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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다해 11월7일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수원] "내가 바뀌지 않고 남을 바꿀 수 없다." -
수원 교구 오산 성당 전 삼용 요셉 신부
† 제1독서 : 로마 14, 7 - 12
† 복음 : 루카 15, 1 - 10
★ 우리의 삶도, 죽음도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의
참주인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형제를 함부로 심판할 수 없다. 심판은
오직 주님의 몫이다(제1독서).
★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비유를 통하여 당신께서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는 이유를 밝히신다. 하느님께서는 마치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은
목자처럼, 또 잃어버린 은전 한 닢을 도로 찾은 어느 부인처럼 죄인의
회개를 가장 큰 기쁨으로 삼으신다(복음).
◈ 오늘의 묵상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예수님의 이 비유 말씀에 나오는 은전 한 닢은 통상적으로 당시 근로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합니다. 또한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마도 수입이 없을 때에도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에 모아 두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이
부인은 은전 한 닢이라도 무척 귀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가난한 처지의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부인이 등불을 켜고 집 안 곳곳을 빗자루로 쓸면서, 은전이
바닥에 부딪쳐 딸그락하는 소리를 내며 나타나기를 얼마나 애타게
기대했을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은전 아홉 닢이 남아 있으니 괜찮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한 닢이 그녀에게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의 마음은
가난한 부인의 애절한 마음과도 같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당신께 돌아올 때마다 얼마나 기뻐하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돈을 잃어버린
부인이 등불을 켜고 집 안 곳곳을 빗자루로 쓸면서 은전이 바닥에 부딪치는
소리를 고대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하늘 위에만 머무르지 않으시고
우리를 애타게 찾아 헤매시며 회개의 통곡을 기다리십니다. 그분께서는
그렇게 우리를 소중히 여기십니다.
- 매일 미사 -
◈ [청주] 용서해 주세요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2013년 다해 11월7일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 루카 15,1-10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십시오.
고해성사를 볼 때마다 의지가 참으로 약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같은 고백을 반복하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뉘우치고 결심했다면
같은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할텐데 성찰해 보면 여전히 약점을
드러내고 맙니다. 그래서 늘 고해 신부님 앞에 얼굴을 붉힙니다.
때로는 모르는 신부님께 고해를 하고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넘어짐을 통해서 하느님의 은총이 없이는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구나! 돌아보게도 됩니다. 요즘은 틈만 나면,
'용서해 주세요!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합니다. 뻔뻔스럽게 여전히
죄를 지으면서.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루가15,10) 하시며 죄인의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의인
아흔 아홉도 소중하지만 죄인 하나도 결코 그 소중함이 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인이 회개하면 기쁨이 더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죄인 하나가 바로 나라면 그 은총이 얼마나 큰 것인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옆의 두 강도 중 하나는 구원되었습니다. 그는 서둘러
회개하였습니다. 죽음을 앞둔 순간이었지만 옆에 계신 예수님께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가23,42).하고
간절히 청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로부터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가23,43).라는 대답을 얻어냈습니다. 그러므로
“회심의 노력이나 기간은 죽는 순간까지 항구해야 합니다”
(시리아의 성 이사악).
못된 행실을 버리고 돌아서는 모습을 주님은 반기십니다. “어떤
이들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미루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러분을 위해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게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는 “죄인은 제 길을, 불의한 사람은 제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 오너라. 그분께서 그를 가엾이 여기시리라. 우리 하느님께
돌아오너라. 그분께서는 너그러이 용서 하신다"(이사55,7).고
말합니다.
요엘 예언자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 (요엘2,12-13)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더욱이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루가5,32).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부끄럼 없이 살면 좋지만
혹 부끄러운 모습이 있더라도 주님을 찾으십시오. 그것이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허물을 안고 있음에도 우리에 대한 사랑을
놓지 않으시는 주님을 믿고 그분의 자비를 청하십시오. “회개한 죄인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습니다”(성녀 소화데레사). 고해성사의 은총을
확인하는 날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 청주 교구 감곡 매괴 성모 성당 반 영억 라파엘 신부 -
◈ [인천]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주님을 기억하며
2013년 다해 11월7일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아마 오늘은 긴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지 아닐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지요. 6~70만 명의
수험생들과 그 부모님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비롯해서 연관된 사람들이
얼마나 긴장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긴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
오늘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그동안 배운 것을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평가한다는 것 자체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대학 진학을 원한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기에 아무쪼록 모든 학생들이 최상의
컨디션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를 기도합니다.
어제는 돌아가신 성소후원회 회원들을 위한 위령미사가 있었습니다.
정확히 일주일 전, 비가 엄청나게 내리는 가운데에서 미사를 봉헌했다는
이야기를 이곳 새벽 묵상 글에서 이야기했었는데, 지난주와 똑같은
상황이 아니 어쩌면 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었지요.
사실 일기예보에 비소식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게 많은 비가 온다는
이야기는 없었거든요. 5미리 이하의 비 소식이라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미사가 시작하는 오후 2시까지는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2시 미사가 시작하자 굵은 비가
하늘에서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미사 하는 내내 비가 계속해서
내리는 것입니다. 많은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비가 오니 우산을 써야하고,
또 세찬 바람에 다가오는 추위 역시 견디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지, 야속하게도 미사가 끝나자마자 비도 그치더군요.
가장 어렵고 힘든 순간에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더 정성이 들어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편하고 모든 것이 만족한 상태에서는 무엇인가를 하기가 쉽지요.
그러나 어렵고 힘들 때에 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 어제 함께 미사를 봉헌했던 사람들도
두고두고 어제 일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미사였기 때문에
그렇지요.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어렵고 힘들어서
그 순간 불평불만을 터뜨릴 수도 있지만, 조금만 참고 견디어 내면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중요한 기억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피해야 할 순간은 없습니다. 그 순간조차 나에게 있어 중요한 기억이
되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 사실이 오늘 복음에서도 나오지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위해 다른 아흔아홉 마리를 버려둔 채 찾는다고 말입니다.
또한 잃었던 은전 하나를 찾고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 함께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커다란 힘이 되어주시는 주님께서 절대로 우리들을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왜 이렇게 잘 포기
하는지요? ‘될 대로 돼라, 난 안 돼.’라며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심지어 주님께서 주신 생명까지도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주님을 기억하며, 우리 역시 자신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들이 내 삶의
중요한 기억을 만드니까요.
두 가지에서 영향 받지 않는다면 우리 인생은 5년이 지나도 지금과
똑같을 것이다. 그 두 가지란 우리가 만나는 사람과 책이다(찰스 존스).
백석 하늘의 묘원입니다. 죽음을 묵상해봅니다.
포기하지 않는 것은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길.
한 피아니스트가 전쟁 통에 적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는 한
번 갇히면 7년 동안 나올 수 없는 감방에 갇혔지요. 이 감방은 한
사람이 겨우 몸을 가눌 수 있을 정도로 작았습니다. 이런 감방에
갇혀 있다 보니 그의 몸은 점점 쇠약해 질 수밖에 없었지요. 실제로
그의 주위 동료들도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 둘씩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 이 피아니스트는
조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요. 돌아온 뒤 곧바로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연주를 듣고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7년 동안 감방에 갇혀 있었기에 전혀 연주할
수 없었을 텐데, 그의 연주 실력은 조금도 줄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포로로 잡히기 전보다도 훨씬 더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그 이유를 물어보니, 그는 감방에 갇혀
있으면서 공포를 극복하고 자신을 격려하기 위해 매일 머릿속으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렸다고 합니다. 상상 속에서 연주한 것이
실제로도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아주 극한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 피아니스트의 모습.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모습이 아닐까요? 이러한 모습이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길이 됩니다.
- 인천교구 성소국장 조 명연 마태오 신부 -
◈ [기타] 우리 모두는 잃어버린 양 한마리입니다.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2013년 다해 11월7일 연중 제 31주간 목요일 복음묵상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루카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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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아흔아홉의 의인 안에 들 수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억겁이라는 시간 속에 우리의 역사가 만든 흔적을 뒤돌아봅니다.
나눔보다는 빼앗음이었습니다
연민보다는 냉혹이었습니다.
평화보다는 전쟁이었습니다.
사랑보다는 미움이었습니다.
결국, 살리는 것보다는 죽이는 역사였습니다.
남을 밟고 일어서야 성공이라 믿었던 어리석은 욕망들은 바로
우리의 얼굴이었습니다. 때로는 보이게, 때로는 은밀히 만들어낸
살해된 주검의 벌판이 우리의 마음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당신께서도 희생을 피하실 수가 없었지요.
주님!
위대한 인류를 외치고 있지만, 잔인한 인류였음을 고백합니다.
약육강식의 논리를 정당화했던 세상.
이기심과 폭력으로 만든 세상 속에서 적자생존을 외쳤던 세상.
늘 희생은 약자의 몫이고, 그 약자는 강자가 되려고 발버둥쳤던
가련한 세상이었습니다.
철저하게 약자의 모습을 스스로 택하신 하느님의 아들.
그 아들도 여지 없이 우리는 죽이고 말았지요.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2.
하느님, 이 오욕의 역사 속에서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지 감히
헤아려 봅니다. 당신께서는 늘 바보처럼 우리가 털고 일어나 제자리
찾기만을 기다려주셨습니다. 당신께서 보시기에 좋았던 그 세상
속에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당신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회개하는 한 사람 때문에 행복해 하실 것이고 말입니다.
끝까지 저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 마음에 희망을 가져봅니다.
어차피 우리는 길을 찾고 있는 헤매는 양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 양을 직접 찾아 나서시는 그 마음에 다시 한 번 마음을 추슬러
봅니다.
주님,
아흔아홉 마리의 양들 무리에 속해 있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입니다. 어리석음에서 구하소서.
뉘우치고 다시 일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보속의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소서.
잘 죽을 수 있기 위해 잘 살게 하소서.
주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 사이타마 교구 오타(太田)본당 주임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
https://www.facebook.com/WithfatherPinetree
소나무 신부와 함께 하는 마음의 산책
◈ [서울]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2013년 다해 11월7일
작년에 입었던 조끼를 옷장에서 꺼냈습니다.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종이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꺼내보니 만 원짜리였습니다. 순간 기분이
좋았습니다. 물론 그 돈은 작년에 제가 가지고 있었던 돈입니다. 하지만
저의 기억 속에서는 이미 사라진 돈이었습니다. 기억 속에 사라진 돈이
다시 내게로 왔으니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본당에 있을 때입니다. 미사 시간 전에 고백성사를 드립니다. 대부분은
열심하신 교우 분들이 성사를 보십니다. 친구들도 자주 만나야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오랜 만에 만난 친구와는 뜻밖에도 그렇게 할
이야기가 많지 않았습니다. 예전의 기억들을 함께 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고백성사도 그렇습니다. 하느님 앞에 자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분들은
성찰 할 것들도 많고, 고백성사를 통해서 위로를 받고, 평화를 얻습니다.
가끔씩 오랜만에 성사를 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10년, 20년 만에 성사를
보시기도 합니다. 그런 분들을 만나면 ‘월척’이란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통회의 눈물을 흘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성사를 보시는 분들을 만나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바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심판합니까?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업신여깁니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칭찬한다면 우리나라의
정치는 더욱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본당에서 만나는 교우들이
서로 칭찬한다면 하느님 나라는 이미 이곳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우리들이 하는 칭찬과 격려는 실의와 절망에 빠진
이들을 하느님께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해 남을
돕고, 칭찬을 한다면 우리는 이미 하느님 나라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기억력이 좋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래서 인지, 어떤
일을 정리하고 기억하는 것을 잘 하게 되었습니다. 강론을 할 때도,
강의를 할 때도 기억을 잘하고 요점을 잘 파악하는 것은 큰 힘이
됩니다. 저를 만나는 분들이 하시는 작은 칭찬이 제게는 큰 능력이
되었습니다. 오늘 만나는 이웃들에게 칭찬의 말을 하면 어떨까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합니다. 칭찬은 돼지도 나무에 오르게
한다고 합니다.’
- 서울 대 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하느님과 사랑관계를 맺고 사는 것
2013년 다해 11월7일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하느님과 사랑관계를 맺고 사는 것
회개란 내가 나에게 쓰는 말이 아니고 후회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세상 법을 어기면 후회를 하겠지만 회개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양심이나 신법을 어기면 죄이고 사회가 정한 법규를 어기면 범법자지요.
죄인이 후회하고 회개하면 참 신 하느님은 사랑으로 용서하신다는 겁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면 기뻐하는 그 이상으로 하느님이 기뻐하신다는 거지요.
이런 하느님과 사랑관계를 맺고 사는 것이 신앙생활의 참 의미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루카 15,10)”
- 이기정 사도 요한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가 바뀌지 않고 남을 바꿀 수 없다."
2013년 다해 11월7일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복음 : 루카 15,1-10
< "내가 바뀌지 않고 남을 바꿀 수 없다." >
개그맨 이성미씨 간증을 조금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친 어머니를 여의고 그 뒤 세 명의 새엄마를 거쳐야 했고 연예인이
되어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을 겪고 우울증이 걸려 수면제 70알을
먹고 자살기도도 했었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자라왔기 때문에, 자신도 어떻게 가족을
사랑해야 하는지 몰랐던 것 같습니다. 특히 아들에게는 더욱 엄한
어머니였는데 17년 동안 욕만 하며 살아왔다고 합니다.
한국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심경으로 캐나다로 이민 갔는데
그 곳에서 아들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아들은 학교가
9시 30분에 시작하는데 10시에 일어나는 공부엔 담 쌓고 사는
아이였습니다. 한 번은 학교에서 또 전화가 와서 10시에 아들을
깨워 아침을 먹으라고 해 놓고 아침 먹는 아이 뒤통수에다 “나가
죽어라. 이 ... 쓰레기...” 등의 욕을 하는데, 마음속에서 하느님의
‘정말 네가 말하는 대로 만들어주랴?’라는 음성이 들렸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아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내가 말하는 대로 되었더라면 큰일 날 뻔 했구나’라며 크게
뉘우쳤고 17년 동안 입에 달고 살았던 욕을 그날 바로 끊었다고
합니다. 며칠 뒤 딸이 오빠 방에 들어갔다 나오며 엄마에게 이렇게
소리치더랍니다.
“큰일 났어. 엄마, 오빠가 공부해...”
자신이 바뀌니 아이가 바뀌어간다는 것을 깨달을 무렵, 이번엔
아이가 학교에서 커다란 사고를 치게 되었습니다. 캐나다 아이와
몸싸움을 하다 스케이트보드 위에 있던 캐나다 아이가 아스팔트에
머리를 부딪치며 넘어진 것입니다. 아이는 뇌진탕 증세로 혀가
말려 들어갔고 그것을 손으로 끄집어내야 했습니다. 아이는 앰뷸런스에
실려 갔고 아들은 경찰에 의해 교장실에 감금당했고 이 이야기가
이성미씨에게 전달되었습니다. 학교에 도착한 이성미씨에게 교사들은
이제 아들은 감옥에 가게 될 것이고 너희는 추방당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교장실에 하얗게 질려있는
아들을 보면서 처음으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내가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아들을 사랑하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기도를 많이 한 탓인지 깨어난 그 아이가 전화를 하여 이성미씨
아들이 처벌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하였고, 주위에서 본 친구들도
때린 것이 아니라 밀치는 과정에서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 진술하여
형사 처분은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4일간의 정학으로 사건은
마무리 되게 되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아들을 위해 가장 좋은 밥상을 차려주었다고 합니다.
아들은 이제 집에서 먹는 마지막 식사라고 생각하며 2주 동안 지낼
집을 알아보았습니다. 평소 어머니 성격으로는 쫓겨날 것이 당연했기
때문입니다. 밥을 다 먹게 한 다음 이성미씨는 아들에게 무릎을 꿇고
엄마를 용서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랑해주지
못한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아이는 펑펑 울면서,
엄마는 평생 자신에게 칭찬 한 마디 안 해 주었고, 못하는 것만 골라서
욕을 먹었고, 엄마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느냐며 흐느꼈습니다.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이는
바뀌었고 대학에 진학하여 목사님이 되기 위해 신학대에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죄인들과 어울리시는 예수님을 못마땅해 하며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큰 불평을 터뜨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것을 하늘나라에서 얼마나 기뻐하는지 모른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정작 내가 변해야
하는 그 죄인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남만 회개하면 된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남이 변하기 바라지 말고 내가 먼저 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철환 작가의 ‘연탄길’에 나오는 실화입니다.
퇴근 시간 즈음 일기예보에도 없었던 비가 쏟아졌습니다. 나는
갑작스런 비를 피하기 위해 어느 건물의 좁은 처마 밑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곳에는 이미 나와 같은 처지의 청년이 서
있었습니다.
빗방울이 더 굵어지기 시작하자, 할아버지 한 분이 가세하셨고
그런 다음 중년 아저씨 한 분, 마지막으로 아주머니 한 분이 비좁은
틈으로 끼어들었습니다. 출근시간의 만원버스처럼 작은 처마 밑은
낯선 사람들로 금세 꽉 찼습니다. 사람들은 이 비좁은 틈에 서서
멀뚱멀뚱 빗줄기만 쳐다보고 있었지만 비는 금방 그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뚱뚱한 아줌마 한 분이 이쪽으로 뛰어왔습니다.
아주머니가 그 큼직한 엉덩이로 우리 대열에 끼어들자 그 바람에
맨 먼저 와있던 청년이 얼떨결에 튕겨나갔습니다. 청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쭉 훑어보았지요. 모두들 딴 곳을 바라보며
모른 척 하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한마디 하셨습니다.
“젊은이 세상이란게 다 그런 거라네...”
그 청년은 물끄러미 할아버지를 쳐다보더니 길 저쪽으로 뛰어갔습니다.
한 사오 분 지났을까? 아까 그 청년이 비에 흠뻑 젖은 채로 비닐우산
다섯 개를 옆구리에 끼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하나씩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세상은 절대 그런 게 아닙니다..!”
청년은 다시 비를 맞으며 저쪽으로 사라졌고, 사람들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청년이 쥐어준 우산을 들고 총총히 제 갈 길을
갔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다 그런 거라던 할아버지는 차마 우산을
들고 갈 수 없었습니다.
‘내가 청년보다 나은 건 나이밖에 없네그랴...’
그리고 우산을 바닥에 놓고 장대비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마지막
우산은 청년의 것이기에....
토마스 아담스는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바뀌지 않고 남을 바꿀 수 없다. 다른 사람을 바꾸려면 스스로
먼저 바뀌어야 한다. 이 세상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는 한 가지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키려고만 할 뿐 자신은 변화하려고 들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회개가 또 다른 회개를 이끕니다. 남들이나 세상 탓하지 말고
나부터 회개하여 하늘을 기쁘게 해야겠습니다.
오산 성당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ca-osan
- 수원 교구 오산 성당 전 삼용 요셉 신부 -
◈ [수도회] 빛나는 보석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2013년 다해 11월7일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루카 15,1-10
빛나는 보석으로 재탄생하기 위해
언젠가 먼지로 가득한 지붕 밑 창고를 정리하다가 녹슨 제구들을
발견했습니다. 아마도 돌아가신 선배 신부님의 유품인 듯 했습니다.
마침 공동체에 제구가 필요했었는데, 보아하니 구식이었지만
재활용이 가능해보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녹이 너무 많이 슬어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표면이
녹으로 가득했습니다. 마침 철물점에 문의해 보니 요즘 아주 좋은
녹제거제가 나왔다며 신제품을 제게 건넸습니다. 신이 나서
수도원으로 돌아온 저는 곧바로 녹 제거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특별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녹제거제를 표면에 가득 바른 후
조금 시간이 흐른 후 마른 수건으로 힘껏 녹을 닦아내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빡빡 있는 힘을 다해 녹을 닦아내던 제 입에서 어느
순간 감탄사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렇게 우중충한 제구들이었는데 녹이 제거되면서 원래 지니고
있었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품위 있는
모습, 반짝 반짝 찬란히 빛나는 모습, ‘이게 웬 횡재냐!’는 감탄사가
제 입에서 튀어나왔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죄와 그로 인한 어둠의 세월로
인해 여기 저기 잔뜩 녹슨 우리들의 영혼입니다.
이런 우리를 향해 예수님께서 힘과 격려의 말씀을 건네십니다.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 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덕지덕지 낀 우리 영혼의 녹을 제거하기 위해, 그래서 우리에게
원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아주기 위해, 더 빛나는 보석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우리 얼굴을 반짝반짝 빛내주기 위해, 우리를
보다 당당하고 충만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
모두를 회개로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이라는 사막을 건너 하느님 나라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할 중요한 관문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진정한
회개’일 것입니다.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바란다면 반드시
획득해야할 티켓이 바로 회개인 것입니다.
자신이 강하다고, 스스로 홀로 설수 있다고, 자신이 의롭다고
확신하는 한 회개는 요원합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그렇습니다.
반대로 나는 죄인이라고, 나는 구제불능이라고, 나는 하느님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가련한 사람이라고 뉘우치는 사람들에게
회개는 가깝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몰려든 세리와
죄인들이 그렇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은 오늘 자신들이 서있는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살아온 지나온 세월을 가슴
아파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자신들의 비참한 처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유일한 희망이요 도움은 하느님의 자비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세리와 죄인들에게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습니다.
반대로 자신들만이 선택된 하느님의 사람이자 의로운 사람이며
구원이 보장된 사람이라고 여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든
것, 하느님께서도 자신들이 편이었다고 믿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었기에 하느님의 도움과 은총조차 필요치 않다고
여겼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의 문을 굳게
닫아버리셨습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 관구 부 관구장 양승국 시테파노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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