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평일, 어제 태균이도 준이와 함께 주간보호센터를 보냈습니다. 일주일만에 보내지 않겠노라 번복하는 행태도 좀 우습고, 묘한 오기같은 것도 생기고, 이 녀석의 정신이 뭘 노리고 내부의 스트레스를 마구 펼쳐놓는지 분석도 필요하고... 지금 제게 필요한 것은 마음비우기와 태균이에 대해 진정으로 관심을 유지하는 것 (눈에 보이지않을 때조차)이란 명제를 두기로 했습니다.
두 녀석을 일찍 주간보호센터에 맡기고는 거문오름으로 향했습니다. 일전에 완이를 데리고 1코스와 2코스 답사는 했지만 3코스를 남겨놓았기에 늘 아쉬움이 컸습니다. 거문오름은 유네스코 자연보호지역으로 지정된, 한라산 백록담의 몇 배에 달하는 분화구를 갖고있는, 제주도 지질역사에 중심에 있습니다.
오전 10시에 예약되어 동행한 무리는 무려 40명. 거문오름은 홀로, 아무때나 등반은 허락되지 않아서 반드시 해설사를 동반하여 지정된 시간에만 출입증을 달고 입장할 수 있습니다. 최소의 자연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이기에 대부분의 코스는 직접 땅에 발을 밟지 못하도록 인공계단과 매트길로 되어있습니다.
저번에는 완이때문에 함께했던 무리들에게서 한참 거리를 두고 따라가는 통에 사실 거문오름의 역사와 제주도지질에 관한 해설을 들을 수가 없어서 아쉬움이 컸습니다. 이번에는 해설사의 곳곳 중요지점에서 전개되는 해설들을 귀담아 들으리라 마음먹으며 1,2코스를 돌아보니 더욱 끌리게 되는 '제주도'라는 위대한 화산섬!
다들 1,2코스만 돌고 함께했던 일행들은 시작지점으로 가버리고 해설사없이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는 3코스 탐방은 홀로 자유시간. 거문오름 분화구를 위의 능선따라 크게 도는 코스인데 높은 지대지만 숲길이라 크고 멋진 경관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저 걷는다는 것, 그리고 자신돌아보기!
태균이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태균이의 일종의 엄마집착에서 비롯되는 최근의 주간보호센터 생활에의 부적응 요소는 모자가 함께 극복해가야 합니다. 엄마의 일거수일투족에 의존한 자신의 거취향방에의 만족도, 자신의 요구나 희망사항을 말로 표현하지 못해도 대리로 풀어주는 엄마와의 생활에 반감을 가질 하등의 이유가 없으니 태균이는 독립된 시공간 속에서도 '엄마가 하는 것에 동참하지 못함'이 분노로 작동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제주도가 되었던 영흥도가 되었던 손님이 와서 엄마가 손님들과 있으면 어떻게하든 태균이 꼭 동참하려고 합니다. 이번에 대학동문들 방문 때도 빠지지 않고 대화의 공간에 머무르며 한몫끼려는 태도가 역력합니다. 엄마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다 자기를 받아주고 자기가 끼어들어도 괜찮은 것으로 태균이는 엄마와의 완벽한 일체상태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정신적인 부분에서야 저역시 태균이가 옆에 있어야 마음이 편하니 태균이와 함께하는 삶에는 하등의 불편함이나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끈기가 지나친 모자관계 속에서, 굳이 감수해야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 대해 태균이의 불만이 쉽게 증폭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 감수해야 되는 상황이 썩 즐거운 것도 아니고, 마음에 끌리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더우기 구미를 끌어당기는 먹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니 그런 보호생활을 해야하는 이유에 대한 보상이 없다고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필요한 버튼만 누루면 즐거운 곳에 가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하다못해 차타고 돌아다니며 자연을 쳐다볼 수 있고, 이런 세월이 태균이의 일상이 되다보니 때로 이런 즐거운 일상은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엄마가 준 생활 속 선물들이니 이제 그런 생활 속에서도 뭔가 보람되고 결과가 있는 활동을 만들어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애초 제주도에 온 이유가 그저 놀고 먹으며 자연을 즐기려고만 한 것이 아니니 태균이에게도 '할 일'이라는 것이 만들어져야 할 때입니다. 엄마가 바쁜 와중에도 글쓰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처럼 태균이에게도 결과가 도출되는 할 일이라는 것을 만들어 줄 때입니다.
그걸 영흥도에서는 나름 실천했는데 제주도에서는 영 답보상태입니다. 이번 태균이의 부적응을 토대로 비관적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태균이가 엄마에게 보내는 성숙한 신호라고 여기며 잘 극복해나갈 좋은 방향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제발 한라산 신령님께서 좋은 기회를 주시기를...
첫댓글 공감이 되는 해석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태균씨가 이겨낼것 같습니다.
단기간에는 힘들것도 같습니다.
실연상태 비슷하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늦은 오후면 엄마를 만날 수 있으니, 그 점이 평안에 이르는 견인차가 될 것 같습니다.
제주 생활에서 최고의 선물을 우리 친구들에게 주셨으니 절대 자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