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한국과 수교를 한 필리핀은 아세안 국가 중 한국과 외교 관계를 맺은 첫 번째 나라이며, 6·25전쟁에 대대급 규모의 전투부대(연 5개 대대 7420명)를 파병한 참전국이다. 또한 국제사회에서 대북관계 등 중요 사안에 대해 한국을 굳건하게 지지하는 전통적인 우방 국가다.
아라우부대에 의해 복구된 필리핀 학교. |
경제·군사·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이제는 우리가 도움을 받던 입장에서 도와주는 입장으로 전환했으며, 한국은 필리핀을 원조하는 공여 국가들 중 미국·호주·일본에 이어 네 번째로 큰 규모의 원조를 하고 있다.
2013년 슈퍼 태풍 ‘하이엔’으로 필리핀이 큰 피해를 봤을 때, 필리핀의 요청으로 아라우부대(500명 규모)가 파병돼 1년간 필리핀 재건과 파병용사에 대한 보은활동(의료 지원, 가옥 건축 등)을 펼침으로써 최초로 6·25전쟁 파병국가에 대한 보은 차원의 파병 역사를 기록하기도 했다.
군사협력 현황
필리핀 전투부대의 6·25전쟁 파병을 통해 피로 맺어진 우의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와 필리핀은 전통적 우방 관계를 발전시키면서 다양한 군사협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양국 간의 함정 방문으로 시작된 군사협력은 이제 한-필리핀 군수방산협력 양해각서(1994), 한-필리핀 특정 방산물자 조달에 관한 시행약정(2009), 군사협력 양해각서(2013),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2015) 등의 법적 토대가 마련돼 있다.
특히 1990년대부터 해군 함정(고속정)과 공군 전투기(제공호) 등 군사무기 및 물자 공여를 통해 양국 간의 신뢰 관계를 쌓아 왔다. 또한 최근에는 방사청과 필리핀 국방부가 한-필리핀 공동군수위원회를 매년 개최해 실제적인 방산협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
기사사진과 설명지난 2013년 아라우부대 파병을 위한 관련 약정(TOR) 서명식 모습. |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2015년엔 FA-50PH 12대와 상륙돌격장갑차(AAV) 8대, 2016년에는 초계함(PCC) 2척을 수출 계약했다. 특별히 필리핀 국방부는 한국군을 배우기 위해 매년 생도 및 현역 장교 5~8명을 각군 사관학교와 합동참모대학, 국방대학에 보내 관련 군사교육을 받게 하고 있다.
한국과 필리핀의 관계를 끈끈하게 이어 주는 생존 참전용사와 그 후손들에 대한 보은 활동도 계속되고 있다. 2013년 슈퍼 태풍 하이엔으로 큰 피해를 본 필리핀의 재건을 지원하기 위해 파병된 아라우부대를 통해 한국군이 보여준 보은과 우정은 양국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
필리핀 군 현대화 추진
필리핀은 7100여 개의 섬으로 구성돼 있으며, 한반도의 1.7배 면적을 가진 해양국가로서 지리적으로 태풍이 발생하는 태평양 언저리에 위치해 연중 20여 개의 크고 작은 태풍과 화산 분화, 지진 등 자연재해가 어느 나라보다도 많다.
또한 대내적으로는 반군과 전쟁을 치르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중국과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리핀 군이 당면한 현안은 먼저 대내적으로는 반군(이슬람 반군, 공산 반군 등)의 위협을 제거하고, 자연재해를 입은 지역 주민들에게 인도적 지원과 시설복구를 제공함으로써 정치적 안정과 경제발전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대외적으로 는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벌이는 영유권 분쟁을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군사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러나 필리핀 군은 규모가 12만 명밖에 되지 않고 무기체계도 많이 뒤떨어져 있다.
국토가 많은 도서로 구성돼 있어서 지리적인 제약이 있고, 대응해야 할 적과 비교할 때 군의 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사실상 당면한 군의 과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 정권인 아키노 행정부에서 2013년부터 시작한 군 현대화 사업은 2027년까지 15년간 3단계(각 단계별 5년)로 구분해 진행되고 있다. 1단계는 2017년에 성공적으로 완료했고, 2018년부터는 2단계 현대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1단계에서는 총 14억 달러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국내 반군 위협에 대비한 경공격헬기(캐나다), 수송기(이탈리아), 수송헬기(미국 등), 방호장비(방탄복, 방탄모), 개인전투장비(M4), 군용차량(1500대 규모, KIA) 등을 우선순위를 부여해 확보했으며, 외부의 위협에 대비해서는 전투기(FA-50PH 12대, KAI), 전투함(프리깃 2척, 현대중공업), 상륙돌격장갑차(KAAV 8대, 한화테크윈), 전략 수송함(2척, 인도네시아) 등 대규모 획득 사업을 진행했다.
필리핀은 중국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경제성장을 계속해 오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국방현대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나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군사 및 방산협력 시사점
한국군의 무기체계와 장비들은 가성비와 신뢰도가 높아 필리핀 군과 경찰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필리핀 군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군 현대화 사업’은 이미 1단계(5년)를 성공적으로 완료했으며, 이 과정에서 전투기·전투함·상륙장갑차·군용차량 등의 분야에 우리 방산업체들이 참여해 성공적으로 교두보를 확보했다.
2단계(2018~2022)에서도 전투기 및 전투함 2차 사업을 포함한 획득 및 방위력 개선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으며, 특히 주변국의 해양 위협에 대비해 잠수함 획득 사업도 추진을 검토 중이다.
필리핀 군 현대화 사업의 1단계에서 확보한 교두보를 바탕으로 전과 확대를 해 나간다면 필리핀 군의 전투기와 전투함을 한국의 무기체계로 라인업(lineup)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이다.
기사사진과 설명우리나라의 기아 트럭을 개조한 사열차에 올라 사열을 하고 있는 필리핀 국방장관. |
보은의 대상을 참전용사 후손들에게로 전환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필리핀의 6·25전쟁 참전용사들은 양국 관계의 튼튼한 기초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참전용사들은 곧 우리 곁을 떠날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보은의 대상을 참전용사 후손들에게로 전환함으로써 관계를 계속 유지해 나갈 필요가 있다.
필리핀 군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는 선진화된 한국군이 향후 양국의 군사협력과 방산협력을 촉진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도록 국방부 차원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양국 간에는 군사협력과 방산협력을 위한 협정과 양해각서 등 법적 장치가 마련돼 있어, 현재의 한국과 필리핀의 관계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이러한 절호의 기회를 살려 필리핀 군 현대화에 기여하면서 양국관계를 더 발전적으로 정립해 나가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김 인 수 해병대중령
해병대사령부 리더십센터 임무형지휘과장
前 주 필리핀 국방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