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노조 밀양시지부 게시판에 올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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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일 동지 일기중에서.....
2006. 11. 3(금)
지원이가 새벽에 일어나 책을 3권, 3권 두 번 가져와 읽어 달라한다(06:30).
할수없다. 오를 아침 산책은 포기, 지원이 채 읽어주고 함께 보냈다. 지수.지원이 하바놀이학교 가고 챙겨서 농협과 경남은행으로 갔다. 애들 통장 만들고 미정이 통장 새로 개설 하였다. 창우회. 공무원노조등에서 모금운동을 한다고 한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매시기 순탄한 적이 없는 우리 민중의 역사는 지금도 한고비를 넘어가고 있다. 내가 해야할 일이 분명 있는데도 지금은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조국과 역사가 부여한 임무이다. 소중한 동지들과 함께 신념의 강자가 되어 다시 전선으로 복귀하리라 결의해 본다.
점심은 홍영수 국장, 위원장과 함께 청국장을 먹었다. 미정이가 풍욕 안한다고 난리다. 죽기, 살기로 하란다. 하루 생활일정을 세우고 실천하는 모습과 믿음을 보여줘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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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노조 경남본부의 기틀을 잡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경남본부 전 사무차장 하영일 동지를 오늘 여러 동지의 오열속에 하늘나라로 보냈습니다.
오늘 오전에 연가를 내고 아까운 후배를 먼 하늘나라로 보내기 위하여 어제저녁 창원 병원 영안실에서 밤을 지새웠읍니다.
서른일곱 많지도 않는 나이에 어린 두딸 지수.지원이 그리고 여시같은 마누라 남겨두고 가는 그 마음이 오죽이나 했겠습니까? 심장암으로 시시각각 죽음의 그림자가 닥치고 고통속에서 신음할때도 앞에서는 동지 운운하면서 웃다가 등돌리고는 냉정해지는 세상사의 비정함을 그가 원망하지 않았을리 없을 것입니다.
공무원노조는 그에게 빚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영일 그가 공무원노조 경남본부의 기틀을 다지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기 때문에 공무원노조 조합원은 누구나 그의 은덕을 입은바 있습니다.
병마의 고통에서 투병할때 우리 지부는 내부분열과 파탄의 길을 걷는 과정에서 그에게 따듯한 말 한마디 투병기금 한푼도 지원하지 못하였읍니다. 돈 몇푼이 우리의 안타까운 마음을 대신할수 없지만 살아생전에 그의 얼굴을 보고 금일봉을 전달하면서 완쾌되어서 같이 투쟁하자는 따듯한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한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오늘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하영일 동지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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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벗 하영일동지가 걸어온길
1970년 창원 동읍에서 출생
1989년 창원 중앙고등학교 졸업,
창원대학교 경영학과 입학
창원대학교 극예술 연구회 활동
1995,1996년 창원대학교 11대,12대 총학생회 사무국장 역임
1996년 국가보안법등 위반으로 구속수감 및 출소
1998년 창원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창원대학교 민주동우회 "창우회"사무국장 역임
1999년 부산경남 총학생회 재정사업단 "개구장이" 활동
2001년 경남공무원직장협의회 사무국장 활동
2002년 ~ 2006년 전국 공무원노조 경남본부 사무차장 활동
2006년 민주노동당 경남도지사 선대본 정책팀장
경남 장애인생산품 판매시설 나누미 활동
9월 심장암 진단후 투병
2007. 1. 22 오전 11시 영면.
일생을 민중의 안녕과 민주화에 바친 짧고 아쉬운 그의 생애에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