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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고난과 축복
2025.03.23 / 창세기 32장 24~28절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창세기 32장 24~28절)
고난은 변장된 축복입니다. 우리가 지금 고난의 시기를 지나가고 있는데, 이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축복의 통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5장 3절, 4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고난 뒤에 다가올 영광스러운 미래를 바라보기를 바랍니다.
지금 한국이 고난의 시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고난의 시기에 이 혼돈스러운 현재의 모습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이 뒤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놀라운 축복의 미래를 바라봅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한마음 되어 어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더 이상 편 가르기를 해서 싸우고 물고 뜯지 말고 모두가 한마음 되어서 위대한 대한민국을 건설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축복 가운데 하나인데,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를 영적으로 성숙시키는 도구가 바로 고난의 과정이고 고난이 곧 축복입니다.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고난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 앞에 더 나아진 모습으로 나아가게 되고,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큰 은혜 가운데 머물러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깨어지는 고난의 밤을 통과한 후에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게 된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주님의 은혜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야곱이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소식이 들려옵니다. 형이 400명의 군사를 끌고 자기에게 오고 있다고 하는 그 말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놀라서 ‘20년 전에 내가 형이 받을 축복을 다 가로채서 그동안 형이 그 마음속에 미움과 분노를 품고 있다가 날 아마 죽이러 오는가 보다.’ 그래서 모든 가축과 가족을 다 보내고 밤에 홀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1. 밤에 홀로 남겨진 야곱
밤에 홀로 남겨진 야곱에 대해서 창세기 32장 21절로 23절은 설명합니다.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야곱이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그 20년 동안 자기 ‘장자의 축복’을 훔쳐 간 동생에 대한 미움과 증오심으로 가득했던 형이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그에게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야곱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얍복강 나루터에 머물면서 형의 마음을 좀 풀기 위하여서 먼저 많은 가축을 선물로 보내고, 그러고 나서 두 아내와 여종,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먼저 얍복 나루를 건너게 합니다.
창세기 32장 22절입니다.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다 보내놓고 나서 본인은 홀로 남았습니다. 그는 지나친 이기주의자였습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가족들 다 보내고 자기는 홀로 남아서 이렇게 망을 보고 어떻게 되나 상황을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이 이렇게 자기중심적으로 이기주의로 살아갑니다. 사회생활에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대부분이 자아가 강한 사람입니다. 늘 자기주장만 하고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갈등이 생기고 다툼이 생깁니다. 성격이 강할수록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고 난 다음 예수님을 닮아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이 고집 세고 자아가 강한 내가 깨어져야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저들에게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내가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내가 죽는 것으로부터 먼저 시작합니다. 내가 깨어지고 죽어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깨어집니까? 어떻게 우리가 죽을 수 있습니까? 날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우리는 늘 고백해야 합니다. “난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 “나는 날마다 죽노라” 라고 그는 고백했습니다. 그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죽은 사람도 살리고 가는 데마다 병자를 고치고 교회를 세우고,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13권을 쓰고 그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사람들 앞에 더 박수갈채를 받고 칭찬받을수록 하나님 앞에서 고백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이것이 은혜입니다.
고난의 밤을 통과할 때,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면 우리는 고난을 통과하고 나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아가 아주 강했던 이 야곱이 이 고난의 밤을 지나면서 깨어지기 시작합니다.
2. 하나님과 씨름한 야곱
그는 하나님께서 보낸 천사와 밤에 씨름하면서 깨어집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과 씨름한 야곱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32장 24절입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절망의 밤에 홀로 외롭게 남은 야곱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외롭게 홀로 남아 있을 때, 주님이 우리를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사랑의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사랑의 품에 안아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을 살다 보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 우리의 삶 가운데 계속 다가오는지 모릅니다. 지금 우리 한국이 경제적으로 너무나 어렵고 정치적으로 혼돈에 빠졌고, 외교적으로도 문제가 있고 총체적인 난국에 처해 있습니다. 영세 소상인들이 하루하루 살기가 힘들다고 말합니다. 절망의 바다에 혼자 던져진 것 같은 그러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우리 주님이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외로울 때 슬플 때, 고통당할 때, 말 못 할 고민과 아픔을 갖고 있을 때, 중한 질병으로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주님이 그 자리를 찾아오십니다. 주님이 홀로 남은 자를 만나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치료와 평안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밖에 모르는 자아가 강한 야곱을 깨뜨리기 위해서 그 절망의 밤에 찾아오셨습니다. 야곱은 그에게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사자임을 알았습니다. 그를 붙잡고 밤새며 씨름합니다.
날이 새도록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했다고 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 매달려 간구하고 또 간구하고 또 간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나는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형이 400명 군사를 끌고 나를 죽이러 옵니다. 하나님 밖에 나를 도울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를 살려주옵소서, 나를 도와주옵소서. 하나님만이 나의 도움이 되십니다. 나의 힘이 되십니다. 주여, 나를 절망의 자리에서 건져주옵소서.”
날이 밝으면 바로 눈앞까지 다가온 형들의 군사가 자기를 붙잡아 죽일지도 모르는 절대 절망의 그 밤에, 그는 하나님의 사자를 붙잡고 매달렸습니다. 살려달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나의 유일한 살길은 하나님밖에 없기에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그는 매달린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어떤 중병에 처했다고 할지라도 주님을 붙잡고 매달려 끈질기게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구원의 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치료의 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가 너무나 힘들고 어려울 때 자포자기하고 인생을 포기하는 자 되지 말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자살하는 자 되지 말고, 주님을 붙잡고 끝까지 매달려서 믿음으로 이겨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야곱은 밤을 새우면서 새벽에 동틀 때까지 천사를 붙잡고 씨름했습니다. 밤새도록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것입니다. 캄캄한 밤을 만날 때 무릎 꿇고 주 앞에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시편 50편 15절은 말씀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환난 날에 고난의 때에, 절망에 처했을 때, 많은 문제에 처했을 때 우리는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주님을 불러야 합니다. “주님, 나를 살려주옵소서. 주님, 나를 건져주옵소서. 주님, 나를 이 고통의 자리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끈질기게 매달려 부르짖고, 또 부르짖고, 부르짖으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기적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끈질기게 매달린 결과 그는 완전히 하나님 앞에서 깨어지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2장 25절은 말씀합니다.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간절히 하나님의 사자를 붙잡고 매달리니까 하나님의 사자가 그의 허벅지를 쳐서 관절을 부러뜨렸습니다. 우두둑하고 그 허벅지 관절이 부러져 나갈 때 얼마나 고통스럽고 아팠겠습니까?
그러나 그 순간 자기가 불구가 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자기가 허벅지 관절이 부러지기 전까지는 튼튼한 두 다리로 형이 잡으러 오면 돌아서 도망갈 수도 있었는데, 마지막 희망이 튼튼한 두 다리였는데, 하나님이 그의 마지막 남은 그 자아를 깨뜨려서 허벅지 관절을 쳐서 부러뜨리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그 알량한 자존심을 끝까지 갖고 있으니까 하나님이 마지막에는 우리의 허벅지 관절을 쳐서 부러뜨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가 무엇입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티끌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내가 뭐라고 그렇게 자기주장을 하고 자기를 알아달라고 하고 무시당했다고 그러고 상처받았다고 하고 하나님 앞에 우리는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이것이 깨어져야 합니다. 허벅지 관절이 부서지듯이 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낮추실 때 아주 완전히 낮추십니다. 아주 완전히 낮추셔서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난 아무것도 못 합니다” 할 때까지 우리를 깨뜨리시고 또 깨뜨려주셔서 우리가 낮아진 다음에 주님이 일을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허벅지 관절이 부서져서 그 불구가 된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인본주의적인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는 그걸 놓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와 하나님이 인정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완전히 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모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과정을 다 거친 사람들입니다. 마지막까지 그를 완전히 깨뜨리시고 낮추신 다음 그를 들어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요나를 물고기 배 속에 집어넣고 죽음의 자리까지 처하게 한 그다음 그를 위대한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욥을 하나님께서 연단하실 때 모든 재산이 다 사라지게 하시고, 열 자녀를 다 하루아침에 사고로 죽게 하시고, 몸에 질병으로 온몸이 고통당하게 하시고, 사랑하는 아내도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하고 떠나고, 친구들도 와서 그를 비난하는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다시 그가 일어서게 된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때로 우리에게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동서남북 어디를 봐도 다 문이 닫혀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할 때가 바로 그때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출구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문제의 답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우리를 도와줄 수 없을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를 일으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가 우두둑하고 허벅지 관절이 부러지고 난 다음 깨달았습니다. ‘이제 내 힘으로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가 두 손을 들고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그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의 삶이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3. 삶이 변화된 야곱
삶이 변화된 야곱의 모습에 대해서 창세기 32장 26절로 28절에는 이와 같은 축복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가 깨어진 결과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 것입니다.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그의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꿔주셨습니다. 이름이란 그 사람의 존재, 그 사람의 인격을 말하는 것인데, 이름을 바꿨다는 것은 그의 존재를 바꾸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씨름하는 야곱에게 물으신 것입니다. “내 이름이 무엇이냐?” “제 이름이 야곱입니다.” 야곱이라는 말의 뜻은 ‘속이는 자’, ‘대신 들어앉은 자’, ‘남의 것을 빼앗는 자’입니다.
이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그가 쌍둥이일 때 형보다 먼저 태어나려고 형의 발꿈치를 붙잡고 태어나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항상 남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게 하고 발목을 붙잡고 빼앗는 사기꾼 같은 이름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뀝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하나님의 방백’이라고 하는 이름입니다. 늘 남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넘어뜨리는 이와 같은 사기꾼 야곱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새롭게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지고 낮아지면 하나님이 높여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내 힘으로 잘 되려고 몸부림쳐도 이 세상만사가 내 뜻대로 안 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잘 압니다. 사업이라는 것이 내가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때 모든 상황이 맞아야 합니다. 저희 아버님도 사업을 하셨는데 한 네 번 정도 큰 고비를 겪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마지막 유류 파동 때는 결국 아버님이 사업을 다 접으시고 그다음 모든 재산을 정리해서 모든 직원에게 퇴직금 나눠주시고 미국으로 이민 가셨는데, 사업을 아무리 잘해도 유류 파동이 오고 우리에게 코로나가 오는 예기치 못한 일이 다가와서 모든 것이 다 뒤죽박죽 엉망으로 안 될 때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도 우리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때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할 때인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려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난의 자리에서 그를,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꿔주신 것처럼, 우리가 이 고난을 통과하고 나면 우리 모두 위대한 이스라엘로 변화될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위대한 이스라엘로 변화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스라엘의 복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32장 31절은 말씀합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이제 과거의 야곱은 죽었습니다. 새로운 이스라엘로 변화되었습니다. 야곱의 고난의 밤은 지나갔고 찬란한 새벽이 밝았습니다. 눈부신 새벽이 밝았습니다. 깨어지는 것이 복이라는 것을 잊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의 이름이 바뀌듯 그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그는 비록 불구가 돼서 쩔뚝쩔뚝 걸어갔지만 그 걸음이 그를 살리는 걸음이었고, 그에게 은혜를 주는 생명의 걸음이 되었던 것입니다.
멀리서 동생을 죽이려고 400명의 군사를 끌고 달려오던 에서가 저 멀리 보니 머리가 흐트러지고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쓴 동생 야곱이 쩔뚝쩔뚝 걸어옵니다.
그 동생을 보는 순간, 20년 동안 마음에 쌓였던 모든 미움 원한 증오가 싹 사라져버리고 불쌍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아니 내 동생이 어떻게 저런 모습이 되었을까?’ 다리는 쩔뚝거리고 온몸은 흙투성이가 되어서 머리는 풀어진 상태로 거지처럼 되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에서가 달려가서 그를 안고 부둥켜 웁니다.
할렐루야! 참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동생을 죽이려고 왔다가 동생을 사랑의 품에 안고 울은 그 형의 모습이 창세기 33장 4절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여러분 마음에 원통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억울한 마음이 있습니까? 너무나 속상하고 괴롭고 지치고 피곤한 마음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여러분의 원수가 변하여 친구가 되게 만들어주시고, 여러분의 아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만들어주시고, 고난의 자리에 있는 여러분을 꼭 품에 안아주셔서 여러분의 삶의 모든 눈물을 거두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포기하고 뒤로 물러서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인생 역전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안 되는 것 같고 모든 게 엉망진창인 것 같지만, 반드시 좋은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환경을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모든 것이 변화되어 아름답게 만들어주십니다.
그가 깨어져서 다리를 저는 불구의 몸으로 나아갔지만, 그 걸음이 축복의 걸음이 되고, 기적의 걸음이 되고, 형과 화목하게 되고, 그 이후의 삶이 복 받은 인생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인생의 절망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입니다. 인생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절망은 축복의 기회, 환난은 축복의 도구라는 것을 잊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절망의 자리에서 환난의 자리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체험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깨어질 때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낮아질 때 주님의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아직도 내게 많은 문제가 있다고 하면 아직도 내가 깨어지지 못한 모습이 너무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주 앞에 엎드려 기도하며 깨어지고 낮아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 앞에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의 은혜가 없으면 나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호통 판사’로 별명이 붙은 천종호 판사님 이야기를 들려 드리기를 원합니다. 이분은 1965년 부산 피난민들이 모여 살던 달동네 아미동 까치고개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아버님은 막노동과 목수 일을 했지만 9식구를 먹여 살리기에는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단칸방에서 9명이 살면서 하루하루 끼니를 이어가기 힘든 어려운 삶을 살았습니다.
할머니는 무속인 생활을 했고, 부모님은 남묘호랑개교 이단 종교를 믿었기 때문에 교회와는 거리가 먼 그런 처절한 절망의 환경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 때 너무 배고픈데 친구가 교회 가면 먹을 거 준다고 그래서 친구 따라서 교회를 나갔던 것이 동네에 있는 아미동교회 현 아름다운교회인데 그때로부터 우연히 교회에 나갔다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교회를 떠난 적이 없다고 그런 고백을 합니다.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이 교회에서 배운 두 가지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를 평생 신앙의 신조로 삼았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주일 오전 9시에 가서 주일은 종일 교회 가서 예배드리고 봉사하며 기쁨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성적이 떨어지면 부모님께서 교회를 못 가게 할까 봐 월요일에는 새벽 1시 혹은 2시에 일어나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학창 시절은 가난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육성회비가 없어서 학교를 수십 번 쫓겨날 뻔하고 또 중고등학교 때는 수업료를 감면받기 위해서 매번 통장 집을 찾아가서 극빈 가정이라고 하는 그 서류를 받아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어려운 형편 때문에 누구를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붙잡아 주셨습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원서 접수를 하는데 필요한 접수비가 없습니다. 원서 접수한 마감일 당일에 부산 자갈치시장 옆에 있는 한 서점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때 우연히 한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는 한 번도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 된 적이 없던 친구인데 친구가 “너 원서 냈냐?”고 물어서 “아니 아직 내가 준비를 못 했어”라고 대답하니까 그 친구가 접수비를 대신 내줘서 대학교에 원서를 냈고 부산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대학교 3학년 때 군대에 가게 됐는데 군대 간 지 1년도 안 돼서 심부정맥과 폐결핵으로 의가사 제대를 합니다. 그러나 그가 몸이 이렇게 아프고 힘들어서 군대도 제대로 못 다니게 됐지만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그는 사법고시를 준비하는데, 다섯 번 실패하고 여섯 번째 도전에서 1994년에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1997년에 부산지방법원 판사로 임관하게 됐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그의 운명을 바꾼 것이 2010년도 2월, 창원지방법원 소년부로의 발령입니다. 본인은 이제 이 법관 생활을 한 3~4년 후에 마치고 변호사를 개업해서 이제 경제적으로 좀 편하게 살려고 그랬는데, 소년부에 가면 변호사 개업에 별로 도움이 안 돼서 ‘왜 하필 내가 소년부로 갔나?’ 했는데 소년부에 가서 재판하면서 정말로 절망 가운데 처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께서 위기 청소년을 돕기 위해 그 길로 인도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법원에 판사들이 한 3000명이 넘을 것입니다. 단언컨대, 가난하고 절망 속에 살고, 뼈저린 고난을 겪어본 판사는 저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찢어지도록 가난하고 무기력한 절망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네가 비행 청소년들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 아니냐!’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엄격히 판결하되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청소년들의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하고 돕겠다고 다짐하면서 무려 1만 2천 명의 소년들을 법정에서 만나서 판결하고, 끝나고 나서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고 그들을 좋은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애썼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에 선정되어서 환경재단 재단으로부터 상을 받고, 제12회 영산 법률문화상을 수상하고, 제98회 어린이날 옥조근조훈장을 수상했습니다.
2018년 소년부를 떠났지만 2016년에 설립한 사단법인 ‘만사소년(자나깨나 소년들만 생각한다는 뜻)’ 그 산하 기관의 청소년 회복센터와 ‘만사소년FC축구단’을 통해 여전히 방임, 학대, 가난에 내몰린 비행 청소년들을 치료하고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는 한 간증 집회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합니다.
“저는 신앙을 등한시할 수 없습니다. 진리는 늘 변함이 없습니다. 제가 어릴 때 지켰던 모든 것을 지금도 지키고 있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다음 세대들에게 나는 이렇게 신앙생활을 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론이나 교리가 아니라, 삶을 들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저처럼 그 뒤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소년들과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진정 좋아하는 것을 찾았다면 ‘계속된 힘’으로 끝까지 인내하세요. 인생에 작은 변화가 찾아올 것이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고난의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절망할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그는 가난한 달동네에서 태어났지마는 이렇게 존경받고 칭찬받는 판사로서 무려 1만 2000명이나 되는 비행 청소년들의 재판을 그가 하면서 재판 후에 다들 붙잡고 눈물로 기도해 주고 그들을 사랑으로 인도해 줬다고 하는 것은 주변에 수많은 사람에게 큰 감동을 주는 일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비행 청소년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은 한 번뿐인 지나가는 인생입니다. 보람 있고 의미 있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떤 환난이 다가와도 어려움이 다가와도 참고 견디고 나아가면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달동네에서 이렇게 훌륭한 판사로 하나님께 쓰임 받은 것처럼, 여러분이 고난의 때를 믿음으로 잘 견뎌 나가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위대한 이스라엘로 변화돼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하나님 앞에 귀하게 크게 위대하게 아름답게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다가올 찬란한 미래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찬송가 384장(통 434)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1절 나의 갈 길 다 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2절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어려운 일 당한 때도 족한 은혜 주시네
나는 심히 고단하고 영혼 매우 갈하나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나의 앞에 반석에서 샘물 나게 하시네
3절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그의 사랑 어찌 큰지 말로 할 수 없도다
성령 감화 받은 영혼 하늘 나라 갈 때에
영영 부를 나의 찬송 예수 인도하셨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어떠한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시간이 우리에게 다가왔다고 할지라도 주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이겨내게 하시고, 고난의 밤을 통과한 후에 하나님의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변화되는 축복을 체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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