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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의 가장 깊은 우물, 그 이름을 떠올리면 단연 백석이다. 그의 시를 한 번이라도 읽어 본 이라면 평안도 사투리가 어떻게 이토록 서럽고 아름다운 우리말의 선율로 타오르는지 감탄하게 된다.
다른 시인들이 서구의 신문물과 신사조를 좇아 도시를 배회할 때, 백석은 고향의 흙냄새와 장터 사람들의 툭툭 던지는 말씨, 가난한 이웃들의 온기 어린 숨결을 시집 속에 꾹꾹 눌러 담았다. 그 덕분에 그의 언어는 세월의 이끼가 끼지 않는다. 읽으면 읽을수록 사람 냄새가 푹푹 난다.
1912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백석. 그는 영문학을 전공한 엘리트 지식인이자 번역가였고, 훤칠한 키에 세련된 정장 차림으로 경성 거리를 누비던 당대 최고의 '모던 보이'였다. 그러나 그의 시가 품은 세계는 화려한 도회지가 아니었다. 시린 겨울 들판의 매서운 바람, 밤새 타오르던 모닥불, 그리고 따스한 국수 한 그릇을 나눌 때 느끼는 삶의 구수한 온기였다.
1936년, 그가 자비로 펴낸 첫 시집 『사슴』은 불과 100부만 찍어낸 희귀본이었다. 하지만 한국 문단에 던진 울림은 거대했다. 훗날 윤동주는 시집을 구하지 못해 도서관에서 한 편 한 편 필사하며 밤을 지새웠고, 신경림은 백석의 시를 통해 우리말이 가진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에 비로소 눈을 떴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백석의 삶을 논할 때 결코 빠뜨릴 수 없는 결정적인 페이지가 있다. 바로 한 여인과의 불꽃 같았던 사랑 이야기다. 그 여인의 본명은 김영한. 그러나 사람들은 시인이 직접 지어준 이름, '자야(子夜)'로 그녀를 더 가슴 깊이 기억한다.
1930년대 후반, 함흥의 한 연회 석상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의 운명임을 직감했다. 시인은 진향(眞香)이라는 기생 이름을 가졌던 그녀에게 '자야'라는 비밀스러운 이름을 선물했고, 두 사람은 서울 동선동에 작은 둥지를 틀어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잔인한 시대와 현실은 두 사람의 사랑보다 차가웠다. 명문가 출신의 유학파였던 백석의 집안에서는 기생 신분이었던 자야를 결코 며느리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부모의 완강한 반대와 거듭된 강요 앞에 결국 백석은 다른 여인과 원치 않는 혼인을 치러야 했다. 그럼에도 백석의 마음은 오직 자야만을 향해 있었고, 두 사람의 사랑은 비극의 그림자 속에서도 더욱 깊어만 갔다.
이 애달픈 시절, 백석의 붓 끝에서 탄생한 명시가 바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눈이 푹푹 나린다’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아련하고 아름다운 첫 구절로 꼽히는 이 시. 독자들은 시 속의 '나타샤'에게서 자연스럽게 자야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것이 문학적 상상이든 역사적 사실이든 중요한 것은, 눈 덮인 시 한 줄 속에 이루지 못한 사랑의 절절한 간절함이 굳지 않은 핏방울처럼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점이다.
격랑의 시대 속에서 백석은 자야에게 손을 내밀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만주로 떠납시다’
그러나 자야는 차마 그 손을 잡지 못했다. 자신이 그의 발목을 잡는 주정뱅이 운명이 될까 봐, 시인의 창창한 미래를 망칠까 두려웠던 것이다. 결국 백석 홀로 만주로 떠났고, 이것이 두 사람의 영원한 이별이 될 줄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