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왜 가" 부천 소녀의 배짱…1000억 '마뗑킴' 키워냈다
[안혜리의 인생]
안혜리2024. 7. 3.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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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뗑킴' 신화를 일군 김다인 '다이닛' 대표를 지난달 10일 서울 성수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해 자신이 만든 브랜드와 결별해서 새 브랜드를 런칭했다. 김현동 기자
" 고졸 신화. " 대학 졸업장 없이 사회생활을 시작해 주요 자리에 오른 정·재계 인사들 발탁 소식이 들릴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수식어다. '삼성전자 첫 고졸 여성 임원' 양향자(57) 전 의원, '고졸 경제 수석' 김동연(67) 경기지사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해당 자리에 올랐을 땐 이미 최종 학력이 각각 석·박사였다. 게다가 이들이 고교를 졸업한 1970~80년대 대학 진학률은 20~30%대였다. 학벌 사회 한국에서 이들의 성취는 분명 의미 있지만, 고졸 자체는 또래와 비슷한 인생 행보였다.
요즘은 다르다. 지난 2008년 정점(83.8%)을 찍고 비록 하락 중이지만 여전히 대학 진학률은 70%대가 넘는다. 이런 현실에서 경기도 부천의 일반고가 학력의 전부인 30대 초반 여성 CEO가 국내 명문대는 물론 해외 유수 패션학교 출신이 즐비한 국내 패션계에서 지금 가장 주목받고 있다.
23살(2015) 때 네이버 블로그 마켓 '마뗑킴'을 시작하자마자 성장을 거듭, 같은 이름의 법인을 설립(2018)한지 5년만인 지난해 매출 1000억원을 달성한 '마뗑킴' 김다인(32) 대표 얘기다. '뗑며든다'는 수식어를 낳을 만큼 2030 여성 사이에서 강력한 팬덤까지 확보했다. 지난 2021년 더 큰 성장을 위해 지분투자를 받았으나 결국 지난해 자신이 키운 브랜드를 떠나 최근 자신의 이름을 딴 새 브랜드 다이닛(DEINET)을 런칭했다. 그사이 출산도 했다.
김다인 다이닛 대표는 올해 매출 목표를 100억원으로 잡았다. 김현동 기자
지난달 10일 서울 성수동 다이닛 김 대표 사무실에서 만나 4시간 가까이 짧지만 강렬한 그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6만원의 첫 실패를 발판삼아 단숨에 1000억으로 키운 과정, 갑작스런 성공에도 돈·명성에 잡아먹히지 않는 행복한 삶을 살겠다는 단단한 인생 철학 등을 그의 시각에서 정리했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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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왜 가? 남 따라 하는 삶은 말자
중학교 때부터 공부를 못했다. 어중간할 바에야 아예 안 하는 스타일이라, 어느 순간 공부를 놔버렸다. 고등학교 다니던 15년 전 즈음엔 성적과 무관하게 "4년제 안 되면 2년제라도 간다"는 분위기였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어차피 공부 쪽엔 승산 없고, 공부로 성공할 것도 아닌데 왜 대학에 가야 하지?
다행히 부모님은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거의 안 하셨다. 공부뿐만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웬만한 건 다 직접 결정했다. 물론 무슨 문제가 생기면 부모님이 나와 같이 해결 방법을 찾았고, 평소 대화를 많이 했다. 그래도 여전히 결정은 내 몫이었다. 진로나 인생 방향도 내가 선택했고, 부모님은 존중했다.
그러니 되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이 많았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원하는지 늘 골똘히 생각하며 답을 찾았다. 그게 사업이었다. 직장인인 아버지보다 비록 작지만 유치원 사업하는 어머니 영향이 큰 거 같다. 또 어머니는 '엘르' 같은 패션잡지를 구독할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 덕분에 어릴 적부터 패션을 너무너무 좋아하게 됐다. 친구들 수능 공부할 때 난 신나게 옷 사러 다녔다.
김다인 대표가 초등학교 때 ″빨주노초파남보를 표현하라″는 숙제를 받고는, 어머니가 보던 패션잡지에서 스크랩해서 룩을 만들어 제출했다. [사진 김다인]
사회는, 편견 없는 부모님과는 달랐다. 직장생활 경험 없이 바로 사업을 시작했기에 조직 내 학벌 무시는 안 겪었지만 사회의 차별적 시선은 견뎌야 했다. 사업 초기 누구를 만나든 "어느 학교 나왔느냐"는 질문을 받았고, "패션 디자인 전공 안 했느냐"는 얕보는듯한 말도 많이 들었다. 패션업계는 유학 다녀온 사람들이 빠르게 인정받는 분위기였다. 어쩌면 혼자만의 열등감이었지 모른다.
어쨌든 얹잖을 때가 적지 않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불편한 상황을 맞닥뜨리면 오히려 긍정적 자극을 받는다. 가령 2021년 '마뗑킴'이 처음 투자받을 즈음 "'룩 북(브랜드 스타일을 보여주는 사진집)' 없는 브랜드가 무슨 브랜드냐"는 소리를 들었다. 아무리 업계 관행이라지만, 룩 북 필요성을 못 느끼는데 남이 하니까 무조건 따라 하고 싶진 않았다. 그들 입맛을 맞추는 대신 "내가 맞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늘 이런 마음이었다. 금수저는커녕 두 딸 대학 학비도 빠듯한 평범한 맞벌이 가정의 고졸 학력인 내가 성공하는 사례를 보여주고 싶었다. 내겐 그런 존재가 없었기에, 비슷한 꿈을 꾸는 이들에게 길라잡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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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 삶은 가라
고교 졸업 후인 2014년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31·박문수 더뮤지엄비지터 대표, 2021년 결혼)을 따라 무작정 미국 샌프란시스코, 독일 베를린에서 지내다 남자친구 입대로 혼자 남게 되자 매일 우울했다. 인스타그램 출시(2010, 안드로이드는 2012) 초기부터 팔로워가 수천 명일 정도로 열심히 멋있어 보이는 사진을 올렸는데, 어느 순간 껍데기 같은 모습에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 "목표 없이 뭘 하는 거지,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부모님한테 생활비 받기도 어려웠다. "더 늦기 전에 패션에 뛰어들자, 핑계나 변명 말고 당장 돈을 벌자. " 이렇게 마음먹었다.
지난 2015년 남자친구가 입대로 귀국하자 베를린에 혼자 남았던 김다인 대표. [사진 김다인]
그 시작이 지난 2015년 겨울 네이버 블로그 마켓에서 '마뗑킴'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동대문(의류 도매시장) 사입(buying)이었다. 당시 가진 건 6만원이 전부. 동대문은 같은 디자인을 최소 두 장 사야 했기에, 원했던 15만 원짜리 멋진 디자인 대신 개당 2만~3만 원대 값싼 점퍼 두 장을 골라 블로그에 올렸다. 안 팔렸다.
축 처진 나를 지켜보던 어머니가 "얼마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30만원. " 그 돈으로 동대문에 달려가 거친 상인들 상대하며 점퍼 두 장을 샀다. 막차는 진작에 끊기고 수중엔 4000~5000원뿐이었다. 카페에서 유자차를 앞에 두고 부천가는 첫차를 기다리며 포스트잇에 이렇게 썼다. "성공할 거다. " 이 메모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됐다.
점퍼 두 장 다음엔 티셔츠 4장, 이번엔 10장, 그렇게 팔릴 때마다 고객 반응을 꼼꼼하게 분석하면서 규모를 키웠다. 6개월쯤 지나니 옷 살 돈 말고도 100만원쯤 남아 새 시도를 했다. 단일 품목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코트·스카프 등으로 직접 코디해 화보처럼 찍어 올렸는데, 월 몇천만원 매출이 날 만큼 대박이 났다. 1년쯤 지나자 고객들이 이런저런 요구를 담아 "직접 디자인해달라"고 해서 제작까지 뛰어들었다.
지난 2017년 4월 뉴욕에서 체류할 때 출시한 뮬. 본격적인 '마뗑킴' 런칭 전이었는데도 반응이 좋았다. [사진 김다인]
이때 남자친구가 제대했다. 뭔가 목말랐던 우리는 다시 긴 여행을 떠났다. 영화 '싱 스트리트' 배경 더블린이 멋있어 보여 즉흥적으로 그곳에서 3개월, 그다음엔 파리, 또 뉴욕. 럭셔리 백화점인 '바니스 뉴욕' 신발 매장에 매료돼 한국의 신발 업체와 샘플을 주고받으며, 2017년 깔끔한 가죽 뮬(뒤가 트인 신발)을 제작했다. 귀국 전 판매를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았다. 부천을 떠나 큰물에서 놀 때가 됐다는 감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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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먹히지 않는 삶을 살자
지난 2018년 법인을 만들고, '카페 24'라는 툴을 이용해 네이버 블로그를 떠나 단독 온라인 판매 사이트를 열었다. 집 근처 첫 사무실을 떠나 청담동에 새 사무실을 얻은 뒤 디자이너를 채용해 내 감각과 분석이 들어간 자체 제작 제품을 팔았다. 유통 채널이 '마뗑킴' 사이트 하나뿐이었는데도 성과가 좋았다. 2020년 국내 최대 온라인 패션 편집숍 '무신사'의 여성 전문 채널 '우신사' 입점으로 매출이 50억원에 달했다.
패션 전문 투자사 등 여러 곳이 투자를 제안해왔다. 경영 능력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기에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하겠다는 곳을 골랐다. 매출은 150억(2021), 500억(2022), 1000억원(2023)으로 가파르게 올랐다. 하지만 60% 지분투자를 한 투자사와의 갈등으로 끝내 내가 키운 '마뗑킴'과 지난해 결별했다.
속상했다. 하지만 과거에 사로잡히면 오늘을 살 수 없다.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내 선택의 결과니 누구 탓도, 어떤 변명도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임신과 겹쳐 신경 쓸 여력도 없었다. 깔끔하게 내려놨다. 지난 3월 첫 아이 출산 30분 전까지도 휴대폰으로 업무 처리하고, 산후조리원에선 직원들이 보내준 디자인을 컨펌했다. 쉬는 게 편치 않았다. 대표가 진심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해야 직원들이 따라온다고 생각해서다. 그렇게 지난 5월 50년 역사 패션 기업(세정)의 투자를 받아 내 이름을 딴 새 브랜드를 런칭했다.
눈 뜨는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심지어 출퇴근 전과 후도 업무의 연장이다. 저녁엔 한두 시간 SNS 라이브로 고객과 소통하고, 다음날 이중 반응이 좋은 걸 골라 입고는 잠원동 집에서 남편과 함께 출근길 카페에 들러 데일리룩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이 과정에서 디자인·색상 등 고객 요구를 최대한 빨리 반영해 상품으로 내놓는다. 직원들은 힘들겠지만 잘하는 브랜드가 너무 많은 요즘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지난 3월 출산하자마자 이 소식을 직접 SNS에 올렸다. [김다인 인스타그램 캡처]
이렇게 일에 몰두하면서 왜 아이를 낳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난 커리어 성장 못지않게 행복이 중요하다. 퇴근 후 남편과 김치찌개에 소주 한잔하면서 대화하는 일과 일상의 균형이 늘 기쁘고 행복했다. 당장의 성공을 위해 아이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공허하고 후회할 거 같았다. 사업을 키워오면서 늘 경계하는 지점이기도 했다. 성공해서 불행해지지 말자. 돈이든, 커리어든, 명예든, 그 무엇에도 내 삶이 잡아먹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다인잇을 한 번 더 성공시켜, 첫 번째 성공이 운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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