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대신 마라톤 완주할 다리를 주셨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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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마라토너 추순영(아녜스)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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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순영씨가 10월 28일 독일 베를린 마라톤대회 풀코스를 완주하고 브란덴브르크 광장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 "달릴 때면 눈이 안 보인다는 사실도 잊어버려요. 오로지 두 다리만 믿고 전진할 뿐이에요."
시각장애 2급인 추순영(아녜스, 36, 서울 미아동본당)씨는 지난 10월 독일 베를린마라톤에서 4시간 10분대 기록으로 42.195km 풀코스를 완주했다.
마라톤은 비장애인에게도 힘든 스포츠다. 도중에 포기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2m 내 사물의 형체만 겨우 구분할 정도의 약시인 그는 올해 7번이나 완주했다.
"달릴 때마다 몇 번의 고비에 부딪혀요. 특히 이번에는 길잡이 도우미가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홀로 12㎞를 뛰어야 했어요. 가장 큰 고비였어요. 어렴풋이 보이는 앞 선수의 등을 어림잡고, 작은 소리에 의지해가며 겨우 완주했어요."
그는 장애의 몸으로 왜 '겁 없이' 마라톤에 도전했을까.
1986년 맹아학교 재학 시절, 학교 선생님 권유로 시작하게 된 운동이 삶을 바꿔놨다. 그는 운동에 소질을 보여 1988년 서울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과 1996년 애틀란타 패럴림픽에 골볼 국가대표로 출전했다. 골볼(방울이 든 공을 상대편 골에 넣는 시각장애인 경기) 국가대표 경력만 15년이다.
"만약 운동의 재미를 몰랐다면 장애를 극복하려는 생각조차 못했을 거에요. 앞을 못봐도 무언가 성취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어요. 운동할 때 만큼은 장애를 가졌다는 사실조차 잊게 돼요."
게다가 운동은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도 만나게 해줬다. 장애인 역도 국가대표 선수인 봉덕환(45)씨와 결혼해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됐다.
이후 추씨는 주변의 권유로 한국시각장애인 마라톤클럽을 알게 되면서 마라톤에 도전을 꿈꿨다. 시각장애인 마라톤에 처음 출전해 10km 부문 우승을 거머쥔 뒤 달리기의 맛을 알았다. 그 길로 남산에 올라 가톨릭마라톤동호회 자원봉사 도우미들과 연습에 돌입했다. 앞이 안 보이기에 다른 마라토너들보다 몇 배 더 외롭고 힘들었다.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저를 지탱해준 건 바로 기도였어요. 신발끈을 고쳐맬 때마다 기도하고, 달릴 때는 '하느님 제발 끝까지 지켜봐주십시오'라고 기도해요. 결승점에 들어설 때마다 주님께서 함께 달려주셨음을 느낍니다." 고등학교 때 세례를 받은 뒤 사는 게 힘들다는 이유로 줄곧 냉담했던 그는 마라톤 덕에 다시 주님께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다음 목표는 남편과 아이들도 주님께 인도해 가족이 함께 '인생의 마라톤'을 달리는 것이다.
이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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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신문 2008.1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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