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본당에서 지내면서 저는 지옥과 천국을 모두 경험했어요. 처음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고, 모든 것이 힘들어 만남도 피하고 때로는 사람들에게 짜증과 화를 내기도 했어요. 하지만 점점 이들은 내게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곳을 잊지 못할 겁니다. 모두 나의 가족입니다. 내 마음속에서 차츰 일어났던 변화, 이것은 제게 기적입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신학생 칸 코몰 엔바트와 로렌스 트리푸라 가브리엘이 지난 2월 7일 서울대교구에서 부제서품을 받았다. 부제 서품식이 있던 날, 칸 코몰 엔바트 부제와 가족들을 만났다. 낯설기만 했던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살면서 이들은 어떤 것을 느끼고 고국으로 가져갈 것일까.
전체 인구 중 30만 명. 단 0.2%만이 가톨릭 신자이고, 98%가 이슬람과 힌두교도로 타 종교에 대한 차별이 극심한 나라 방글라데시에서 가톨릭 신학교를 다니던 그들은, 지난 2006년 3월 방글라데시 교황대사 장익남 대주교의 주선으로 잠부봉 바이올렌 베르나르도, 랑샤 프로베스 파스칼과 함께 한국 신학교에 편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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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호1가동 선교본당 가족들과 방글라데시에서 온 어머니, 외삼촌, 선배 신부와 함께. (사진/정현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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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 서품을 받은 로렌스 트리푸라 가브리엘 부제와 봉천3동 선교본당 가족들 (사진/정현진 기자) |
방글라데시의 신학교에서 4년 과정을 이미 마쳤던 코몰 부제는 한국 신학교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두 학교의 과정을 비교해 볼 수 있었다. 상상할 수 없이 좋은 부분도 있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자신이 느끼는 아쉬움이 꼭 채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국 신학교는 방글라데시보다 열 배는 더 좋은 것 같아요. 모든 것이 갖춰져 있고, 공부도 많이 합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책을 무척 많이 읽는 것에 놀랐어요. 그런데 수업 방식은 조금 아쉽습니다. 학생 수가 많아서 그럴 수 밖에 없을 것 같기도 해요. 특히 철학과 신학은 토론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은 그렇지 못합니다. 지식은 많은데 자신만의 언어로 신앙을 말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 아쉬워요.”
칸 코몰 엔바트 부제는 한국 신학교에서 또 한가지 놀라웠던 것은 전례의 창의성이 적은 것이었다고 말한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어떤 전례든 정해진 기도문을 제외하고는 똑같은 전례를 하지 않는다"면서 "굉장히 다양한 전례 속에서 이론적으로 배운 부분을 어떻게 표현하고 실현할 지 항상 고민한다"고 말했다.
칸 코몰 엔바트와 로렌스 트리푸라 가브리엘은 각각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선교본당인 금호1가동 본당(주임 이광휘 신부)과 봉천3동 본당(주임 조영식 신부) 소속 신학생으로, 잠부봉 바이올렌 베르나르도, 랑샤 프로베스 파스칼은 대전 신학교를 다니며 도룡동과 전민동 본당 신학생으로 지내왔다.
코몰 부제는 방글라데시 쿨나(Khulna)교구 소속으로 그곳 신학교에서 3학년까지 과정과 1년 간의 사목 체험(모라토리엄)을 마치고 2006년 다른 3명의 신학생과 함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한국에 왔다.
0.2% 밖에 되지 않는 가톨릭 교도들 중에서 코몰 부제의 집안은 오랜 가톨릭 신앙을 가진 집안이었고 그 역시 유아 세례를 받았다. 그는 올해 말 사제 서품을 받을 예정인데, 자신의 본당에서 열 번째 사제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부제 서품식에는 자신보다 앞서 서품받은 선배 사제도 가족과 함께 동행해 축하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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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 코몰 엔바트 부제 (사진/정현진 기자) |
독실한 가톨릭 신도였던 그의 어머니는 코몰 부제가 글을 읽기 시작할 무렵부터 새벽 3시에 깨워 공부를 시키고 새벽미사에 참례하게 했다고 한다. 그렇게 열심히 성당에 다니고 복사 활동도 했지만 정작 그는 의사나 파일럿을 꿈꾸었을 뿐, 사제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1993년 고종사촌이 사제가 됐어요, 사제 서품식을 지켜보면서 나도 모르게 사제직에 대한 강한 바람이 일어났어요. 지금도 그 때의 원의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예비 신학생을 거쳐 소신학교에 입학했고, 한국 유학생활을 거쳐 부제가 됐다.
기후, 문화, 언어, 음식. 그 어떤 것도 익숙하지 않았던 한국 생활이었다. 최소한 영어로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오로지 한국어를 빨리 익히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고, 무엇보다 음식이 낯설어 1년 간은 빵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2006년 여름방학부터 금호1가동 선교본당에서 지냈는데, 환경 변화에 대한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사람들에게 쏟아졌다. 지금도 코말 부제는 그 당시를 생각하면 사람들에게 너무나 미안하다고 고백했다.
어릴 적, 그는 다른 꿈을 꾸었지만 지금은 굉장히 행복하다고 말한다. 가끔 신학교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처음 자신 안에 일었던 그 마음, 그리고 언젠가 피정을 통해 예수님께 다짐했던 약속이 항상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것이 코몰 부제가 오랜 힘든 시간을 견딘 힘이었다. 어떤 사제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처음엔 그저 좋은 본당 신부님이 되고 싶다면서 웃었다.
"앞서 나가는 것 보다는 다른 이들을 위해 준비하고 도움이 되는, 그런 사제가 되고 싶다"고 말한 그는 "마치 예수님의 길을 닦았던 세례자 요한과 같은, 그리고 사제들의 수호성인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님을 늘 생각하며 사제의 길을 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저에게 하느님이시고, 사랑이십니다. 나의 모든 것을 봐주는 내 삶의 지휘자라고 생각해요. 나는 그분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 분이 계시기에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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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삼촌 모쉬, 코몰 부제, 안토니오 신부 (사진/정현진 기자) |
코몰 부제와 인터뷰를 마치고 본당 선배인 안토니오 신부와 외삼촌 모쉬씨에게 메시지를 청했다.
안토니오 신부는 코몰 부제에게 “하느님의 부르심은 특별한 선물이고 그 선물에 대해 성실히 살아갔으면 좋겠다."면서 축하의 말을 전했고, 또 "코몰 부제가 한국 신학교에서 사제양성을 받고 많은 것을 배웠는데, 그것이 사제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면서 먼 땅까지 와서 공부한 후배를 자랑스러워 했다. 안토니오 신부는 "한국에 와서 살았던 것을 계기로, 앞으로 한국에서 선교나 봉사활동 등의 사목체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서울대교구와 방글라데시 주교님들의 도움에 감사드리며, 코몰이 거룩한 사제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인사를 전했다.
방글라데시에서 빈민들을 위한 NGO 활동을 하는 외삼촌 모쉬 씨는 누나의 아들이 부제가 되어 굉장히 기쁘다며 “하느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더욱 충실하고 인내할 수 있기를 바라며 좋은 사제가 되기를, 그리고 꼭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다"면서 다시한번 하느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코몰 부제는 앞으로 한 학기를 더 한국에서 보내고 여름 방학이 끝나면 본국으로 돌아가 올해 말, 다른 동료들과 함께 사제 서품을 받는다. 어려운 길이지만 그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이 그를 인도하리라 믿는다. 지금처럼 사랑과 웃음이 많은 사제, 부족함에 대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사제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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