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시대의 근친혼
고려는 삼국 중 어느 나라의 풍습을 가장 많이 닮았을까요? 국호는 고구려를 계승했다지만
고려의 풍습은 대부분 신라의 것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네요. 때문에 고려 풍습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신라 풍습부터 알고갑시다.
먼저 신라 왕들의 가계도에서 근친혼의 일부.
지소부인은 삼촌인 입종갈문왕과 결혼을 하고
동륜태자는 고모인 만호부인과 결혼을 했네요
지금으로서는 황당한 일이지만 신라에서는 친 남매 간의 결혼이 아니라면 모두와 결혼할 수 있었다네요
그게 신라의 결혼 풍습이며
고스란히 고려시대의 결혼 풍습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5대왕 경종은 사촌 여동생 두 자매와 결혼을 했구요
8대왕 현종은 태조 왕건의 손녀가 낳은 손자라는 희안한 가계도입니다
현종의 현재의 어머니 헌정왕후는 왕건의 손녀이고
현종의 아버지 안종은 왕건의 아들이었으니
현종은 곧 태조 왕건의 손자이라는 거지요.
■근데 이 황당한 가계도를 이룬 근친혼의 목적과 이유, 그것이 궁금해진다?
신라는 매우 폐쇄적이고 차별적인 나라였기에 당시 신라 유학생들도 신라의 골품제가 나라를 좀 먹는다고 개탄하고 있었대요. 차별이 심해서 경주 출신이 아니면 제대로 사람대접 받기 어려웠대요ᆢ
이건 삼국을 통일한 뒤에도 고귀한? 신라 출신의 군인들은 백제,고구려 출신의 군인들과 섞여서 지내기를 꺼렸대요.
신분 차별도 무척이나 심해 골품에 따라 사는 집, 쓰는 도구,입는 옷까지 세세한 규제가 있었던 나라가 신라였대요.상황이 그러했기에 지배층들의 특권의식은 상당했고 고귀한 계급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감히 아랫것들과 피를 섞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었대요
만약, 골품이 다른 남녀가 결혼을 하면
그 자식은 부모 중 더 낮은 골품을 따라야 했기에
계급 내 혼인이 불가피하게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계급 내 인구가 적었던 왕실이나 진골 귀족들 간에 근친혼이 성행했다고 해요
물론 고구려, 백제에 근친혼이 아주 없었다는 것은 아니라 하지만 신라의 근친혼은 폐쇄성과 차별정책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고려시대엔 사회적으로 페쇄적이거나 차별적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이민족 포섭 등에 있어서 개방적인 모습이 강했는데 혼인에 있어서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하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어요
관혼상제 풍습이라는 게 하루 아침에 그리 쉽게 변하는 건 아니지만 고려왕실의 근친혼은 엄청났습니다.고려가 몽골의 지배를 받기 전까지
고려 왕실의 왕자, 공주들이 왕王씨가 아닌 사람과 결혼한 경우는 최씨 무신정권 때 딱 한번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예외적인 결혼조차도 최씨 정권이 무너지자,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유일한 이성혼이 될 뻔한 사건도 취소가 되고 말았다네요. 즉 100%근친혼만을 했던 게 고려의 왕실이었다네요.
"대체 이유가 뭘까?"
신라시대엔 권력의 누수를 막기 위해서였다면
고려시대에는 그 이유에 왕족의 재산지키기라는 목적이 더 추가되었습니다.
고려시대는 아들, 딸 모두에게 균분 상속하는 시대였기에 공주가 이성혼을 하게 되면 궁중의 재산이 자꾸 나눠지는 결과를 초래했기에 공주들의 경우도 근친혼을 시키게 된 것이라해요
하지만 고려시대에는 근친혼 폐해를 잘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근친혼을 하게되면 여러가지 불행
때문에 고려시대에는 동성 간 혹은 가까운 친인척. 간의 혼인을 금지시키려는 시도가 계속 있어왔다고 해요.
고려의 최고 성군으로 추앙받는 11대 문종은 사촌 간의 혼인에서 출생한 자는 관리에 등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고령을 내리기도 했다네요(1058년)
문종 본인은, 신하였던 이자연의 세 딸 모두를 각각 부인으로 두고있었네요. 근친혼은 아니긴 하지만
이것 역시 괴이하긴 마찬가지?
그런가 하면 문종의 둘째 아들 13대 선종의 경우는 1085년에 동부이모(同父異母)의 자녀간 혼인을 금지하여 동부이모 자녀가 결혼하여 낳은 자식에
대해 관리등용 금고령을 내렸다고 해요
"이복남매 간 결혼도 안됨!"
동부이모의 자식이란 배 다른 이복남매를 말하는 것으로 즉 그 남매끼리도 혼인 금지시킨 말입니다
선종이 유난히 동부이모를 강조한 이유는 본인 스스로 동부이모를 둘씩이나 두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네요
하지만 이러한 근친혼 규제는 오직 형제나 사촌 간의 경우에만 해당됐던 것 같아요. 왕의 부인이 이모 두명인 이 경우는 문종의 증손자인 17대 인종의 경우라 합니다.
한편 고려시대를 통틀어 가장 근친혼을 막아보고자 노력했던 왕이 15대 숙종이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