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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부활과 영의 부활.
(고린도전서 15 장 < 2 >)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으로 세상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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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가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다는 선언은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의 모형의 실체라는 확증의 선언입니다.
안식후 첫날 즉, 유월절로부터 이틀 뒤인
지금 요일로 치면 주일은 초실절이 되는 것입니다.
이 초실절은 큰 절기로는 무교절 7일 가운데 포함되어 있습니다.
초실절이 되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보리를 거두는데
그 첫 열매를 거두어 이삭 한 단을 제사장이 가져갑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이삭 한 단을 흔들어서 제사를 드립니다.
이 흔드는 제사를
가리켜 한자로 흔들 요자를 써 요제(搖祭)
라고 말합니다.요제라고 하는 방식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첫 열매가 되셨다는 표현은 바로 구약의
초실절에 있습니다.초는 첫이라는 말이고 실은 열매실입니다.
구약의 초실(初實)에서 첫열매라고 하는 용어가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교절 절기 가운데
안식 후 첫날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하는 초실절인 것입니다.
초실절이 되면 제사장은 첫열매를
하나님앞에 흔들어 보임으로 이것이 첫열매가 맞다고
하는 것입니다. 첫열매의 증거를 보여드린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심으로
부활하신 몸을 하나님께 보여드렸을 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 열두 번 이상이나 나타나서 증거로 보여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의
첫 열매를 흔든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거를 제자들과 하나님께 보이는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다는 선언은 시간이 지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 모두 육신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보증입니다.
첫 열매를 제사장이 흔드는 것은
첫열매를 주신데 대한 감사의 의미로 첫열매를
흔들기도 하지만 저 밭에는 곡식이 잔뜩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 첫열매를 보시고 “하나님 저 밭에 있는
곡식을 무사히 거둘수 있도록 우리에게 복을 더해 주시고
이 추수가 끝까지 잘 될 것을 보증하여 주시옵소서”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있는 우리도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는 영원히 죽지 않는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힘들고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는 영원하고 찬란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받는 고난은 장차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요 성도의 소망이요 인류의 유일한 소망인 것입니다.
1. 날마다 죽는 삶.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15 :30~31-
'나는 날마다
죽노라'는 말씀은 바울의 전도
생활이 고난과 핍박과 죽음의 위협이 가득한 생활이었음을 증거합니다.
그는 날마다 죽을 위협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이런 위험한 삶을
피하지 않는 것은 부활의 확실한 소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죽음을 초월할 자가 누구인가?
부활 소망을 가진 자들은 죽음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바울에게도 인간적인 생각, 정욕, 안일하게 살고싶은 생각,
향락적인 생각도 있습니다.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날마다 죽였습니다.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고린도전서 15 :32)
'맹수들'은 바울을
죽이려는 무리들을 가리킨 듯합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한다면 누가 죽음의 위협을 감수하겠습니까?
쾌락주의자들의 좌우명은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일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도,
하나님의 심판도 부정하는 자들이며, 부활 소망이 없는 자들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도 다 쾌락주의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과 내세가 있음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현세를 근신하며 조심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려고 애를 씁니다.
2. 깨어 의를 행하는 삶.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고린도전서 15 :33~34)
악한 교제, 악한 대화란 불신앙적이고
소망 없고 하나님도 없는 교제와 대화를 가리킵니다.
그런 교제와 대화는 의를 행치 않고 죄를 허용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악한 교제와 대화는 선한 행실을 더럽힙니다.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과 교제하고 대화하면 악한 영향을 받기 쉽습니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는다"
성경의 요지는,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을 받아 선하고 의롭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그런 삶을 살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고린도전서 15 :35-36)
죽은 자의
부활을 의심하는 자들은
사람이 죽으면 몸이 썩어버리는데 어떻게 다시 살 것인가라고 질문합니다.
죽은 성도의
부활의 모습은 어떠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영감 속에서 답변합니다.
우선, 바울은 사람이 뿌리는 씨가 썩음으로써
싹이 나는 이치를 언급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도 죽지만 그것을
통해 영원한 생명, 곧 부활의 생명의 싹이 나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죽은 후의 부활은
자연계에서도 추론할 수 있는, 결코 이상하지 않은 이치라는 말씀입니다.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저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5 :37-38)
뿐만 아니라, 사람이 씨를 뿌릴 때 곡식의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고 그것의 알갱이
곧 낟알을 뿌립니다. 그것은 곡식의 몸 곧 성장한 곡식을 가리킵니다.
즉 사람이 쌀 농사나
밀 농사를 할 때 벼나 참밀을
직접 심는 것이 아니고 단지 그것들의 낟알 곧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농부는 곡식의 낟알을 뿌리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기쁘신 뜻대로
그것에게 각각의 형체 혹은 몸체를 주십니다. 다시 말해, 그는 벼와
밀의 낟알이 싹이 나고 자라 각각 벼와 밀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곡식의 낟알을 뿌리고
하나님은 곡식이 나게 하십니다.
또한 심겨진 벼와 밀의 낟알은 자라서 각각 벼와 밀의 형체를 가집니다.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고 띵에 속한 자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고린도전서 15 :39-40)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체를
지으실 때 흙으로 지으셨고 짐승들과 새들도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물고기들도 흙에서 지음 받았음을 암시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이나
짐승이나 새나 물고기의
육체가 다 흙에서 나왔지만, 그 육체들은 동일하지 않고 각각 다릅니다.
3. 부활의 모습.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고린도전서 15 :41-42)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늘에 있는 형체들 간에도 영광이
서로 다릅니다. 해의 영광과 달의 영광과 별들의 영광이 서로 다릅니다.
별들 간에도 영광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해와 달과 별들은 그 크기와 밝기에
있어서, 그리고 그것들이 인간들에게 주는 인상에 있어서 각각 다릅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다'는 말씀은 피조세계의
각 육체 혹은 형체가 다르며 그 영광이 다르듯이 사람도
부활 전 상태와 부활 후 상태가 다르며 그 영광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부활
전의 몸은 어떠하며
부활 후의 몸은 어떠한가를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부활 전의 몸은 썩을 몸이지만,
부활 후의 몸은 썩지 않을 몸입니다. 범죄 이후 사람을 포함하여 모든
피조물과 피조세계가 시들고 쇠하고 마침내 썩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마 이 세상에 썩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다 죄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죄씻음의 구원의 결과인
부활의 몸은 죄악성이 다 제거되었기 때문에 썩지않게 되는 것입니다.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고린도전서 15 :43-44)
부활 전의 몸은 욕된 몸이지만,
부활 후의 몸은 영광스러운 몸입니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지혜롭고
거룩하고 의로왔으나, 범죄함으로 본래의 의와 영광을 상실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결과인 부활은 본래의 영광을 회복하게 됩니다.
부활 전의 몸은 약한
몸이지만, 부활 후의 몸은 강한 몸입니다.
세상을 살아 갈수록 인간의 몸이 참으로 약하다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작은 부품 하나만 이상이
생겨도 멈추는 정교한 기계와 같이, 인간의
몸은 어떤 기관 하나에만 이상이 생겨도 몸 전체에 해를 끼칩니다.
그러나 더 이상 병과 아픔과 고통이 없는 완벽한 몸이 될 것입니다.
부활 전의 몸은 육의 몸이지만,
부활 후의 몸은 신령한 몸입니다.
성령께서 만드시고 성령께서 그 안에 계시는 영적인 몸'이 될 것입니다.
4. 살려주는 영.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고린도전서 15 :45-46)
전에 육의 사람 곧 우리는 아담의
형상을 가졌었습니다. 아담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입니다. 곧 한계적이고 욕된 육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전혀 새로운 몸으로
다시 탄생할 수 있는 것은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는 첫째 아담과 달리 살려 주는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은 죄로 죽었던 우리 영혼을
살리고 또 우리 육체도 새로운 부활 형체로 다시 살아나게 하십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린도전서 15 :47-49)
예수님은
살려주는 영이십니다. 예수님은
신령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가졌습니다.
살려 주는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 곧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썩지 않고 강하고 영광스러운 몸을 가졌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고린도전서 15 :50)
인간이 죽으면 살과
뼈는 썩어져 없어집니다.
혈과 육은 흙에 속한 자의 형상 곧 현재의 몸을 가리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부활의 몸을 덧입어야 합니다. 바울은 다시 한번
우리가 하늘에서 살기에 합당한 부활 형체로 변화될 것을 증거합니다.
5. 우리의 변화.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고린도전서 15 :51-52)
그 비밀은 바로
예수님의 재림을 알리는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날 때 우리가 다 홀연히, 변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주의 재림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끝날 때
죽은 성도의 부활과 살아 있는 성도의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것은 ‘순식간에 홀연히’ 일어날 것입니다.
성도들의 부활과 변화는 순식간에, 눈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팔소리가 날 때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6. 사망에서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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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고린도전서 15 :53-54)
썩을 것은 썩지 아니할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들어갈 모든
성도는 죽은 자나 산 자나 간에 주의 재림시 다 변화를 받을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상 사망처럼 강력한
승리자가 없었지만, 그때가 되면 그것이 패배하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망보다 더 강한 것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부활의 생명입니다. 성도의 부활과 변화는
사망에 대한 영원한 승리이며 세상으로부터 사망의 영원한 추방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린도전서 15 :55-57)
인류의 6천년 역사는 사망과 무덤이 지배해왔습니다.
모든 사람은 죽었고 무덤에 묻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시, 곧
죽은 성도가 부활하고 산 자들이 변화될 그때에 그 기록이 깨질 것입니다.
사망은 더 이상 인간을 쏘지 못하고
무덤은 더 이상 사람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의 최종적 원수인 사망에 대한 부활과 영생의 개가(凱歌)입니다.
사망이 쏘는 권세를 가지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죄가 없다면
사망이 힘을 쓰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하였고
온 세상이 죄로 가득함으로 사망이 또한 온 세상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죄가 힘을 가지는 것은 율법 때문입니다.
율법이 없다면 죄는 죄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고 정죄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 때문에 죄는 죄로 드러나고 정죄됩니다.
율법으로 드러난 죄로 인하여 모든 인류가
사망 아래 있지만,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승리 곧 사망에 대한 승리를 감사했습니다.
이 승리가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일입니다.
구원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에게 주신
죄씻음과 의롭다 하심이며, 그 결과는 부활과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린도전서 15 :58)
사도 바울은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견고하며 흔들리지 않도록 권면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시편125 :1-)
비록 세상의
분주한 삶 속에서도 주의
일을 위하여 힘쓰는 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요 가치 있는 삶입니다.
우리는 주의 일에 참여하되 항상 풍성히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일을 위해
항상 기도하고 시간과 몸과 물질과 재능을 풍성히 드려야 하겠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는 비록 아직 부활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죄 씻음과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입었으므로 마지막 때에
반드시 부활할 것을 확신하며 남은 생애를 살 수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고 흔들림없이 주님의 일에 더욱
열심을 다하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24. 9. 15.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