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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성서 어떻게 다른가
신학자와 목사 중에 성경을 성서라고 사용하는 자가 있는데, 이러한 표현은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키려는 일루미나티 회원인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발트주의, 칼 바르트주의)에서 흔하게 사용하고 있는 표현이다. 불교의 책도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이라고 하고, 유교의 책도 사서삼경(四書三經)이라고 한다. 심지어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조직에 하나인 몰몬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책도 몰몬경이라고 표현한다. 한자에서 '서'(書, 글 서)와 '경'(經)은 하늘과 땅과 같이 차이가 난다. '서'(書, 글 서)는 평범한 일반인의 모든 글을 뜻한다. '경'(經)은 특별하게 구분된 책을 뜻한다.
한문에서 ‘경’(經)란, ‘경서경’, ‘다스릴 경’, ‘법경’, ‘곧을 경’, ‘날경’, ‘떳떳할 경’, ‘경영할 경’ 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한문 문화권인 동양에서 ‘경서’(經書)는, 옛 성현들이 써 놓은 유교의 사서삼경(四書三經)를 말하고, 불교에서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말한다. 만약 ‘성서’(聖書)라고 표현하면, 경전(經典)인 사서삼경(四書三經) 보다 낮은 책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학자와 목사는 이것을 모르지 않는다. 그런데 ‘성경’(聖經)이라고 하지 않고 성서( 聖書)라고 사용한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성경’(聖經)의 권위를 낮추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사용하는 것이다.
성경이라는 단어 곧 헬라어 ‘비블리온’(975: βιβλίον, Biblion)이라는 단어가 정확하게 어디에서 온 단어인지 모르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 심지어 목회자도 잘 모르는 경우가있다. 단지 영어의 바이블(Bible)이라는 단어가 헬라어 ‘비블리온’(βιβλίον)이라는 단어에서 온 것 정도는 알지만, 성경 어느 구절에 ‘비블리온’(βιβλίον)이라는 단어가 적용되어 있는 것은 잘 모르는경우가 많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에 성경이라는 한글 단어가 보이는데, 헬라어 성경에는 두 단어가 하나로 결합되어 나타나 있다. 곧 헬라어 ‘히에로스’(성(聖), Holy, 거룩한)라는 단어와 ‘그람마’(경(經), Scriptures, ‘성경’ ’기록’, ‘증서’, 글,‘편지’, ‘서신’, ‘책’등, ‘학문’, 문서)라는 단어가 하나로 합쳐진 것이 성경(聖經)이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고 하였다. 이 구절에서 나오는 성경은 또 다른 단어이다. 이 구절에는 성경이 3회 나오는데, 헬라어 성경은 단어가 다른 세 단어로 나온다.곧 헬라어 '그랍헤'('서류', '성경', Scriptures), ‘아우토스’(불변사, 대명사, them), ‘에케이노스’(중성형, '저것', they)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 4장 17절에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라고 하였다. 이 말씀 중에서 ‘글’이 헬라어로 ‘비블리온’(975: βιβλίον, Biblion, ‘두루마리,‘지혜’, ‘책’, ‘서적’) 곧 거룩한 경전'이라는 뜻을 가진 '성경'(聖經, Bible)이라는 말이 나온다.
신학자라는 자나 목사라는 자가 하나님의 계시와 영감을 받아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을 성서(聖書, 일반적인 책)라고 스스로 깎아 내리고 있으니, 제 정신이 아닌 것이다. 헬라어 ‘비블리온’(975: βιβλίον, Biblion)이라는 단어도 ‘두루마리’ 곧 모세의 율법과 경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오시는 목사 중에 그동안 ‘성서’(聖書)라고 사용하여 온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한다. ‘성서’(聖書)라고 사용하는 자들은 신학자의 자격도 목사의 자격도 없다.
성경(聖經)도 모르고 성경에 명백하게 기록되어 있는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도 모른다면, 그는 정녕 거짓 선지자이다. 성경의 가장 옳바른 표현은 '언약의 말씀', '계시의 말씀'이라고 표현해야 되지만, 보편적으로는 ‘성경’(聖經)이라고 높여 사용해야 옳다.
한국기독교정보학회
카페지기 안병삼 박사
첫댓글 책이라는 부분을 굳이 표현할려면 성경책 또는 성경서가 합당한 표현이겠네요.
그것도 좋은 표헌은 아닙니다. 한문 문화권인 동양에서는 제가 지적한 것처럼 경과 서는 그 의미가 하루과 땅 차이 정도입니다. 유교의 책을 사서삼경 불교의 교리 책을 팔만대장경 이단이자 일루미나티 조직에 하나인 몰몬교의 책도 몰몬경이라고 사용하고 있는데, 성경책 또는 성경서는 성서라는 표현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왜 성경이라는 좋은 표현이 있는데 낮춰서 부르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성서라는 표현이 일루미나티의 자유주의와 발트주의자에 의해 사용되었다는 점을 왜 모르십니까
책이나 서나 같은 것입니다. 성경을 초기에 번역했던 사람들은 한문 세대였고 경과 서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육 수준이 높은 가정에서 연세가 높으신 어르신에게 대학원을 졸업하고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아들이 자신의 부친께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고 아버님이라고 존칭 접미사를 붙어서 부릅니다. 또 학생이 학교에서 자신을 가르치는 스승님에게 선생이라고 부르지 않고 님자를 붙여서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높여서 부르는 표현입니다. 서는 그낭 단순한 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계에서는 잘못된 표현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신학자는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생각이 없는 대단히 잘못된 표현입니다. 자유주의 창시자인 슐라이허 마허는 일루미나티 일원으로 예수님의 속죄사역을 부정하는 성경과 기독교의 근본진리를 부정하는 자인데 그 비성경적인 이단 사상을 신학이라고 붙어서 사용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이단 자유주의 사상이라고 바꿔서 사용해야 옳습니다.
신학자, 목사, 성도가 흔하게 상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예배에 관한 표현이 있습니다.
즉 예배를 드린다. 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드린다의 한국어의 뜻은 선물을 드린다. 제물을 드린다. 물건을 갖다가 드린다. 등에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예배를 드린다라는 표현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어떤 경우는 예배를 본다.고 표현하는데 이 표현은 영화를 본다. 물건을 쳐다 본다. 무엇을 눈으로 구경한다는 표현으로 이것 역시 잘못된 표현입니다.
예배에 관한 정확하고 바른 표현은 예배한다.라고 해야 바른 표현입니다. 성경에도 예배할 때, 예배하고, 예배하러 가서 등으로 번역했습니다. 한글 번역 성경은 국문학자가 참여하여 교정하였습니다.
신구약성경 어디에도 예배드리겠습니다. 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창세기 22장 5절, 예배하고, 출애굽기 33장 10절에 예배하며, 욥기서 1장 20절에 예배하며, 시편 138장 2절에 예배하며, 이사야 66장 23절에, 예배하리라, 요한복음 4장 20절에 예배할 곳이, 요한복음 4장 21절에 예배할 때가, 요한복음 4장 23절에 예배하는 자들을, 요한복음 4장 24절에 예배할지라, 사도행전 8장 27절에 예배하러 등 신구약 성경에는 예배는 하는 것이지 예배를 드린다고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예배를 드립시다. 라고 표현하는 것은 한국어를 잘못 쓰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개혁신학 문헌에도 예배는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개혁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개혁은 영어로 리폼입니다. 리폼의 뜻은 종이 박스가 찌그러졌을 때, 바르게 펴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로 질못된 것을 버리거나 고쳐서 바르게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개혁장로교는 잘못된 표현도 모두 고쳐서 바르게 사용하는 운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한때 해방신학. 민중신학. 신신학등이라 많이 불렀지요
제 동생이 신학교 다닐때고 저는 그때 신앙생활 하지않을때였지만
듣기가 좀 불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필레오 목사님의 글에서 많은걸 배웁니다. 항상 노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