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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다. 그러나 이건 여름이 아니다. 온 땅이 뜨거운 가마솥이다. 밟는 발바닥마다 열기가 올라온다. 신발창을 뚫고, 발목을 타고, 종아리를 감고, 무릎을 넘어 몸 전체에 스며든다.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옷을 적신다. 숨쉬기만 해도 입안이 마른다. 눈을 뜨면 열기가 눈동자를 데우고, 눈을 감아도 뜨거운 어둠이 내려앉는다.
인근 도시의 수은주가 체온을 훌쩍 넘어 섭씨 40도를 넘어간다. 그 숫자는 더 이상 기상 관측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땅이 보내는 마지막 편지다. 하늘은 노랗게 타들어 가고, 지평선은 아지랑이 속에서 춤추듯 흔들린다. 새들은 입을 다물었다. 벌레들도 소리를 죽였다. 모든 것이 숨을 죽이고 이 더위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시간. 그런데 그 기다림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열사의 나라 아프리카가 오히려 피서지라고 한다. 지인이 탄자니아로 발령받았다. 그곳은 열악한 조건에 덥다고 모두가 발령을 기피하는 나라다. 그런데 여름 평균 온도가 섭씨 30도를 밑돈다. 그는 더위를 피해 간다고 웃으며 말했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런데 웃고 나니 입안이 쓰라렸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이 열대보다 더 뜨거운 나라가 되어버린 현실 앞에서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해거름이 되어도 한낮에 받은 열기를 다 토해내지 못한다. 나뭇가지가 흔들려 창문을 여니 온풍기 바람이 들어온다. 해가 지면 서늘해질 거라는 기대는 배신당한다. 밤이 와도 땅은 뜨겁다. 아스팔트는 낮의 열기를 밤새 품고 있다가 다시 우리에게 되돌려준다.
직장 근처에 샛강이 흐른다. 그 강물은 예전에는 맑았고 차가웠다. 지금은 얕아졌고, 미지근해졌다. 그곳에 어른 팔뚝만 가물치가 수초에서 나와 나무 그늘 아래로 숨어드는 것을. 그 물고기는 제 집을 버리고 있었다. 자라고, 알을 낳고, 살아온 그 물속을 떠나, 위험하지만, 그늘이 제공하는 물가로 나와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물고기조차 집을 버리는 온도가 되었다.
동해안에서는 열대어가 나타났다. 지금까지 우리 바다에서 보지 못했던 독을 가진 해파리들도 출현한다. 더위를 피해 바다로 뛰어드는 사람들은 이제 해파리에 쏘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바다마저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어디로 피해야 하는가.
직장 동료가 퇴직 후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도시를 떠나 자연으로 돌아갔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소식을 들었다. 부부가 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밭에서 일을 하다가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고.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이야기에 나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들은 더위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농사의 시간은 더위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씨앗을 제때 뿌려야 하고, 잡초를 뽑아야 했다. 더위는 핑계가 될 수 없다. 그런데 그 핑계가 목숨을 앗아갈 뻔했다.
태풍이 한반도를 향하면 다른 쪽으로 가길 바라는 것이 안전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기본 욕구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인사는 ‘더워서 못 살겠다’이다. 나무 잎사귀가 노랗게 변하고 곡식이 말라가자, 일본 열도 아래에서 움직이는 태풍이 우리 지역으로 향해야 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오간다. 열기가 얼마나 센지, 땅이 얼마나 목마른지 말해준다.
땅이 깨어진 유리처럼 금이 가고 입을 벌리고 있다. 그 틈으로 물을 달라는 울음이 들린다. 그 울음은 땅의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것이다. 우리가 땅에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땅에 말해왔다.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편하게. 이제 땅이 우리에게 열기로 말한다.
흰 구름이 두둥실 떠가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은 높고, 하늘은 푸르고, 더위는 여전하다. 그 구름은 비를 주지 않는다. 그저 떠다닐 뿐이다. 그래도 올려다본다. 갈라진 땅의 틈을 메울 장대비를 기다리며.
나는 문득 생각한다. 더위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멈춰라”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돌아 봐라”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너무 빨리 달려온 시간. 너무 많이 소비한 자원. 너무 쉽게 외면한 자연. 그 모든 것의 대가가 지금 이 열기로 돌아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뜨거운 가마솥 위에 서 있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함께 서 있다. 더위는 우리를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서로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
“이 더위도 지나가리라. 그러나 그 기억은 지나가지 않으리”
우리는 더위에 배운다. 더위는 말없이 가르친다. 뜨거운 입김으로, 타오르는 햇살로, 갈라진 땅으로, 숨 막히는 밤으로. 그 가르침은 쓰지만, 그 열매는 달기를 바란다.
여름은 가고, 가을은 오겠지. 그러나 그사이에 우리는 변해야 한다. 변하지 않으면, 내년 여름은 더 뜨거울 것이다. 그다음 해는 더더욱. 우리는 그 무한한 상승 곡선을 멈춰야 한다.
40도의 침묵 속에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