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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이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시 2:1-12)
미국의 전설적인 거부 록펠러의 일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한 번은 록펠러가 미국 시카고의 큰 호텔에 투숙하게 됐습니다. 프론트로 가서 직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호텔에서 제일 싼 방을 하나주십시오'
직원이 록펠러라는 것을 알아보고는 물었습니다. '손님 같은 분이 어째서 제일 싼 방을 찾으십니까?' 록펠러가 '싼 방이 좋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직원이 또 물었습니다. '손님의 아드님도 가끔 이 호텔에 오는데, 그때마다 제일 좋은 방을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손님께서는 어째서 제일 싼 방을 찾으십니까?'
그러자 록펠러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에게는 나 같은 부자 아버지가 있지만, 내게는 그러한 아버지가 없거든요' 이 짧은 이야기는 생각할 긴 여운을 남깁니다. 진정 복이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해 줍니다.
진정 복이 있는 사람이란 무엇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기보다는 무엇인가 믿을 대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진정 복이 있는 사람은 대단한 무엇을 이룬 사람이라기보다는 의지할 누군가가 있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할/
여러분! 여러분은 진정 복이 있는 사람들이십니까? ◀제목 소개!▶
오늘 본문 시2편은 시1편과 함께 '복이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시1:1절에 '복 있는 사람은...'으로 시작합니다. 이에 비해 시2편은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다'로 끝이 납니다. 그러니까 시1편은 '복이 있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라는 형식으로 되어있고, 이에 비해 시2편은 '이런, 이런 사람은 다 복이 있다'라는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형식은 달라도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할/
그렇습니다. 시1편과 시2편은 '누가 복이 있는 사람인가?'에 대해 같은 관점에서 답을 내놓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 '복이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관점입니다. 진정 복이 있는 사람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복되다고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아멘!/
사실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복이라 일컫는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과 같은 것을 누리는 사람들이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복은 일시적입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즉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말처럼, 잠시 복된 것처럼 보이다가 어느새 시들어버리고 마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더 결정적인 것은 그런 복은 다 이 땅에 속한 것들이라는 점입니다. 저 하늘과는 무관하고, 영원과는 이어져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진정 복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복되다고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때문에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복을 지켜주시기 때문에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나아가 그 복이 저 하늘과 이어지기 때문에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할/
①먼저 복이 없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4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하나님께서 저 하늘에서 그들을 비웃으신다는 것입니다. 2절에서 그들은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저 하늘에서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을 비웃으신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저들은 복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비웃으시는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은 누구입니까? 우선 군왕들이란 모든 것을 다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고대 왕들은 신의 아들 행세를 하면서 권력, 재물, 땅, 심지어 백성들까지도 자기의 손에 넣었던 사람들입니다. 다음으로 관원들이란 군왕에 버금가는 자리에 오른 사람들입니다. 한 마디로 출세한 사람들이요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결국 이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은 당시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복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부러워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도 복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자부하던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들을 비웃으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저들이 복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복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보셨다는 것입니다. /할/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왜 저들을 왜 비웃으셨고, 저들을 복이 없다고 하셨을까요?
⑴저들이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동자로 하늘 보좌에서 이 땅을 내려다보고 계시는데, 저들은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는데, 그들은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시고 가소롭게 여기시며 비웃으시는 것입니다. /할/
▶철저한 무신론자라고 소문난 지휘관이 있었습니다. 그는 한 병사의 독실한 신앙이 항상 못마땅하게 여겨져서 핍박을 했습니다. 어느 날, 전쟁이 터져서 함께 전선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진지로 포탄이 빗발치듯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 지휘관이 바위 밑에 머리를 처박고 '오 하나님! 오 하나님'하고 외쳤습니다. 상황이 끝나고 핍박받던 병사가 그 지휘관에게 물었습니다. '무신론자신 줄 알았는데요!' 그러자 지휘관이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이런 순진한 친구 보게 이런 참호 속에서는 무신론자란 없는 거야!'
그렇습니다. 사실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인생의 위기를 만나게 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죽음이 코앞에 다가서면 그 신념이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진정 복이 있는 사람은 평상시에도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그런 사람입니다. 건강할 때도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 성공하고 출세했을 때도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사람, 돈을 많이 벌어 큰 부자가 됐을 때도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아멘!/
⑵헛된 일을 꾸미기 때문입니다.
1절을 보면, '어찌하여 이방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분노하다'라는 말은 '떼로 모여서 소동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의기투합하여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며 시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헛된 일을 꾸민다'는 말은 은밀하게 밀실에서 음모를 꾸미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정치권에서 사용되는 '밀실야합'이라는 말처럼 모여서 조용히 음모를 꾸미는 것을 말합니다.
창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이 떠오릅니다. 이 땅의 백성들이 노아 홍수 후에 살만해 지니까, 분노하고 헛된 일을 꾸미기 시작합니다. 문화가 발달하고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바벨탑을 쌓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과 맞서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소롭게 여기셨고, 그 바벨탑을 다 허무셨고, 저들을 흩으셨습니다. /할/
오늘 인간의 현대문명사회는 풍요로운 물질문명을 이룩했습니다. 그리고 최첨단 과학기술로 무장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1세기의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무신론을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헛된 일들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걸 보시고 하나님께서 가소롭게 여기실 것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바벨탑처럼 무너질 날이 올것입니다.
그래서 진정 복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 갖가지 재능, 그리고 남다른 능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소중한 도구로 쓰임 받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②복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인가?
여기서 우리는 본문 10절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 지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하나님의 비웃음거리가 되었던 자들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나아가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교훈의 내용은 11-12절에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의 아들에게 입맞춤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께 비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여호와께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이 다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여호와께 피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복이 있는 사람은 이 세 가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할/
⑴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바르게 섬기는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하나님처럼 섬기고 바르게 경외하는 것입니다. /할/ 여기 경외란 말은 공경할 경(敬)과 두려워할 외(畏)로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경외란 '두려움으로 공경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여호와를 두려움으로 공경하는 사람, 그가 복이 있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인간이 타락한 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면서, 인간은 하나님과 등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등을 지면서, 그 눈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으니, 점점 그 마음에 하나님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사라지니, 그 삶이 점점 악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바울사도는 이런 사실을 롬1:28절에서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하나님 경외를 잃어버리니, 그 삶에서 복이 다 사라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시50:22절에서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눅12:5절에서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할/
앞을 보지 못하시는 김선태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이분은 정상적인 목사들보다 더 귀하고 큰 일을 많이 하십니다. 이 분이 늘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뵈는 게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뵈는 게 없어서 일을 저지르며 살지요'
그런데 사실 이 목사님은 육안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시지만, 늘 믿음의 눈을 열고 하나님을 보며 살고 계십니다. 그래서 놀라운 일을 하실 뿐 아닐라 진정 복된 사람으로 살고 계십니다. /할/ 그렇습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늘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경외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그런 삶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⑵여호와를 떨며 즐거워하는 사람입니다.
여호와를 떨며 즐거워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떤다는 것은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려움은 공포로 끝이 나는 두려움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끝이 나는 두려움이라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때 두려움이 밀려듭니다. 그러나 그 놀라우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 마음속에는 거룩한 기쁨이 솟아나게 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듯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우리는 거룩한 기쁨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할/
▶은혜 받은 한 성도의 간증을 읽었습니다. 그가 예수 믿기 전에 직장 생활하면서 제일 기다려지던 시간이 퇴근 후 회식하는 자리였답니다. 1차로 식사하고 난 뒤에 2차를 간답니다. 2차가 뭐냐고 물었더니 한 잔하면서 춤추는 데랍니다. 그리고 나면 또 3차를 간답니다. 3차가 뭐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제 상상에 맡긴 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때가 부끄럽고 그 일들이 더 이상 즐겁지도 않고 기다려지지도 않는답니다. 그래서 '어떻게 그 자리를 피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즐거움과 기쁨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 기쁨이 주안에 있는 기쁨입니다. /할/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으로 인해 즐거워하기보다는 여호와로 인해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 앞에 설 때 여호와께서 주시는 기쁨을 맛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께 예배드림이 더 할 수 없는 기쁨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함이 더할 수 없는 기쁨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를 위해 헌신함이 더 할 수 없는 기쁨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그 마음에 소원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시37: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할/ 이렇게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 그가 진정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아멘!/
⑶그의 아들에게 거룩한 입맞춤이 있어야 합니다(12).
여기서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는 말씀은 친밀한 관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깊은 교제를 나누기 원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다윗의 강점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입니다. 다윗은 누구보다도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렸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황에 따라 하나님께 얼굴을 돌리기도 하고 친숙한척하기도 합니다.
골리앗 앞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하나님을 조롱할 때 모든 사람은 하나님과 친숙하지 않은 척했습니다. 그때 다윗은 거룩한 분노가 일어났는데 그 근원은 주님과 가졌던 친밀함이었습니다. 누가 주님을 위해서 살아갑니까? 직분 가지고는 어림도 없습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맺고 주님에 대해 가장 뜨거운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멘!/
▶'그의 아들에게 입 맞추라'는 말은 깊은 예배 가운데로 초대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형식에 매인 종교적 의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입맞춤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가장 친밀한 행위입니다. 기도는 나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 하나가 되는 시간입니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입맞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나님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씀을 받는 행위가 바로 입맞춤입니다. /믿/아멘!/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놓치면 신앙이 아주 위험해 집니다. 부부간에도 친밀감이 사라지면 외도하기 시작합니다. 입맞춤은 영혼의 접촉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영혼이 터치되고 주님과 깊은 사랑의 교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배를 소홀히 하면 은혜가 떨어진 정도가 아니라 아주 위험한 상태가 됩니다. 기도하는 일이 하나의 의식이 되면 안 됩니다.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우리의 호흡입니다.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기도해야 하지만 기도 자체가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계시록을 보면 마지막 날의 클라이맥스는 천상의 예배입니다. /할/
▶또 중요한 것은 입 맞춘다라는 말은 하나님을 첫 자리에 둔다는 말입니다. 아가서를 보면 솔로몬과 술라미의 사랑이야기가 나오는데 두 사람 사이를 깨뜨릴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입맞춤이라는 말은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것도 끼여들 수 없다는 말입니다. 서로가 최상, 최고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입맞춤입니다.
항상 주님을 첫 자리에 두어야 합니다. 첫 자리에 두어야 할 것은 첫 자리에 두어야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돌아갑니다. 마22:37-38절을 보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이렇게 사랑할 때, 우리 안에 진정한 기쁨과 만족과 행복이 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대충 사랑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즐거움을 맛볼 수 없습니다.
아가서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비유한 말씀입니다. 아가서 1:2절을 보면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포도주는 기쁨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기쁨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기쁨과 만족을 얻고자 하는 유혹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값싼 포도주로 마음을 즐겁게 하고자 노력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속하고 세상에 취해서 살아갑니다. 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좀 더 좋은 것을 누리면 만족할 것이라는 유혹에 빠져있습니다. 사람들은 너무나 많이 속으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좀 더 예뻐지면 행복할 것이다, 좀 더 유명해지면 행복할 것이다, 좀 더 성공하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다 속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보다 우리를 만족케 하고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세상의 쾌락에도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순간적으로만 달콤합니다. 죄로부터 오는 포도주는 한순간 짜릿하지만, 곧 후회하게 되고 허전해집니다. 남편을 5번이나 바꾼 사마리아 여인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영적인 깊은 경험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몰두할 때 경험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마음을 다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과 사랑하는 일에 실패한다면 그 순간부터 불순종하기 시작합니다. 세상이 불순종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른 그 어떤 것보다 우리와 입 맞추기를 원하십니다. ▶입맞춤 안에는 복종의 의미도 있습니다. 왕에게 전적으로 복종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반항하고 대적하는 문화의 한가운데서 하나님과 입 맞추는, 곧 하나님만을 예배하고 복종하는 진정한 한 예배 자를 찾고 계십니다. /아멘!/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전적으로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순종하며 사는 것이 결국은 우리에게 유익합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바로 주께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학자들은 시1편과 2편이 하나로 묶여있다고 말합니다. 1편은 복 있는 자로 시작하고, 2편의 마지막은 복으로 끝납니다. 1편은 말씀을 즐거워하는 자의 복, 2편은 말씀에 복종하는 자의 복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대한 기대치가 높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 사람들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왕 적인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다스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을 통치하고 다스리는 왕 적인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밟기만 하면 유업으로 열방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우리에게 하나님의 약속과 언약을 주셨습니다. 내 상황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중요합니다.
오늘 나를 둘러싼 불확실한 환경을 바라보지 마시고 '열방을 유업으로 주겠다,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확실한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반응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일들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꿈을 가지십시오.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여러분의 배경과 환경과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놀라운 유업을 허락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의 영이 온전하게 만나는 입맞춤의 경험이 영적 세계 안에 일어나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억지로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이 주님 앞에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할/
출처: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시편 2편
1. 열방의 반역(1-3)
열방이 분노 - 나라들이 음모를 꾸미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고 - 백성들이 헛된일을 꾸미는고
세상의 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세상 모든 것들이 반역을 일으키는데 나선다는 말이다.
①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자를 대적하며
하나님께 기름부은 자는 '이스라엘의 왕'을 의미하는 말로 이스라엘의 왕들은 '기름부음'을 받았다. 궁극적으로는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즉 세상의 모든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대적한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를 향한 열방의 반역은 그를 십자가에 죽이기까지 대적을 하였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 대한 반역을 의미한다.
②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나님의 통치에서 벗어나자는 말이다. 율법에서 벗어나자는 말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통치자이신데 이제 더 이상 그의 통치를 받지 않겠다는 말이다. 자기가 왕이 되어 자기를 다스리겠다는 교만을 말하고 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음성과 하나님이 주신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말이다.
세상은 하나님께 반역하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십자가에 못박고 더 이상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겠다고 하는 것이다.
혹시 우리가 그런 자리에 있지 않는지 돌아보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
2. 하늘의 왕(4-6)
① 이런 인간을 향한 하나님은 비웃으신다.
인간이 잘난것 같지만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우리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 자기 스스로 잘낫다고 교만한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비웃고 계시다. 우리는 이 땅에 교만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비웃음을 분명히 기억하고 날마다 겸손한 신앙인이 되야 한다.
예) 어리석은 부자
물질의 교만이 가득찼을 때 그의 생명을 하루 아침에 거두어 가셨다.
② 하나님은 그 대적하는 무리들에 대하여 당신의 왕을 시온에 세움으로 복종시키셨고,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을 복종케 하신다.
십자가에 못박혀 죽이신 예수 앞에 모든 무릎을 꿇게 하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만 구원을 받을 수 있으며, 그에게 심판의 자리가 주어졌다.
모든 교만한 자, 하나님께 대적하는 자도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세운 왕앞에 무릎을 꿇며, 그에게 심판을 받게 된다.
3. 하나님이 세운 왕(7-9)
이스라엘의 왕,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자녀
① 너는 내 아들이라 내가 너를 낳았도다.
② 내게 구하라 열방을 유업으로, 네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라
③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로다.
4. 훈계와 경고(10-12)
하나님의 세운 왕이 어떤 사람인가 깨달았다면 지혜롭게 행하라고 권면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온갖 지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먹고 살기 위하여 지혜를 쓰지만 참 지혜를 갖고 행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세운 왕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지혜롭게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깨달은대로 행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며 떨고 즐거워할지어다.
이것은 예배에 있어서 의인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으로 반역이 아니라 순종을, 교만이 아니라 두려움과 떨림을, 압제의 음울함이 아니라 환회와 충만의 삶을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살아가라.
②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 복종하라
③ 여호와를 의지하라 -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으라
이 땅에서 교만한 자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비웃으심을 말하며
오직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겸손할 것을 말하고 있다.
진정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권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