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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이 마신 잔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잔이었습니다.(요18:1-11)
2022, 4/10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요18:1-11절 말씀으로 “주님이 마신 잔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잔이었습니다.” 이런 제목으로 말씀 전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오늘은 종려주일이자 고난주간입니다. 주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한 줌도 안 되는 인간들에게 당신의 몸을 내어주시고 스스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간이기도합니다.
이런 주님의 은혜와 사랑,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새로운 소망을 가질 수 있었고, 죽음 이후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 땅에서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고난과 세파 속에서도, 힘을 잃지 않고 살아갈 용기를 내야합니다.
이러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즐거운 삶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주님이 마신 잔은 피하고 싶은 잔이었습니다.(1절)
둘째로, 주님은 이 잔의 의미를 알고 마셨습니다.(4절)
셋째로, 그러나 주님은 그 잔을 피하지 않고 마셨습니다.(5절)
사랑하는 여러분!!!
겟세마네동산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항상 기도하러 올라가는 곳이라 비록 어두운 밤이었지만 익숙하게 도착해서 기도했습니다. 그곳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은 땀이 핏방울이 되어 떨어지도록 간절히 기도했지만, 제자들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을 잤습니다.
때가 되매 성전병사들이 예수님을 잡기 위해 가롯유다를 앞세우고 왔을 때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칼로 내리쳐 잘랐는데 그걸 보신 주께서 귀를 붙여주시며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에‘잔’에 관해서 성찬을 제외하고 3곳이 나오는데, 미세스 세베대가 두 아들을 예수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했을 때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이때와, 겟세마네동산에서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또 한 번은 오늘 본문에서 "아버지께서 주신 잔"이라 하셨을 때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던 이 '잔'의 의미를 바로 알고, 우리도 이 잔을 마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주님께서 마신 잔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주님이 마신 잔은 피하고 싶은 잔이었습니다.(1절)
본문 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아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33년의 짧은 시간이 다하고 이제 아버지께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자들과 마지막성찬을 마치고 유언 같은 말씀을 마친 다음 항상 그랬던 것처럼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올라가 간절히 기도하시는데, 주님은 당신이 마셔야 할 잔의 고통이 얼마나 혹독한지를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 고통의 무게가 너무 버거워 아버지께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길 원하나이다." 이렇게까지 기도하셨는데, 주님의 고뇌가 느껴집니다.
그래서 주님은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피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이 잔이 무엇을 뜻할까요? 바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질 때 겪는 고통과 아픔이 얼마나 혹독한지를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지는 것을 피하게 해 달라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물론 초대교회의 스데반집사도 사람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빛났습니다. 그가 죽음 앞에서도 평안을 누렸던 것은 하늘 문이 열리고, 주님이 하나님보좌 우편에 서 계셔서 스데반을 도우시고, 위로하시며, 함께하였기 때문에 죽음이 두렵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야했기에 스데반집사가 맛보았던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가 없었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께 버림받고 혼자 그 고통과 수모를 감당한 외로운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고 외롭고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래서 주님도 이 죽음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아셨기에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고" 모세혈관이 터져 땀이 피 방울이 되도록 간절하게 기도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모세혈관이 터져 땀에서 피가 섞여 나올 정도로 기도했다면 주님의 기도가 얼마나 강하고, 절박하고, 간절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주님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특별한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고통을 느끼지 못할거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이 영적인 존재라면 당연히 못 느끼셨겠지만 그때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희노애락을 똑같이 느끼셨습니다. 추위도 더위도 배고픔도 아픔도 다 느끼고, 피곤하면 주무시며 쉬셔야합니다.
그러니 주님도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가 무서웠고, 십자가의 고통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고통의 잔을 비켜가게 해달라고, 고통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때문에 주님의 이 십자가를 생각하면 주님께는 너무도 죄송하고 미안하지만, 그러나 주님의 이런 고통과 아픔으로 인해 우리가 구원받았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너무도 고맙고 감사하며, 한량없는 은혜인 것입니다.그러나 아사야의 예언처럼 우리는 다 양 같아서 이런 은혜를 잊어버리고 제 갈 길로 가기 바빴습니다.
가끔씩 해외토픽을 보면 고난주간에 실제 십자가에 못을 박는 일도 있고, 거리에서 십자가를 지는 것도 아니고 바퀴 달아 끌고 가는 포퍼먼스를 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일도 가끔씩은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그걸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주님이 왜 고난 당하셨는지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인데, 그러나 주님의 고난은 퍼포먼스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일상에서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그리스도인답게 공평과 의와 진실과 성실로 살아가는 것을 더 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면서 가끔은 간절하게 기도하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주님처럼 모세혈관이 터져 피가 땀으로 배어나올 정도는 아니라도 정밀 간절히 기도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주의 은혜를 바라고, 문제가 해결되고, 질병이 떠나가고, 주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기 원하신다면 주님처럼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얍복강나루에서 천사와 씨름하며 기도하다가 문제해결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는 축복까지 거머쥐게 됩니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기도는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오늘 주님도 이 고통의 잔을 앞에 두고“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이렇게 기도합니다. 때문에 내가 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일들이 급하더라도 내 뜻대로가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를 구해야합니다.
아버지가 원하시는 때에, 아버지가 원하시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탈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조금 기도하다 응답이 없으면 섭섭하게 생각하여 기도를 포기하고, 그러다 구원까지 포기하고 세상으로 돌아가니 안타깝기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를 왜 믿으시는지요? 응답받고 축복받고 치료받고 잘 풀리고 잘되고 잘살기 위함인지요? 만약 이게 목적이라면 예수 잘못 믿은 것입니다.
물론 주님은 이런 것도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리길 원하시지만. 그러나 먼저 주님께서 마신 고난의 잔을 마실 것을 요구하십니다.
주께서 미세스 세베데에게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물었던 것처럼 오늘 똑같이 내가 마시려는 잔을 마시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주님 고난에 동참하는 길이고, 하나님나라 자녀로서 최소한의 예의이자 염치 있는 행동입니다. 여러분들도 고난의 잔에 동참하여 주님께 인정받는 신앙되시기 비랍니다.
둘째로, 주님은 이 잔의 의미를 알고 마셨습니다.(4절)
본문 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아멘.
여러분!!! 같은 고통이라도 모르고 얼떨결에 받는 것보다 알고 받는 것이 훨씬 더 고통스럽습니다. 매를 맞아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하지 않습니까? 먼저 맞는 사람이 맞으면서 지르는 비명소리를 들으면 매를 맞기도 전에 질려버립니다.
북한에서 남한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남한소식을 전하면 노동교화소나 정치범수용소로 가거나 시범케이스에 걸리면 사형을 당하는데, 사형을 집행할 때 군중들을 모으고 가족들을 맨 앞에 앉혀놓고 9발의 쏴 죽이는데 그걸 목도한 가족들은 평생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려서 못산답니다.
여러분!!! 사람을 가장 잔인하게 죽이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세요? 능지처참일까요? 아마도 정신적인 고통을 주는 것일 겁니다.
어떤 왕이 흉악한 사형수를 바로 죽이면 안 된다고 사형집행이 있을 때마다 형장으로 끌고 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그 장면을 똑똑히 보도록 했답니다. 사형수가 현장에서 목이 잘릴 때 피가 뿜어져 나와 튀고,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며, 살이 타는 냄새를 맡으면서 죽는 것을 보게 했더니 얼마 못가서 신경쇠약으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더랍니다. 얼마나 두렵고 공포였겠습니까?
예수님도 4절을 보면 당신이 앞으로 당해야하는 그 수치와 고통은 물론 모든 상황들을 전부 알고 계셨기에 그 고통의 강도도 그 만큼 컸을 것입니다.
가야바와 빌라도에게로 끌려 다니는 것은 물론이고, 그토록 배신하지 않겠다고 장담하던 베드로가 아주 쉽게 무너지는 것도 아셨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유대인들과 군병들이 조롱하고 침을 뱉고 때릴 것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올라가는 것도, 발가벗겨져 가장 고통스러운 십자가에 달려 극한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이 십자가의 고통을 피하지 않고 잔을 묵묵히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아 천국을 소망하게 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우리주님께서 어떤 고통의 잔을 마셨는지를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합니다.
고난과 영광은 동전의 양면이고, 정비례의 관계입니다. 하나님나라는 주를 위해 고난과 핍박을 받아야 면류관을 받고 영광의 반열에 들어갈 수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눅24:26절에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아멘. 이처럼 주님도 고난을 받은 후에 영광의 자리에 들어간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당연히 이 땅에서 주를 위해 고난을 받고, 복음을 전하다 핍박도 받고, 충성하고 헌신하다 어려움도 당하는 것이 맞습니다.
고난의 원어적 의미가‘조이다, 에워싸다. 주리를 틀다’라는 뜻인데, 고난은 주리를 트는 것과 같아서 매우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그럼에도 믿음을 지키며 사명 감당하는 것이 바로 주님의 잔을 마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의 잔에 동참하여 진정한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그러나 주님은 그 잔을 피하지 않고 마셨습니다.(11절)
본문 1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아멘.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버린 가롯유다가 예수님이 항상 기도하시던 장소로 성전병사들을 데리고 와 넘겨버립니다. 저들은 예수님을 체포하여 안나스와 가야바에게 보내져 심문을 받는데, 혹독한 심문이 끝난 다음 빌라도에게 보내집니다.
주님이 무슨 탁구공도 아니고 한 줌도 안 되는 죄인들이 온 세상과 인간들을 만드신 주님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인간적인 수치와 모멸감을 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보통 사람이란 것을 증명하기 위해 보통 사람은 견딜 수 없는, 아예 죽으라고 혹독한 고문을 가했음에도 우리주님은 죽지 않습니다. 왜 상상을 초월한 고문에도 돌아가시지 않았을까요? 십자가에 달려돌아가셔야 한다는 하나님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 또한 아버지께서 주님께 주신 잔입니다. 주님도“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요18:11)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우리 각자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잔이 있습니다. 이 잔을 우리는 고상한 말로 'mission'‘사명’이라고 부르는데, 누구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주셨고, 또 누구에게는 어린생명들을 돌보는 사명, 또 돈을 많이 버는 능력을 주어 성전도 건축하고, 선교사도 파송하게 하고, 또 자녀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잘 양육하는 사명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이 주신 잔은 마실 생각도 안하면서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나에게 이런 고통과 시련을 주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 죽음의 잔을 마셨을까요?
아무 잘못도 없지만 주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현재의 상황이 이해가 안 돼도, 내게 손해가 되어도, 고통스러워도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고 주님처럼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길 원하옵나이다. 이러면서 이 고통의 잔을 피하지 않고 마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 십자가사건이 있기 700년 전에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렇게 예언하셨는데, 이 예언대로 예수님은 대적들에게 그 고통을 당하면서도 단 한 마디도 변명하지 않고 이 고통의 잔을 마셨습니다.
여러분!!! 주님도 이 잔 마시는 것이 고통스럽고, 피하고 싶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고 그대로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도 주님께서 마시라고 주신 잔을 피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저런 핑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이 잔을 마셔야만 합니다.
그것이 나를 살리고 사람들을 살리고, 이 땅에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