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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전세계적인 반자유주의적 권위주의 정권의 대두와 그 배경이 되는 대중주의(포퓰리즘)출현으로 원제인 “Light that failed”처럼 자유민주정이 실패하는 상황을 모방의 시대의 종말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고 있다. 궁극적으로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하였다는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이 논해지던 1989년 이후 오늘까지 30년간의 세계 정치의 상황을 공산권 몰락 이후 민주정 모델을 모방한 중부유럽, 민주정을 가장한 러시아, 모델이기를 거부하는 미국, 중국의 부상을 통해서 살펴보면서 보편주의와 대중주의의 대결 양상으로 전개되는 전지구적 정치상황을 살펴본다. 2020년 민주정의 위기가 논해지는 현실에서 89년 이후 30년간 세계 정치의 각종 사건의 의미와 영향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준다. 포퓰리즘과 정체성정치라는 상황은 우리에게도 동일하므로 제6공화국 87체제 30년에 이른 우리의 정치적 위기 상황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1989년은 30년 ‘모방의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서방이 지배하는 단극체제는 도덕적 이상의 영역에서 자유주의를 도전 불가인 것 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서방의 정치적 경제적 모델을 수출한다는 당초의 높은 기대가 시들어지면서 모방의 정치학에 대한 혐오감이 점차 확산했다. 반자유주의적 반동은 아마도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대안의 부재로 특징지어진 세계에 대한 불가피한 반응이었을 것이다.”P13
“대중주의자(포퓰리스트)들은 특정 유형의 정치이념(자유주의)에 대해서, 그리고 공산주의의 정통성을 자유주의적 정통성으로 대체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기를 든다. 좌익과 우익 양쪽 모두에서 반란운동의 메시지는 사실상 양자택일의 접근법은 틀렸으며 일은 서로 다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다 친숙하고 정확할 수 있다는 것이다.”P14
“(장벽이 무너진 뒤에) 가장 중대한 분열은 모방자와 모방대상으로 나뉘었고, 민주주의를 이룩한 나라들과 민주주의로 이행하려 애쓰는 나라들로 나누었다. 동방과 서방의 관계는 두 적대적 체제 사이의 냉전 대치에서 하나의 단극 체제 내부의 모델과 모방자 사이의 껄끄러운 관계로 바뀌었다.”P15-16
“오늘날 이 지역에서 반자유주의적인 정치를 자극하는 핵심적인 불만은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을 민주화하려는 시도가 서방에서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가치관과 습관과 태도로 일종의 문화적 개종을 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토착 전통에 일부 외래요소를 접목하는 것과 달리, 이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충격 요법은 그들이 물려받은 정체성을 위험에 빠뜨렸다.”P20
“중국의 부상은 1989년 공산주의 사상의 패배가 결국은 자유주의 사상의 일방적인 승리가 아님을 시사한다. 대신에 단극 체제는 당시 그 누가 예측했던 것보다도 자유주의에 덜 우호적인 세계가 됐다. 일부 평론가들은 1989년이 적대적인 보편 이데올로기들 사이의 경쟁을 종식시킴으로써 자유주의 및 공산주의의 구현 과정에서 ‘계몽’사업 자체를 결정적으로 손상시켰다고 주장했다. 헝가리 철학자 커마시 가슈파르 미클로시는 한발 더 나아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유토피아는 모두 1989년에 패배해 계몽 사업 자체의 종말을 알렸다’고 주장했다.”P31
“대중주의의 근원은 복잡하다. 부분적으로 그것은 우월한 모델의 열등한 모사품이 되기 위한 힘겨운 투쟁과 관련된 굴욕에 있다. 민주주의로의 이행에 대한 불만은 또한 지역 사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채 찾아온 외국인 평가자로 인해 촉발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들이 결합해 이 지역에서 토착민주의적 반응이 일어났다. 간접적이고 맞지 않은 서방식으로 인해 억압당하고 있다는 진정한 민족 전통의 재천명이다. 특히 유럽연합 확대와 관련된 탈민족적 자유주의는 야심이 큰 대중주의자들이 민족 전통과 민족 정체성에 대한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게 했다.”P37-38
“중부 유럽의 엘리트들은 서방에 대한 모방을 이런 의미에서의 정상성으로 가는 탄탄대로라고 생각했기에 그들이 냉전 이후에 ‘긴요한 모방’을 받아들인 것은 자연스럽고 자발적이며 진지했다. 그들은 중국인들처럼 서방 기술을 게걸스럽게 차용하지도 않았고, 러시아인들처럼 서방 민주주의를 냉소적으로 가장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자기네 사회를 집단적 개종 체험으로 이끌고자 했던 희망에 찬 개종자들이었다.”P42-43
“20세기의 대중봉기는 과거의 일일 뿐이다. 현재 상태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제 21세기의 격동에 직면하고 있다. 봉기한 노동계급이 아니라 더 나은 생활을 추구하는 비서방인들의 대규모 유럽 이주로 인해 초래된 것이다.”P55
“대중주의자들의 선전물 속에서 서유럽은 더 이상 중동유럽인들이 한때 감탄하면서 모방하기를 염원했던 문화적으로 우월한 서방의 모델이 아니다. 이른바 서방의 몰락은 이 지역의 대중주의자들에 의해 과거의 고통 유발자들에 대한 자기만족적인 응징의 어조로 표현되고 있다. 모방자에 대한 모델의 우월성이라는 생각은 마침내 종말을 맞았다.”P63
“이런 모든 논의는 현대의 비자유주의라는 핵심 개념으로 이어진다. 현대의 많은 이론가들과 달리 대중주의자들의 분노는 다문화주의보다는 탈민족적 개인주의와 사해동포주의로 더 향하고 있다. 이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부분이다. 이것이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은 대중주의가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를 내세워 정체성정치를 버림으로써 대적할 수 없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유럽과 동유럽의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자들에게 유럽의 백인 기독교도 주류의 생존에 가장 중대한 위협은 서방 사회들이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그들이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는 이유는 공동체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의 편견이 그 지지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당면하고 있는 위협에 눈멀게 하기 때문이다.”P67
“오늘날 유럽을 배회하는 유령은 두가지다. 반자유주의자들은 ‘모범이 되는 정상성’의 유령을 두려워한다. 반면에 자유주의자들은 ‘역모방’의 유령을 두려워한다. 어떤 면에서 1989년 이후 모방 게임의 참여자가 위치를 바꾸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일부 사례에서는 모방자가 모방 대상이 됐고, 반대의 경우도 있다. 중동유럽 대중주의자들의 서방 자유주의에 대한 궁극적인 복수는 단순히 앞서 받아들였던 ‘긴요한 모방’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관계를 뒤집는 것이다.”P69
“오늘날 동유럽을 교란시키고 있는 정체성정치는 1989년에 시작돼 수십년간 동안 이어진 정체성 부정정치(다른말로 서방화라고 알려진)에 대한 지연된 반발에 해당한다. 과열된 배타주의는 보편주의의 결백성을 과대선전하는데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 한가지 결과는 곳곳의 대중주의자들이 보편주의를 부자들의 배타주의로 즐겨 폄훼한다는 것이다.”P86
“민주주의는 경계가 있는 정치공동체의 존재를 전제로 하며 따라서 태생적으로 민족주의적이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는 공산주의처럼 자유민주주의의 등장과 함께 사라질 수 없다. 민족에 대한 충성심은 안정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필요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P88
“그러나 자유주의 역시 정치적으로 경계가 있는 공동체라는 상황안에서 가장 효율적이다. 결국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인권 조직은 자유주의적 국민국가다.”P89
“그들이 자유주의 체제를 반대하는 것은 자유주의의 수용이 자기 부정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P107
“이 지역의 새로운 형태의 반자유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 주권의 침해라기 보다는 국가의 존엄성에 대한 모욕이다. 중동유럽에서 권위주의적 쇼비니즘과 이방인 혐오가 대두한 것은 정치철학이 아니라 정치심리학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대중주의가 지배하는 곳에서는 지적인 지배가 없다. 어떤 대중적인 요구든 그것은 1989년 이후 ‘긴요한 모방’과 거기에 수반된 모든 모욕적이고 굴욕적인 함의를 인식한데 따른 뿌리깊은 혐오감에서 나온 것이다.”P110
“러시아는 계속해서 미국을 모방했지만 그들의 목표는 대화나 융합이 아니라 복수와 설욕이었다. 이는 러시아가 잃어버린 지위와 세력을 회복하는데 거의 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에도 추구한 것이었다.”P117
“(푸틴)이 보기에 냉전 이후 ‘모방시대’는 사실 ‘서방의 위선 시대’였다. 이른바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는 세계를 지배하려는 미국의 의지를 투영한 것일 뿐 어떤 고귀한 것도 아니라고 푸틴은 시사했다. 보편주의는 서방의 배타주의였다. (중략) 이전의 소련 사람들과 달리 그는 미래에 지구촌 문제를 주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데올로기를 대표해서 말한 것은 아니었다. 승자가 아니라 패자가 미래에 어떤 위험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더 잘 알고 있다는 확신이다. 그의 주장은 1989-1991년 소련의 패배가 불행처럼 보이는 축복이었다는 것이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그의 나라로 하여금 다가올 매우 경쟁적이고 완전히 비도덕적인 세계에 대해 마음을 굳게 먹도록 만들었다. (중략) 역사에서 우연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더 예리하게 인식하는 패자는 ‘설명할 수 있는 중장기적 요인을 찾고 아마도 예시치 못한 결과를 낳는 사건을 설명한다’.”P121-122
“살아남는 일이 최우선인 이 나라(러시아)의 엘리트들은 엉터리 민주주의의 가부키 공연장을 두려워하는 대신에 그것을 즐겁게 받아들였다. 그들은 인정하다시피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시위하는 것을 싫어했지만, 선거라는 가장무도회는 비싼 대가를 치르는 억압에 의존하지 않고 모든 권력과 특권을 자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다는 무언의 약속이 담긴 영리한 지배방법이라며 지지했다. (중략) 민주주의 실험이 러시아를 민주화하는데 도움을 주는가. 아니면 러시아의 권위주의와 러시아의 과두체제를 영속화하는데 도움을 주는가?”P136-137
“사회는 자기네가 이론적으로 격찬한 규범을 실제로 시행할 수 없을 때 모방 정치에 나선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모방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를 위한 사회적 문화적 조건이 결여되었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대안이 전혀 없는 나라에서 나타날 것이다. (중략) 모방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는 민주적 형식과 비민주적 본질 사이의 끊임없는 투쟁이다.”P138
“2000년 대통령선거는 러시아 국가를 재탄생시킬 수 있는 천금의 기회였다. 목표는 권력을 쥔 자들의 정통성이 인민을 대표하고 분명한 결과를 낼 수 있는 통치자들의 능력에서가 아니라 현재의 정치지도자에 대한 어떤 대안도 상상할 수 없는데서 나오는 정치체제를 창출하는 것이었다. (중략) 사람들은 흔히 통치자가 무엇을 하는가가 아니라 그가 어떤 자리에 있고 어떤 칭호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그들을 지지하거나 적어도 용인하는 것이다. 러시아에서의 ‘인기’는 한 사람이 휘두르는 권력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다. 선거는 인민의 이익을 대변한다기 보다는 유권자의 의지를 현직자에게 복종하도록 등록하는 것이며, 현직자들은 자기네 권력에 도전하는 모든 사람들을 예외없이 배제할 수 있다. 대안이 없다고 조작함으로써 푸틴의 ‘인기’는 절대적 기준으로는 측정할 수 없게 됐다.”P145
“주기적인 선거는 푸틴 통치에 대한 ‘대안 없음’의 근거를 정기적으로 만들어내고 인식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여론조사기관의 2007년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5퍼센트가 푸틴을 신뢰한다고 대답했다. ‘다른 사람을 의존할 수 있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었다. (중략) 진지한 대안 후보가 출마할 수 있도록 허락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1년의 여론조사는 푸틴의 인기가 대중의 ‘타성’과 ‘다른 대안의 부재’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P149
“선거 부정이 저질러지고 결과가 미리 알려진 경우에도 이 나라 방방곡곡의 유권자들은 투표장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거의 틀림없이 지도자뿐만 아니라 이 이례적으로 다양한 정치 공간의 통일체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중략) 자신들이 태어난 소련이라는 집이 폭파된 악몽에 시달리던 보통의 러시아인들에게 체첸공화국의 경우 푸틴과 집권 통일러시아당 지지율이 95퍼센트나 나온 부정선거는 이 나라가 영토를 온전히 유지하고 있다는 심리적 안도감을 제공했다.”P152
“2012년 이후 크렘린은 서방식 민주주의를 모방함으로써 내부적 정통성을 떠받치려는 시도를 포기했다. (중략) 모방정치를 국제무대로 돌린 것은 크렘린이 앞으로 대중의 불만과 민주주의를 내세운 것에 부합하지 않는 위선에 대한 비난을 비껴간다는 것을 의미했다. 새로운 목적은 서방의 근본적인 위선을 폭로함으로써 서방이 지배하는 국제질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새로운 접근법은 비아냥거리는 투였다.”P167
“크렘린은 보수주의적인 소음을 일으키고 제국을 지향하려고 애쓰지만, 푸틴의 정책은 러시아의 전통적인 제국주의나 팽창주의와는 거의 아무런 관련이 없다. (중략) 그의 정치는 적극적인 고립주의, 즉 독자적인 문명 공간을 굳건히 하려는 시도의 표현이다. 그 정책들은 세계 경제의 상호 의존과 통신망의 상호 이용 및 제지할 수 없어 보이는 서방의 사회문화 규범의 확산에 의해 제기된 러시아에 대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그의 방어적 대응을 구현한 것이다. ”P178
“2012년 이후 러시아 지도자들은 냉전 이후 시기 자기네 나라 정치의 주요 약점은 그들이 진짜 서방을 모방하지 않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자세히 검토해보니 그들의 서방 민주주의 모방은 형식적이고 허울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서방의 진짜 위선을 모방하기로 작심했다. 러시아는 과거 자신의 취약성에 집착했지만, 이제 서방의 취약성을 발견하고 이 취약성을 세계에 드러내기 위해 모든 자원을 동원했다.”P189
“탈공산주의 러시아는 정치적으로 책임지지 않고 탐욕스러운 소수의 지배자들이 내부의 경쟁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나라의 파편화된 사회의 꼭대기에 성공적으로 머물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정도의 대중 폭력에 의존하지 않고서 말이다. 경제학자 가브리엘 주크만은 2015년에 러시아 부의 52퍼센트가 나라밖에 있다고 추산했다. 이 정치모델은 민주주의적인 것도 아니고 권위주의적인 것도 아니며,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에서의 다수 노동계급 착취도 아니고 자유주의적 의미에서의 모든 개인 자유의 억압도 아니며, 밤에 잠을 이룰 수 없는 미래의 모습이다. 이것이 우리가 꾸었으면 하고 크렘린이 바라는 악몽이다.”P194
“트럼프는 1989년이후 30년동안 국제 정치의 특징을 이루던 ‘자유주의 패권’의 집단살해에 대표적인 공범 노릇을 했다. (중략) 중부유럽과 러시아와 미국의 사례를 관통하고 있어 비교 분석이 가능하고 생산적임을 확인한 공통 주제는 모방의 정치와 그 의도하지 않는 결과에 관한 것이다. 트럼프 역시 단극의 모방 시대에 생겨난 환멸과 분노를 이용함으로써 권력을 잡았다.”P200
“트럼프가 이룩한 변화는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것들은 한 개인의 지저분하고 위법적인 행위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자유주의적인 ‘긴요한 모방’이라고 널리 받아들여진 것에 대한 전 세계적 저항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P202
“트럼프는 아마도 트위터상의 반자유주의적 시대정신으로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P204
“트럼프의 급진주의의 중심에 있는 것은 외국, 특히 과거의 적국을 미국화하는 것은 미국에 나쁘다는 생각이다. 그런 이야기는 구조적 변화를 의미한다. 그것은 미국이 예외적으로 훌륭하고 순수한 나라이며 그 예외적인 훌륭함이 그 영향력을 해외로 확산시킬 권리와 의무를 주었다는 생각의 전면적인 포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중략) 트럼프에게 정상화란 ‘이기적인 국가들의 틈바구니에서 이기적인 국가로서의 미국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같은 다른 나라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공허한 이상들에 더 이상 매달리지 않아야만 정상에 설 수 있다.”P209-210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자 미국이 모방 장려 정책에서 최종적이고 결정적으로 손을 뗄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미국이 세계의 미국화 과정에서 가장 큰 패자라는 생각은 트럼프의 가장 독특한 직관일 것이다.”P215
“트럼프의 기반을 위협하는 모방에 대한 두려움의 두 번째 형태는 더욱 심각하고 다층적이다. 미국이 모범국이어서 남쪽 국경 너머로부터 비백인 이민자들을 끌어당기는 제어할 수 없는 자석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이다. (중략) 트럼프식 대중주의가 대중에게 먹히는 것 역시 인구 구성상의 불안 때문임을 시사한다.”P234-235
“러시아 태생 미국 언론인 마샤 게센이 주장했듯이, 트럼프와 푸틴은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 비슷하게 무시하는 태도를 취한다. ‘거짓말은 메시지다. 푸틴과 트럼프는 둘 다 거짓말을 할 뿐만이 아니고, 그들은 같은 방식으로, 그리고 같은 목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뻔뻔스럽게도 진실 자체보다는 힘을 내세우기 위해서다.’ 신기하게도 그들은 모두 금방 알 수 있는 거짓말을 한다. (중략) 적어도 한가지 목표는, 지도자는 곤란한 결과를 당하지 않으면서 거짓말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쉽게 탄로날 거짓말을 하고도 무사하다는 것은 자신의 힘과 면책 특권을 드러내 보이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중략) 트럼프는 무슨 말을 할지를 결정할 때 언제나 진실과 거짓 가운데 어느 것이 자신이 ‘승리’하는데 도움이 되는지를 묻는다. 그가 생각하기에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거짓말쟁이보다 원하는 것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고 믿을 이유는 없다. 그것은 정답이 없는 문제이고, 경험상으로 보더라도 반대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뻔뻔한 거짓말이 죄의식과 배치된다면 그가 가끔 하는 깜짝 진실 발언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정치적 올바름 무시를 극적으로 보여주고 적들을 당황시키기 위해 그것을 퍼뜨리는 것이다. (중략)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적에게 도움을 주고 위안을 줄 수 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자주 지고, 그 때문에 거짓말쟁이들은 자주 이긴다.”P249-250
“당파에 대한 충성심을 앞세워 정확성을 기꺼이 희생시키겠다는 자세는 트럼프가 미국의 공직 사회에 불러온 가장 극적인 변화 중 하나로 연결된다. 그는 시민의 공화국을 팬의 공화국으로 바꿔놓았다. (중략) 시민은 나라에 헌신적이지만 그들의 충성심은 조건부이고 비판적이다. (중략) 반면에 팬들의 충성심은 열광적이고 경솔하고 확고하다. 그들의 환호는 소속감을 반영한다. 비판적 지지는 떠들썩한 경배로 바뀌었다. 박수 치기를 거부하는 자는 반역자다.”P255
“자유주의 모방의 시대는 끝났다. 그러나 비자유주의 모방의 시대는 이제 겨우 시작일 것이다.”P266
“(서방이 관심을 기울지 않았던 1989년의) 천안문 탄압은 중국으로 하여금 냉전 이후 세계에 대한 그들의 기대를 재고하게 만들지 않았다.”P271
“고르바초프 치하의 소련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호소력이 있는 것을 구하기 위한 시도의 하나로 당을 버렸고, 결국 당과 이데올로기 둘다 잃어버렸다. 덩샤오핑과 그 후계자들이 이끈 중국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수출을 버리고 국내적으로 당의 지배적인 역할을 유지함으로써 세계 역사에게 가장 놀라운 경제 발전 신화를 일굴 수 있었다.”P273
“탈공산주의 중국과 중부유럽 및 러시아 사이의 차이는 세가지 발전 유형 또는 전략과 관련이 있다. 즉, 수단의 모방(또는 차용), 목표의 모방(또는 전향), 외양의 모방(또는 가장)이다. 중부유럽의 엘리트들은 정치 경제 개혁의 가장 빠른 길로서 서방 가치관과 제도의 모방을 진정으로 수용했다. 그들은 포부가 큰 전향자였다. (중략) 한편 러시아에서는 탈 소련 엘리트들이 그저 서방의 제도와 함께 서방의 규범도 모방하는 시늉을 했다. (중략) 권력을 유지하고 나라의 부를 착복하며 내부자의 특권을 위협하고 아마도 국가의 붕괴와 추가적인 영토분할로 이어지게 될 민주적 개혁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전략적 사기꾼이었다. 반면에 중국은 공개와 비공개 양면으로 서방을 차용하면서 한편으로 나라의 발전 궤도는 ‘중국적 특성’을 유지하는 것을 고집했다. 그들은 창의적인 도용자였다. (중략) 외국의 사상과 영향이 중국 사회에 침투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중국의 정체성을 보호하려는 시진핑의 노력은 현 정권의 정통성의 핵심에 놓여있다. 시진핑은 이전의 어느 지도자보다도 더 마르크스 주의를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로 돌려 놓았다. (중략) 중국은 자신을 서방의 형상대로 개조하기는커녕, 미국과 서방의 자유민주주의적 가치 체계를 단호히 거부하고 대신에 경제적으로 보다 앞선 서방에서 빌려오거나 훔쳐내는 것을 선택했다.”P275-277
“시진핑은 다른 쪽 끝에 있는 사람들에게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중국의 교화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데 관심이 없다. 중국제 상품을 수출하는 것이 먼저다. 중국의 이데올로기를 수출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새로운 냉전의 시작을 맞고 있는 것은 아니며, 현재의 서방에 대한 중국의 위협은 근본적인 측면에서 소련의 위협과 다르다는 것이다. 권위주의 정권의 확산은 현실이다. 그러나 권위주의는 공산주의와는 달리 국경을 넘어 공유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그것은 억압적이고 협의가 없으며 자의적인 지배 방식이다. (중략) 중국의 부상이 모방의 시대의 종말을 나타낸다고 말하는 것은 두 강대국 사이의 전 세계적 이데올로기 대치로 돌아가는 일이 없으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중략) 이 충돌은 양쪽 모두에서 냉정하게 합리적이기 보다는 폭발적으로 감정적인 것으로 드러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이데올로기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그것은 교역,투자,통화,기술은 물론 국제적 위신과 영향력을 둘러싼 치열한 투쟁을 수반할 것이다. 이는 세계를 거미국화(去美國化)하려는 중국의 계획 뒤에 있는 목표다. 이는 세계적인 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반자유주의 이데올로기로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급진적으로 깎아내리려는 것이다.”P279-281
“미국인의 용광로는 남을 변화시키지만, 차이나타운은 그 거주민들에게 적응하도록 가르친다.”P283
“중국은 청 왕조의 마지막 황제를 타도한 1911년 신해혁명 이후 열강의 기대에 따라 스스로를 국민국가로 조직할 수 밖에 없었다. 루시언 파이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국가의 무리 가운데 단지 또 하나의 국민국가가 아니었다. 중국은 국가를 가장한 문명이었다. 현대 중국의 이야기는 한 문명을 서방 문명의 분열 과정에서 나온 제도적인 발명품인 근대국가라는 자의적이고 제한적인 틀 안에 쑤셔넣으려는 중국인과 외국인 양쪽의 노력으로 묘사할 수 있다.’”P285
“시진핑의 외교정책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모방자를 끌어모으는 것이 아니라 세계적 영향력과 세계로부터의 인정을 추구하는 것이다. (중략) 중국은 남들이 자기네 모델을 모방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남들이 자기네의 바람을 따라주기를 원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미 유명해진 일대일로 계획은 외국을 교화시키는데 의존하지 않고 통합과 상호 연결과 상호 의존을 끌어내려는 것이다. 전도를 포기한 새로운 중화제국이 특별히 자애로우리라고 생각할 만한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러나 중국의 위상을 세계에 과시하고 중국의 힘을 보여주려는 시진핑의 방식은 이데올로기적 전향에 의해 유지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다른 나라에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는 차지하고 말이다.”P286-287
“사람들이 장벽을 친 국가와 민족 공동체 속으로 퇴각한 것은 오늘날의 대중주의적이고 정체성에 바탕을 둔 보편주의와의 전쟁이 가져온 하나의 결과다. 우리는 가까이 붙어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세계를 공유된 것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잃었다. 보호주의적 공동체주의로의 후퇴, 서로 불신하는 정체성 집단들, 그리고 편협한 분리주의는 1989년 경쟁하는 보편 이데올로기들의 세계 전쟁의 종말에 대해 우리가 지불하고 있는 간접비용일 것이다.”P290
“모방의 시대의 종말은 사람들이 자유와 다원주의를 더 이상 소중히 여기지 않거나 자유민주주의가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동적 권위주의와 토착민주의가 지구를 물려받을 것임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개의 포교국가 사이의 세계적 대결로의 복귀가 아니라, 다원적이고 경쟁적인 세계로의 복귀다. 그 세계는 어떠한 군사,경제 세력의 중심도 자기네의 제도와 가치관을 전 세계에 확산시키려고 애쓰지 않는 곳이다. 그러한 국제 체제는 결코 전례가 없는 것이다.”P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