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사(이억기)가 오지 않으므로 홀로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새벽에 출항하여 곧장 노량에 이르니, 경상우수사 원균(원균)은 미리 약속한 곳에 와서 만나 그와 함께 상의했다. 왜적이 머물러 있는 곳을 물으니, “왜적들은 지금 사천선창에 있 다”고 한다. 바로 거기로 가보았더니 왜놈들은 벌써 뭍으로 올 라 가서 산 위에 진들 치고 배는 그 산 아래에 줄지어 매어 놓고 항전하는 태세가 재빨리 튼튼해졌다. 나는 장수들을 독려하 여 일제히 달려 들며 화살을 비 퍼붓듯이 쏘고, 각종 총포들을 우레 같이 쏘아대니, 적들이 무서워서 물러나는데, 화살을 맞은 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고, 왜적의 머리를 벤 것만도 많지만, 이 싸움에 군관 나대용(나대용)이 탄환에 맞았고, 나도 왼쪽 어깨 위에 탄환을 맞아 등을 관통하였으나, 중상은 아니었다. 활꾼과 격군중에서 탄환을 맞은 사람이 또한 많았다. 적선 열세 척을 불 태워버리고 물러나 머물렀다.
임진년 5월 (1592년 5월)
5월 1일 [양력 6월 10일]<경신>
수군이 모두 앞바다에 모였다. 이 날은 흐리되 비는 오지 않고 마파람만 세게 불었다. 진해루에 앉아서 방답첨사(이순신)·흥양 현감(배흥립)·녹도만호 정운(정운) 등을 불러 들이니, 모두 분격 하여 제 한 몸을 잊어버리는 모습이 실로 의사들이라 할만 하다.
5월 2일 [양력 6월 11일]<신유> 맑다.
겸 삼도순변사의 공문과 우수사의 공문이 도착했다. 송한련(송 한련)이 남해에서 돌아와서 하는 말이, “남해현령(기효근)·미조 항첨사(김승룡)·상주포·곡포·평산포만호(김축) 등이 하나같이 (왜적의) 소식을 듣고는 함부로 벌써 달아나 버렸고, 군기물 등도 흩어 없어져 남은 것이 거의 없다”고 한다. 놀랍고도 놀랄 일이다. 오정 때에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진을 치고, 여러 장수들과 약 속을 하니, 모두 기꺼이 나가 싸울 뜻을 가졌으나, 낙안군수(신 호)만은 피하려는 뜻을 가진 것 같으니, 한탄스럽다. 그러나 군법이 있으니, 비록 물러나 피하려 한들 그게 될 법한 일인가. 저녁에 방답의 첩입선(첩입된 지역을 왕래·연락하는 배) 세 척 이 돌아와 앞바다에 정박했다. 비변사에서 세 어른의 명령이 내려왔다. 창평현령이 부임하였다는 공문을 와서 바쳤다. 저녁에 군호를 용호(용호)라 하고, 복병을 수산(수산)이라 하였다.
5월 3일 [양력 6월 12일]<임술> 가랑비가 아침내 내렸다.
경상우수사의 회답편지가 새벽에 왔다. 오후에 광양과 흥양현감 을 불러 함께 이야기하던 중 모두 분한 마음을 나타냈다. 전라 우수사가 수군을 끌고 와서 같이 약속하고서 방답의 판옥선이 첩입군을 싣고 오는 것을 우수사가 온다고 기뻐하였으나, 군관을 보내어 알아보았다. 그러니 그건 방답의 배였다. 실망하였다. 그러나 조금 뒤에 녹도만호가 보자고 하기에 불러들여 물었더니, 우수사는 오지 않고 왜적은 점점 서울 가까이 다가 가니 통분한 마음 이길 길 없거니와 만약 기회를 늦추다가는 후회해도 소용 없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곧 중위장(이순신)을 불러 내일 새벽에 떠날 것을 약속하고 장계를 고쳤다. 이 날 여도수군 황옥천(황옥천)이 왜적의 소리를 듣고 달아났다. 자기 집에서 잡아 와서 목을 베어 군중앞에 높이 매달았다.
5월 초4일 [양력 6월 13일]<계해> 맑다.
먼동이 틀 때에 출항했다. 곧바로 미조항(남해군 미조면 미조 리) 앞바다에 이르러 다시 약속했다. 우척후·우부장·중부장·후 부장 등은 오른편에서 개이도(여천군 화정면 개도)로 들어가서 찾아 치게하고 나머지 대장선들은 아울러평산포·곡포 ·상주포·미조항을 지나 갔다.(이 뒤로 28까지 빠짐)
5월 29일 [양력 7월 8일]<무자>
우수사(이억기)가 오지 않으므로 홀로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새벽에 출항하여 곧장 노량에 이르니, 경상우수사 원균(원균)은 미리 약속한 곳에 와서 만나 그와 함께 상의했다. 왜적이 머물러 있는 곳을 물으니, “왜적들은 지금 사천선창에 있 다”고 한다. 바로 거기로 가보았더니 왜놈들은 벌써 뭍으로 올 라 가서 산 위에 진들 치고 배는 그 산 아래에 줄지어 매어 놓고 항전하는 태세가 재빨리 튼튼해졌다. 나는 장수들을 독려하 여 일제히 달려 들며
화살을 비 퍼붓듯이 쏘고, 각종 총포들을 우레 같이 쏘아대니, 적들이 무서워서 물러나는데, 화살을 맞은 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고, 왜적의 머리를 벤 것만도 많지만, 이 싸움에 군관 나대용(나대용)이 탄환에 맞았고, 나도 왼쪽 어깨 위에 탄환을 맞아 등을 관통하였으나, 중상은 아니었다. 활꾼과 격군중에서 탄환을 맞은 사람이 또한 많았다. 적선 열세 척을 불 태워버리고 물러나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