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농기구는 참 많았다. 사람이나 소가 일일이 일을 해야 했으니 많을밖에. 논밭을 가는 기구에서 씨를 뿌리고, 김매고, 거름내고, 거두고, 고르고, 말리고, 갈무리하는 연장이 다 필요했다. 그러다가 산업화되면서 대부분의 농기구가 사라졌다. 농업 박물관에나 가야볼 수 있다. 게다가 제초제나 검은 비닐까지 등장하여 김을 매는 호미나 풀을 베는 낫조차 쓰임새가 많지 않다.
그러나 자연농법을 하는 사람들 처지에서는 아직도 적지 않게 농기구가 필요하다. 호미, 낫, 삽을 기본으로 하고, 괭이도 가끔 필요하다.
몇 가지 안 되는 농기구지만 일머리가 없거나 정리정돈을 하는 습관이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일이 급하다고 우선 쓰고는 제자리에 두지 않으면 나중에 풀밭에서 찾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면 일년 지나 그 이듬해 밭 한 귀퉁이에서 호미나 낫이 뒹구는 경우가 가끔 생긴다. 녹이 쓸고 호미 자루는 썩어간다.
농기구 걸이를 만들어보면 호미와 삽 그리고 괭이는 쉬운 편이다. 적당히 못을 박아 걸어두면 된다. 그런데 낫이 어렵다. 낫은 날이 날카롭기에 못에 걸어두면 날이 망가진다. 어설프게 걸어두다가 자칫 떨어지기라도 하면 날카로운 낫에 사람이 다칠 위험이 높다. 예전 농사꾼들이 했던 모습을 보면 볏짚을 단단하게 묶어 그 사이에 낫을 꽂아둔다.
나도 한동안 이렇게 했다. 그런데 이 볏짚은 한 해가 지나면 삭아버린다. 해마다 새로이 갈아주어야 한다. 그것도 몇 번. 그 다음부터 게을러지면서 안 하게 되었다. 대신에 닭장 한 귀퉁이에 각진 나무를 대어 낫을 끼어놓고 썼다. 이 역시 불편했다.
이번에 호미와 낫 그리고 삽과 괭이를 한꺼번에 걸 수 있는 걸이를 만들었다. 자재는 대나무 두 개와 사진에서 보듯이 ‘ㅏ’ 자 모양의 뽕나무 가지 두 개. 그리고 기다란 괭이 걸이용 뽕나무다. 손가락 길이 정도 나사못 10개.
장소는 논밭 가는 길목이고, 물이 가까이 있어 숫돌로 낫을 갈 수 있는 곳이며, 처마 그늘이 넉넉하여 비가 들이치지 않는 곳이 좋다. 우리 집에서는 이 세 가지 조건에 맞는 곳이 뒷간이다.
만드는 요령
말로 설명을 하자니 길지, 실제 해보면 생각보다 간단하다.
1-뒷간 기둥 사이 거리가 2미터니까 대나무를 2미터 10센티 정도로 두 개를 준비.
2-‘ㅏ’ 자 뽕나무는 약간 Y자에 가까운 게 좋다. 크기와 굵기는 대나무 두 개에 농기구를 걸칠 때 이를 견딜 정도 힘이면 된다. 크기는 사진에서 보듯이 대나무 두 개 사이에 호미와 낫이 잘 걸릴 정도면 된다.
3-괭이 걸이는 사진에서처럼 뽕나무가 곁가지가 많은 것으로 길이 일 미터 20센티 정도로 자른다. 괭이를 넉넉히 걸 수 있게 곁가지를 적당한 길이를 남기고 자른다.
4-3을 먼저 고정한다. 이 때 기준점이 필요하다. 긴 대나무 중간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야 하니까 아래 곁가지 하나가 대나무 높이가 되게 하여 고정을 시킨다. 고정은 되도록 나사못으로 한다. 못은 시간이 지날수록 틈이 생겨 쉽게 망가진다.
5-4의 기준점에 맞추어 ‘ㅏ’ 나무를 수평이 되게 고정한다.
6. 이제 대나무 두 개를 ‘ㅏ’ 나무에 올려서 호미와 낫을 걸어본다. Y자 모양에 따라 또 두 대나무 사이가 얼마나 떨어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가장 안정감 있고 보기 좋은 지점을 잡아 위치를 표시해둔다. 이 때 낫을 낄 수 있게 안쪽 대나무에 적당한 간격(대나무 한 마디 정도)으로 톱질을 할 수 있게 표시를 한다.
7-대나무를 내려, 표시된 자리에 먼저 4미리 정도 드릴로 구멍을 뚫는다. 구멍을 드릴로 미리 뚫지 않으면 나사못이 들어가다가 대나무가 갈라진다. 낫 날이 들어갈 자리는 가볍게 톱질을 한다. 낫이 부드럽게 들어가되 너무 헐렁하지 않는 정도가 좋다. 홈 방향은 벽면에서 조금 경사지게 한다. 이렇게 하면 대나무 두 개가 낫 날을 살짝 잡고 낫 손잡이는 벽면이 받쳐주어 낫이 안정이 된다.
이제 걸이대 앞부분에는 호미를 걸고, 중간 뽕나무 위로는 괭이를 걸며, 걸이대 뒷부분은 낫을 건다. 이상이 나로서는 지금까지 고민한 것 가운데 가장 최선의 방법이다.
이제 농기구를 사용한 다음 잘 씻어 제자리에 걸어두어야 한다. 만일 이른 아침에 농기구 걸이대를 보았는데 빈자리가 있다면 어딘가에 아무렇게나 버려두었다는 징표가 된다. 가을걷이가 끝난 다음에는 기름칠을 가볍게 하여 녹 쓸지 않게 해두는 게 좋다.
이 걸이대를 만들면서 내내 뛰다시피 했다. 결과도 기대되지만 만드는 과정 내내 신이 났었다. 머릿속 생각을 현실로 펼치는 건 언제나 기분이 좋다. 뽕나무를 구해온다고 뛰고, 대나무를 구한다고 또 뛰었다. 드릴과 공구를 가지려가면서 뛰고, 호미와 낫을 걸어볼 때는 가슴이 뛰었다. 이렇게 집이 좀더 정리가 되니, 올 농사 역시 좀더 여유 있고, 차분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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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봄 되어 겨우내 마른풀 걷어내다보면 여기 저기서 녹슬은 낫, 호미가 튀어나옵니다. 아무리 찾아도 안보이더니만... ^^* 농기구나 연장을 쓰고 늘 아무데나 던져놓고 잊어버리는 게으른 농부의 습관도 고칠 겸 연장걸이부터 하나 만들어야겠습니다. ㅎㅎㅎ
함 실습한번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