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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이 펴낸 《동경대전1,2》가 제법 팔릴까?
동학에 관심있는 분들이 많으니 제법 보긴 볼게다.
1,2권을 본 느낌을 적어본다.
기본적으로 《동경대전1,2》는 동경대전 초판인 경진판에 대한 해설이라 보면 된다.
1880년 강원도 인제에서 펴낸 경진판은 2009~2010년에 확인되었다.
2009년 충남 서산 음암면 신장1리 179번지 이상훈, 동경대전 한 부를 독립기념관에 기증한다. 백부 이철용의 유품이다. 이철용은 대대로 영월에 살았고 동생인 이상훈의 부친 집에 남겨놓은 짐 속에 있던 것이었다. 독립기념관의 성주현이 복사본을 윤석산, 박맹수에 전달한다.
윤석산 교수, 새로 발견된 동경대전이 경진년 초판본임 확신하고 논문(첨부파일참조)을 작성한다.
동학학보 제20호,2010.12, [새로 발견된 목판본 동경대전 에 관하여]
도올은, 윤석산의 공적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안독립기념관에 기증된 목활자판이 최초의 경진판 간행물이라는 것을 밝힌 공로는 윤석산 교수에 있음을 밝혀둔다. 윤 교수는 동학연구의 여러 분야를 개척한 석학이다. 나는 그에게 많은 배움을 얻었다."_ 동경대전2, 354쪽
동경대전 시작하는 페이지의 안쪽 표지, 배지.
그 안에 희미하게 비치는 용담유사 구절을 보고, 도올은 추정한다
"용담유사도 경진년1880년에 인제에서 인쇄되었을 것"
이런 것은 동학의 어떤 기록에도 없다.
동경대전 1880년 인제 간행
용담유사 1881년 단양 간행
이렇게 되어있다.
이런 사실은 뒤집혀지지는 않을 것이다. 도올의 추정대로, 1880년판 용담유사가 발견되면 다시 역사를 기록하겠지만 쉽지는 않을 것.
용담유사 판본은 기본으로 한줄씩.
두줄씩 인쇄된 것은
청림교에서 발행한《개도해가》. 1880년 경진초판 동경대전의 표지에 붙은 것과 비교하면 글짜가 조금 다르다.
도올은 이런 사실을 보고
독립기념관의 동경대전이 경진판임을 확신한다.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며 국보로 지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나(탁암)는 의심스럽다.
경진판 동경대전 배지의
용담유사 구절은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일까? 청림교처럼 두줄로 나누어 인쇄한 것은 또 없는가?
과연 1880년 경진년 인제에서 용담유사를 인쇄했다면, 인쇄했다는 역사기록을 남기지 않았을까?
경진판 끝에는 왜 편찬경위를 적은 발문같은 것이 없을까?
수덕문 뒷부분 수심정기 표현은
경진판이든 다른 판본이든 다 修心正氣로 되어있다. 그런데 왜 경진판 보다 먼저 나온 《도원기서》에는 守心正氣로 표현했고, 해월시대 이후 지금까지도 왜 守心正氣로 사용하고 있을까? 지길 守를 단순히 종교적 표현이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윤석산 교수의 글(https://m.blog.naver.com/1926nh/221239934384)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도올은 동경대전을 내며
천도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천도교는 동학의 정맥을 이은 중요한 조직이다. 의암 손병희의 결단에 의하여 수운.해월의 적통을 지킨 중요한 조직이며, 우리나라 20세기 역사에서 천도교만큼우리 민족의 본질적 각성을 위해 헌신한 종교운동도 찾아보기 힘들다. 3.1독립만세운동은 천도교가 주축이 되어 일으킨 혁명이다.
우리 민족은 어느 누구도 천도교에 적대적 감정을 지니고 있질 않다. 천도교가 변화의 동력을 어디선가 얻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천도교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고상한 품위가 있다. 그리고 배타적일이질 않다. 나는 아직도 천도교가 매우 훌륭한 동학운동공동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독자들의 긍정적인 시선과 지원을 요청한다. 나의 비판은 학구적인 문제에 한정된 것이다."
이런 입장을 가졌기에 도올의 《동경대전1,2》에 보이는 동경대전, 동학에 대한 해석과 해설은 볼 만하다. 예전의 도올 책에서 보는 지나친 과장이나 강조는 많이 줄었다. 세월이 흘렸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또《동경대전1,2》는 도올이 삼암장 표영삼 "선생님"께 올리는 책이라는 것도 알수 있다. 표영삼 뒤에는 "선생님"을 빠뜨리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삼암장의 유언이라며 글을 싣고 있다.(《동경대전 1》, 79~80쪽)
<삼암장 표영삼 선생님이 나에게 남기신 유언>
"김 선생님! '한울'이라는 말은 수운 선생님과 아무 관련이 없고, 우리 동학의 진의를 전달치 못합니다. 구송설이니 하는 것들이 모두 실제상황을 정밀하게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이 관념적으로 떠드는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동학의 참 역사를 복원해야 합니다. 천도교는 종교가 되면서 동학의 참모습을 지웠습니다. 내가 두 발로 온 천지를 헤매면서 이 땅에 새겨진 그 많은 동학의 족적을 찾아낸 것도 결국 수운 선생님과 해월 선생님의 참 모습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천도교는 동학을 보전保全하고 있질 못합니다. 천도교는 지금 안일과 나태에 빠져있습니다. 동학 원래의 생명력을 거의 다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나마 천도교래도 없으면 동학의 명맥이 다 끊어지기 때문에 나는 천도교 조직 속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천도교의 현실 속에 붙어있질 못해요. 내가 한울을 욕한다고 해보죠. 내가 천도교의 잘못된 관행들을 지적한다고 합시다. 내 꼴이 뭐가 되겠습니까? 동학이 사는 길은 천도교를 개혁하는 일인데 그것은 내가 못해요. 김 선생님 같은 분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죠. 진리를 거침없이 말씀하실 수 있는 선생님 같은 분이 동학에 대한 상념들을 모두 전복시켜야 해요. 나는 그저 역사의 진실을 전하는 일만을 해왔어요. 선생님 같은 분들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자료를 캐는 일만으로도 내 인생은 가치가 있어요. 그러나 여기까지에요. 선생님을 만난 것이 내 인생의 기쁨이었어요."
'한울'에 대한 것,
그리고
도올이 비판적으로 올린 많은 부분은
'재사심정'하며
차근차근 정리해야 할 것들이다.
《동경대전1,2》가
나에게 주는 숙제이다.
종합정리 ...위와 중복되는 것도 있음.
《동경대전1·2》
- 1권: ‘나는 코리안이다’, 2권: ‘우리가 하느님이다’
도올 김용옥은 4월 8일, 그의 신간 《동경대전1·2》를 전달하기 위해 교령사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도올은 자신이 싸인 한 저서를 송범두 교령에게 전달하며, 책이 출간되기까지 많은 도움을 준 송범두 교령과 천도교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리고 도올은 4월 11일 수운대신사와 해월신사 그리고 삼암 표영삼 종법사에게 출간을 고하는 축문(祝文)을 낭독했다.
“유세차~2021년 신축 4월 11일
조선의 철학자 도올 김용옥과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동포들은 천지의 운행 속에서
끊임없는 창조의 대업을 모색하며 우리와 더불어 숨쉬고 있는 하느님께 우리 한민족의 성경인 동경대전이 소기한 원래의 모습대로 완성되었음을 감히 소고(小告)하나이다.
바로 102년 전 오늘 4월11일, 상해에 있던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헌법이 공포되었습니다. 제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요, 제3조가 ‘대한민국 인민은 남녀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무(無)하고 일체 평등’이었습니다. 우리의 헌법에 담겨져 있는 모든 추상적, 보편적 정신은 외래문명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그 모두가 동학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동학은 논리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이 광활한 아시아 대륙에 살면서 응축시켜온 가슴의 결정체입니다. 그것은 삶의 도약이며 생명의 완성입니다. 동학은 거짓을 모릅니다. 동학은 사람됨의 가장 깊은 의미를 일깨워줍니다. 동학은 신비를 거부하는 동시에 생명의 모든 신비를 포용합니다. 동학은 우리 민족이 신당수 아래 신시를 베푼 후 온 인류에게 홍익인간의 진리를 펼친 그 체험 전체의 응축태입니다.
21세기는 동학의 시대입니다. 서학의 본질도 모두 동학으로 귀속될 뿐입니다. 동학은 코리안의 비전인 동시에 전 인류의 소망이며 희망이며 갈망입니다. 모든 종교를 뛰어넘고 상식과 과학의 궁극을 포횽하는 선포입니다.
수운 큰 선생님이시여!
이제 당신이 그토록 고대하던 그 경전이 당신이 소기한 대로 뭇사람의 가슴에 새겨지게 되었나이다. 이 책을 단 한권이라도 정성스럽게 사들고 가슴에 품는 모든 자들에게 축복을 내리시옵고, 그들 자손 만만대대로 인류의 등불이 될 것이라는 것을 축원하여 주시옵소서. 이 경전의 출간으로 인하여 부질없는 대립이 사라지고 화해와 용서와 유무상자(有無相資)의 포용이 이 사회의 새로운 덕목이 되게 하소서.
동학의 정신에 따라 이 조선 땅의 정수인 청수(淸水) 한 그릇과 향기 드높은 향불을 피워 공신존원(恭愼尊願)하오니 상향(尙饗)하시옵소서.
상향~ 상향~
2021년 4월 11일 《동경대전》 상재 초일 도올 김용옥
1.
기본적으로 《동경대전1·2》는 ‘대선생주문집’과 동경대전 ‘경진초판본’에 대한 해설이며, 도올이 삼암장 표영삼 ‘선생님’께 올리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도올은 《대선생주문집》을 펴낸 동학초기 접주 박하선(?-1869?)의 존재를 새롭게 부각시키고, 이필제(1825-1871)가 문장군(蚊將軍, 모기)이 아니라 ‘최초의 동학혁명’의 리더라는 사실도 밝히고 있다. 올해가 때마침 영해동학혁명 내지 영해교조신원운동 150주년 해라 영해지역의 구향(舊鄕)에 대항하여 새롭게 성장하던 신향(新鄕) 세력이 왜 동학을 받아들였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박하선은 영해 신향 세력의 리더였다.
해월신사는 대신사의 상(喪)을 보지 못하고 떠나면서 당시 가장 믿을 만한 친구였던 박하선에게 뒤처리를 부탁하면서 대신사의 행장 집필을 맡겼다고 도올은 추론한다. 이미 박하선에게는 동경대전 사본이 전달되었고 그는 최세조(1827-1882, 대신사보다 3살 어린조카이며 근암공이 들인 양자)를 찾아 수운의 일대기를 구성해 냈다고 한다. 동경대전 사본이 전달되었다는 것은, 곧 해월신사가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외웠다는 즉 구송설이 틀렸으며, 해월신사는 대신사의 수고(手稿)를 정확히 보존했다고 도올은 단정한다.
박하선이 펴낸 대신사의 일대기가 《대선생주문집》으로 이것이 《최선생문집도원기서》(‘도원기서’)보다 앞선다는 사실을 밝히고, 《동경대전1》에는 《대선생주문집》을 풀이하고 있다. 《대선생주문집》 풀이를 통해 도올은 ‘수운행록’은 《대선생주문집》의 왜곡된 판본이며, 강수(?~1894. 강시원, 영덕출신)는 ‘수운행록’이 아닌 《대선생주문집》을 계승하여 ‘도원기서’를 완성했음도 밝힌다.
《대선생주문집》 편찬과정에 대한 것은 도올의 추론이지만 표영삼 ‘선생님’이 “이미 말씀하신 것을 뒤늦게 알고 놀랐다.”고 도올은 말한다. 또 “표영삼 선생의 설은 함부로 나온 추론일 수 없으며, 그에게는 우리가 모르는 구전의 사실도 전승되어 있으므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고 있다.
삼암장이 역사의 현장에서, 또 역사기록을 통해 동학공부를 세밀히 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지켜보았다. 삼암장은 13년 전(2008년) 환원하셨지만 도올은 삼암장을 통해 동학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했음을 《동경대전1,2》에서 수차례 밝히고 있다. 도올은 표영삼 뒤에는 ‘선생님’, ‘선생’을 빠뜨리지 않고 있다. 도올은 ‘삼암장 표영삼 선생이 나에게 남기신 유언’이라는 글도 1권에 넣고 있다.
“김 선생님! '한울'이라는 말은 수운 선생님과 아무 관련이 없고, 우리 동학의 진의를 전달치 못합니다. 구송설이니 하는 것들이 모두 실제상황을 정밀하게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이 관념적으로 떠드는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동학의 참 역사를 복원해야 합니다. 천도교는 종교가 되면서 동학의 참모습을 지웠습니다. 내가 두 발로 온 천지를 헤매면서 이 땅에 새겨진 그 많은 동학의 족적을 찾아낸 것도 결국 수운 선생님과 해월 선생님의 참 모습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천도교는 동학을 보전保全하고 있질 못합니다. 천도교는 지금 안일과 나태에 빠져있습니다. 동학 원래의 생명력을 거의 다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나마 천도교래도 없으면 동학의 명맥이 다 끊어지기 때문에 나는 천도교 조직 속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천도교의 현실 속에 붙어있질 못해요. 내가 한울을 욕한다고 해보죠. 내가 천도교의 잘못된 관행들을 지적한다고 합시다. 내 꼴이 뭐가 되겠습니까? 동학이 사는 길은 천도교를 개혁하는 일인데 그것은 내가 못해요. 김 선생님 같은 분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죠. 진리를 거침없이 말씀하실 수 있는 선생님 같은 분이 동학에 대한 상념들을 모두 전복시켜야 해요.
나는 그저 역사의 진실을 전하는 일만을 해왔어요. 선생님 같은 분들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자료를 캐는 일만으로도 내 인생은 가치가 있어요. 그러나 여기까지에요. 선생님을 만난 것이 내 인생의 기쁨이었어요.”
삼암장의 권위에 기댄 도올의 천도교비판이 제대로 된 것은 아닐 것. 이에 대해서는 따로 논의해야 할 것이다.
2.
《동경대전1》에서 주목할 것은 ‘동경대전’ 판본 가운데 가장 먼저 간행된 ‘경진판’에 대해 도올은 “경진초판은 수운의 숨결이 담겨진 가장 아름다운 선본(善本)이며, 국보의 가치가 있다.”고 밝힌 것이다.
도올은 전하는 경진초판의 확인과정은 다음과 같다.
“1880년 강원도 인제에서 펴낸 경진판은 2009~2010년에 확인되었다. 2009년 충남 서산 음암면 신장1리 179번지 이상훈, 동경대전 한 부를 독립기념관에 기증한다. 백부 이철용의 유품이다. 이철용은 대대로 영월에 살았고 동생인 이상훈의 부친 집에 남겨놓은 짐 속에 있던 것이었다. 독립기념관의 성주현은 복사본을 윤석산, 박맹수에 전달한다. 윤석산 교수는 새로 발견된 동경대전이 경진년 초판본임 확신하고 ‘동학학보(제20호,2010.12)’에 ‘새로 발견된 목판본 동경대전 에 관하여’를 작성했다.”
이어 도올은 “천안독립기념관에 기증된 목활자판이 최초의 경진판 간행물이라는 것을 밝힌 공로는 윤석산 교수에 있음을 밝혀둔다. 윤 교수는 동학연구의 여러 분야를 개척한 석학이다. 나는 그에게 많은 배움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3. 천도교인들 많이 등장한다
《동경대전1·2》에는 임운길·이창번·윤석산·김경규·성주현·강선녀·박노진ㆍ김영진 등 많은 천도교인이 등장하며 도올은 이분들에게 받은 고마움을 나타내고, 송범두 교령이 보여준 편의에도 감사를 표하고 있다.
“현금의 천도교리더 송범두 교령도 견식이 넓고 뜻이 깊은 지사이다. 연초에 나에게 메시지르 보내왔는데 “해현경장解絃更張”이라는 매우 잘 쓴 본인의 서도 글씨가 들어 있었다. 풀어진 천도교를 다시 조여야겠다는 개혁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내가 “금위교령 今爲敎領, 간기성공懇祈成功”이라고 써서 보냈다. ‘요즘 종교의 리더로부터는 듣기 어려운 말씀이외다. 간절히 비옵건대 반드시 공을 이루소서’라는 뜻이다.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송 교령님은 나에게 많은 편의를 돌보아 주셨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뜻을 전한다."
천도교에 대한 아래의 언급도 새겨둘 만하다.
“천도교는 동학의 정맥을 이은 중요한 조직이다. 의암 손병희의 결단에 의하여 수운.해월의 적통을 지킨 중요한 조직이며, 우리나라 20세기 역사에서 천도교만큼우리 민족의 본질적 각성을 위해 헌신한 종교운동도 찾아보기 힘들다. 3.1독립만세운동은 천도교가 주축이 되어 일으킨 혁명이다.
우리 민족은 어느 누구도 천도교에 적대적 감정을 지니고 있질 않다. 천도교가 변화의 동력을 어디선가 얻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천도교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고상한 품위가 있다. 그리고 배타적이질 않다. 나는 아직도 천도교가 매우 훌륭한 동학운동공동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독자들의 긍정적인 시선과 지원을 요청한다. 나의 비판은 학구적인 문제에 한정된 것이다.”
4. 도올은 《동경대전1·2》에서 ‘천도교경전’이나 ‘천도교’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그의 표현대로 ‘학구적인’ 비판에 해당하는 부분은 많다. 도올의 문제제기를 몇몇만 정리해본다.
∎한울: ‘한울’님 표기는 잘못이며 대신사 스스로 표현한 ‘ᄒᆞᄂᆞ님’ 또는 ‘하ᄂᆞᆯ님’이 현대어에서 ㄹ탈락이 일어나 ‘하느님’이 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느님은 기독교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이며 수천수만 년 한국인의 심성에 각인된 자연스런 우리말이다. 천도교경전은 ‘한울’을 벗어나 ‘하느님’으로 회구해야 한다. ‘한울’은 협애한 과거 천도교 이념의 계승을 표방할 수 있지만, 보편적 미래의 희망을 선포하지 못한다.
∎천주실의: 동학론(논학문)의 구성양식은 《천주실의》의 구성양식과 매우 유사하며, 이 양식적 유사성만으로도 우리는 수운이 《천주실의》를 통독했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수심정기: 수덕문 뒷부분 ‘수심정기’에 대한 한자 표현은 경진판이든 다른 판본이든 다 ‘修心正氣’로 되어있다. 그런데 왜 경진판 보다 먼저 나온 《도원기서》에는 守心正氣로 표현했다. 도올은 “守心正氣는 도통전수라는 막중한 사태에서 내린 글자이다. 그러므로 닦을 수修보다는 지킬 수守가 더 적절하다 할 것이다. 즉 ‘도통을 지킨다’ ‘도통을 고수한다’는 측면에서 ‘너의 마음을 지켜라’라고 훈시를 내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해월신사 이후 지금까지도 왜 守心正氣로 사용하고 있을까? 지길 守를 단순히 종교적 표현이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윤석산 교수의 글 (https://m.blog.naver.com/1926nh/221239934384)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삼절三絶: 도올은 ‘필법’의 ‘수불실어삼절數不失於三絶’을 “그 품격의 수數가 수선삼절受禪三 絶 비문의 원초적이고도 엄정한 해서楷書 풍도에서 벗어남이 없다.”고 해석한다. 삼절이란 바로 ‘수선삼절’의 줄임말로 쓰인다. ‘수선受禪’이란 조조의 아들 조비가 후한의 마지막 황제로부터 선양을 받는 것을 기록한 역사적 비다. ‘수선삼절비’는 지금도 중국 하남성에 있고, 왕희지(303-361) 서법의 뿌리를 이루는 종요(151-230)의 작품이라 한다.
삼절三絶이란 무엇인가. ‘세 번 끊어졌다’는 의미와는 전혀 무관하다. 함부로 추측하지 말아야 한다. ‘삼절’이란 세 번의 끊어짐이 아니라, ‘송도삼절松都三絶’(박연폭포는 사람은 아니지만)과도 같이 ‘탁월한 세 사람’ 혹은 세 사람이 모여 만든 작품을 의미한다. 수운이 ‘수불실어삼절’이라고 말한 것은 자신과 조선의 서법이 결코 삼절비의 오리지날리티에서 어긋남이 없다는 것을 천명하는 호쾌한 발언이다. 수운의 전문적인 서예사의 감각을 파악하지 못한 채 ‘국운이 세 번 끊겨도…’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이상한 말이다.
∎천황씨天皇氏: 《대선생주문집》 중 先生方爲下箸時, 顧謂左右曰:“世上謂我天皇氏云云.”의 해석. “선생께서 차려놓은 음식에 젓가락을 대시려고 할 때 좌우를 둘러보시며 유쾌하게 말씀하시었다. ”아~이렇게 엄청난 밥상을 받다니, 세상 사람들이 나를 천황씨라고 놀려대겠구만!”
이 구절 해석은 그 뜻이 문자 그대로는 너무 생뚱맞기 때문에 감히 현재형으로 해석하지 못하고 미래형으로 해석한다. “세상 사람들이 앞으로 나를 천황씨라고 부를 것이다.”
무슨 후천개벽세의 주인으로서 나를 말하게 될 것이라는 등 전혀 어처구니없는 해석을 늘어놓는다. 천황이라는 것은 민간에서 흔히 말하는 삼황오제의 총댓빵이다. 오제는 소호·전욱·제곡·요·순을 가리키고 삼황은 천황씨·지황씨·인황씨를 가리킨다. 수운이 자기 생일잔칫상을 받아놓고 자기를 황제로 선포하기라도 했단 말인가? 수운은 결국 모든 신격화된 초월적 존재나 인간 위에서 인간을 지배하는 모든 권력의 상징체를 거부한다. 그러한 수운에게 수운의 입에서 나온 말로서 ‘수운=하늘의 황제’라는 메시지를 선포하게 하는 것은 천하의 몹쓸 일이다. 이 문구는 현재형이며 미래형으로 해석될 수 없다. 미래형이라면 ‘世人將謂我天皇氏’라고 했어야 한다. 현재형의 해석난감 때문에 미래형으로 우회시켰으나 그것도 잘못된 해석이기는 마찬가지다. 수운이 기껏해야 이 인간세에서 천황씨로서 기억될 것을 갈망이라도 했단 말인가.
이 문구는 수운의 유머 넘치는 골계의 일종이다. “원 세상에! 이렇게 과한 상을 받다니! 세상사람들은 날 보고 천황씨 밥상을 받았다고 놀려대겠네!” 이것은 선생의 본의가 큰 잔치 벌이는 것을 삼가셨다는 멘트와 일관된 것이다. 민간신앙 최고의 존재인 천황씨의 상을 내가 받다니 하면서 도인들을 놀려먹으면서, 동시에 도인들에게 천왕씨나 받을 만한 상을 차려준 것, 그 정성과 성의에 감사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