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죽헌
율곡 이이 상
1.율곡 이이가 기생 유지에게 써준 시
아! 황해도에 사람 하나 있어, 맑은 기운 모아 선녀자질 타고났네.
마음이며 자태 곱기도 해라, 얼굴이랑 말소리도 맑구나
새벽하늘 이슬같이 맑은 것이, 어쩌다 길가에 버려졌던가
봄도 한창 청춘의 꽃 피어날 때, 황금집에서 살지 못하는가 슬프다 그 아름다움이여
처음 만났을 땐 아직 안 피어, 정만 맥맥이 서로 통했고
중매 서는 이 가고 없어, 먼 계획 어긋나 허공에 떨어졌네.
좋은 기약 다 놓지고서, 허리띠 풀 날은 언제일꼬
황혼에 와서야 만나니, 모습은 옛날 그대로구나.
지난세월 그 얼마였던가, 슬프다 인생의 무성한 푸르름이여
나는 몸이 늙어 여색을 멀리 해야겠네, 세상 욕정 대해도 마음은 식은 재 같으니
저 곱디곱고 어여쁜 여인, 사랑의 눈길 돌리며 나를 못있네
황주 땅에 수레 달릴 때, 길은 굽이굽이 멀고 더디더구나.
절간에서 수레 멈추고, 강둑에서 말을 먹일 때
어찌 알았으랴 어여쁜이 멀리까지 따라와. 밤중에 내 방문 두드릴 줄을,
아득한 들판에 달은 어둡고, 빈 숲에는 범 우는 소리 들리네
나를 뒤 따라 온 뜻 무엇인가 물으니, 예전의 어진 말씀 그리워서라 하네.
문을 닫는 건 인정 없는 일, 같이 눕는건 옳지 않은 일
가로막힌 병풍이야 걷어 치워도, 자리도 달리 이불도 달리
사랑의 정 다 못하고 일이 어긋나, 촛불 밝히고 밤을 세우네.
하느님이야 어찌 속이겠는가, 깊숙한 방 속까지 내려 보시니,
혼인할 좋은 기약 잃어버렸다고, 차마 몰래 하는 짓이야 하겠는가
동창이 밝도록 잠 못 이루다, 갈라서자니 가슴엔 한만 가득
하늘엔 바람불고 바다엔 물결치는데, 노래 한 곡조 슬프기만 하구나
아! 본래 마음 밝고도 깨끗해, 가을 강물위의 차가운 달이로구나
마음에 선악 싸움 구름같이 일 때, 그중에도 더러운 것 색욕이거니
선비의 탐욕이야 진실로 그른 것이고, 계집의 탐욕이야 말해 무엇하나.
마음을 거두어 근원을 맑히고, 밝은 근본으로 돌아가리라
내생이 있단 말 빈말이 아니라면, 죽어 저 부용성(저승의 신선나라)에서 너를 만나리.
2.짧은 시 3수
天姿綽約一仙娥(천자작약일선아) 예쁘게도 태어났네 선녀로구나
十載相知意態多(십재상지의태다) 10년을 서로 알아 익숙한 모습
不是吾兒腸木石(불시오아장목석) 이 몸인들 목석 같기야 하겠나마는
只綠衰病謝芬華(지록쇠병사분화) 다만 병들고 늙었기로 사절한다네
含悽遠送似情人(함처원송사정인) 서로 만나 얼굴이나 친햇을 따름이네
更作尹那從爾念(갱작윤나종이염) 다시 태어나면 네 뜻대로 따라 가련만
病夫心事已灰塵(병부심사이회진) 병든 이라 세상 정욕은 이미 재 같구나
每惜天香葉路傍(매석천향엽로방) 길가에 버린 꽃 아깝고 말고
雲英何日遇裵航(운영하일우배항) 운영처럼 배항을 언제 만날까?
瓊漿玉杵非吾事( 경장옥저비오사) 둘이 같이 신선이 될 수 없는 일이라
臨別還慙贈短章(임별환참증단장) 떠나며 시나 써주니 미안하구나!
癸未九秋念八日 栗谷病夫書于 栗串江村
(1583년 9월 28일 병든 늙은이 율곡이 밤고지 강마을에서 쓰다)
율곡 이이는 그 동안에 일어난 유지와의 일들을 시로써 상세하게 적고 있으나
마지막에 글을 보는 이들이 오해할 것으로 염려해 두사람의 관계는
순수하고 깨끗하며 "예"로써 끝난 관계였음을 강조한다.
이이가 별세한 후 유지는 이이의 친필 유지사를 첩(帖)으로 만들었다.
첫댓글 문집에는 발견되지 않으나
편지 두루말이가 이화여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걸로 알고 있읍니다
현석 박세채가 율곡문집을 편찬하고 있을때 치암 이지렴이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이
"율곡의 성대한 덕에 누가 된다고 할수는 없지만 후세에 모범이 되는 일도 아니므로 삭제하는것이 옳다"는
서신을 보내고 박세채는 그 요구에 따라 삭제했는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 전후에 여러번 편집시에도
같은 맥락에서 포함하지 않은것으로 보고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