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련』(조용필 작사/작곡)은 1982년 발매된 「조용필」 4집
[ 못찾겠다 꾀꼬리 ]에 수록 된 곡입니다. 『비련』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오빠 부대'를 통칭하는 「조용필」의 '팬클럽 문화'가
형성된 것도 대체로 이 노래를 기점으로 봅니다.
"기도하는 ~꺄악~ "으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마치 ~꺄악~ 하는
팬들의 비명(悲鳴)이 이 노래의 일부로 들릴 정도입니다.
「조용필」...하면 보통 붙는 수식어가 가왕 입니다. 가왕... 歌王...
정말 아무에게 나 붙일 수 없는 수식어죠...
「조용필」이 한창 활동하던 시기는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 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물론 그런 것과 관계없이
「조용필」은 무려 19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했고 최근까지도 앨범을
발매했으며 콘서트를 통해 꾸준히 팬들과 호흡하고 있는 진정한
대중 가수죠...
「조용필」이 한창 활동하던 시기는 트로트(Trot)가 주류였던 시기
였습니다. 하지만 「조용필」은 대세(大勢)였던 트로트를 아예 외면
하진 않긴 했어도 정말 뽕끼 가득한 트로트 보다는 트로트와 타 장르를
결합시킨 음악들을 많이 했었습니다. 말 그대로 가요를 했던 가수였죠...
그 중에서도 4집은 Rock 스러움을 살린 음반이었습니다. 타이틀 곡
이었던 "못 찾겠다 꾀꼬리"도 그랬습니다 만 이 곡 『비련』도 정말
Rock 스러움이 가득한 곡이었죠...다음은 이 곡 『비련』에 얽힌
실화(實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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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이 과거 4집 발매 후 한창 바쁠 때 시골의 어느 요양 병원
원장에게 전화가 왔다. 병원 원장은 자신의 병원에 14세의 지체 장애
여자 아이가 「조용필」 4집에 수록된 『비련』을 듣더니 눈물을 흘렸
다고 했다. 입원 8년 만에 처음 감정을 보인 것이다.
이어 병원 원장은 이 소녀의 보호자 측에서 돈은 원하는 만큼 줄테니
「조용필」이 직접 이 소녀에게 『비련』을 불러줄 수 없냐 며 와서
얼굴이라도 보게 해줄 수 없냐고 부탁을 했다고 전했다.
메니저 최동규씨는 "당시「조용필」이 캬바레에서 한 곡 부르면 지금
돈으로 3,000만원~ 4,000만원 정도를 받았다" 며
그런데 「조용필」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피던 담배를 바로 툭 끄더니
병원으로 출발하자고 했다.
그 날 행사가 4개였는데 모두 취소 하고 위약금 물어주고 시골 병원
으로 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 했다. 병원 사람들이 놀란 것은 당연
했다. 「조용필」은 병원에 가자 마자 사연 속의 소녀를 찾았다.
소녀는 아무 표정도 없이 멍하니 있었다. 기적은 이 때부터 시작됐다.
「조용필」이 소녀의 손을 잡고 『비련』을 부르자 소녀가 펑펑 운 것이다.
이 소녀의 부모도 울었다. 「조용필」이 여자애를 안아주고 사인 CD를
주고서 차에 타는데 여자애 엄마가 "돈 어디로 보내면 되냐고, 얼마냐"고
물었다. 그러자 「조용필」은 "따님 눈물이 제 평생 벌었던 돈보다 더
비쌉니다" 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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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사랑의 손길로
떨리는 그대를 안고
포옹하는 가슴과 가슴이 전하는
사랑의 손길
돌고 도는 계절의 바람 속에서
이별하는 시련의 돌을 던지네
아 눈물은 두 뺨에 흐르고
그대의 입술을 깨무네
용서하오 밀리는 파도를
물새에게 물어보리라
물어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