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5월 27일 일요일 맑음
“우리 양호. 그래도 장가를 가는구나. 너무 웃지마. 임마”
양호가 빙긋이 웃는다. 이제 의젓하니 어른이 다 됐다. 라도무스 예식장이었다. 우리 양호가 이제 어른이 되는 날이었다. 안사람과 함께 갔다.
내 자식 같던 제자가 결혼을 하니 마음이 흐뭇하다. 양지초 시절 장거리를 뛰었던 양호는 유난히 작고 까무잡잡했었다. 운동이라면 사족을 못쓰고 좋아했고.... 공부는 영 신경을 안 썼지.
“야간 보충수업을 안 하는 사람은 육상부에 들어 올 수 없다” 내 방침이었지.
그러니까 5학년인 양호는 죽기보다 싫은 야간공부에 꼬박꼬박 출석을 했었다. 운동할 욕심으로.... 그러나 아는 건 없지. 재미가 있었겠나. 맨날 앉아서 천장만 바라보다 갔지. 공부를 못한다고 혼나면서도 한 달 두 달 앉아있다 가는 것이 딱해 보였다. 그래서 양호만을 위한 특별 좌석을 마련하고, 3학년 수준의 아주 쉬운 문제를 열 개 출제한 시험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여섯 장을 복사하여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첫 번째 장을 주고는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양호야 알았어 ?” 고개를 끄덕인다. ‘문제가 너무 쉬웠나 ?’ 하면서 같은 시험지를 두 번 째로 주면서 풀어보라고 했지. 그런데 또 멍하니 천장만 보고 앉아있네. “왜 잘 모르겠어 ?” 눈망 멀뚱거린다. “자 그럼 다시 설명해줄게. 잘 들어” 다시 1번부터 10번까지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이제 알겠지 ?”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시험지를 다시 줄 테니까 풀어 봐” 똑같은 시험지를 세 번 째로 주었다.
시험지를 한참을 들여다 보더니 고개만 갸우뚱 거리고 있다. 기다렸지.
양호가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선생님 아까 이 걸 어떻게 푼다고 했지요 ?”
양호가 생전 처음 물어보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눈이 번쩍 뜨이게 반갑더라.
다시 붙들고 자세히 설명해주길 몇 번이고 반복했다. 여섯 번 째 시험지가 동날 무렵 우리 양호가 마침내 한 문제를 풀게 되었다. “이야. 우리 양호가 드디어 한 문제를 풀었다. 만세” 다른 아이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쏟아냈다.
그 때 양호의 밝고 환하던 얼굴이, 한 없이 반짝이던 눈빛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다음부터 양호가 달라졌다. 쉴 새 없이 물어 온다. 하나를 알게 되면 ‘야. 그렇구나. 그래 알았어’ 그 때 양호는 자기 눈 앞을 깜깜하게 가로막고 있던 검은 벼랑박에 작은 바늘 구멍이 뚫리고, 그 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눈부신 한 줄기의 햇빛을 본 것이리라. 눈이 너무 부셔서 손으로 막아보았지만 속까지 파고 들어 답답하던 가슴 속까지 밝혀주던 그 빛줄기에 전신을 떨었을 것이다. 그 때부터 양호가 완전히 달라졌다. 공부도 하려고 덤벼들었고, 운동장에서 뛰는 모습에서도 기쁨과 밝음을 볼 수 있었다. 운동특기자로 중학교에 진학을 했다. 하루는 중학교 감독선생님께서 놀란 눈으로 말씀을 하신다 “선생님 양호 때문에 제가 남부끄러운 꼴을 당했어요” “예 ! 무슨 말씀인지....” “지난 번에 시 육상대회가 있었지요. 양호를 데리고 출전을 했어요. 1학년 첫 시합이니까 당연히 예선탈락을 했지요. 그래서 내가 오후까지 운동장에서 놀라고 했어요. 하루 시합이 다 끝나면 태우고 갈려구요. 그런데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글쎄요. 뭐라고 했는데요” “‘선생님 지금 학교에 가면 두 시간은 공부할 수 있는데요’ 하잖아요. 제가 양호 보기가 부끄러웠어요. 그래서 얼른 학교에 데려다 주었지요” 내 가슴도 찡하더라. 제자 하나 잘 가르치긴 했더라.
그렇더라도 양호가 공부를 크게 잘 한 것도 아니고, 키가 작아 운동 성적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는데 체육고등학교로 진학을 했었다. 고등학교 기간에도 꾸준히 공부를 하여 전교 2등의 성적을 거두었고, 수시로 대덕대학교 소방학과에 진학을 했었다. 대학을 마친 후 몇 번을 소방관 시험에서 낙방했지만 지금은 보쉬라는 공구회사에 취직해서 착실하게 근무하는 우리 양호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지.
예식장에 모인 양지 시절의 육상부 제자들과 학부모님들을 만나는 것은 덤이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이런 게 선생으로서의 복이지. 어럽던 주경이네 형편이 피었다는 소식으로 내 가슴에 매달린 납덩이 하나를 뗄 수 있어 날 듯이 기뻤다. 정말 좋은 날. 행복한 날이었다.
오후에 전 가족을 데리고 창주 충북대학엘 갔다. 운사모 장학생, 글꽃중학교 핸드볼 선수 이창우가 시합을 하는 날이다. 응원도 하고 격려를 하러 간 거지.
2학년인 창우가 주전 골키퍼로 맹활약을 했지만 단체 경기가 한 사람으로 좌우될 수 없으니 아깝게 패했다. 최강팀 경기도 팀에게....
“잘했다 창우야. 너무 서운해하지 말고 다음에 잘하겠다고 생각해라” 나보다 키가 훨씬 큰 창우가 든든했다.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돌아왔다. 가족여행을 한 번 더 한 셈이다.
님도 보고 뽕도 딴 셈이었다.
첫댓글 교장선생님 양호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뵐 수 있어 좋았습니다.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