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합니다. 생각과 감정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마음의 본성은 본래 청정합니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께서는 그 후 45년간 무엇을 하셨을까요? 열반의 평안 속에서 혼자만의 해탈을 즐기셨을까요? 아닙니다. 모든 중생이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쉼없이 가르침을 펴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깨달음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자신만의 해탈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해탈을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경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직후 범천이 내려와서 간청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중생들을 위해 법을 설하여 주십시오. 처음에 부처님께서는 망설이셨습니다. 너무 깊고 미묘한 진리라 중생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으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중생들에 대한 무한한 자비심으로 설법을 시작하셨습니다. 눈에 티끌이 적은 이들이 있을 겁니다. 봅시다 깨달을 수 있는 중생들이 분명히 있다고 확신하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 삶의 진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도 부처님처럼 자신의 깨달음을 다른 이들과 나누며 세상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 헌신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무상한 삶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영원한 가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창한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자비행은 우리 일상 속에서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습니다. 가족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는 것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에게 미소 지어 주는 것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 모두가 자비행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쨌든 그 마음입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이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서 행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선불교에서는 이를 상구보리 하와 중생이라고 표현합니다. 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깨달음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다른 이들을 돕는다는 의미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하나로 만날 때 우리는 진정한 보살의 길을 걷게 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런 가르침이 어떤 의미일까요? 경쟁 사회에서 남보다 앞서 나가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다른 이들을 돌보라는 이 가르침이 현실적일까요? 부처님께서는 이미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주셨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남을 사랑하라.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 남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현대 심리학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타인을 도울 때 우리 뇌에서는 행복 호르몬이 분비되고 스트레스는 감소합니다. 이를 헬퍼스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남을 돕는 것이 결국 자신의 행복으로도 이어진다는 과학적 증거입니다.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는 단순한 기분 좋은 감정이 아닙니다. 지혜와 함께하는 자비입니다. 무상의 진리를 깨달은 지혜 집중을 통해 길은 명료함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는 자비를 베풀 수 있습니다. 때로는 따뜻한 말보다 엄격한 충고가 필요할 수도 있고 때로는 도움을 주는 것보다 스스로 극복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 더 큰 자비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지혜로운 자비를 기르는 것이 바 로 우리가 남은 생에서 집중해야 할 그것입니다. 한국의 고승 법정 스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내가 먼저 꽃이 되어 향기를 풍기자.
내가 먼저 아름다운 존재가 되어 다른 이들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자는 뜻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무상한 세상에서 영원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방법입니다. 우리의 몸은 늙고 죽지만 우리가 남긴 사랑과 자비의 흔적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계속 살아갑니다. 그것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 그렇게 해서 부처님의 자비가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비행을 실천하면서 우리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주는 자와 받는 자 그리고 주어 지는 것 사이의 경계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비를 베풀 때 내가 남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생각조차 없어집니다. 마치 왼손이 닫힌 오른손을 돌보듯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됩니다. 이것을 삼륜청정이라고 합니다. 주는 자 받는 자 주어지는 것이 모두 공하다는 깨달음입니다.
이런 경지에 이르면 자비행 자체가 바로 해탈의 길이 됩니다. 남을 위해서 하는 일이 동시에 자신의 수행이 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내일도 바쁜데 어떻게 남까지 도울 여유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셨습니다. 보시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을 주는 재보시만이 아니라 법을 전하는 법보시 두려움을 없애 주는 무외시도 있습니다. 또한 미소를 짓는 것만으로도 무재 칠시라고 해서 일곱 가지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눈으로 자비롭게 바라보고 얼굴로 미소짓고 그리고 말로 따뜻하게 격려하고 몸으로 공손히 예를 표하고 마음으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자리를 양보하고 함께 머물러 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돈 한 푼 드리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보시입니다. 정말 바쁜 현대인도 충분히 실천할 수 있는 자비행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하는 일 자체를 수행으로 전환할 수도 있습니다. 직업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의사라면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는 일로 교사라면 학생들의 무명을 밝혀주는 일로 사업가라면 사회에 유익한 가치를 창출하는 일로 자신의 직업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집안일을 하는 것도 가족들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는 자비행으로 승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일상 속에서 자비를 실천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합니다. 삶에 대한 불만이나 허무감이 사라지고 이쁜 충만감과 기쁨이 찾아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확신 내 존재가 이 세상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깨달음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듭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행복을 법락이라고 하셨습니다. 진리를 실천함으로써 얻는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감각적 쾌락과는 차원이 다른 깊고 지속적인 행복입니다. 무상한 것들에서 얻는 기쁨은 잠깐이지만 자비행에서 얻는 법락은 영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비를 베푸는 대상이 꼭 사람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에 대한 자비를 말씀하셨습니다. 동물들 나아가 산책 산천초목 이 지구 전체에 대한 자비심을 기를 수 있습니다. 환경 문제가 심각한 현대에 이런 확장된 자비심은 더욱 절실합니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에너지를 절약하고 자연을 보호하는 것도 모두 자비행입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 아름다운 지구를 보존하는 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큰 보시입니다. 이렇게 자비의 범위가 확장되면서 우리는 더 큰 깨달음에 이르게 됩니다.
모든 존재가 연결되어 있다는 연기법의 진리를 체험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행복하면 주변 사람들도 행복해지고. 내가 평안하면 세상도 조금 더 평안해집니다. 반대로 내가 화를 내면 그 영향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집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로 연결된 존재들입니다. 이런 깨달음을 얻을 때 자비행은 더 이상 의무나 부담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 됩니다. 마치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다른 존재들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게 됩니다. 죽음 앞에서도 이런 자비심은 우리를 자유롭게 해줍니다. 내가 살아온 날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확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았다는 평안함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 마지막 말씀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모든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이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 죽음이 다가와도 마지막 순간까지 중생들을 위해 정진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은 생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그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자비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무상 속에서 발견하는 영원한 가치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긴 여정을 함께 걸어왔습니다. 무상의 진리를 깨닫고 분산된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집중의 힘을 기르고 마침내 삶의 진짜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남은 생에서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알고 계십니다. 변하는 것들에 집착하지 말고 변하지 않는 마음의 본성을 발견하세요.
산란한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물러 보세요.
그리고 그렇게 얻은 평안과 지혜를 다른 이들과 나누세요. 작은 미소 하나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도움의 손길이 모두 세상을 바꾸는 힘입니다.
부처님께서 2500년 전에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으신 진리가 지금도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처럼 여러분이 실천하는 자비도 미래의 누군가에게 큰 선물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영원한 가치입니다. 무상한 삶 속에서 불멸의 가치를 만들어 내는 길입니다. 남은 생은 이것 하나에만 집중하세요. 자비로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한 가르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