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동화사 폭포골 –20180711- 지산
장마비가 계속되다가 오늘부터 섭씨 34도 까지 올라간다는 대구날씨다. 오늘은 고전연구회 사무실과 서구 쪽에서 각각 2팀이 편성되어 산행을 하기로 했다.
동화사 입구 주차장에서 이영환 선생과 권영호 선생 그리고 박선생 3대의 차량이 거의 동시에 도착하였다. 출발 9시에 10시가 되기 전에 행장을 가추고 편대를 형성했다.
숲은 울창하고 공기는 상쾌한 날씨 아직은 후끈거리 지는 않지만 장마 다음날 시원한 아침 그늘이 정답다.
경사가 약간 있는 아스팔트길을 한참 올라 약사암 가는 길로 표시가 되어 있는 길이 폭포골로 가는 길이다. 폭포골이라는 표시판을 발견하지 못하고 동화사 쪽으로 10여보 올라가다 다시 내려와 폭포골로 들어선다. 우리 팀에서는 폭포골을 가본사람이 없어서 처녀등산을 하니 길이 자꾸 헷갈린다. 표시판이 동화사에서 내려오는 쪽에 보이도록 붙어있어 아래서 올라가는 사람들은 알 수가 없었다. 자동차길이 약사암 가는 곳까지 닦여 있다가 오른쪽으로 갈림길부터서는 사람만 다니는 오솔길 수준이다. 팔공올래 7번 코스라고 적혀있는 길을 따라 올라간다. 골짜기에는 지난 한주동안 내린 장마비로 콸콸 흐르는 계곡 물소리에 더위가 가신다. 숲은 온통 힘이 넘쳐 조그만 바람결에도 출렁거리는 푸른잎은 온천지를 녹색 이불로 덮은 향연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하늘에 옅은 구름, 맑은 공기와 즐거운 마음과 그리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풀숲의 이슬을 헤치며 앞으로 나가간다. 아직 풀숲 이슬이 그대로인 것을 보면 오늘 아무도 이 길을 지나가지 않은 원시의 숨결이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입에서는 휘파람소리가 이어지고 ...
한참을 가다보니 작은 갓바위라고 누가 이름은 붙여놓은 선바위에 넓은 판돌을 얹어놓아 갓바위을 연상시키는 돌이 서있다. 성큼성큼 잘들도 올라가는 발걸음에서 오늘은 성산재까지 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주차장에서 3.8km의 길이다. 거의 한 시간 정도 올라 온 곳에 지도에는 귀곡산장(구곡산장?)이라고 쓰여진 돌로 지은 벽만 남은 폐허가 된 건물이 울창한 숲속에 덩그렇게 자리 잡고 있다. 이름과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그런 모습으로 숲속 계곡가에 서있다. 돌 벽돌을 쌓아 잘 지은 집 같은데 왜? 누가? 이런 곳에 이런 집을 지어놓았는지? 다들 궁금해 한다. 지붕이 없고 사면의 돌 벽돌은 그대로 남아 조금만 수리해도 사용 할 수 있을 것 같은 이곳에 그냥 버려져 있는 것은 이곳이 집이 들어설 자리가 아닌 곳이다. 첫째 계곡 바로 옆이라 습기가 많고 둘째 골짜기 안쪽으로 양쪽에 있는 산 능선이 급히 올라서서 햇볕을 많이 받지 못할 것이다. 항상 음침할 것 같은 분위기이기 때문에 우리 같은 초보자가 보아도 집터로는 아닌 곳에 많은 돈을 들여 지은 집이지만 사람이 살수가 없었을 것이다. 집모서리 돌에 무궁화 꽃 같은 모양이 새겨진 무늬 돌을 보니 무언가 생각한 사람이 시작한 집 같기도 했다.
사실은 폭포골에는 많은 상점과 여인숙 등이 80년대 초반까지 자리 잡고 영업을 해온 곳으로 지금 케이불카가 있는 새로 지은 동화사 일주문 앞으로 식당과 상점을 옮기기 전까지는 성업을 하든 곳이라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계곡 양쪽에 집터가 남아있고 그 집터에는 돌로 쌓아올린 축대가 남아있다. 이집도 그때 영업을 했거나 아니면 누군가의 별장으로 사용된 것같이 생각이 든다. 아무도 없이 조용한 계곡에 들어서 무너져 내릴 돌집을 보니 불현 듯 야은 길제의 옛시조의 정감이 떠오른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보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
어즈버 태평년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오백년 도읍지가 그렇게 허무할 진데, 팔공폭포골의 흥망성쇠에 일러 무삼하겠는가?
이 귀곡산장 앞에서 첫 휴식을 하였다. 11시20분경 아침에 갓 삶아서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는 옥수수를 한 자루씩 나누어 먹었다. 맑은 하늘아래 싱싱한 숲속에서 마음 통한 동아리 회원들이 같이 먹는 옥수수 맛은 꿀맛이다.
다시 오르기를 시작하여 계곡을 몇 번 건너간다. 건너가는 곳에 물살이 심해 권영호 선생이 무거운 돌을 군대 군대 놓아 디딤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항상 힘쓰는 장사 몫은 권선생 몫이었다.
11시40분이 넘은 시간에 반환점에 도착하였다. 이곳에 폭포가 우렁찬 폭음을 내면서 울퉁불퉁한 바윗돌 위를 미끄러지듯 내려오고 있다. 이영한선생과 조인숙선생 왈 중국의 여산폭포보다 물이 많다고 한다. 이백이 시를 지을 당시에는 대단했을 것 같은 여산폭포가 지금은 거의 어린애 오줌길보다 적다고 하니 이백의 ‘望廬山瀑布‘시를 적어본다.
望廬山瀑布(망여산폭포) ; 여산폭포를 바라보며 - 이백(李白)
日照香爐生紫煙(일조향로생자연)
향로봉에 해 비치니 자주빛 안개 피어오르고
遙看瀑布掛前川(요간폭포괘전천)
아득히 폭포 바라보니 긴 강이 하늘에 걸려있구나
飛流直下三千尺(비류직하삼천척)
날아 솟았다 바로 떨어진 물줄기 삼천 척
疑是銀河落九天(의시은하락구천)
이것은 혹 은하수 하늘에서 쏟아지는 것 아닐까
폭포 위에 계곡 앉아 시원한 물속에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한다. 아직 12시가 되지 않은 시간 이영환 선생 이곳까지 왔으니 성산재 까지 고개에 올라가자고 한다. 발을 닦아 신발을 갖추어 신고 600m쯤 가면 나온다는 고개로 향했다.
계속의 물소리는 점점 줄어 들도 펑퍼짐하게 넓어지는 산등선이 아래 자연 상태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물기가 많아서 인지 크고 작은 비목나무가 널려있고 신갈이나 굵고 큰 물푸레나무도 여기저기 서있다. 그 아래층에는 하늘나리의 청초하고 예뿐 앙증맞게 작으면서 귀엽게 생긴 빨간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 ‘하늘나리’의 군락지 같다.
하늘나리, 꽃색갈이 황금색이고 키가 약간 큰 것이 하늘말나리이다.
오르고 또 오르면 오른다더니 더디어 보통재에 도착했습니다. 왕복 소요시간 1시간이 넘어 폭포까지 내려오니 한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폭포골에서 짐을 지키고 있던 3사람 우리가 너무 늦게 까지 내려오지 않은 다고하여 전화를 했으니 이 계곡에서는 전화가 소통이 되지 않아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 험한 길???을 무사히 돌아온 것을 축하여 주었다.
이제 즐거운 점심시간 10명의 단출한 식구가 같이 모여서 최상품의 식재료로 만든 음식으로 즐겁게 먹었다. 그리고 시간이 2시가 넘은 시간 오후 4시에 내려가자고 제안하여 폭포아래 계곡에 돌 의자에 기대여 기분 좋은 대화가 이어졌다. 박명희 선생의 노래에 맞추어 합창을 하고 계곡의 물소리 반주를 해주는 것 같았다.
주차장에 내려와 4시경 시내로 출발하여
즐거운 동화사 폭포골 산행을 마치니 모두 힐링이 된 산행이었다고 말한다. 다들 더욱 더 건승하시길 기원하였다.
우리 모드 다 같이 이영환 선생에게 오늘 폭포골 시 한수를 주문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