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불이(師弟不二)의 공전보(共戰譜)
'소설《신ㆍ인간혁명》과 함께 걷는다' 64 ~ 89p중에서
제1회 오키나와
창가학회 '정신의 정사(正史)'인 소설《신ㆍ인간혁명》은 2018년 9월 8일로
전 30권 연재를 완결하고, 11월 18일에 제30권(하)를 발간했다.
이번 호부터 '사제불이(師弟不二)의 공전보(共戰譜) ㅡ 소설《신ㆍ인간혁명》
과 함께 걷는다'라는 제목으로, 소설의 배경이 된 무대를 지역별로 소개한다.
제1회는 영원한 '평화의 낙토(樂土)' 건설을 목표로 하는 오키나와로,
불굴의 혼이 불타는 천지에 대한
광포 스승의 마음에 다가간다.
소설《신ㆍ인간혁명》 제2권 '선구'에는, 야마모토 신이치 회장이 오키나와를
처음 방문하는 모습이 씌어 있다. 이케다(池田) 선생님은 이 장면을 쓰면서
오키나와를 이렇게 표현했다. "슬픈 역사에 맞서 일어선 웅혼(雄渾)의 사람
들이 있는 오키나와 천지"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와, 전쟁이 끝난 뒤에
오키나와가 겪은 비극적인 역사를 언급하고 진심을 이렇게 썼다.
"신이치는 그 '우루마섬'의 숙명을 전환하고 영원한 낙토(樂土)를 건설하기
위해, 지부를 결성할 것을 깊고 강하게 결의하고 있었다."
장면은 1960년 7월 16일, 신이치가 제3대 회장에 취임한 지 불과 두달 반이
지난 뒤다. 기이하게도 이날은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이 <입정안국론>
으로 국주간효(國主諫曉)를 하신 1260년 7월 16일로부터 정확히 700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미국이 인류 최초로 원폭실험에 성공한 날도
1945년 7월 16일이었다. 당시 미국은 핵미사일을 오키나와에 차례차례 배치
하려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이치의 첫 방문이 이루어졌다.
신이치는 이렇게 생각했다. "전쟁으로 괴로워하며 불행한 역사를 새겨 온
이 오키나와 사람들이 '진정한 불법'으로 구제된다면, 그것은 전 일본(전 세계)
민중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증명으로 될 것이다." (제2권 '선구')
어떠한 숙명과 고난의 폭풍우에도 절대 굴하지 않고 맞서, 행복의 실증을
나타낸다. 그리고 끊임없이 전 세계에 희망의 빛을 보낸다. 그것은
광포의 스승이 오키나와에 거는 기대이자 오키나와의 깊은 사명이기도 했다.
당시 오키나와는 여전히 미국의 통치 아래 있었다. 일본 본토에서 건너갈
때도 '여권'이 필요한 '외국'이었다. 신이치를 태운 비행기가 나하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선구'에서 이 첫걸음을 내딛는 장면이 '세이쿄신문'에 실린 날은
기이하게도 1994년 7월 16일이었다. 특히 오키나와 초창기 벗은 이케다 선생
님이 34년 전, 오키나와를 처음 방문한 때를 떠올리며 깊은 감회에 젖어 읽었
을 것이다. 신이치가 트랩에 모습을 나타내자, 공항터미널에 모여 있던 동지
200여명은 환호성을 질렀다. 신이치가 로비에 도착하자, 오키나와지구부장인
다카미 후쿠야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키나와 광포의 한 톨의 씨앗인 다카미
는 신심을 확신하고, 사랑하는 천지의 숙명전환을 위해 홍교에 매진했다.
조상을 신으로 숭배하는 조상신앙이 뿌리 깊은 데다, 일본 본토에 대한 불신도
강했다. '야마톤추(일본 본토 사람)의 신 따위를 믿을 수 없다'는 말을 셀 수
없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끈기 있게 거듭 대화해, 동지는 점점 늘어났다.
신이치가 회장에 취임하자 다카미는 신이치의 오키나와 방문을 진지하게
기원하기 시작했다. 오키나와 전역을 뛰어다니며 분기하자고 외쳤다.
그 결과 상반기 홍교에서 오키나와지구는 전국 최고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 파동 속에서 신이치를 맞이했다. "신이치가 오키나와 땅을 밟는 순간의
다카미의 기쁨은 필설로 다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선생님, 어서 오십
시오….' 라고 말한 채, 목이 메여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활동 하겠습니다. 3일 동안 3년분의 활동을 하겠습니다.'
신이치는 이렇게 말하며 다카미의 어깨를 다독거렸다." (제2권 '선구')
이 대화에는 사제(師弟) 정신이 응축되어 있다. '홀로 서는 정신'을 불태우며
내 사명의 무대를 적광토(寂光土)로 만들기 위해 달리면서, 승리한 모습으로
광포의 스승을 맞이한 제자들. 제자의 분투와 진심에, 그 몇 배나 되는
격투와 성실함으로 답하는 스승. 신이치와 다카미가 나눈 대화는 짧았지만,
거기에는 영원한 사제의 유대가 있었다. 제자의 감사와 결의가 있고,
스승의 신뢰와 격려가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오키나와 방문에서
새로운 세계광포의 흐름이 탄생했다.
신이치는 이 오키나와 방문에서 오키나와지부 결성을 제안했다.
지부장에는 다카미, 지부부인부장에는 우에마 다마코를 임명하고, 이튿날
17일에 오키나와지부 결성대회를 개최했다. 18일, 신이치 일행은 현지의
동지 대표와 함께 오키나와전투라는 비극을 새긴 남부의 전적지(戰跡地)를
시찰했다. 이케다 선생님은 그 모습을 써내려 가면서 오키나와전투의 비참함
을 상세히 써서 남겼다. 본토의 '총알받이'가 되어 막대한 희생을 강요당한
오키나와는 '온갖 지옥을 다 모아 놓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처참하기 그지
없었다. 그러한 사실을 오키나와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알고, 평화를 위한
투쟁을 결의한다. 바로 거기에 집필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선구'에서는 오키나와전투의 비극을 통해, 신이치가 은사의 투쟁을 생각하는
장면이 씌어 있다. "은사 도다 조세이가 생전에 '이제 두번 다시 전쟁을 일으
켜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맹세하고 나는 패전(敗戰)으로 불타 버린 들판에
홀로 선 거라네'라고 자주 이야기했던 기억을, 신이치는 떠올리고 있었다.
실로 도다의 생애는 그 잔혹하기 짝이 없는 전쟁을 수행하려는 '권력의 마성'
과 맞선 장절한 투쟁이었다." "도다가 일으킨 싸움은 인간의 생명에 있는
'마성(魔性)의 손톱'을 뽑아 버리고, 한사람 한사람의 흉중에 평화의 요새를
일으켜 세우는 싸움이었다. 그 파도는 일파가 만파를 일으키듯, 도다의 만년
에는 염원하던 75만 세대의 민중이라는 평화의 물결이 되어 전국 방방곡곡
으로 넓혀진 것이다."
"지금 도다 조세이가 일으킨 평화의 대조류는 '통곡의 섬' 오키나와까지도
넓혀져 벗들의 환희는 금파(金波)가 되고, 벗들의 희망은 은파(銀波)가
되었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그 은사의 위업을 영원히 전해 남기기 위해,
이전부터 구상하고 있던 도다의 전기(傳記)라고 해야 할 소설을 빨리 시작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신이치는 도다의 6주기를 대승리로 장식
하였고, 이윽고 그 원고의 펜을 들기 위한 장소로 이 오키나와의 천지가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하고 문득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신이치는 오키나와의 사명을 강조했다.
"일찍이 쇼타이큐 왕은 류큐를 세계의 가교로 하여 '만국진량(萬國津梁)의
종'을 만들어 슈리성의 정전(正殿)에 달았다. 오키나와에는 평화의 혼이
있다. 그 평화의 혼으로 세계의 가교를 구축하는 선구가 되는 것이 여러분의
사명이다." "오키나와는 광선유포의 '요충지'이다. 이 아름다운 천지를
영원한 평화의 요새로 만들어 가자. 불법에는 삼변토전(三變土田)이라는
원리가 있네. 그곳에 사는 사람의 경애가 바뀌면 국토도 바뀐다.
가장 비참한 전쟁터였던 이 오키나와를, 가장 행복한 사회로 바꾸어 가는
것이 우리들의 싸움이다. 합시다, 힘을 합쳐."
제3권 '불법서환'에서는 '오키나와 건아의 노래'가 탄생해, 동지들을 고무하는
모습을 소개했다. 제4권 '청엽'에서는 10개월 만에 오키나와를 방문해 오키
나와 총지부 결성대회를 개최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제6권 '젊은 독수리'
에서는 1962년 7월 17일부터 사흘간에 걸친 오키나와 지도가 씌어 있다.
세번째 방문인 이때, 오키나와 본부의 낙성식과 간부 임명식(18일)을 거행
했다. 임명식이 끝나자 신이치는 오키나와 본부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옥상에 설치한 연단에 올라가, 바깥에 모여 있는 멤버들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오키나와는 저 태평양 전쟁 때, 본토를 방어하기 위한 방패막이가
되어 많은 분이 희생되셨습니다. 그러나 창가학회가 추진하는 광선유포의
싸움에는 어느 누구도, 또 한 사람도 희생되는 일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마지막에는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이 니치렌대성인의 불법입니다. 즐겁고
유쾌하게 행복을 만끽하며, 이 오키나와를 낙토로 바꾸어 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신이치의 지휘로 '오키나와 건아의 노래'를 합창했다.
기쁨이 넘치는 벗의 노랫소리가 오키나와 하늘에 울려 퍼졌다.
제9권 '중망'에서는 드디어 신이치가 소설《인간혁명》집필을 시작한다.
1964년 12월 1일, 신이치는 오키나와 본부 강당에서 개최한 지구부장회에
참석해 격려를 보냈다. 이튿날 2일 아침, 신이치는 오키나와 본부 2층
다다미방의 책상 앞에 앉았다. 책상 위에는 400자 원고지가 놓여 있었다.
여기서 신이치는 은사의 전기(傳記)를 집필하기에 이르기까지 지난 세월을
돌이켜본다. "생각해보면 신이치가 도다의 생애를 써서 남기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19세 때로, 입회한 지 3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군부 정부(軍部政府)의 탄압에 맞서 싸우다 투옥당했지만, 오히려 신념을
관철하여 '민중 구제'를 위해 일어섰던 '도다 조세이'라는 걸출한 지도자를
알게 된 신이치의 감동은 너무도 컸다. 신이치는 '나의 생애의 스승으로
정한 도다 선생님을 사회에, 후세에 널리 전해 가야만 한다'고 깊이 결의하고
있었다. 그때 불길처럼 솟구쳤던 마음은, 생명을 다하여 사제(師弟)라는
존귀한 공전(共戰)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맹세가 되어
갔다.
1951년의 봄이었다.
신이치는 도다가 묘오공(妙悟空)이라는 필명으로 세이쿄신문에 연재하기로
한 소설《인간혁명》의 원고를 그에게 보여 주었을 때, '언젠가 이 속편이
될 만한 도다 선생님의 전기(傳記)를 내가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직감
했다. 더욱이 3년 남짓 지난 1954년 여름, 도다와 함께 스승의 고향인
홋카이도 아쓰타무라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신이치는 아쓰타 항(港)의
방파제에 서서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아쓰타의 해변을 보면서 도다의
인생 여정을 읊은 <아쓰타무라>라는 제목의 시를 지었다. 그때 자신이
'도다 선생님의 전기를 반드시 써서 남기겠다'고 새삼 마음속으로 맹세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3년 후인 8월, 신이치는 도다와 함께 가루이자와에서 추억
의 한때를 보냈다. 스승이 서거하기 8개월 전의 일이었다. 거기서 발간된
지 얼마 안 된 도다의 소설《인간혁명》(묘오공 저)이 화제가 되었다.
도다는 부끄러운 듯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키구치 선생님에 대해서는 쓸 수 있어도, 나에 대해 일일이 글로 표현
하려니 부끄러워서 할 수 없더군.' 그러한 스승의 말은 깊고 강하게
신이치의 가슴속을 찌르는 듯 와 닿았다. 도다 조세이의 《인간혁명》은
도다의 분신(分身)이라고 할 주인공 '간(巖)씨'가 옥중에서 광선유포를 위해
자기 생애를 바치자고 결의하면서 끝난다. 그 다음의 실천에 대해 도다는
아무것도 써서 남기려 하지 않았다. 야마모토 신이치는 이 가루이자와에서
나눈 대화 속에서, 광선유포에 홀로 일어선 도다의 출옥 후의 행적을 '속
《인간혁명》'에서 이어서 써 줄 것을 스승은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1964년 4월 도다의 6주기 법요 자리에서, 드디어 소설《인간혁명》
집필을 시작하겠다고 깊은 결의를 담아 발표했던 것이다."
그리고 신이치가 첫 원고를 오키나와에서 쓰기로 한 이유가 씌어 있다.
"《인간혁명》은 도다를 중심으로 한 창가학회 광선유포의 행보(行步)를
쓰는 소설이 되겠지만, 그것은 가장 근원적인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건설해
가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테마는 '한 인간의 위대한 인간혁명은 이윽고
한 나라의 숙명도 전환하고, 나아가 전 인류의 숙명전환도 가능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전쟁의 괴로움을 가장 많이 겪은 사람들이 고뇌해 온
천지에서 그 《인간혁명》의 첫 원고를 쓰자는 결의를 하고, 신이치는
오키나와의 땅을 선택했다." 오키나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비참한 지상전
(地上戰)이 벌어진 비극의 섬이며, 전쟁이 끝난 뒤에도 미국의 통치를 받으며
미군 기지가 된 섬이다. 중거리탄도미사일 메스B 기지도 설치하고, 원자력
잠수함의 보급 기지로서도 중요시했다. 신이치는 괴로움이 끊이지 않는
이 오키나와에서, 행복과 평화의 물결을 넓히자고 결심했다.
이케다 선생님은 수필 '신ㆍ인간혁명'에도 오키나와에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한 심정을 적었다. "오키나와는, 비열하고 어리석은 지도자들의 책략에
희생되었다. 오키나와만큼 평화를 바라면서도, 그와 정반대로 끊임없이
피눈물을 흘린 비극적인 역사의 발자취를 새긴 땅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영원에 걸친 절대적 평화를 향한 서원을 담아, 진심으로 사랑하는
오키나와 천지에서 소설《인간혁명》집필을 시작했다."
제9권 '중망'에서도 신이치가 서두의 첫 구절을 집필하는 모습이 씌어 있다.
신이치는 오키나와 첫 방문에서 '히메유리탑'과 '건아의 탑' 등 남부의 전적지
를 시찰한 기억을 떠올리며 깊이 사색했다. 그리고 거침없이 써내려 갔다.
"전쟁만큼 잔혹한 것은 없다.
전쟁만큼 비참한 것은 없다.
그러나 그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 구절을 읽고 많은 독자가 충격을 받았다. 오키나와의 어느 벗은, 당시의
상황과 겹쳐져 '마치 오키나와를 말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느꼈다.
소설《인간혁명》은 서두부터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동시대성을
띤 필치로 써내려 갔다. 그것은 소설《신ㆍ인간혁명》도 마찬가지다.
이케다 선생님은 은사의 전기와, 자신의 세계광포를 향한 투쟁을 '소설'의
형식으로 남겼다. 그렇기에 소설에서 거론한 사건이 과거의 일이면서도
연재 당시에도 통하고, 또 미래에 전하고자 하는 정신도 외칠 수 있다.
야마모토 신이치의 지도가, 마치 자신에게 주는 지도처럼 느낀 독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신이치의 투쟁이 현재 자신에게 '모범'이 되어 승리를
열 수 있던 동지도 무수히 많을 것이다. 소설《신ㆍ인간혁명》제9권 '중망'
에서는 오키나와본부장인 다카미에게, 소설 집필의 시작을 알린 신이치가
이렇게 진심을 말한다. "오키나와의 여러분은 숙명에 울고 '고생에 고생을'
거듭해 왔다. 나는 그런 오키나와의 숙명을 전환하고 싶다. 반드시 승리하기
바라네." 오키나와를 생각하는 광포 스승의 마음은 어디까지나 깊다.
제10권 '계관'에는 도쿄에서 실시한 교학부의 교수ㆍ교수보 시험장소에 달려
온 신이치가, 오키나와에서 시험을 보러 온 눈이 불편한 장년부원을 격려하는
감동적인 장면이 있다. 제13권 '낙토'에는 1969년 2월, 오키나와를 방문한
모습이 씌어 있다. 2월 15일에 반장과 반담당원 등 6천명과 기념촬영을 하는
장면에서는, 참석 대상은 아니지만 '야마모토 선생님을 한번 뵙고 싶다'며
모인 미국인 멤버 등을 격려하는 모습이 씌어 있다. 여기서 이케다 선생님은
'마시지구' 멤버의 분투를 통해 불법의 인간주의 사상을 제시했다.
마시지구는 주로 기지와 관련된 미국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멤버는 모두
전쟁이라는 끔찍한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평화를 열망
했다. '진실한 평화란 무엇인가' '인간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 해답을 찾고자 신심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마시지구는 불법의 인간주의 철학을 내걸고, 주민과 미군병사 사이에도
우정의 다리를 놓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렇게 씌어 있다.
"미군 병사라는 이유로 증오하는 그런 경우는 없었다. 학회원은 회합 등에서
미군 멤버와 교류하는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그들의 사람됨도
알 수 있었다. 또 그들이 출격 명령에 괴로워하면서 평화를 바라고 다기지게
신심에 힘쓰고 있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병사인 동지가 '전쟁터에 가지
않도록' '가더라도 무사히 돌아오도록' 그렇게 창제하는 사람도 있었다.
병사들도 실제로 한사람 한사람은 모두 다 마음씨도 좋고, 소탈하고, 익살
스럽기도 하며, 또 부모를 극진히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학회원들은 느끼고
있었다. 멤버인 병사와 가까이 접하는 학회원 주민들의 눈에는, 추상화된
'미군'이 아니라 '개인'으로서 인간 실상이 그대로 보였다.
한편, 미군 병사인 멤버도 주민인 학회원과 자주 접하는 가운데 일본인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신뢰하게 되었다고 한다. 실로 주민과 미군이라는 대립
을 초월하여 학회원은 서로 우정의 연대로 맺어졌다. 분단은 불신과 반목의
골을 깊게 한다. 대수롭지 않을 것 같으나 이러한 '인간과 인간'의 교류야
말로 곧 평화 건설의 중요한 기반이다." (제13권 '낙토')
그리고 '낙토'에는 예술제와 대학회의 결성식 그리고 고등부에 혼신의 힘을
다해 지도하는 모습이 씌어 있다. 또 나고총지부의 기시야마 부부의 장절한
체험을 언급하며 '숙명은 사명'이라는 니치렌불법의 희망철학을 이야기한다.
이어서 나고와 고자시(현재 오키나와시)에서 펼친 격려행, 오키나와 본부를
찾은 구니가미의 동지를 격려하는 장면이 씌어 있다.
스승을 구도하는 제자의 순수한 마음이 모든 장면에 넘쳐흐른다.
(중략)
제19권 '보탑'에서는 신이치의 강연을 들은 오키나와 청년부가 반전(反戰)
출판에 앞장서 분투하는 모습을 다뤘다. 오키나와 청년부는 '오키나와전투
체험기' 발간을 목표로 '전쟁을 모르는 어린이들에게'라는 제목으로 세이쿄
신문 오키나와판에 게재하기로 결정하고 취재를 추진했다. 그러나 모두
괴로운 기억을 떠올리고는 눈물을 지으며 입을 굳게 다물어 버렸다.
청년들이 성실하고 끈기 있게 평화를 향한 마음을 전하자 전쟁체험의 아픈
기억을 털어 놓았다. 그렇게 모인 증언은 모두 전쟁의 가장 어두운 면을
날카롭게 파헤친 것이었다. 이 연재는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었다.
책 제목은 '산산이 부서진 우루마섬'(제삼문명사)으로 결정되었다.
오키나와전투가 끝난 지 29년이 지난 1974년 6월 23일에 '창가학회 청년부
반전출판위원회'가 '전쟁을 모르는 세대에게' 제1탄으로 발간했다.
반전평화를 향한 청년들의 뜨거운 혈기와 전쟁체험자의 눈물 어린 증언의
결정체라고 할 이 책은 큰 반향을 일으켜, 현지 신문에서도 크게 다루었다.
이 한 권의 책이 각 현(縣)의 청년부가 펼치는 반전출판의 돌파구를 열었다.
또 오키나와에서는 이 반전출판 이후에도 평화운동에 온 힘을 쏟아 오키나와
연수원을 비롯해 각지에서 '오키나와전투 회화전'을 개최해, 안팎으로 많은
사람이 관람했다. 그리고 '보탑'에서는 신이치가 다카미 후쿠야스와
모리야마 미쓰히로에게 '숙명전환'과 '지용보살'에 대해 말한다.
제28권 '승리섬'에서는 1978년 10월 7일, 제1회 낙도본부(훗날 승리섬부)
총회에 앞서 학회본부 사제회관에서 개최한 제1회 '오키나와지부장회'를 언급
했다. 이 오키나와지부장회를 본부에서 개최하기에 이른 오키나와 수뇌간부
의 대화 중에서 다카미 후쿠야스의 말을 소개한다. 그때까지 신이치는
오키나와를 일곱 차례 방문했지만, 최근 4년 넘게 오키나와 지도는 실현되지
않았다. '여덟번째 방문을 부탁드려야 한다'는 간부의 의견을 듣고 다카미가
말하는 장면이다. "저는 '선생님이 와주시기를 바란다 하면서 그저 기다리기
만 하는 자세로 과연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건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선생님이 일곱 번이나 오신 건, 어느 곳보다 오키나와를 소중히 여기
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덧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선생님
께 어리광을 피우고 있는 건 아닐까요. 세계에는 선생님이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나라가 많습니다. 어느 나라 멤버나 선생님이 와주시길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겠지만, 그것을 입에 올리기 전에 선생님을 구도하고, 불법(佛法)을
구도해 자신이 직접 일본에 찾아옵니다. 아프리카나 중남미 동지들은 몇 년
동안이나 생활비를 아끼고 아껴 돈을 모아서 10일, 20일 휴가를 내고 옵니다.
구도하는 그 마음이 바로 신심이 아닐까요! 제자의 길이 아닐까요!"
그리고 신이치는 학회본부에 기세 넘치는 모습으로 온 오키나와 동지를 칭찬
했다. "저는 오키나와 여러분이 스스로 행동을 일으켜 학회본부에 오셨다는
것이 최고로 기쁩니다. 누가 어떻게 해주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자세로는
행복을 창조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삶의 자세로는 주위에서 아무것도 해주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점점 비애에 젖어 남을 미워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실은 거기에 불행의 원인이 있습니다. 불법(佛法)은 남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일어나 새로운 길을 열겠다!'는 자립의 철학입니다.
자신이 바뀌어야 주위를,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불법이지
않습니까! 드디어 여러분이 그 자각에 서서 행동을 시작했습니다.
오키나와 광포 제2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발적현본(發赤顯本)입니다. 저는 오키나와의 전도를, 미래의 영광을
진심으로 축복하고 싶습니다. 축하합니다!"
제30권 마지막 장 '서원'에서는 1992년 2월 25일부터 사흘간 온나손에 있는
오키나와연수원에서 아시아 각국ㆍ지역의 대표가 모여 개최한 제1회 SGI
아시아총회에 빛을 비춘다. 이케다 선생님은 여기서 다시 한번 오키나와에
대한 심정을 써서 남겼다. "신이치는 오키나와를 떠올릴 때마다, 국토의
숙명전환과 입정안국을 실현해야 한다고 통감했다. 그가 제3대 회장에 취임
하고 두달 반 뒤인 1960년 7월 16일에 오키나와를 처음 방문한 것도, 이날은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이 '입정안국론'을 제출하신 날이기 때문이다.
오키나와 동지가 입정안국의 선구가 되어 영원히 평화롭고 번영하는 낙토
건설을 위해 일어서기 바랐다. 첫 오키나와 방문 때 신이치는 남부의 전적지
도 둘러 보았다. 동지들에게서 비참한 전쟁체험도 들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그리고 '오키나와를 행복섬으로! 광선유포의 승리섬으로 만들자!
그를 위해 나는, 오키나와 동지와 함께 싸우겠다!'고 굳은 결의를 다졌다.
불법(佛法)의 법리(法理)에 비춰보면, 가장 불행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행복
해질 권리가 있다. 1964년 12월 2일, 신이치가 '전쟁만큼 잔혹한 것은 없다.
전쟁만큼 비참한 것은 없다'는 말로 시작하는 소설《인간혁명》 집필을
오키나와에서 시작한 것도 그런 결의를 반영한 증거였다."
지금 오키나와의 동지는 광포 스승의 기대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스승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하여' 사랑하는 '우루마섬'을 위해 지역 곳곳을
뛰어다닌다. 그것이 스승과 약속한 오키나와 건아의 삶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스승에게 서원한 진정한 제자의 길이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에 보낸 지도 - 낙토 건설을 위해 홀로 서라
진정한 번영과 평화를 쟁취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최종적으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념에 달려 있다. 인간이 절망하고 포기하는 마음으로 무기력해
지거나, 현실에도 도피하려고만 한다면 사회는 퇴폐하고 만다.
낙토 건설은 바로 주체인 인간 자신의 건설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낙토를 구축하려면 타인의 힘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홀로 서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굴하지
않는 강한 신념과 희망의 철학을 가져야 한다. 복잡한 현실의 미로를 개척할
총명한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그 원천이야말로 니치렌대성인(日蓮
大聖人)의 불법(佛法)인 것이다. (제13권 '낙토')
빛나는 무대 - 오키나와 본부
1962년 7월에 낙성한 오키나와 본부는, 이케다 선생님이 소설《인간혁명》의
집필을 시작한 곳이다. 소설《신ㆍ인간혁명》에는 오키나와 본부에서 펼쳐진
사제의 드라마가 씌어 있다. 낙성식 때 옥상으로 올라간 야마모토 신이치가
큰 독수리처럼 용장하게 지휘하여 다 함께 '오키나와 건아의 노래'를 열창한
원점을 새기고, 소설《인간혁명》을 집필한 1964년 12월 2일에는 새로운
시대의 리더인 대학부 멤버를 격려했다. 또 고등부 멤버들과 함께 근행한 뒤
기대를 담아 격려의 말을 보낸 일, 그리고 옥상에서 회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그 자리에 모인 동지를 감싸 안듯이 격려하는 모습도 그려져 있다.
현재 이곳에는 오키나와국제평화회관이 세워져, 평화의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오키나와에 보낸 지도 - 제자가 승리의 실증을
"이번에 오키나와에는 각 섬 등의 중심자도 탄생했고, 간부실원(幹部室員)
제도도 생겼으며, 전국에서 맨 먼저 고교회(高校會)도 발족했습니다.
또 다양한 행사를 통해 학회를 이해하는 지역사람들의 연대를 크게 확대했습
니다. 이른바 오키나와가, 광선유포의 드넓은 하늘을 향해 본격적으로 비상할
조건은 전부 갖춰졌습니다. 그 조종간을 잡는 것은 여러분입니다.
따라서 타인을 의지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회장인 나와 똑같은 결의,
똑같은 자각을 갖고, 모든 책임을 맡아 활동을 추진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새로운 시대란 '제자가 일어서는 때'이며, 제자가 '승리의 실증'을 나타내는
시대입니다."
"오키나와가 본토에 복귀했다고는 해도, 그 앞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을 겁니다.
기지 문제도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많은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둠이 짙어도, 비바람이 휘몰아쳐도, 마음에 무지개를 품고
밝은 마음으로 위풍당당하게 전진하기 바랍니다. 무지개란 '희망'이고
'이상(理想)'이며 '큰 뜻'입니다. 그 원천이 '신심(信心)'입니다.
전쟁으로 가장 혹독한 고생을 겪은 오키나와는, 세계 평화의 발신지가 돼
항구적 평화를 실현할 사명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이
'숙명을 사명으로 바꿔' 홀로 일어서야 합니다. 일체는 자신의 일념전환,
인간혁명에서 시작됩니다." (제19권 '무지개의 춤')
오키나와에 보낸 지도 - 진심으로 격려하는 것이 간부
"제가 오늘 강조해 두고 싶은 것 중 하나는, 간부가 되었다고 하여 '권위주의'
에 빠져 후배에게 뽐내듯 행동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어디까지나 성실하게, 진심을 다해 격려해 가는 것이 간부입니다.
불자(佛子)인 회원을 섬기고 봉사해 가는 것이 간부입니다. 또 모두를 안심
시킬 수 있는지, 어떤지 입니다. 회원을 자기 부하처럼 생각하여 깔보거나
화를 내어, 남을 긴장시키는 것은 '권력주의자'입니다. 저 사람 앞에 가면
진심으로 안심할 수 있다, 기운이 난다, 희망을 느낀다, 용기가 솟구친다는
말을 들어야 참된 학회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모두 사이좋게 서로를
존경하고 단결해 가는 것이 광선유포를 전진시키는 힘이 됩니다.
반대로 동지를 원망하거나, 미워하고 깔보거나, 질투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것은 대방법(大謗法)이 됩니다. 자신도 벌을 받고,
조직을 비뚤어지게 하여 광선유포를 파괴하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동지의 단결을 꾀할 수 있는가. 근본은 기원입니다. 제목을 끝까지 불러
나가는 겁니다. 싫거나 거북스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일을 진지하게
기원하세요. 서로 으르렁거리고 다투는 것은, 서로의 경애가 낮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행복을 기원해 가는 것이 자신의 경애를 크게 여는 것입니다.
또 오해 때문에 서로 감정이 상하는 경우도 많으니, 마음을 열고 서로 충분히
이야기하는 겁니다. 용기를 갖고 대화하십시오. 서로의 근본 목적이 진짜
광선유포를 위해서라면, 신심을 하고 있는 사람들끼리 공명(共鳴)하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한사람 한사람은 아무리 힘이 있어도, 사이가 나쁘면
전체로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반대로 사이가 좋은 조직에서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힘의 2배, 3배의 힘을 발휘하는 법입니다.
신이치는 오키나와가 행복의 봄바람을 아시아로 보내는 동양 광포의 '쐐기돌'
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할 지역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오키나와
천지에 견고한 신앙의, 단결의 요새를 구축하고 싶었던 것이다. (제9권 '중망')
빛나는 무대 - 오키나와연수원
오키나와 본섬 중앙에 위치한 온나손.
푸른 물결이 반짝이는 동중국해가 바라다보이는 이곳에 오키나와연수원이
있다. "오키나와연수원에는 '꽃'이 있고, '바다'가 펼쳐져 있고, '빛'이
넘치는군요. '봄기운이 만연'하군요." (제30권(하) '서원')
야마모토 신이치의 말 그대로, 아름다운 자연이 방문자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일찍이 미군의 메스B 미사일 발사기지였다. 개원에 앞서 철거할 예정이었
지만, 이케다 선생님이 남기자고 제안해 항구평화를 서원하는 '세계평화의
비(碑)'로 다시 태어났다. 연수원에는 오키나와이케다평화기념관 부속
전시실과 가네코란(蘭) 정원이 있다. 1977년에 개원한 이래
연수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평화의 마음을 보낸다.
첫댓글 지명인 '오키나와'를 '한국'으로 바꿔 보아도 괜찮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