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역사]
외지부
조선 시대에도 있었던 '변호사'… 관직 못 나간 선비들이 몰래 소송 도왔대요
외지부
이한 작가·'조선, 시험지옥에 빠지다’ 저자 입력 2025.01.07. 00:32 조선일보
일러스트=김성규
조선 시대 때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옛날 평안도에 살았던 장화와 홍련 자매는 억울한 죽음을 당했지만 진실이 밝혀지지 못해 원혼이 됩니다. 그래서 원혼들은 바로 마을 원님을 찾아가 자기 죽음의 비밀을 밝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원님이 너무 놀란 나머지 죽은 탓에 생각만큼 잘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참 신기한 이야기입니다. 이웃 나라 중국과 일본의 원혼들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해코지하지만 조선의 원혼들은 관청으로 찾아가서 소원 수리를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원혼들조차 민원을 넣는 나라. 사실 조선은 고소와 민원의 나라였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그 사람이 양반이든 평민이든 노비든 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억울한 일이 생기면 관청에 신고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소지라고 했습니다.
소지를 하는 이유는 다양했습니다. 상대방이 내 돈을 안 갚는다든지, 누가 나를 때렸다든지, 심지어 세금을 내기 힘들 때도 그랬고요. 조선 시대 소송의 40%가량은 토지나 노비와 관련된 재산 소송이었습니다. 소지는 민원과 고소, 청원 등 여러 가지가 합쳐진 성격이었습니다. 이런 소지는 한문으로 써서 올리는 게 보통이었지만, 한글로 써서 올릴 수도 있었고, 글조차 모르는 사람이라면 말을 해서 하소연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긴 해도 평범한 백성이 관청을 찾아가는 게 부담이 되지 않을 리 없습니다. 아무리 내 사연이 억울하다 하더라도 법적인 절차에 들어가려면 나름의 과정이 있고 형식이 있기 마련입니다. 일상에 바쁜 보통 사람들이 알 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백성들을 돕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들을 변호사라고 하지만 그 당시에는 ‘외지부(外知部)’라고 했습니다.
외지부는 몰래 소장을 써 주거나 아니면 옆에서 조언을 해 주는 식으로 다른 사람들의 소원 수리를 도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민이나 여성들도 권력자들을 상대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재판에서 싸울 수 있었습니다. 외지부는 주로 글을 배웠으나 관직에 나가지 못한 사람들이 했습니다.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장수생, 마을 훈장, 그리고 무과에 급제했지만 관직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죠. 한마디로 글은 아는데 벌이가 마땅치 않으니 남의 소송을 도운 것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사건에 관련된 사람만이 소원 및 재판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에, ‘외부 인물’인 외지부는 불법이었습니다. 외지부 활동이 적발되면 변방에 유배를 보낼 정도로 엄중히 다뤘기 때문에 이들이 받은 보수 등에 대해선 분명한 기록이 남아있진 않습니다.
끝으로 가장 중요했던 것은 현명한 관리와 재판관이었습니다. 장화 홍련 전설에선 엄정한 수사로 마침내 장화와 홍련의 누명이 벗겨지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당시 현실을 반영한 작품인데, 그만큼 조선 사람들이 법과 질서를 신뢰했고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를 바랐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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