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주일설교(2024, 11, 17)
제목 : 범사에 감사하라
성경 : 살전 5 : 18
역설(逆說)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전적인 의미는 어떤 주의나 주장에 반대되는 이론입니다.
영어로는 파라독스(paradox)라고 합니다.
역설적인 표현으로는 ‘텅빈 충만’, ‘소리 없는 아우성’, ‘작은 거인’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도 보면 역설적인 표현들이 많이 나옵니다.
죽으면 살고, 잃으면 얻고, 낮아지면 높아지고, 약할 때 강하고 등입니다.
이것을 보면 기독교 신앙이 대단히 역설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5 :10-12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예수님이 지금 어떤 상황를 말씀하고 계십니까?
성도들이 의를 위하여 박해 받는 상황입니다.
예수님 믿는 때문에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듣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역설적인 면인 것입니다.
역설적인 신앙은 예수님의 제자들인 사도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 사도들은 앞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대단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 끌려가서 채찍질을 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지를 당했습니다.
도저히 기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사도들은 기뻐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다음과 증거합니다.
행 5:40-41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이것이 역설적인 신앙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성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귀신이 들려 점치는 여종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여종의 주인들은 점치는 이 여종으로 인해 막대한 수익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이 여종이 바울 일행을 여러 날을 따라다니며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행16:17) 고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바울이 너무 괴로운 나머지 그 여종 속에 들어 있는 귀신에게 예수 이름으로 나오기를 명하자 즉시 귀신이 여종에게서 나갔습니다. 그러자 점치는 능력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여종의 주인들이 들고 일어나 바울과 실라를 고소를 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과 실라는 졸지에 잡혀 들어가 상관들에게 흠뻑 두들겨 맞고 발은 착고에 채워진 채 깊은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바울과 실라가 한 일이라고는 귀신 들린 여종을 고친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는 고발을 당했지요?
당시 로마 사법 당국자들에게 실컷 맞았지요?
발은 도망가지 못하게 착고에 채워졌지요?
그리고 깊은 감옥에 갇혔지요?
이런 상황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다는 것입니다.
행16: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후에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기독교의 역설적인 신앙을 이렇게 썼습니다.
고후 6:9-10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저와 여러분이 이런 역설적인 신앙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범사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헬라어로는 ‘파스’라는 단어입니다.
헬라어 파스는 첫 번째는 온갖(all), 모든(every)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온갖,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어떤 것이든지(any), 온갖 종류의(of evey kind) 뜻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떤 것이든지, 온갖 종류의 일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전체의(whole)입니다.
삶 전체에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모든 상황에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은 상황이 수시로 바뀝니다.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습니다.
형통할 때도 있고 곤고할 때도 있습니다.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건강할 때도 있고 병들 때도 있습니다.
평탄할 때도 있고 위기일 때도 있습니다.
푸른 초장과 맑은 시냇 물가를 걸을 때도 있지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을 때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그렇게 디자인 하셨습니다.
전 7: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사실 좋을 때나 형통할 때나 성공할
때나 건강할 때나 평탄할 때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도 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앞에서 말씀드린 나쁠 때도, 곤고할 때도, 실패할 때도, 병들었을 때도, 위기일 때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직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실제로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사탄의 시험을 받아 모든 재산을 잃었습니다.
재산이야 다시 모으면 됩니다.
그러나 자녀는 그럴 수 없습니다.
문제는 욥이 열 자녀를 한 날에 다 잃었다는 것입니다.
욥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놀랍게도 욥은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욥1:20-22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다니엘은 남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할 때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왕의 총애를 입어 바벨론의 총리에 이어 바사 제국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를 시기한 사람들이 다니엘을 죽이려고 계략을 꾸몄습니다.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 창문을 열어놓고 예루살렘을 향해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왕에게 아뢰어 지금부터 30일 동안 왕 외에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법을 고치지 못하도록 왕의 도장까지 찍었습니다.
만약 이 법을 어기게 되면 사자 굴에 던져 넣어 사자 밥이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요?
목숨을 건지기 위하여 기도를 중단했을까요?
이런 상황을 만드신 하나님을 원망했을까요?
아닙니다. 다니엘은 오히려 그런 상황 속에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또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단6:10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여러분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성경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성도들에게서도 발견이 되는 것입니다.
보통 성도들이 사업장을 개업하면 목사님을 모셔다 놓고 개업감사예배를 많이 드립니다.
반면 사업장을 폐업하면서 폐업감사예배를 드리는 성도는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사업장을 폐업하면서 폐업감사예배를 드린 사업장이 있습니다.
바로 종로에 있었던 삼일 서적입니다. 당시에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와 같은 대형 서점이 들어서자 도저히 못 버티고 폐업을 하게 된 것입니다. 폐업감사예배를 드린 날짜가 1995년 9월 7일 오후 2시였습니다.
그 서점 주인은 폐업감사예배를 드리면서 1980년부터 지난 15년 동안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고 도와주셨다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CCM 중에 “내가 누려왔던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 아니요 은혜였소” 라는 <은혜>라는 찬양곡이 있습니다. 이 곡은 손경민목사님이 지은 찬양곡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지은 또 다른 찬양곡이 있습니다.
제목은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찬양곡입니다.
그 가사는 이렇습니다.
<내가 알 수 없는 길로 내가 갈 수 없는 길로 가장 좋은 길로 날 인도 하시네
내가 할 수 없는 일도 나의 주가 이루시네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
내 생각보다 내 계획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주님
내 기도보다 내 소망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주님
내가 나의 지혜로 나의 힘으로 다 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주의 지혜로 주 능력으로 더 좋은 것을 내게 주시네>
우리 사모님이 가족 단톡방에 올려서 저도 이 찬양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튜브로 그 찬양을 듣다가 밑에 달린 댓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는데 눈에 띄는 댓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선천성 시작장애 학생입니다. 전 어릴 때부터 많이 아팠습니다. 두 살 때 소아암이 찾아와서 수술을 했었습니다. 병명은 윌릴스종양 신장에 생기는 악성 암인데 저는 현재 신장이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치료과정을 견뎌내고 약 8년 전 완치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러 질병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많이 힘들고 지쳤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이런 시련을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도 질병으로 고생하고 있으나 저는 이것을 다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의 이런 약한 모습을 쓰시려고 이러한 고난과 고통을 주시는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게 이러한 시련을 주셔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니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이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복음성가 중에 <그리아니하실지라도> 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그리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해요 주님 뜻을 믿기 때문이죠
언제나 나를 향한 신실한 사랑 우리를 향한 그 크신 사랑
우리가 함께 높이며 주를 찬양해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상황에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상황을 반전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시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주의 은혜가 여러분에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