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뇌수술 82%, MRI 117% 원가 보상…그래서 검사왕국
중앙일보
입력 2022.08.10 00:52
신성식 기자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슬기로운 의사생활’ ‘낭만닥터 김사부’ 등의 인기 의학드라마에는 흉부외과·외상외과 등 소위 ‘칼잡이 의사’가 단골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응급 환자를 멋지게 살려낸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자책한다. 드라마에서 그리는 대로 외과의사는 목숨을 좌우한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을 계기로 또 다른 외과의사가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개두(開頭)수술을 하는 뇌혈관외과 의사이다. 신경외과 세부 전공 의사이다.
뇌혈관 개두수술 의사, 심장수술을 하는 흉부외과 의사, 여러 장기가 파열된 중증외상 환자를 수술하는 외상외과 의사, 장기(臟器)이식 등은 ‘칼잡이 중의 칼잡이’로 통한다. 짧게는 서너 시간, 길게는 48시간 수술한다. 한국의 중증외상외과를 개척한 아주대 이국종 교수, 세계적인 간 이식 전문가 서울아산병원 이승규 교수 등은 선구자로서 수많은 목숨을 살렸다.
간호사 사망 계기로 본 수술 천대
인력·시간 많이 들어도 수가 꼴찌
문 케어에도 뇌동맥류 수술 빠져
“선택과 집중으로 수가 조정해야”
신경외과의사 4%만 뇌동맥류 수술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을 계기로 화려함 뒤에 가려진 외과 의사의 실상이 드러났다. 있어야 할 곳에 그들이 없고, 이런 현상을 부추긴다. 대한신경외과학회에 따르면 국내 신경외과 전문의는 3433명이다. 세부 분과별로 보면 56%가 척추 질환에 매달려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이번처럼 뇌동맥류(뇌혈관 벽이 얇아져 부풀어 올랐다가 터지는 응급질환) 환자의 개두수술을 하는 신경외과 의사는 152명에 불과하다. 한 해 신경외과 의사가 80명 안팎 배출되지만, 상당수가 척추로 빠지고, 뇌혈관외과를 택하는 의사의 70~80%도 개두수술이 아니라 중재시술(대퇴부 혈관을 활용한 스텐트 시술)로 빠진다. 개두수술 중 고난도 수술은 뇌 아랫부분의 출혈이나 종양을 제거하는 뇌기저부 수술과 뇌동맥류 개두수술이다. 대한신경외과학회 박봉진 보험이사(경희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전반적으로 수술의 가치를 올려야 한다. 그래야만 젊은 의사 지원자가 늘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건강보험이 인정하는 의료행위는 검사·진찰(입원)·처치·수술 등 6개 영역 5850개이다. 한국은 미국식으로 행위별로 수가를 인정한다. 유럽에는 큰 묶음 방식이나 총액개념으로 운영하는 데가 많다. 6개 영역 중 수술이 초라하기 그지없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신영석 선임연구위원의 연구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수술 수가가 원가의 81.5%에 불과하다. 시간·인력이 많이 들고 위험도가 높지만 이런 원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 6개 영역 중 꼴찌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조직검사·자가면역·종양표지자 등의 검체 검사는 원가의 136%, MRI·CT 등 영상검사는 117%에 달한다. 한국의 인구 100만 명당 MRI 보유 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1.9배에 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검사 왕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왜곡돼 있다. 신영석 박사는 “사람 손으로 하는 건 보상이 낮고 기계로 하는 게 높다”고 진단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정부는 수술 수가가 낮다고 보고 최근 몇 년 새 조금씩 올렸다. 올린다고 올린 게 81.5%(2020년)이다. 2011년 76%였다. 2020년 5850개의 의료행위에 지출된 건강보험 재정은 41조2949억원이다. 이 중 수술에 7.7%인 3조2215억원을 썼다. 검체나 영상 검사는 13% 안팎을 썼다. 수술 수가(상대가치 점수)를 올렸다지만 뇌동맥류 개두수술은 아니다. 2018년 좀 올랐다가 계속 떨어져 2020년 이후 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전 정부에서 건보 보장성 강화 정책(일명 문재인 케어)을 시행하면서 비급여 축소로 병원 수입이 줄어들자 고난도 수술 수가를 올려 일부 보완해줬다. 하지만 뇌동맥류 개두수술은 여기에서도 빠졌다.
10년 새 수술원가율 5.5%p 올라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고난도 수술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불을 보듯 뻔하다. 분당서울대병원 방재승 신경외과 교수는 인터넷 댓글에서 “뇌혈관 수술의 위험도와 중증도보다 턱없이 낮은 수가로 인해 지원자가 없다. 작금의 현실에서 그나마 전임의(전문의 취득 이후 세부전공 과정)를 양성해 놓으면 대부분 뇌수술을 하지 않는 뇌혈관 내 시술 의사의 길을 선택한다”고 한탄했다. 그는 “40대 이상 실력 있는 뇌혈관외과 의사가 거의 고갈 상태로 가고 있다”며 “밤에 뇌출혈로 급하게 병원을 찾았을 때 실력 있는 뇌혈관외과 의사가 수술하러 나올 병원이 전국에 거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수술 수가를 올리기도 쉽지 않다. 지금의 수가제도는 ‘총량 불변’ 원칙을 고수한다. 어느 하나를 올리려면 다른 걸 깎아야만 가능하다. 일종의 제로섬 게임 같다. 분야별로 이해관계가 달라 조정하기 쉽지 않다. 21년째 이렇게 유지되고 있다. 6개 항목별 가치를 5년마다 조정하게 돼 있지만, 지금까지 두 차례밖에 못 했다. 게다가 매년 수가를 일괄적으로 2% 안팎 올리는데, 5850개가 똑같이 올라간다. 신영석 박사는 “일괄 인상 방식을 버리고 원가에 미달하는 부분에 집중하는 선택적 인상 방식으로 가야 한다”며 “그래야 수술에 집중적으로 몰아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