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멸망과 조선 건국은 요동정벌이 위화도 회군으로 무산되면서 생겨난 일이었습니다만, 정도전은 조선 건국 후, 요동정벌을 명분으로 사병을 혁파하고 군사력을 삼군부에 집중시킵니다. 그리고 사병 혁파가 어느 정도 진전되자 그가 안심한 것을 노린 정안군 이방원의 쿠데타(제1차 왕자의 난)로 인해 죽죠. 정도전의 요동정벌 계획이 사병 혁파를 위한 핑계에 불과했는지, 아니면 정말로 요동 정벌을 노린 것인지에 대해선 논란이 많지만, 최소한 제1차 왕자의 난 이전까지-죽기 전까지- 삼군부의 진법 훈련 등을 통해 전쟁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기록은 남아있습니다. 그럼 정도전은 실제 역사에서는 제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직후에 요동정벌을 기획했다고 추정할 수 있죠.
그런데 정도전의 사망일자는 1398년 8월 26일입니다. 왜 이걸 얘기하냐 하면...
명나라 홍무제 주원장의 사망일자가 1398년 5월 10일, 그리고 건문제가 즉위하죠. 건문제는 지방의 왕들을 견제하는 삭번정책을 추진하는데, 이를 주도한 황자징과 제태가 등용된 게 1398년 6월, 그리고 주왕 주숙, 민왕 주편, 대왕 주계, 제왕 주부, 상왕 주백등이 신속하게 숙청됩니다. 이에 현재 북경 인근을 지배하던 연왕 주체가 반란을 일으키는데, 그게 1398년 8월 6일입니다. 연왕 주체는 휘하 병력을 모조리 쥐어짜서 겨우겨우 압도적인 진압군을 격퇴하다가, 최후의 한방러쉬를 감행해 남경을 함락시키고 황제가 됩니다. 그리고 이 반란(정난의 변)은 1402년까지 계속됩니다.
정도전이 1398년 8월 26일 직후에 요동정벌을 실행했다면, 그 시점에 명나라는 내전에 빠져 있었을 것이며, 그건 4년동안 계속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지리적으로 따지면 요동이 함락되었을 경우 명나라 측에서 지원 병력은 1차적으로 북경의 병력일 수밖에 없고, 이후의 지원군도 무조건 북경 인근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지역을 담당하는 연왕 주체는 진압군 물량에 밀려서 요동같은 데 보내줄 병력 같은거 없던 상황(...) 건문제의 남경 조정은 병력이야 있지만, 요동에 보낼 방법이 마땅찮구요(...) 게다가 북경이 요동을 1차적으로 지원할 정도라는 건, 요동이 북경을 위협하거나 지원하기도 쉽다는 뜻입니다. 곧, 정난의 변 시점에 조선이 요동을 점령하고 상당한 병력을 주둔하고 있다면, 정난의 변 전체의 향방을 좌우할 가능성까지 충분합니다(...)
물론 군사적/외교적으로 어지간히 잘하지 않는다면 뒷일이 말도 못하게 골치였을 거라는 건 바뀌지 않겠습니다만, 나하추가 항복(1387년)하고 북원 조정이 전멸(1388년 3월)당한 바로 그 시점에 시행된 최영의 요동정벌(위화도 회군은 1388년 5월 22일)과는 상황이 극히 대조적이라는 건 주목할만 한 듯 싶습니다.
그담엔 영락제한테 완전 개털리겠죠.
동감 점령은 해도 유지는 절대 못 했을 것이고 오히려 기회주의자로 몰려 고려 시대 영토로 돌아갔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