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虛虛實實
<특령제일호(特令第一號)-
치밀한 관찰력과 신법(身法)이 뛰어난 백인(百人)을 엄선하여
청해(淸海)와 신강(新疆)의 접경지인 대석구(大石溝)에서 출발하는
구주대전장(九州大錢莊) 소 속의 마차 백대를 각각 분할 추적시킬 것.
임무는 습지(濕地)와 중습지(中濕地), 건지(乾地)에서
마차 바퀴가 땅에 파이는 깊이를 조사하여 보고하는 것.
보고는 전서구(傳書鳩)를 이용하여 개방 낙양분타(洛陽分舵)로 할 것.
대의정천맹주(大意正天盟主) 친령(親令).>
* * *
새벽 여명(黎明)이 뿌옇게 터오고 있었다.
오송학은 키득키득 웃으며 거처로 돌아왔다.
밤을 하얗게 지샜는지 단목청은 푸석푸석한 얼굴로 그를 맞으며 톡 쏘아붙였다.
"밤새 무엇을 했기에 이제야 돌아오는 거예요?"
"그저 그런 일이 좀 있었소."
오송학은 무심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건성으로 대꾸했다.
이어 그는 피곤하다는 이유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침상 위에 벌렁 누워 버렸다.
단목청이 쪼르르 뒤쫓아 왔다.
"그저 그런 일이 대체 뭐죠?"
"물었으면 대답을 해야 할 게 아니예요."
"왜 무슨 일이라도 있었소?"
"당신 정신 있어요?"
단목청는 침상 머리에 붙어서 멀뚱하게 눈동자를 굴리고 누워 있는 오송학을
앙칼지게 쏘아보았다.
"쯧쯧... 무슨 일인지 말을 해야 알 것 아니오."
"뻔뻔스런 사람같으니...
그래, 사람이 없어서 빙매를 직접 마굴(魔窟)로 잠입시켰단 말인가요?"
"당신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요? 빙매는 뭐고, 또 마굴은 뭐요?"
"당신 정말 나한테까지 이러기예요?"
"이거야, 원..도대체 무슨 일인지 말을 해야 알게 아니오."
"세상에...!"
오송학의 짜증스런 대꾸에 단목청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한동안 그를 직시했다.
그러다 그녀는 악을 버럭버럭 써대기 시작했다.
"말하고 자시고 할게 뭐 있어요!
당신이 빙매를 암흑마천의 마교(魔轎)인지 뭔지하는 가마의 시녀로 잠입시켰잖아요!"
순간 오송학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지금 뭐라 했소?"
"흥, 이제 와서 시치미를 떼겠다는 심사인가요?"
오송학이 그녀의 두 팔을 와락 움켜 쥐었다.
"지금 뭐라고 했는지 물었어!"
"어머..!"
갑작스런 대갈과 무섭게 굳어진 오송학의 표정에 단목청은기겁을 하고 말았다.
비로소 그녀는 오송학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다.
빙옥교는 오송학과 헤어져 개방으로 간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 즉시 이곳으로 돌아와 단목청에게 요난아를 맡긴 다음
자기 스스로 암흑마천에 잠입하기 위해 부랴부랴 차비를 갖추고 떠났던 것이다.
'제기랄...앞 뒤 콱 막힌 그 계집 때문에 하루라도 마음 편할 날이 없군...'
오송학은 절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물론 그는 빙옥교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왜 그녀가 스스로 마굴속으로 뛰어들었는지를...
오송학이 짊어지고 있는 짐이 너무도 크기에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그 짐을 나누어지려는 애틋한 여심(女心)임을..
허나 그러한 그녀의 마음을 알면서도 오송학은 화가 치밀었다.
그 이유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그녀를 누구보다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의 표정은 무겁게 굳어 있었다.
단목청은 오송학의 그러한 표정을 한 번도 대한적이 없는지라
더 이상 입을 열 엄두도 내지 못하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 * *
<친구,
자네를 갑자기 이렇게 부르고 싶어졌네.
자네는 오늘 또 한 번 죽을 수도 있었네.
이제 두 번.
세 번째는 어김없이 찾아가겠네.
자네의 목숨을 가지러...>
탕! 탕!
챙강- 챙강-!
대장간,
낙양의 외각에 자리한 볼품없는 조그만 대장간이다.
철노사(鐵老士),
그는 지금 화로(火爐) 앞에 쭈그리고 앉아
한 자루 소검(小劍)을 달구고 있는 금포인(錦袍人)을 바라보고 있었다.
금포인은 오늘 아침 날이 밝기도 전에 찾아와
철노사의 대장간을 하루 동안 전세를 내고 한자루의 검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으음...육십 년을 쇠와 함께 살아온 나보다도 장인(匠人)의 향기가 물씬 풍기고 있어..'
철노사는 금포인의 무아지경에 이른 모습에 연신 감탄을 자아내고 있었다.
그렇다.
금포인의 모습,
그것은 천년장공(千年匠工)의 향기, 바로 그것이었다.
자신의 손에 들려져 새빨갛게 달구어지고 있는
한자 길이의 소검과 한덩어리가 된듯한 모습인 것이다.
땅! 땅!
치이익! 치익!
검을 만드는 일련의 동작이 계속 이어졌다.
불에 달구었다가는 빼내어 두드리고, 그리고는 물에 담가 식히고,
다시 불에 달구고...
그 일련의 동작이 반복되는 작업 중에 그는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한올의 표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단지, 암울한 회색빛 기운만을 뽀얗게 피워 올리고 있었을 뿐...
그것은 검이 완성되면 될 수록 더욱 짙게 피워 올랐으며,
종족에는 철노사가 감아 버릴만큼 암울한 죽음의 기운으로 굳어졌다.
금포인이 작업을 마친 것은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고
땅거미가 자욱이 내려 앉기 시작한 저녁 무렵이었다.
불쑥!
금포인은 백광(白光)이 은은히 감도는 한 자 길이의 소검을 철노사 앞에 내밀었다.
"오오.. 진품(眞品)이로고..!"
철노사는 떨리는 손으로 소검을 받아들고 천천히 검신(劍身)을 쓰다듬었다.
"찬란함을 자랑치 않고, 그렇다고 투박하지도 않으며,
스스로 검명(劍鳴)을 토해내니...진정 명품이오이다.
헌데 애석하게도.."
금포인의 얄팍한 입술 새로 낙엽처럼 메마른 괴소가 흘러나온건 바로 그때였다.
"후훗..."
순간 철노사는 정신이 아찔했다.
자신의 피가 몽땅 빨려 나간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다음 순간,
어느 새인가?
철노사 자신조차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금포인의 손에 들려 있던 소검이
툭 퉁겨 올라 자신의 가슴을 짓쳐들었던 것이다.
칼날은 목마른듯 피를 흡수하고 있었다.
"크크크ㅋ... 바로 보셨소. 이 검에는 생명이 없었지. 생혈(生血)을 먹이지 않았거든.."
금포인은 불신의 눈을 크게 뜨고 쓰러져 가는 철노사의 가슴에서 검을 뽑았다.
순간,
휘류륭!
소검으로부터 금빛 광채가 찬란히 뿌려지는 것이 아닌가?
무색(無色)의 검이 철노사의 생혈을 흡수하고 금검(金劍)으로 변한 것이었다.
팅! 팅! 팅!
금포인은 금검을 손가락으로 퉁기며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크흐흣...금강불괴지신(金剛不壞之身)이라 해도 꿰뚫어 버릴 수 있다."
금포인은 성큼 대장간 문을 나섰다.
털썩..!
그제야 생명이 빠져나간 철노사의 몸이 대지(大地)를 향해 썩은 고송(古松)처럼 엎어졌다.
"사실 그는 그동안 두 번의 허점을 일부러 드러내 보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살수(殺手)를 펼칠 수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은 기필코 죽인다! 나 금비(金飛)가 만든 이 금검(金劍)으로.."
마치 즐거운 소풍을 떠나는 소년처럼 들뜬 음성이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그대는 오늘밤도 나를 유인하기 위해 스스로 허점을 드러낼 것이나..
단언하건대 이제는 안될 것이다."
금비는 칠흑처럼 어두워가는 밤거리로 나섰다.
이어, 그는 낙양성 북문(北門) 성 밖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낙양성 북문 밖,
이곳엔 십여 리에 걸쳐서 홍등가(紅燈街)가 펼쳐져 있었다.
온통 질펀한 색향(色香)으로 진동하는 곳,
자욱한 홍등불 아래 야화(夜花)가 하나 둘 피어나고,
술에 거나한 색(色)에 굶주린 사내들이 요염한 여인의 교성을 찾는 밤(夜)..
"하하하...!"
"호호호호..!"
언제나 그러했듯 음습하고 축축한 웃음이 야공(夜空)을 가르는 이곳에
한 사내가 밤과 함께 찾아들었다.
금포에 검집없는 금검을 손에 든
죽음처럼 암울한 기운을 전신에 은은히 드리운 인물,
금비였다.
그는 야화들의 요요로운 눈길을 받으며
방금전 술에 만취해 찾아온 한 백면서생(白面書生)이 들어간
목조건물(木造建物)을 향해 느릿하게 다가갔다.
우당탕!
"어이쿠...! 끄윽!"
앞서가던 백면서생은 문을 밀치더니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나뒹굴었다.
순간 계집은 두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
백면서생이 쓰러졌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문을 열기 무섭게 확 끼쳐든 지독한 술냄새 때문이었다.
"미친 놈...술에 만취했으면 집에나 갈 일이지 그래도 사내라고..."
계집은 경멸의 눈초리로 엎어져 일어날 줄 모르는 백면서생을 사납게 쏘아보았다.
계집은 제법 미모(美貌)를 지니고 있었다.
아니 계집의 자태는 홍등가의 여인이기엔 아깝다 싶을 정도로 빼어난 편이었다.
그것은 계집 스스로도 나름대로 자부하고 있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계집은 어느 정도의 자존심을 갖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내에게는 몸을 맡기지 않는다는..
한 마디로,
계집은 이곳 홍등가 내에서 도도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기녀였다.
백면서생을 사납게 쏘아보는 계집의 표정은 눈빛만큼이나 싸늘하게 굳어 들기 시작했다.
"나가!"
급기야 계집의 입에서 비단폭이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교갈이 터져나왔다.
그 교갈에 정신이 들었음인가?
"끄윽...! 나가...라고? 나가라면..나가야...지..."
백면서생은 말과 함께 상체를 반쯤 든 상태로 몸을 일으키려 안간힘을 썼다.
계집의 두 눈일 확 뜨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잘...생겼다! 저렇게 잘 생긴 사내는 처음 본다!'
백면서생은 몸을 일으키려 바둥거리고 있었다.
"누가..내 몸을 누르고 있는 거야? 끄윽...나가야 하니까 저리.. 비키라고.."
순간 계집이 그를 향해 쪼르르 다가갔다.
그녀의 얼굴 가득 떠올라 있는 것은 춘풍(春風)이 감도는 듯한 화사한 미소...
"호호호...소녀가 일으켜 드리지요, 공자님."
순식간에 완전히 돌변한 태도였다.
'놓칠 수 없어. 이런 남자라면 하룻 밤을 지내고 죽는다 해도 놓칠 수 없어!'
그녀는 백면서생을 낑낑대며 가까스로 일으켰다.
"자, 자... 이쪽으로 오세요."
백면서생은 거슴츠레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문...문이 어디 있지...? 나는 나가야 하는데.."
"호호호...소녀가 지금 안내해 드리고 있잖아요. 이쪽으로 오세요. 이쪽으로..."
그러나 말과는 달리 계집은 백면서생을 침상으로 이끌고 있었다.
방은 좁은지라 백면서생은 이내 침상으로 이끌려 갔다.
계집은 침상으로 이르자 백면서생을 와락 껴안았다.
순간 백면서생이 당혹성을 터뜨렸다.
"어어...? 왜 이래? 나는 나가야 한단 말이야."
"호호...그 무슨 섭섭한 말씀을.. 공자님은 오늘 밤 소녀와 함께 있어야 해요."
계집은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뜨거운 입술을 백면서생을 향해 내밀었다.
그녀는 이미 욕망에 불타올라 있었다.
백면서생이 기겁을 하고 그녀를 밀치려 했다.
"뭐야, 이거? 나가라고 할 땐 언제고.. 끄윽!"
"아니예요. 공자님께 나가라 한게 아니예요."
계집은 들뜬 음성으로 불어 내며 미친 듯이 백면서생의 품을 찾았다.
"안돼!"
백면서생은 완강히 그녀를 밀쳐내려 했다.
그럴수록 계집은 백면서생을 놓치지 않으려고...
엎치락 뒤치락...
두 남녀는 그런 상태로 팽팽히 맞서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실랑이를 벌였을까?
백면서생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네, 네가 지금 나를 겁탈하겠다는 것이냐...?"
"그게 아니예요, 공자님
. 소녀는 공자님께. 소녀의 모든 것을 바치려는 겁니다."
"너의 모든 것을...?"
"그래요. 소녀의 모든 것을.. 그러니 어서.."
계집의 팔이 백면서생의 목을 꽃뱀처럼 휘감았다.
바로 그때였다.
천정으로부터 한 줄기 금광(金光)이 번뜩인 것은,
번쩍!
허공에 이는 한 줄기 뇌전(雷電)이련가?
그 뇌전 속을 가르는 일섬 섬광(閃光)이련가?
빠르다.
그리고 가공하다.
그 금광의 종착지는 백면서생의 등,
아니 등도 좋고 머리도 좋다!
그저 아무 곳에나 내리꽂혀라!
그러면 되는 것이다!
"으아악-!"
비명과 함께 피가 튀어올랐다.
그리고 또 하나의 빛줄기!
파- 아-악!
한 줄기 혈광(血光)이 비명 속에서 번뜩였다.
다음 순간 천정으로부터 하나의 금빛 물체가 떨어져 내렸다.
쿵..
그것은 바로 금빛 검강을 쏘아낸 장본인이었다.
"크으윽...이런 일이...!"
죽음의 살수 금비는 흐릿한 시선을 들어 침상 옆 방구석을 바라보았다.
그곳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욕정에 불타 있던 계집이
팔에 피를 흘리며 경악에 찬 표정으로 처박혀 있었다.
금비의 시선이 이번엔 침상 위로 던져졌다.
침상 위엔 벽면서생이 한 자루 핏빛 혈검(血劍)을 손에 쥔 채 무심히 앉아 있었다.
금비의 시선을 받은 백면서생의 입이 담담하게 열렸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뒤집는 연습을 좀 했소.
허허실실(虛虛實實)의 묘(妙)를 연구했던 것이오."
"좋...아...훌륭해... 내가...졌네..."
금비는 들었던 시선마저 떨구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때에야 비로소 오송학은 침상에서 내려와 계집에게 한 덩이의 은자를 던져 주었다.
"상처를 치료해라. 그리고 이 자의 장례를 치뤄줄 것이라 믿는다."
"분부대로.."
계집은 말을 하며 턱을 덜덜 떨었다.
이미 욕정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녀는 문을 나서는 오송학을 잡을 엄두조차 내지도 못했다.
* * *
두두두두...
두두두두둑!
백대,
무려 일백대의 마차가 청해성(淸海省)과 신강성(新疆省)의 접경인
대석구(大石溝)에서 일제히 중원을 향해 출발했다.
백대의 마차는 모든 치장이 똑같았으며,
각 마차마다 각각 일천여에 달하는 범상치 않은 기도(氣道)의 인물들이
철통같은 호위를 하고 있었다.
<밀사일호(密使一號) 보고 드림.
습지 : 한치 오푼.
중지 : 반 치.
건지 : 바퀴자국만 남김.
<밀사오호(密使五號) 보고 드림.
습지 : 세 치
중지 : 두 치.
건지 : 반 치.
<밀사십육호(密使十六號) 보고 드림.
습지 : 다섯 치.
중지 : 세 치.
건지 : 한 치.
<밀사이십사호(密使二十四號) 보고 드림.
습지 : 두 치.
중지 : 한 치.
건지 : 이 푼.
<밀사육십이호(密使六十二號) 보고 드림.
습지 : 일곱 치.
중지 : 네 치.
건지 : 한 치 오 푼.
파다다다닥...!
전서구(傳書鳩)가 속속들이 날아들고 있었다.
오송학은 쌓이는 전서를 하나하나 예리하게 살피고 있었다.
지금까지 구십여 통의 전서를 받았으니 이제 십여 통의 전서가 더 날아들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받아온 전서엔 그가 기대하고 있는 내용이 없었으므로
앞으로 날아들 십여 통의 전서 중 하나가 진짜 보석을 실은 마차의 행방을 가르쳐 주리라.
만약 예측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면
황보노태야는 하루아침에 알거지로 변할 것이다.
그것은 또한 암흑마천의 자금처(資金處)인 구주대전장을 키워주는 결과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이 일은 기필코 성공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때 마지막 한 장 남은 전서를 읽어내리던 오송학의 눈에 한줄기 기광이 번뜩 뿜어졌다.
<밀사구십삼호(密使九十三號) 보고 드림.
습지 : 네 치.
중지 : 한 치 팔 푼.
건지 : 이 푼.
"바로 이 마차다!."
오송학은 재빨리 붓을 들었다.
이어 그는 한 장의 백지(白紙) 위에 빠르게 붓을 놀리기 시작했다.
<특령제이호(特令第二號)-
일단의 대의정천맹 정예(精銳)를 급파(急派)하여
밀사구십삼호가 추적하고 있는 마차를 강탈할 것.
추호의 실수도 있어서는 아니 됨.
대의정천맹주 친령(親令).>
내용을 다 적은 오송학의 입가에 신비로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황보노태야에게 축하인사를 건네야겠군..."
그로부터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났을 무렵,
전갈을 받은 황보노태야가 긴장 어린 표정으로 문을 들어섰다.
"갑자기 왜 나를 보자는 것인가?"
"술 한 잔 하기 위해서외다."
"술이라고...?"
"어서 앉으시지요."
"자네 지금 정신이 있나?
노부의 전 재산이 남의 수중(手中)에 들어가 있는 이때에 한가하게 술이라니."
황보노태야는 오송학의 맞은편에 털썩 주저 앉았다.
오송학은 빙그레 웃으며 그에게 잔을 내밀었다.
"구주대전장의 멸망을 기념하는 술인데도 말이오?"
"오오..그게 정말인가?"
"방금 전서구를 날려 보냈으니 한 시진 후 쯤이면 일이 벌어질 것이오."
오송학은 말을 하며 자신의 앞에 놓인 잔을 느릿하게 집어 들었다.
"보석을 실은 마차는 오늘밤 안으로 노태야에게되돌아 올 것이오.
그럼에도 노태야께선 구주대전장의 전 재력(財力)이 걸린 전표를 지니고 있으니,
구주대전장은 이미 멸망한 것이나 다름없소."
* * *
"이...이럴 수가...!"
백안귀재 여후량,
그의 신형이 쓰러질 듯 휘청이고 있었다.
방금 그에게 날아든 급보(急報),
그것은 진짜 보석을 실은 마차를 강탈당했다는 충격적인 보고였다.
도대체...
도대체 마차를 강탈해간 자들은 누구인가?
누구이기에 암흑마천의 일 천 명 고수를 전멸(全滅)시키고
마차를 강탈해간 것인가?
모른다.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분명한 것은 이제 구주대전장은 물론이고
자신 또한 파멸(破滅)이라는 사실이었다.
"크흐흐흣..."
백안귀재는 미친 사람처럼 웃다 말고
돌연 문 옆에 위치한 피발대제상을 향해 미친 듯이 몸을 날렸다.
퍼억!
그의 머리가 형체도 없이 박살나며 피(血)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것은 참으로 허망한 최후였다
. 야망(野望)을 꿈꾸다 스스로 자멸(自滅)의 나락 속으로 떨어진 백안귀재,
그는 그렇게 자신의 삶에 종지부를 찍었다.
* * *
밀실(密室)는 매우 넓고 어두웠다.
하나의 장식도 없는 썰렁한 장방형의 공간,
거대한 대리석 탁자가 밀실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고,
그 주위엔 정확히 칠십 이 명의 인물들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한결같이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무릎까지 덮인 흑포장삼(黑袍長衫)을 걸친
백발백염(白髮白髥)의 노인들이었다.
헌데,
실로 기이한 것은...
밀실은 손가락을 내밀어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둠속에 묻혀 있었는데,
흑포장삼을 걸친 노인들의 모습은
찬란한 태양 아래에서 보다도 더욱 더 확연하게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전신의 구석구석은 물론이요, 이목구비(耳目口鼻)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어둠 속에서 어둠으로 빛난다는 것이...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칠십 이 명의 노인의 몸에서 이는 기운은
그들은 감싸고 있는 암흑보다 더 짙은 빛깔이었다.
그렇다.
검다.
검어도 지독히 검었다.
일흔 두 개의 몸뚱이로부터 암울하게 회오리쳐 나오는 암흑의 기운!
암흑칠십이로(暗黑七十二老)
그 일흔 두 명의 노인들은 암흑마천의 최후 보루라 일컬어지는
암흑칠십이로라 불리워지고 있었다.
한 순간,
가장 위쪽의 상석에 앉아있던 노인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암흑의 율법(律法)은 본 암흑칠십이로의 천상암흑집회(天上暗黑集會)에서 결정되는 것..
실로 칠십 년 만이오."
그는 말을 하며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그를 따라하듯 나머지 칠십 일인의 노인도 눈을 떴다.
헌데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 칠십 이 쌍의 동공에서 뿜어지는 빛은 암울한 회색빛 일색일 뿐...
하나같이 무심으로 일관된 눈빛들이었다.
상석에 자리한 노인의 시선이 그의 정면 어둠 속에 늘어진 휘장을 향해 느릿하게 던져졌다.
"천주(天主), 본 천상암흑집회에서 결의되는 율법을 받아들이겠소?"
흑색 휘장에 미세한 떨림이 일었다.
"물론이오."
너무도 무심하여 한 올의 감정조차 찾아볼 수 없는 음성,
헌데 천주(天主)라 했는가?
당금 천하에 암흑마천주(暗黑魔天主)를 제외하고
그런 칭호로 불리워질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오..
신비(神秘)의 장막에 가려 있는 암흑마천의 최고 권력자,
헌데 참으로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순간 장내의 분위기는 그 절대자의 위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으니..
그렇다.
상암흑집회(天上暗黑集會)에서 결정되는 것은 곧 암흑의 법(法)이다
이 집회야말로 천주 이상의 권위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 집회는 암흑마천 자체가 큰 위기에 몰렸을 때만 소집되도록 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서 천주의 위상에 누가 될만한 큰 사건이 터졌을때만
상암흑집회는 그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리고 천상암흑집회에서 결정된 사항은 천주조차도 거부할 수가 없다.
이때 상석의 노인이 잔잔한 시선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암흑마천 제삼십이대(第三十二代) 천주의 탄핵에 관한
천상암흑집회를 시작하겠소.
이로(二老), 탄핵장을 낭독하시오."
순간 먼지마저 바스러뜨릴 듯 급격히 고조된 긴장감이 팽팽히 흐르는 가운데
탄핵장이 낭독되기 시작했다.
"칠월열여드레(七月十八日)..
본 암흑마천 남해(南海)의 전초 기지인 탈혼부(奪魂府)가 붕괴 되었다.
그 일에 천주의 넷째 제자가 연류되었다."
"팔월 초하루,
천하상권(天下商權) 정복의, 보루였던 구주대전장이 원인도 모르게 붕괴되었다.
이것은 율법을 무시한 죄 이전에 천주의 둘째 제자인
백안귀재의 무능이 소치라 사료된다."
"이상의 상기(上記) 사항을 종합해 보건데
삼십이대 천주는 곧 시작될 천하정복의 대업(大業)을 책임질 수 없는 부적격자로 판단,
천상암흑집회의 탄핵 대상으로 삼는다."
탄핵문의 낭독은 그렇게 끝났다.
"천주, 마지막으로 천주의 의견을 듣겠소."
상석의 노인은 냉정하게 휘장 속을 꿰뚫듯 바라보았다.
순간 휘장이 출렁이며 칼끝처럼 예리한 음성이 터져나왔다.
"없소! 모두 인정하오. 하지만..."
"칠십이로께선 이 점을 아셔야 할 것이오.
암흑마천 제이십육대(第二十六代) 천주께서 스스로 묶어 놓은
삼백 년의 금제(禁制)가 풀리는 날이 삼일(三日) 앞으로 다가 왔다는 것을..."
"으음...!"
"음...!"
천주의 단호한 음성에 암흑칠십이로의 입에서 동시에 묵직한 침음성이 터져나왔다.
천주의 음성은 계속 이어졌다.
"본좌는 분명 본천의 율법을 어겼소.
하지만, 그것은 진정으로 천하를 손에 넣기 위함이었소.
피와 살륙(殺戮)이 아닌 스스로 본천 앞에 무릎을 꿇게 하기 위한...
그러기 위해선 가급적 무모한 살상을 피해야 하오.
살상은 암흑마천 전체를 거부하게 만드는 원인일 뿐이기 때문이오."
천주의 음성은 계속 고조되고 있었다.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그의 말엔 확실한 신념이 서려 있었고, 그 보다 더한 자신감이 충만되고 있었다.
"그래서 본좌는 모든 과업의 근본이 되는 자금을 스스로 충당하려
구주대전장을 계획했던 것이오."
음성에는 어느새 음산한 마기(魔氣)가 묻어나고 있었다.
"허나, 그것은 어쩔 수 없었소
. 우리 중 누구도 예측치 못한 자가 나타났기 때문이오.
하지만 그도 결국 우리의 거대한 힘을 막을 수는 없소."
그 말이 막 끝난 순간이었다.
검은빛 휘장의 정중앙에 두 개의 암울한 핏빛 동공이 야광충(夜光蟲)처럼 투영되었다.
순간 장내 암흑칠십이로의 표정이 일제히 경악으로 물들었다.
"혈사신안(血邪神眼)!"
혈사신안(血邪神眼)이라 했는가?
바로 휘장의 장막마저 핏빛으로 투영시킨 그 동공을 일컬음 일진대..
"이제 앞으로 삼 일..삼 일 후면 천하는 암흑마천의 수중에 떨어지오.
비록 구주대전장이 무너져 계획에 다소의 차질은 생겼지만...
본좌는 이 일에 대비해 제이, 제삼의 계획을 수립해 놓았소."
"본좌의 명령이 떨어지면 본천 이십사로(二十四路)에서
특일령(特一令)으로 대기중인 사신(死神)들이 일제히 중원으로 진격해 들 것이오."
비록 음성 뿐이었지만 천주의 위엄은 삽시간에 장내를 압도하고 있었다.
"자, 이제 결정하시오.
허나 그대들의 결정과는 관계없이
본좌는 오늘 밤 안으로 유작을 척살할 것이오."
유작을 죽인다고 했다.
그 한마디는 암흑칠십이로의 흔들리던 마음에 새로운 기대를 안겨주기에 족한 것이었다.
상석의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장내를 쓸어보았다.
"지금부터 모두 의사표시를 해 주시오."
말과 함께 그는 손을 편채 탁자위에 내려놓았다.
그것은 곧 암흑마천주의 뜻에 따르겠다는 의사표시였다.
그러자 이내 나머지 노인들이 차례로 엄숙하게 손을 탁자위에 올려놓았다.
끝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는 노인들의 숫자는 불과 이 할도 되지 않았다.
상석의 노인은 위엄있는 어조로 단호하게 말했다.
"천상암흑집회의 이름으로
천주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졌음을 엄숙히 선포하는 바이오!"
첫댓글 즐독합니다
잘~~~감상~~~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ㅎㅎㅎ
잘읽었습니다
즐감
행복한 화요일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ㅈㄷㄱ~~~~~~~~~~~````````````````````
즐감~!
즐독
감사합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즐겁게 보고갑니다!
즐감합니다......
ㅈㄷㄳ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즐감
즐~감 하고 갑니다.
잘읽었습니다
즐감요~^^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해요
즐독입니다
즐독 하구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