공이 되는 상상.
미숙이의 우상이 테리우스였다면 나의 우상은 안소니였다. 거칠고 터프한 테리우스보다는 따뜻하고 친절한, 거기다 비극적이기까지 한 안소니는 나의 우상이었다. 미숙이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도, 어쩌면 우리들 모두는 한번쯤 만화 속 주인공을 만나는 상상에 행복해 하고, 만화방 구석에 앉아 만화책 넘기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떨어져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늦도록 만화의 세계에 빠져 행복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 연극은 그런 나의 추억을 다시금 떠올릴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세상이라는 때가 묻기 이전의 순수하고 맑았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말이다.
나이를 먹어가며 나의 우상들과 작별할 수밖에 없는 인생. 미소가 그러했듯 현실에 눈을 뜨며 어린 시절의 꿈과 낭만은 그저 추억으로 자리할 수밖에 없었던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연극이었다. 어린 시절 나의 꿈은 어디로 갔을까? 함께 만화방을 다니며, 갤로그를 했던 나의 친구들은 더 이상 코찔찔이 어린아이가 아니라 하나둘 어른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잡히지 않는 구름처럼 따스하기만 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기억의 저편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 빈자리를 차가운 현실이 자리하는 것 같아 서글펐던 마음이 이 연극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따듯해진 것 같다. 기억나지 않던 어린 시절의 따스한 기억을 되살려주며...
배우들의 연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무대에 서면 주연, 조연 가릴 것 없이 모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연극은 더 더욱 그러했다. 역할이 크건 작건 관계없이 모두들 훌륭한 연기를 보여줬다. 그들의 연기에 빠져 나도 그 속의 한 인물이 된 듯했다. 만화방에 앉아 만화책을 보며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는 어린 아이가 되어버린 듯했다.
장봉구 역의 배우분. 강렬한 카리스마와 함께 따뜻한 아버지의 마음을 정말 잘 표현하신 것 같았다. 감히 평가를 내리기가 죄송할 정도로 그의 연기와 인물의 일치도는 대단했다.
조여사. 코믹함 속에 진지함이 빛나 보인다. 미쳤어 음악에 맞춰 뻣뻣한 관절을 움직이며 추는 춤에, "김밥 좀 사주세요~"라는 구슬픈 노래까지. 코믹적 요소가 강했지만 그 사이사이에 보여주는 따스함. 모든 인물들이 그러했지만 조여사는 특히나 더 그랬던 것 같다.
미숙이.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역할. 이 역할을 맡은 배우분께서 그 순수함을 잘 살려 준 것같다. 눈빛이 매우 순수해 보였다. 노래 부를 때 나는 미성은 그녀의 그런 역할을 더욱 빛나게 해주었다. 그녀의 이마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던 땀방울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진수. 공연 전 분위기 메이커로 나와서 극에서 큰 비중이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알고보니 주연급? ^^ 지현우를 닮은 외모에 노래는 수준급? ㅎㅎ 그 또한 그가 맡은 역할과 잘 어울렸다. 포커스가 자신에게 맞춰지지 않은 신에서도 최선을 다하던 연기.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미원. 쩝... 그의 역할은 정말 미원 같았다. 미원만 한숟가락 퍼먹었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느끼한가? ㅋ 미원도 그랬다. 그 분량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면 조금은 부담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 만큼 그의 연기는 훌륭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비중이 오히려 그의 역을 더욱 빛나게 해준 것 같다. 음식을 할 때 적당한 미원의 첨가는 그 음식을 더욱 맛깔스럽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말이다. 파리 먹은 연기는 정말 일품~ 우웩~ ㅋ
명자. 그녀의 성대는 날 감동시켰다. 정말 매력적인 목소리였다. 그녀가 들려준 노래는 그의 음색과 너무나 잘 어울려 있었다. 육감적인 그녀의 몸이 그녀의 목소리를 더욱 매력적이게 만들어 주었다. 근데, 정말 사랑도 5분이면 O.K인가? ^^
미소. 미소가 아름다운 배우. 그녀의 웃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런 그녀가 연기까지 잘 한다. 부럽다... ㅎㅎ 어쩌면 그 극에서 미소라는 역할이 가장 현실적인 인물인 듯 보였다. 키스 한번에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다소 현실적이지 못하지만 말이다. 초반부를 보고 미소라는 역할이 상당히 이기적인 인물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 역시 모든 역할들이 그러했듯이 따스함은 가진 배역이었다. 배우가 그 역을 더욱 잘 살려 준 덕이지만 말이다.
형님. 보는 내내 코봉이가 생각났다. ㅎㅎ 웃찾사에 나오는 코봉이. 항상 형님으로서의 카리스마를 지키려 하지만 헛점 투성이이다. 그런 그이기에 우리에게 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보는 내내 눈을 어디로 둬야 할지... ㅋ 그의 복장은 민망과 므훗 중간 정도? ㅋ
똘마니. 정말 매력이 있는 배우이다. 가장 몸을 열심히 움직인 배우인 것 같다. 머리는 괜찮은지 걱정이다. 한번만 하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이 극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인 것 같다. 코믹 연극으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준 배우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귀엽다. ㅋ 하지만 배우로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려면 어느 정도의 관리는 필요할 듯 하다. 지금의 모습도 상당히 매력이 있지만 여러 역할을 소화해야 하는 배우로서는 어느 정도 불리함도 있을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달봉이. 언제나 만화의 세계에 사는 역할. 미숙이가 상상의 세계에서 만화 속 주인공들을 만난다면 달봉이는 현실에서도 만화 속 인물과 함께한다. 둘리. 어쩌면 그의 삶 자체가 만화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행복할 지도 모르겠다. 달봉이의 명대사. "나와봐니~!" ㅋㅋ "나는 왜 주인공 안 시켜주냐"던 그의 외침이 진심인 것 같아서 마음이 약간 짠~했다. ㅎㅎ 달봉이 화이팅!
노래 실력 또한 흠잡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노래를 하려면 자신의 성량 정도는 되어야 한다던 명자의 말처럼, 그녀의 성량은 정말 훌륭했다. 그녀의 파격적인 의상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성량은 훌륭했다. 노래는 귀에 익숙한 리듬을 사용하여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그 덕분에 연극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이 연극의 완성도에는 분명 노래의 힘도 있으리라.
이 연극에서 사랑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의 후반부에 찾아온 정스러운 사랑부터 한 번의 키스로 인해 빠져드는 사랑, 어린 시절부터 간직해오던 순수한 사랑과 5분이면 충분하다던 그들의 사랑까지. 비록 인륜을 저버릴 수 없어 자식들의 사랑을 위해 자신들의 사랑은 가슴 한켠에 남겨둘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을 남기기는 했지만, 그들의 그러한 마음 또한 자식에 대한 사랑이자,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며 사랑일 것이다.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 사채 빚까지 써가며 만화방을 운영하던 장봉구나 한평생을 김밥을 팔아가며 자식을 키우던 조여사. 이들의 모습에 이제껏 고생만 해오던 우리 부모님의 모습이 겹쳐졌다. 일생을 자식들을 위해 살아오다가 인생의 후반부에 다시금 찾아온 사랑 또한 자식들을 위해 양보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사랑에 안타까움이 더해졌다. 지금껏 자식들에게 양보만 하고 살아왔던 그들의 마지막 떨림을 지켜주는 방향으로 연극이 끝났다면 어땠을까? 마지막 그들의 설렘을 자식들이 지켜주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한번쯤은 부모가 아닌 자식이 양보하는 것도 좋았을텐데...
객석 곳곳에서는 젊은 사람들 뿐 아니라 중년의 어른분들도 보였다. 나는 왜 부모님과 함께 올 생각을 못 했던 것일까? 남자친구와 함께 좋은 공연을 볼 수 었어서 정말 행복했지만, 부모님과 함께였다면 또 다른 감동이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 점에서 또 한번 부모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자식의 마음 크기를 느낄 수 었었다. 극에서 장봉구와 조여사의 자식들을 향한 사랑을 자식들이 따라가지 못한 것처럼... 나 역시도 나를 먼저 생각하고 부모님 생각은 항상 뒷전이었다. 오늘같이 특별한 날 부모님과 함께 좋은 공연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면 부모님과 나의 기억에 정말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었을텐데... 이번 겨울이 끝나기 전에 부모님 손 꼭 잡고 공연장을 찾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특별한 날 특별한 공연을 볼 수 있게 되어서 2008년 크리스마스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런 연극을 볼 수 있게 해주신 배우들 및 스태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훌륭한 연극을 기획하신 연출자에게 한마디를 남기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렇게 재미있고 훌륭한 연극을 만드신 연출자님... 나와봐니~! ㅋ
감사합니다^^
첫댓글 만화방 미숙이를 세세하게 너무나 잘 표현해 주셨네요 상당히 예리한 눈을 가지신 분인듯... 감사합니다 ^^
좋은 공연 보여주셔서 제가 더 감사합니다
와~대단하시네..ㅋㅋ 한번보고 전 매일봐도 모르겟던데..쿠쿠
너무 길게 썼죠 쓰다 보니까 자꾸만 길어지네요. 아직도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 말이예요 너무 좋은 공연이어서 그런가 봐요 ^^
이야이야이야 !! 멋진후기에 저희가 감동입니다 ㅠ _ㅠ 너무 감사드려요 ^- ^ 육감적인몸매라니....극찬이십니다.. 명자부끄러버요.. >ㅁ < 잉잉 ㅋㅋ 힘내서 더더욱 열심히하는 만화방미숙이 팀이 되겠습니다 !!!
칭찬받아 마땅한 당신께 칭찬을 바칩니다 그대 칭찬합니다 ^^ 정말 멋진 공연이었어요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쭈욱 부탁드려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