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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직 인도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저런 방황을 다 해 본 후 부처님 가셨던 길을 절절하게 살펴보고 싶은 욕심에서이지요.
2년 뒤 쯤에나 한 번 가 뵐까 그러고 있습니다.
그래서 늘 인도 이야기는 제 눈길을 잡아끕니다.
여기 잔잔한 인도 이야기를 허락도 없이 퍼 올려 보았습니다.
2004년 12월 (11)
지난 글들
새아침 설산을 향해 난 문을 열면 온갖 새들 노래가 반겨줍니다. 오랜만에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눈이 시리고, 설산이 장엄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따사로운 햇볕이 눅눅한 방안을 비춰줍니다. 커튼을 열고 방 구석구석까지 햇볕을 쏘이게 해 주고, 창문도 활짝 열어 신선한 공기를 채워줍니다.
묵고 있는 호텔방 맞은편으로 수도원(Tashi Choeling Monastry)에도 양치질하는 티베트 스님들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호텔 밖으로 나가면 My Cafe라는 아주 조그만 카페가 있습니다. 벌써 부지런한 주인 내외가, 남편은 기계에 반죽을 밀어 넣어 국수를 뽑아내고 있고, 아내는 짜이를 끓여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과 아주 흡사한 이들 내외와는 달리 남방계통 출생이 분명한 일하는 아이가 한 명 이 가족을 구성합니다. 열 두어 살 정도 돼 보이는 이 아이는, 삶은 감자 껍질을 벗기기도 하고, 짜이를 손님들에게 가져다주기도 하고, 행주로 식탁도 훔치고, 그러다가 시간이 나면 바람 빠진 주먹만한 공으로 축구 연습을 하기도 합니다. 바로 반죽해서 구워주는 버터 판케익을 시키고, 2개 밖에 없는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앉습니다. 판케익이 익어가는 구수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사이에도 짜이 손님들이 그치지 않습니다. 지름이 20cm는 족히 되는 판케익 한 개면 배가 부릅니다. 판케익 값은 18루피, 우리 돈으로 450원입니다. 묵고 있는 호텔은 조기바라 로드(Jogibara Road)의 제일 남쪽 끝입니다. 아카시(Akash)호텔 바로 옆에는 한국식당 도깨비(Dokebi)식당이 있습니다. 또 호텔 조금 못 와서는 일본식당 룽타(Lungta, 風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두 곳 다 이곳의 명물인 모양입니다. 손님들이 많습니다. 아침을 해결하고 길을 따라 중심가로 산책길에 나섭니다. 약 100m 정도 가면 우체국도 나오고, 약방도 있고, 노점 야채상들도 만납니다. 그 사이에도 여기저기 식당들, 전화방들이 있습니다. 지금 이 길은 겨우 짚차 한 대가 지나갈 정도 폭입니다. 가스 같은 필수품을 배달하는 차라도 오면, 다른 모든 것들이 비켜주어야 합니다. 이 길 옆은 비탈면인데 여기로 길들이 나서 유치원, 요가센터 같은 시설들로 연결시켜 줍니다. 물론 이렇게 가지를 친 길로는 차가 다닐 수 없습니다. 이 길 중간에 1 평방미터도 되지 않는 판자로 얼기설기 만든 가게가 있는데 여기서 양고기를 팝니다. 아마 이슬람 신자들을 대상으로 할랄미트(halal meat)를 파는 곳인 모양입니다. 양고기를 먹되, 이슬람 신자가 이슬람 법도에 맞춰 잡은 제대로 된 양고기만 먹어야 한다는 엄격한 교리가 이곳 티베트 불교의 요람에서 이채롭습니다. 이 가게를 지나면 항상 똥냄새가 진동하는 지점이 나오고, 여기를 지나야지만 본격적인 중심가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맥그로드간즈의 중심가는 지금까지 따라온 조기바라 로드와 바로 옆에 나란히 나 있는 템플로드(Temple Road)로 구성됩니다. 매우 좁은 조기바라 로드에 비해 템플 로드는 좀 넓기는 하지만 중형 버스 한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폭에 불과합니다. 그러기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버스는 여기까지 들어오질 못합니다. 조기바라 로드 길 양옆으로는 쇼올, 옷, 가방 등을 파는 가게와 호텔, 음식점들이 어지럽게 들어서 있습니다. 템플 로드의 사정도 거의 비슷합니다. 환전상, 전화방, 식당, 기념품가게 등이 줄지어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초등학교 조회가 있나봅니다. 백명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푸른 교복을 입고, 합장을 한 채, 합창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같아 보이는 분들도 함께 합니다. 잘 들어보면 노래가 아니고 불경(佛經) 같기도 합니다. 학교를 지나고, 템플 로드를 따라 쭉 내려와서 쭐라캉까지 지나서 코라산책을 합니다. 오는 길에 여기저기 동냥을 바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각자 맡은 자리들이 있어서, 이제는 웬만큼 눈까지 마주치고 인사까지 하기도 합니다. 산책을 마치고 왔던 길을 반대로 해서 호텔로 돌아갑니다. 이렇게 해서 방으로 돌아오면 10시쯤 됩니다. 홍차 한잔을 마시고, 빨래 내다 널고, 햇볕이 좋으면 모포도 내다 널고, 설산을 바라보며 책도 읽고, 날아가는 매도 바라보다가, 까마귀 소리에 방해를 받기도 하면서 아침이 갑니다. 점심은 출발하기 전에 검색해 두었던 한국식당에 모처럼만에 가 보기로 합니다. 며칠 전 박수폭포 가는 길에 [ri:]라는 식당을 찾을 수 있었는데 마침 추석 휴가라고 문을 닫았습니다. 오늘이 다시 문을 여는 날이라고 해서 거기 가 보기로 한 것입니다. 아침에 갔던 길을 따라 버스정류장이 있는 중심가까지 가서, 거기서 박수폭포로 가는 오른쪽 길로 접어듭니다. 길옆으로 Sun Rise 카페, Moon Light 카페 같이 배난여행객들에게 잘 알려진 장소도 볼 수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제일 맛있는 짜이 집이라고 허풍이 대단한 선전 문구가 보이기는 하지만, 두 세평이 못되는 콧구멍만한 찻집입니다. 여기를 지나 조금 더 가면, 그 한국식당이 나옵니다. 그런데 아직도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갔던 길을 조금 되돌아 와서 도르마와 도르제(Dorma and Dorje)라는 티베트 식당으로 갑니다. 이 식당 역시 테이블이 서너 개 밖에는 안 되지만 배낭족들에게는 잘 알려진 곳입니다. 이 식당은 절반으로 자른 빵 속에 두부를 햄버거처럼 만들어서 구운 것을 넣어 주는 두부버거로 유명합니다. 토마토와 양파, 그리고 토마토케첩을 뿌려줍니다. 여기에 프렌치프라이 감자까지 추가하면, 30루피로 한 끼 식사로 충분합니다. 점심을 먹고 천천히 걸어 박수나트까지 산책을 합니다. 아침나절 그렇게 청명하던 하늘이 완전 구름으로 뒤덮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길바닥까지 구름이 낮게 깔려 사뭇 축축하기까지 합니다. 설산은 물론 아래쪽도 잘 보이질 않습니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정리합니다. 벌써 내일이면 다시 델리로 가야합니다. 그사이 구름은 더 짙어지고 드디어 비까지 내립니다, 방문을 열고 의자에 앉아 밖을 내다봅니다. 냉기가 방안까지 파고듭니다. 저 멀리 천둥까지 가세합니다. 운무는 더욱 짙어져 불과 10m 앞도 식별할 수 없습니다. 드디어 굵은 빗방울이 본격적으로 쏟아집니다. 바로 옆 땅에서 집 짓는다고 뚝딱거리던 인부들도 빗줄기 앞에서는 속수무책, 사위가 조용한 가운데, 빗방울 듯는 소리만 고요를 깨고..... 누가 알랴, 또 다시 비가 그치고 해가 나타날지.... 이런 가운데 운무가 걷히기 시작합니다. 이윽고 5시가 넘으면서 비마저 그칩니다. 호텔 앞 룽타 PC방에 가서 이메일 확인을 하고, 다음 날 델리행 버스 탈 위치를 확인하러 중심가 쪽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이제 저녁을 먹을 시간입니다. 지난 이틀 동안 배탈이 나서 고생을 했는데, 약사의 충고대로 자극성 없는 음식을 찾다가, 그래도 밥이 좀 나을 것 같아, 모처럼 정통 식당을 가 봅니다. Ashoka란 인도식당으로 가서 말라이코프타(Malai Kofta)와 흰 밥을 시켜 먹습니다. 이 음식은 식당에서 추천한 것인데 감자와 치즈를 으깨어 경단 모양으로 만든 것이 들어있는 걸쭉한 국 같은 것입니다. 맛도 자극성이 없고, 무난한 맛입니다. 밥도 먹었으니, 이제는 호텔 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하고, 양말과 내복을 빨아 널고, 그리고 수타니파아타를 읽습니다. 홍차 한잔을 곁들입니다. 이렇게 또 하루가 지나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