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4. 유낙준주교
우리에게 에덴동산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
“에덴에서 강 하나가 흘러나와 그 동산을 적신 다음 네 줄기로 갈라졌다(창세2:10). A stream flowed in Eden and watered the garden; beyond Eden it devided into four rivers.” 에덴에서 흘러나온 첫째 강줄기가 비혼 Pishon강, 둘째 강줄기가 기혼 Gihon강이고 셋째 강줄기가 티그리스 Tigris 강이고 넷째 강줄기가 유프라테스 Euphrates강입니다. 그렇다면 에덴의 위치는 현재 터키 동부지역 아타투르크 댐이 있는 호수근처의 아르매니아 산맥 또는 호수남쪽의 가지안테프 Gaziantep 또는 시리아 북부지역 두 강이 흐르는 사이의 지역을 상상해 봅니다. 이 지역의 어딘가가 분명히 에덴이라고 부른 땅이 있었을 것입니다. 인간을 위해 하느님이 세우신 최초의 도시가 에덴동산이라면 그곳은 거룩한 땅인 것은 분명합니다. 런던의 댐즈강 남부지역은 성공회 서덕교구라고 부르는데 서덕 교구장인 크리스토퍼 채순주교님이 거룩한 땅을 다녀오셨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작년 8월에 있었던 람베스주교회의때 시리아 주교를 소개를 받아서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 시리아 정교회 주교님의 안내로 거룩한 땅을 여행하실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에덴동산과 하란에서의 아브라함의 흔적 등이 떠올랐습니다. 인류 공동의 집인 지구에 하느님이 세우신 에덴이라는 도시는 그리스도인이 가장 가보고 싶은 도시일 것입니다.
제게 에덴은 큰 내가 흐르는 천안의 남관리입니다. 여름이면 큰 내에서 멱을 감고 놀고 물고기를 맨손으로 잡아 햇볕에 말려 오후 늦게 그 말린 고기를 집으로 가져옵니다. 저녁준비를 하시는 어머니가 그 물고기를 요리하셔서 저녁의 아버지 밥상에 올려 식구들이 밥상주위에 앉아 함께 밥을 먹습니다. 아버지께서 잘 잡수시는 것을 보면 참으로 기뻤습니다. 부엌에서 쓸 나무들은 퇴봉산에 지게와 낫을 가지고 가서 해 오곤 했습니다. 밥 지을 나무를 하고 방을 따스하게 할 나무를 하는 것이 참으로 기뻤습니다. 물론 산 주인이 나타나면 도망치기 일쑤였지만 산지기가 사라지면 다시 나무를 해 가지고 집에 오곤 했습니다. 바로 아래 동생과 함께 땔나무를 한짐 지게로 가득 해 가지고 오는 날과 물고기를 잡은 날이면 어머니의 얼굴이 밝아지셨고 아버지가 좋아하셨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동생과 저는 할 일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기뻤습니다. 저녁때 식구들이 모두 모여 한 상에서 밥을 먹는 것이 바로 에덴동산이었습니다. 식구들은 가난하기에 서로에게 무방비 상태로 만나기에 취약한 것이 보이면 서로를 메꾸어 주고자 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에 젖으신 멋있는 원본에 저희들은 아버지의 복사본이고자 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힘을 다하여 자녀들에게 한량없는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제게 아버지는 하느님이셨고 교회에 나가 하느님을 믿는 데에는 어떤 장애물이 없었고 아주 자연스러웠던 것입니다. 아버지처럼 사랑을 하면서 살면 하느님이 기뻐하실 것이라는 생각을 잊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안방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와 동생들이 자는데 웃방에 자는 우리가 안방에 가서 오남매가와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한 이불을 덮고 살았던 기억이 제게는 가장 복된 기억입니다. 하느님 아버지는 그렇게 우리 식구들과 한방에서 자고 살고 밥을 잡수시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지금도 하느님 아버지는 저희들과 한 식구가 되셔서 살아 움직이신다는 것이 제게는 아주 자연스운 것입니다.
“야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이라는 곳에 동산을 마련하시고 당신께서 빚어 만드신 사람을 그리로 데려다가 살게 하셨다(창세2:8).” 에덴은 수메르어로는 ‘에디누’로 ‘평원’이라는 뜻입니다. 이곳 에덴에서 네 곳의 강이 시작되니 높은 곳의 평원인 에덴일 것입니다. 그곳 에덴 동산의 이야기는 인간이 죄없는 행복한 삶에서 죄와 불행과 죽음을 아는 인간으로 어떻게 나아가는가의 신화적 주제를 신학적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이상향에서 현실의 지금을 바로 인식하게 한 곳으로의 이동이 낙원에서 실낙원으로의 이야기입니다. 현실을 직시하는 에덴동산의 이야기는 선한 마음을 현실에서 어떻게 지니며 살지에 대한 거듭된 생각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초등학교 일학년때 교실에서 일이었습니다. 교실 뒤에 있는 교구탁자에 끼인 큰 유리를 책상 위에 의자를 놓고 청소를 하다가 의자가 떨어져 깨진 것입니다. 높이가 70센티미터 너비가 40센티미터가 되는 정도의 유리였습니다. 저는 그 유리값을 치를 돈이 없었기에 마음을 졸이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유리값을 마련할지 그 대책이 서질 않자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때 반장하던 동무가 수도상수원의 사택에서 살았는데 그 수도원에 커다란 유리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동무의 안내로 수도원에 들어가 큰 유리를 가져다가 학교 교실 뒤에 갖다 놓았습니다. 제가 책상 아래를 걸래로 엎드려 닦다가 일어서는 바람에 의자가 떨어져 유리창이 깨진 것이니 제 실수로 유리창이 깨진 것입니다. 그 유리창 값을 집이 가난한 것을 아는 저로서는 유리값을 달랠 수가 없었는데 반장 동무의 도움으로 큰 유리를 교실 뒤에 갖다 놓게 된 것입니다. 그 동무는 다음 해에 전학을 갔고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고 지금까지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반장 동무의 도움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 반장 동무가 저를 도와주었으니 하느님께서 그 반장 동무를 잘 돌봐주셨으리라 믿습니다. 반장 동무의 도움을 받았으니 나도 그 반장 동무처럼 다른 사람의 실수를 덮어주는 동무가 되길 원했습니다. 그 길을 하느님이 원하시고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으면 그 길로 걸어갈 것이라 여겼습니다. 하느님은 저를 집이라는 에덴동산에서 주일학교를 하는 교회라는 에덴동산으로 데려다 주셨습니다.
“야훼 하느님께서는 보기 좋고 맛있는 열매를 맺는 온갖 나무를 그 땅에서 돋아나게 하셨다. 또 동산 한가운데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돋아나게 하셨다(창세2:9).” 하느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아름다운 모든 종류의 나무들을 만드시고 그 나무들에서 좋은 열매들을 열리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먹고 자라난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이 주시는 알지 못하는 좋은 열매까지 주십니다. 시멘트벽돌을 어른들이 찍고 나르고 나면 그 벽돌에 물을 주는 일을 초등학교의 방과후에 동무들과 하곤 했습니다. 물을 주는 일 덕분에 돈이 생기면 그 돈으로 공책을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게 돈을 준 분이 제 아버지께 ‘일한 값으로 공책을 산 당신의 아들’이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아버지께 참으로 창피했었습니다. 공책을 산 것을 아버지가 모르시길 바랬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제 공책을 사 주시지 못해 슬퍼하실까봐 그랬던 것입니다. 아버지 모르게 일하면서 공부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파한 후에 집에 오는 큰길로 오지 않고 조금 먼 뚝방길로 오면 주머니칼로 쑥을 뜯을 수가 있었습니다. 동무들이 보지 않는 뚝방길로 오면서 쑥을 뜯어 집에 갖고 오면 어머니께서 쑥버무리를 해 주셔서 아버지께 드리고 저는 동생들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똑방길에 많은 나물들을 주셨고 제 주머니칼은 그 나물들을 캐서 간식으로 먹기도 하고 반찬으로 먹기도 했습니다. 가만히 보니 제 동생이 더 그런 일을 잘 했습니다. 지금도 어머니를 잘 모시는데는 저보다도 제 아우가 잘 합니다.
“야훼 하느님께서는 가죽옷을 만들어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입혀주셨다(창세3:20).” 가죽옷은 동물이 죽어야만 얻는 것입니다. 아담이 동물들을 죽여서 아내에게 가죽옷을 입혀준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최초의 인간이 그런 살생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느님은 가지셨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가죽옷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인간에게 가죽옷을 하느님이 입혀주시기에 인간은 옷 걱정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마태오6:31).”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십니다. 옷 걱정을 할 때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곤 해 저는 옷 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교복이 없거든 지금 입는 옷을 입고 다니면 될 것인데 꼭 교복을 입어야 학교에 다닌다는 학교가 참으로 이상하게 보였습니다. 대다수 학생들이 엘리트 고급옷감으로 교복을 했는데 저는 싼 값의 데드롱이라는 옷감으로 교복을 만들었습니다. 엘리트교복은 확실한 검정색이라면 데르롱 교복은 흰색처럼 느끼는 검정교복이어서 눈에 띄었습니다. 공부만 하면 학생이지 좋은 교복과 좋지 않은 교복으로 분리하는 것이 뭔가 잘못된 배움이라고 여겼습니다. 저는 중학 입학 때 그 옷을 크게 해서 고등학교 일학년까지 입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옷 걱정은 하지 않는 습관이 생겼고 교회예복까지도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겠다 싶어 전례생활에 맞는 예복을 거룩하게 입게 되었습니다. 요즈음에 커플티를 입어 부부애를 더 돈독하게 하려는 생활풍습이 있는데 하느님께서도 첫 부부를 커플티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옷은 걱정하질 말라. 하느님이 네가 입을 옷을 준비하셨으니까." 그러니까 무슨 직책을 가질까도 걱정하질 말라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그 직위에 맞는 사람을 하느님이 앉혀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어할 옷과 직위는 하느님이 이미 정해 놓아 주셨으니 우리가 맡은 일을 매진하면 될 일입니다. 그러니 전적으로 하느님께 우리의 운명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 일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