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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6-22 숙부님 천수 유품정리 사진한장의 추억
조동화의 아버지 남자형제는 작은아버지 한분인데, 2025.6.8. 92세를 일기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서 2025.6.11. 4일장으로 장례를 마치고 이승과 영원히 작별, 천국의 나라로 가시여 한없는 슬픔으로 이승에서의 나쁜기억은 모두 잊고 저세상에서는 아프지 말고 즐겁고 행복한 세상에서 마음껏 여행하기를 기도하며 보내드렸다.
나의 사촌누이동생 현숙이는 숙부님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사진 한 장을 카톡으로 보내왔는데, 내가 한번도 보지못한 사진을 숙부님께서 보관하고 있던 귀한 보물이었다.
1954년도 찍은사진으로 숙부님이 김제고등학교 3학년 다니던 사진인데 당시 숙부님은 20살로 나와는 16년 위였으며 내가 네 살때 촬영한 사진이다.
사진속 얼굴은 숙부님 20세, 아버지 28세, 어머니26세, 할머니47세, 상할머니74세, 나는 네 살, 내동생 수권이는 나와는 3살아래로 1세여서 어머니가 안고 있다.
1950년생 조동화가 네 살적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있었다니 기적 같은 일이로구나.
그시절 4대가 한집에서 잠을 자고 살았으며, 어머니는 할머니와 상할머니 모시랴, 시동생(조동화의 숙부)수발하랴, 자식 키우느라 시집살이가 많이 힘들었을것으로 생각 되어진다.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무엇을 위해 사는가 곰곰 생각해 본다.
우리 어머님 연일 정씨 정순봉은 나를 1950년 전쟁중에 잉태하여 이땅에 보내시여 바른길로 가도록 인도하고 보호해 주셨기에 현재의 조동화가 존재할수 있게 해 주시었다.
조동화는 6.25 전쟁의 와중에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세월을 이기지 못하여 어느덧 석양의 노을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수다.
인간의 근본은 어머니로 부터 세상에 나왔기에 어머니는 이세상을 떠나갔지만 언제나 어머니를 사모하면서 세상을 개척하며 살아간다.
나의 어머님 연일정씨(延日鄭氏) 정순봉(鄭順奉)님께서는 모현동 옥호동에서 1928년도(소화3년) 음력 8월15일(양력 9월28일)에 태어나 1996년5월5일(양력, 음력은3월18일) 69세에 사망하시었다.
나의 어머님께서는 두 살때 아버지(나의 외할아버지)를 여의었고 어머니(나의 외할머니)를 26살 때 여의시었다.
어머님 정순봉님은 21살 꽃 다울제 23살의 김제조씨(金堤趙氏) 조병옥님과 숙명 처럼 혼인하여 6.25사변통에 장남 조동화를 이세상에 보내여 두 세 살씩 터울 두고 육남매 기르느라 철 지나고 해 가는 줄 모르는 채 살았구나!
꿈속에서도 그리던 어머니 사랑합니다.
어머니는 조동화를 잉태하여 이세상에 보내여 주셨으니, 이세상 항해하며 행복한 세상을 항해 하는것이지.
어머니는 사랑의 여신(女神)이고, 희망(希望)의 여신이다.
어머니는 모든 것을 다 품어 주시고, 애간장을 녹이며 모든 것을 내어주시었다.
어머니 정순봉(鄭順奉) "어머니" 라는 이름은 영원한 향수이며, 불러도 불러도 가슴속에 사무쳐 자꾸만 그리운 이름이여.
어머니의 마음 아들을 구하기 위하여 불구덩이도 들어가는 용기를 나는 압니다.
어머니의 고귀한 사랑...............................
조동화의 아버지 조병옥님은 여느 아버지와 같이 큰아들 동화가 잘되라고 인도하고 기도하시었다.
키는 크지 않으셨지만 멋쟁이셨다.
늘 아버지는 양복차림에 넥타이를 메고 외출하시었다.
농촌에 사시면서도 일은 많이 하지 않으셨다.
이리도 한세상 저리도 한세상 즐거웁게 사시다 가시었으면 되얐지요.
인생이 100년도 못살면서 1000년어치의 걱정을 하고 살면 않되지요.
조동화의 아버지는 멋지신 분이었지요.
생전의 아버지는 염문도 많이 뿌리시었으나 아들사랑은 극진 하시었지요.
웬 세월이 빨리 흘러 갔을까?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저녁이 지나고 나면 아침이 찾아오고, 그날이 그날 세월은 도둑놈이여.
하루하루가 흘러가다보니 홍안의 시절 모습은 간데없고 황혼의 계절이 되었다니 서글프구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 유명한 말이 있다.
석양의 언덕 노년기에 접어든 친구들아!
건강이 제일 큰 재산이여.
황혼의 노년기 건강이 제일이여.
친구들이여 여가와 건강관리로 행복해야지요.
"9988234" 라는 말이 있다.
플어보면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3일만 앓다가 죽자. 이런 뜻이여.
인생 만사 새옹지마와 같다.
살다가 보면 어려운 상황과 행복한 일들이 다발적으로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럴 때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되새길 일이다.
남은 인생 여정 긍적적으로 살아야지요.
세월을 붙잡을수도 없고 원망할수도 없고 그러네요.
현명하게 "이또한 지나가리라" 위안 삼으며 2025 기쁘게 살아야지요.
감사합니다.
행복합시다.
건강합시다.
<김제 와룡마을 시골 고향집 부엌 처마 앞에서 조동화가 4세적 1954년에 가족들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맨앞 고개를 숙이고 개찜에 손을 집어넣은 어린 소년이 네살적(1954년) 바로 조동화로구나.
조동화는 네 살이었고 상할머니(증조모)는 72세였으며 맨앞에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었구나.
조동화의 뒤에는 할머니가 서서 사진을 찍었고 이때 할머니 나이는 47세였다.
학생모자와 제복을 입은 학생이 바로 조동화의 숙부님이 20살적 김제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뒤쪽 안경쓰신분이 조동화의 아버지 28세일 때 모습으로 숙부님과는 8살 차이가 나며 조병옥님이시여.
조동화의 아버지 조병옥님은 나이 드셔서도 시력이 좋으셨는데 아마도 멋이 있으라고 안경을 쓰신 것 같다.
아버지 옆에는 어머님 26세일적 정순봉님이 3살터울의 조동화의 동생 수권이를 안고 있구나.
2025.6.8. 향년 92세로 천수하신 숙부님은 장조카 조동화와 16년 차이로 결혼 1년정도 고향 와룡에서 신혼생활을 하시다가 김제로 제금 날때까지 조동화와 한집에서 살았는바 남원에서 시집온 작은 어머님 박금례님과 금실이 아주 좋았었다.
증조부(상할아버지) 조철만(자 영삼) 21세손 1868. 4. 1.-1946. 4. 1(음력 79세 사망)
증조모(상할머니) 보성오씨 오성녀 1882.10.5.-1964.6.16.(음력 1964.5.7. 83세 사망)-조동화중1때 사망
조부(할아버지) 조갑동(자 선식) 22세손 1906. 11. 24.-1983.8.3(음력 6.25. 78세 사망)
조모(할머니) 전주유씨 유보림 1907.1.19.-1964.5.16.(음력 1964.4.5. 58세 사망)- 조동화중1때 사망
부친 조병옥 23세손 1926.4.11.-1999.1.22.(음력 1999.12. 5. 74세 사망)
모친 정순봉 1928.8.15.-1996.5.5.(음력 1996.3.18. 69세 사망)
숙부 조병무 1934.9.1. - 2025. 6. 8(음력 2025.5.13. 92세 사망)>
<조동화는 네 살 나이에 내모습의 기억이 없어 오직 사진으로 나를 기억하노라.
조동화는 1949년도 어머니 22살 정순봉님과 아버지 24살 조병옥님이 혼인하여 1950년도 전쟁통에 낳으셨다.
조동화가 1950년 이세상에 태어날때는 어머니 정순봉님은 23살, 아버지 조병옥님은 25살이었다.
할머니도 상할머니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숙부님도 이세상에 아니계시니 이사진의 유래를 물어 볼길이 없으니 아쉽기 한이 없구나.
조동화의 할머니 유보림님은 이때 나이가 47세, 아버지는28세로서 19살에 아버님을 낳으셨다.
전주유씨 유보림할머니는 18살 나이에 삼례에서 김제와룡 김제조씨 19세인 조갑동할아버지에게 시집을 오시었다.
할머니 19세 할아버지 20세에 조동화의 부친 조병옥님을 낳으셨고 8년후 숙부님 조병무님을 낳아 숙부님은 아버지보다 8살 아래이시다.
장조카 조동화와 16세 차이의 20살 숙부님 조병무님은 장조카 조동화를 사진찍는데 고개 좀 바르게 하라고 하지 않았네요.
할머니는 큰손자인 나를 시골집 와룡에서 동네 고사티를 걸어다니시며 업어서 키웠을 것이다.
할머니는 1964년 내가 중학교1학년때 파상풍으로 일주일 앓다가 58세에 돌아가시었다.
사랑하는 할머니 사랑합니다.
김제조씨 가문 김제 와룡에서 태어나고 자란 조동화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머니 정손봉님과 아버지 조병옥님한테 이 세상에 왔으니 삶에 이유가 없고, 그냥 태어났으니 사는것이다.
인간의 삶이란 정답이 없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
삶의 여로에서 이세상 살아가는 것이 모두가 “부질없다” 하면서 그냥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누가 속세를 가리켜 잠깐의 꿈속세상이라 했던가?
인생은 한조각 뜬구름 같은것이며 자연에 순응하며, 오직 한번의 인생 소중한 시간을 즐겁게 살자.
오늘 해야 할일이 있다면 바로 시행하고, 평범한 일상이 나에게 가장 소중한 행복의 자원임을 꼭 기억하며 사리라.
행복이 뭐 별거 있습니까?
그냥 내가 하고 싶을거 하면 그게 행복입디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숙부님 살아생전 2025.3.15. 봉성아우딸 아산에서 결혼식날 장조카인 조동화와 함께 아산에서 찍은사진이여.
숙부님은 이때 지팡이를 짚으며 걸으실 때 솔찬히 힘들어 하는 모습이었다.
조동화의 11년 아래 65세 된 사촌누이동생 현숙이에게 숙부님과 기념사진 한 장 남겨야겠다고 하여 사진 한방 눌어 주었다.
조동화는 줄곧 현숙 누이동생을 부를 때 현숙아 불렀는데 현숙이도 어언간 65세의 나이가 들어 오빠와 같이 늙어가는 나이가 되어 어떻게 불러야 될지 모르겠구나.
누이동생 현숙아!
환갑이 넘은 현숙이를 어린시절 생각만하여 아이들 이름 부르덧 불러 미안한 생각이 드는구나.
누이동생 현숙이도 건강을 잘 챙기며 살아가기를 손 모아 빌겠다.
장조카인 나는 숙부님에게 걷는 운동 하시냐고 물어보니 “지팡이가 있어야 걷는다.”고 하며 “인생은 나이들면 다 얼굴도 쮸굴 쮸굴 늙고 힘이 없어진다.”고 하였다. 이것이 장조카인 조동화와 마지막 대화였다.>
<조동화의 숙부님 조병무님께서는 아주대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92세로 숨을 거두기 직전의 모습이여!
몇일간 면도를 않하였는지 턱에 수염이 길었네요.
저승에서는 아프지 말며 광명 세상에서 영생불멸하시오.
조동화의 숙부님은 1934에 김제 와룡에서 태어나 92년의 오랜 세월동안 이승에서 온갖 풍상과 세월을 견뎌왔지만, 결국 늙어서 저세상으로 가시여 천수하시었다.
모든 자연의 이치가 그러하듯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사람도 태어나고 죽으며, 돈많은 이건희회장도 김대중대통령도 죽음을 피할수 없었으니 자연의 섭리는 매정하여, 장조카가 서러워하는 것은 이승에서의 숙부님과 장조카라는 인연때문이 아니겠는가요.
숙부님은 이세상을 살면서 92년동안 파란만장한 수많은 족적을 남기고 부를 이루며, 달랑 수의한벌 입고 이승을 떠났다니 인생무상이 아니런가.
이제는 전화해도 목소리를 들을수 없으니 장조카는 이 어찌 가슴이 찢어지고 슬프지 않겠소.
나의 숙부님!
92세로 천수하였다고 하지만,
장조카는 애통하고 비통한 마음으로 울면서 숙부님을 보내드리니 미움과 서러움 근심 걱정 다 거두어 이제 이승의 모든 고통 다 잊어버리시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하늘나라에서 편안히 쉬십시요.>
만물의 영장인 인체의 신비
인간은
입에서 항문까지 8.5 킬로미터라~~~~~~~
인체의 핏줄은(동맥, 정맥, 모세혈관의 총길이) 120,000km이다.
경부고속도로 왕복 900km 이니까, 133번 왕복할 수 있는 길이이다.
지구둘레가 40,008km이니까, 지구를 3바퀴 돌 수 있는 거리이다.
놀라운 건 혈액이 몸을 한 번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46초 정도밖에 안 걸린다.
이렇게 긴 핏줄을 이해한다면 피가 맑아야 병이 없고 오래살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뇌는 1000억개의 신경세포와 100조개의 신경 연접부를 갖고 있어 신경의 연결망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성인의 머리카락 숫자는 10만개, 수염은 3만개, 잔털은 30만개.
하루 호흡수는 2만번 정도로 들숨과 날숨 공기량은 8000ℓ가 된다.
우리가 거의 깨닫지도 못하는 눈 깜빡임은 눈을 보호하고 각막을 매끄럽게 하는데, 1분에 15번, 한 시간에 900번이다.
재채기는 코의 점막이 자극을 받아 일어나는 경련성 반사 운동이다.
눈을 감고 재채기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재채기는 시속 160Km의 속도로 퍼지는데 이는 야구에서 투수가 던지는 공보다 훨씬 빠르다.
남자의 몸은 60%가, 여자의 몸은 54%가 물로 되었기 때문에 대개 여자가 남자보다 술에 빨리 취한다.
여자가 아기를 출산 때는 자궁 입구가 평상시 때보다 500배나 크게 열린다.
콜레스테롤은 인간의 몸에 해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콜레스테롤은 음식물안의 지방을 녹이는등 생리작용에서 생화학적으로 아주 중요하다. 콜레스테롤을 너무 많이 섭취하면 간에 부담을 주고 혈관 속에 쌓여 급기야는 혈관을 막아서 사람을 죽게 하기도 하지만 우리 몸에서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인생의 의미
우리는 흔히 왜 사느냐고
인생의 의미를 묻습니다.
그러나 삶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인생은 의미를 갖고 사는게 아니라
그냥 사는 겁니다.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그러면 또 하나의 굴레만 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은 길가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입니다.
길가에 풀꽃처럼 그냥 살면 됩니다.
"나는 특별한 존재다. 나는 특별해야 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자신의 하루 하루 삶에 만족 못하고
늘 초조하고 불안하고 후회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면
특별한 존재가 되고,
특별한 존재라고 잘못 알고 있으면
어리석은 중생이 되는 겁니다.
내가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길가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같은
존재라는 것을 자각한다면
인생이 그대로 자유롭습니다.
내가 남보다 잘 나고 싶고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인생이 피곤한 겁니다.
진정으로 자유를 원하고
행복을 바란다면
마음을 가볍게 하길 바랍니다.
그러면 스스로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삶이 별게 아닌 줄 알면
도리어 삶이 위대해 집니다.
- 출처 : 벨루가 -
인생(人生)이란 무엇인가?
인생? 지금 살고 있는 오늘이 소중한 것은
어제 세상을 떠난 사람이 그토록 원했던 내일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인생? 암에 걸려서 3개월 후에 죽는다는 판정을 받은 친구가 와서 손을 잡고 울고 위로하고,
그 불행을 슬퍼해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한 시간밖에 못살 사람이 3개월이나 살 사람을 불행하다고 위로해 주고 갔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아무도 모릅니다.
※ 수많은 인생에 대한 명언 중에서도 막시무스가
최고의 명언 5개를 골라보았다.
1. 인생이란 불충분한 전제(前提)에서 충분한 결론을 끌어내는 기술이다.
인생이 충분한 전제에서 결론을 내리는 일이라면, 우리가 사는일이 이렇게 서툴고 실수투성이는 아닐 것이다.
인생은 도대체가 전제(前提...먼저 내세우는 것)가 없는 놀이다.
막시무스가 인생에 대한 최고의 명언으로 꼽는 영국의 소설가 사무엘 버틀러(Samuel Butler, 1835~1902)의 말이다.
2. 인생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라.
어차피 당신은 살아 나가지 못할 테니까.
막시무스가 세상의 짐을 혼자 다 짊어진 것 같은 표정으로 사는 사람을 볼 때마다 해주고 싶은 얘기다.
아무리 심각해도 인생에서 살아 나간 사람은 없다.
넥타이 풀고 살자.
미국의 작가이자 철학자였던 엘버트 허바드(Elbert Hubbard, 1865~1915)가 남긴 멋진 말이다.
3. 당신은 여기 잠깐 들른 것이다.
서둘지 말고 걱정하지도 마라.
그리고 가는 길에 꽃향기도 꼭 맡아보아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하늘로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겠다고 쓴 천상병의 세계관과 비슷한 인생관을 담고 있는 글이다.
우리는 여기 잠시 들른 사람들이다.
그러니 제대로 된 여행자처럼 살자.
살아 있을 때는 지금의 타이거 우즈만큼 유명했던
하겐(Walter Charles Hagen, 1892~1969)이라는 미국의 프로 골퍼가 한 이야기다.
4. 인생은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 이상의 것이어야 한다.
비워서 행복해진 사람은 많아도 채워서 행복해진 사람은 별로 없다.
살면서 욕심이 날 때마다, 그리고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 뭔가 부끄러운 짓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생각하는 말이다.
인생에는 소유하는 것보다 더 큰 목적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작가 겸 삽화가였던 모리스 센닥(Maurice Sendak, 1928~ )의 말이다.
5.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드문 일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그저 존재할 뿐이고 그게 전부다.
다른 사람 볼 것 없이 막시무스의 생활만 돌이켜 봐도 맞는 말이다.
그래서 이 말을 기억하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살려고 노력해 본다.
단 하루라도 제대로 말이다.
독설로 유명한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65~1950)의 인생 관찰이다.
아일랜드의 극작가 버나드쇼의 묘비명
아일랜드의 천재 극작가 죠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1950)의 묘비명에는
"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
훌륭한 번역가들이 " 우물쭈물하다가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라고 번역했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버나드 쇼가 말하고자 하는 묘비명의 그 글은 무엇을 이야기 하고자 했던 것일까?
무엇이던지 하고자 하면 당장 시작해보라,
바로 실천하고 그 목표를 향하여 꾸준히 걸어가라는 뜻이리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행동에 옮기라는 것이다.
버나드 쇼는 자기가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일들을 다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죽음에 임박하여 자기 삶을 후회하고 반성했다는 것이다.
그러지요.
한번뿐인 인생 우물쭈물하면 후회하지요.
먹거 싶은거 먹고, 하고 싶은일하고, 여행하고 싶으면 여행하고 미루지말고 실천하며 후회하지 말아야지요.
죠지 버나드 쇼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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