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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가 또 울린다. 재난 문자다. 폭염이 극심하니 야외활동을 자제하라고 한다. 비가 오면 하천 주변에 가지 말라고 한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문자를 읽지만 비슷한 문자가 반복되면 어느 순간 화면을 열어보지도 않는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 재난 문자가 많아질수록 국민이 더 안전해지는가 하는 문제다.
재난 문자의 목적은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많은 문자는 어떻게 보내지고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혹시 많이 보낼수록 이동통신사가 돈을 버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도 생긴다.
재난 문자는 일반 SMS를 수백만 명에게 한 통씩 보내는 방식과 다르다. CBS(Cell Broadcasting Service)를 이용해 특정 지역의 이동통신 기지국을 통해 동시에 경보를 전달한다. 따라서 수신자 수만큼 이동통신사가 문자 요금을 챙기는 구조라고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누가 돈을 버느냐보다 이 시스템이 국민을 얼마나 안전하게 만들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휴대전화는 내 위치를 알고 내비게이션은 교통상황을 파악해 우회로까지 찾아준다. 그런데 생명이 걸린 재난 앞에서는 여전히 ‘폭염경보가 발효 중입니다’
‘야외활동을 자제하십시오’ ‘하천 주변 접근을 삼가십시오’ 같은 포괄적인 문장이 반복된다. 산속에 있는 사람에게 하천 주변 접근을 삼가라고 한다. 그러니 포괄적으로 보내지는 재난문자가 무시당할 수밖에 없다.
이제 재난 문자도 달라져야 한다. ‘○○시 호우경보’보다 ‘○○천 수위 30분간 40㎝ 상승. ○○동 저지대 주민은 지금 ○○초등학교로 대피하십시오’ 가 더 유용하다.
‘폭염경보 발효 중’보다 ‘오늘 오후 2~5시 체감온도 38도 예상. 가까운 무더위쉼터 420m’ 가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재난은 행정구역의 경계를 따라 발생하지 않는다. 같은 시(市)에서도 한쪽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을 수 있다.
넓은 지역에 비슷한 경보를 반복하면 사람들은 결국 무감각해진다. 이른바 ‘경보 피로’다. 더 두려운 것은 정말 위험한 순간의 문자마저 ‘또 그 문자겠지’ 하고 넘겨버리는 것이다.
재난문자 행정의 평가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몇 건을 발송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정확한 지역에, 얼마나 빨리 보냈고 실제 안전행동으로 이어졌는지를 평가해야 한다.
문자를 누르면 현재 위치를 기준으로 위험지역과 가까운 대피소, 안전한 이동경로까지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일반 안전 안내와 즉시 대피 경보는 소리와 진동부터 달라야 한다.
반복해서 보낼 때도 같은 내용을 되풀이하기보다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예를 들면 ‘호우경보 지속’보다 ‘한 시간 전보다 하천 수위 60㎝ 상승. 즉시 대피하십시오’ 가 낫다. 재난 문자가 행정기관이 ‘우리는 알렸다’고 책임을 다했다는 증명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에게 귀찮은 스팸처럼 여겨져서도 안 된다.
첨단 이동통신망을 가진 대한민국이라면 이제 ‘많이 보내는 재난문자’에서 ‘정확하게 도착하는 재난정보’로 넘어갈 때가 됐다.
재난 문자의 성과는 발송 건수가 아니다. 몇 사람에게 보냈느냐가 아니라 몇 사람을 위험에서 벗어나게 했느냐가 재난경보의 성적표가 되어야 한다.
재난 문자는 행정의 알림장이 아니다. 위기의 순간 사람을 움직이고, 사람을 살리는 구조신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