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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설과 성악설은 사실 같은 말이다
교육학사 (2)
사실 우리가 논쟁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실제로 생각이 달라서라기보다는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에 대한 정의를 서로 다르게 하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맹자가 성선설을 이야기했고, 순자는 성악설을 이야기했다고 해서 우리는 쉬이 이 둘을 반대편에 놓지만, 사실 이 둘은 교육의 중요성과 필요성, 그리고 교육의 목적에 대해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먼저 맹자의 성선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다.
"맹자의 성선설은 도덕적으로 완성된 결정체로서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를 말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의미하는
성선설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해 있는 선할 수 있는 '가능성'과 '방향성'을 지닌 심리적 상태를 바탕으로 '성선'을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선할 수 있는' 가능성과 방향성은 외적 요인과 내적 요인에 의해서 언제든지
'불선(不善)'할 수 있는 방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수양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고
주어져 있는 선한 단서를 부단히 확충(擴充)해야만 한다. 이러한 확충은 수양을 통하여 가능하다
(남기호, 2013: 6)."
도덕적으로 완성된 결정체로서의 성선이 아닌, 선할 수 있는 ‘가능성’과 ‘방향성’으로서의 성선이라니. 선할 수 있는 ‘가능성’과 ‘방향성’은 그렇지 못할 ‘가능성’과 ‘방향성’을 내포한다. 이러한 점에서 맹자의 성선설은 사실 성선설이
아니라 ‘향선설’로 표현하는 것이 보다 적합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편 순자의 성악설도 자세히 보면 이러하다.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 그 선한 것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본래 사람의 본성은 나면서부터 이익만을 쫓아 사는 경향이 있다. 그런 까닭에 쟁탈이 생겨나고 사양함이 사라진다. 나면서부터 서로 미워하는 면이 있다. 그런 까닭에 잔악함이 생겨나고 믿음과 신뢰가 없어진다. … [중략] …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가르침과 법도에
의하여 심성이 좋아지고 예의를 갖출 줄 알게 되면 사양하는 마음이 생기며, 학문과 이치와 도덕에 합치하게
되어 질서 있는 삶을 살게 된다."
맹자의 성선설에 의하면 인간은 수양이 없이는 불선해질 수 있다. 다만 수양을 통해 선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에서 성선이다. 이러한 가능성의 의미라면, 순자의 성악설 또한 인간은 가르침과 법도에 의하여 심성이 좋아지고 예의를 갖출 수 있는, 즉 선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는다. 그러나 가르침과 법도가 없다면 역시 인간은 불선한 채로
남는다.
맹자와 순자가 인간 본성을 무엇이라고 보았든, 중요한 것은 모두 교육의 필요성 및 중요성에 대하여 시사하고 있고, 그 교육의 목적은 인간이 선하게 되도록 이끄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같은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있는 셈이다.
<참고문헌>
남기호(2013). 『孟子』의 修養論과 敎育的 實踐方案 교육문화연구, 19(3), 5-32.
조무남(2004). 교육학론. 학지사.
옮겨온 글 편집
첫댓글 맹자와 순자가 인간 본성을 무엇이라고 보았든, 중요한 것은 모두 교육의 필요성 및 중요성에 대하여 시사하고
교육의 목적은 인간이 선하게 되도록 이끄는 것이라고 생각되니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도 같은 맥락에서 수양을 통하여 선할수가 있다는 것으로 보아야 겠군요,
좋은 글 잘 읽고 이해 하였습니다.
학교에서 배울 때는 맹자는 성선설,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한다고 알았는데, 사실은 같은 말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고 다른 동문님들께
소개할려고 글을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