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Scene 10. The Alliance /연합/
"뭐? 스피드하고만?"
덩치가 난데없이 큰 소리로 말하자 스피드라고 불렸던 일레인의 눈이 살짝 찌푸러졌지만, 지호는 덩치와 엘런에게 담담하게 말했다.
"위험한 일이라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는 없소만."
"으음……"
덩치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뭔가 고민을 시작했다. 흘깃 스피드, 아 니 일레인 쪽을 훔쳐보기도 하더니 제딴엔 속삭인답시고 옆에 있는 엘 런에게 말을 걸었다. 물론, 자리에 있는 사람은 다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봐. 괜찮을까? 스카를 스피드하고만 나둬도 말야."
"하지만"
엘런이 덩치를 보며 약간 심각한 얼굴로 조그맣게 말했다.
"혹시 둘이 사귀는 거라면 우리가 괜히……"
"뭐얏!"
일레인이 빽하고 뾰족한 소리를 내자, 덩치와 엘런이 흠칫 하더니 그 녀를 바라보았다. 덩치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뭐, 뭐야 스피드. 설마 둘이 정말……."
"이, 이익"
일레인의 얼굴이 심각하게 붉으락 푸르락 하는데, 지호의 목소리가 나 지막히 울렸다.
"그런건 아니오."
덩치와 엘런이 지호를 바라보았다. 지호는 슬쩍 웃음을 흘리면서 말했 다.
"아마, 칼이 들었다면 정말 화를 냈을지도 모르겠소만."
칼, 아니 에드워드의 이야기가 나오자 일레인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 다. 그러더니 고개를 옆으로 팩 돌리며 '흥'하는 표정이 되었다. 덩치 와 엘런은 일레인과 지호의 얼굴을 몇번이나 번갈아 쳐다보다간, 그제 야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이 가는 모양이었다.
"그럼, 그렇고 그런 사이는 아니란거지?"
덩치의 말에 일레인이 다시 빽하고 소릴 질렀다.
"뭐가 그렇고 그런 사이란 거야! 이제 그만 가줄 수 없어?"
일레인에게 대답을 한 사람은 덩치가 아니라 엘런이었다.
"이봐 스피드, 진정하고 들어봐. 이건 우리에게도 중요한 문제야. 우 린 스카에게 생명을 빚진 셈인데다, 사실은 다른 동료들의 빚도 함께 지고 있는 셈이라고. 그런데 지금 스카가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 했는데 우리한테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거야?"
엘런은 고개를 돌려 지호를 바라보았다.
"스카, 정직하게 말해줘. 사람이 필요해?"
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데, 아이리스가 입을 열 었다.
"이곳 알바로아는 전쟁터예요. 어쨌든, 믿을만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죠."
지호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덩치는 식탁을 탁 내려치 면서 말했다.
"좋아! 잠깐 기다려!"
덩치와 엘런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주점에 함께 들어왔던 사람들이 앉아있는 식탁으로 다가갔다. 그들은 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 뒤를 따라 들어온 10명 남짓한 사람들이 함께 있었던 것이다. 언뜻 보 기에도 실력이 보통은 넘어 보이는 용병대였다.
그들중에 리더 격으로 보이는 사람은 짙은 눈썹에 굵은 선을 가진 턱 수염 가득한 사나이였는데, 커다란 눈이 꽤 날카로와 보였다.
덩치와 엘런이 자리를 비운 사이, 일레인이 말했다.
"엘마이러님. 저들을 함께 데려갈건가요?"
"아까 말한대로 예요. 이곳은 전쟁터, 한 사람의 손이라도 더 필요해 요. 그것이 믿을만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나요?"
"그건 그렇지만……"
일레인은 약간 못마땅한 얼굴이었지만 적극적으로 반대를 하려는 마음 은 없어 보였다. 아이리스는 지호를 바라보았다.
"지호는, 저들을 위험한 일에 끌어들이는 게 싫은 거죠?"
지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리스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기대는 것도 중요해요, 지호. 그건 폐를 끼치 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나누는 것이 될 수도 있답니다. 어차피, 혼자 살아갈 수는 없지 않겠어요?"
지호는 약간은 놀란 눈으로 아이리스를 바라보았다. 이 여행을 떠난 이후, 아이리스는 확실히 변했다. 그녀는 다시 예전의 그 당당하고 자 신감 있는 모습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은 자신의 나 아갈 바를 정한 사람답게 빛나고 있었다. 지금의 그녀는 확실히 앙피 시아의 엘마이러, 아이리스였다.
지호는 살짝 고개를 끄덕여 아이리스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아이리스 는, 함께 온 일행들과 함께 무엇인가 심각하게 얘기하고 있는 덩치와 엘런쪽을 돌아보고는 다시 지호에게 나지막히 물었다.
"유적은, 괜찮은 건가요?"
지호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일레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올튼유적 같은 거라면, 염려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지호와 아이리스가 일레인을 쳐다보았다. 일레인은 눈을 빛내며 말했 다.
"카르나스 폰 트라헤른 후작의 독립 기사단은, 올튼에서도 전부 철수 했어요. 더 이상 진전이 없다는 걸 자각한 거겠죠. 무엇보다 전쟁도 해야 할 테니까 말이죠. 그리고"
일레인의 뒷 말은 아이리스가 받았다.
"그곳을 지호가 돌파했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어요, 그러니, 이젠 유적이 아니라 지호를 쫓을 거라는 말이죠?"
일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지호와도 이미 한번 말한 내용이 다. 그러나 아이리스가 물어본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리스가 지호를 쳐다보자, 지호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할건 없어요. 난 괜찮아요."
일레인이 아이리스와 지호를 쳐다보며 뭔가 불만스런 표정이 되어가는 데, 덩치와 엘런이 덥수룩한 턱수염의 사내와 함께 다가왔다.
"반갑소. 난 이글아이(Eagle Eye)요."
그는 굵은 목소리로 대뜸 스카에게 악수를 청했다. 스카는 손을 내밀 었다.
"반갑소. 난 스카라고 하오. 앉으시오."
지호가 자리를 권하자 이글아이는 아까 덩치의 자리에 앉았다. 다부진 체격에 커다란 덩치를 가진 이 사나이는 지호를 똑바로 쳐다보며 굵직 한 목소리로 말했다.
"덩치와 엘런이 목숨을 빚졌다고 들었소. 그리고, 우리들도 당신에겐 감사해야 할 것이 있소."
지호는 약간 쓴웃음을 지었다.
"목숨을 구해준 적은 없소. 그저, 일행으로써 당연한 일이었을 뿐이 오."
"그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게 요즘 현실이지."
이글아이라고 불리운 사내는 지호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덩치와 엘런을 잘 부탁하오. 다른 동료들도 당신에게 감사를 전하는 바이오. 그럼."
이글아이는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는 덩치와 엘런의 등을 툭툭 쳐 주고는, 휘적휘적 자리로 돌아갔다. 덩치와 엘런 은 그런 이글아이를 신뢰를 담은 눈으로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지호 를 바라보았다. 엘런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런 연유로, 지금부터 잘 부탁해. 스카."
"나도"
덩치의 말은 짧았지만 그의 얼굴에도 역시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덩치가 쾌활한 어조로 말했다.
"자, 그럼. 여기 계신 이 미녀분 먼저 소개를 받고 싶은걸?"
"이그, 덩치! 그건 실례라고!"
엘런이 팔꿈치로 덩치를 꾹 찍으며 핀잔을 주자, 덩치가 '아니 왜?'하 는 표정으로 엘런을 보았다.
"미녀라고 해도 실례라고? 정말 예쁘잖아?"
"덩치!"
엘런이 빽 소리를 질렀다. 둘을 바라보는 아이리스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덩치와 엘런은 원래 소속된 용병대가 있었다. 보통 '이글 용병대'이라 고 불리우는 그들의 용병대는 '이글아이'라는 리더가 이끌고 있었다.
보통 어중이 떠중이 용병들이 의뢰에 따라 모였다 흩어지길 반복하는 반면에, 그들은 확실한 사람들로 튼튼한 용병대를 구성해서는 확실한 일들만 해결하고 다녔다. 그들이 주로 다니는 곳은 제국이 아니라 대 륙에 산재한 국경지역의 분쟁지역들이었다.
"아, 그런데 어쩌다 제국 내부로 통행하던게 말썽이었다구. 그 빌어먹 을 놈의 영주자식! 사람을 아예 죽이려는 듯이 잡고 있잖아! 그것도 애들하고 여자들까지 말야! 우리 대장이 사람은 좋지만 그런건 절대 보고 넘기지 못한다구. 전쟁터와 전쟁터가 아닌 곳 쯤은 확실하게 구 분하는 진짜 싸나이거든."
덩치의 말은 그들의 대장 이글아이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엘런 이 덩치의 뒤를 이어 말했다.
"어쨌든, 스카 덕분에 전부 풀려나게 됐어. 위약금도 덕분에 무사히 지불할 수 있었고 말야. 사실, 의뢰는 도착한 시점부터 시작되는 거니 까 안줘도 됐었는데, 대장이 좀 고지식한 면이 있거든."
"자, 그건 그렇고."
덩치가 탁자에 손을 '탁' 얹는 바람에 엘런의 말이 끊어졌다. 덩치는 일행을 죽 둘러보았다.
"우리, 어디로 뭐하러 가는거지?"
"아!"
일레인의 입에서 살짝 탄식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지호와 아이리 스, 일레인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그들은 덩치에게 설명하는 것을 분 명히 꺼리고 있었다.
지호가 일레인에게 눈치를 줬지만, 일레인은 고개까지 부르르 흔들며 완강하게 거부했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얼굴인 아이리스가 얘기할 수도 없었다. 결국 입을 연 것은 지호였다.
"엘런, 사실은……"
일레인의 얼굴이 살짝 찌푸러졌다. '엘런에게 설명하려 하다니, 비겁 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알바로아를 거쳐 셀러다인으로 가려는 일행은 다섯명으로 불어 나고 있었고, 일반 전쟁에선 생각할 수 없는 놀라운 속도로 진군하고 있는 독립기사단은 그들로부터 정확히 삼일길을 앞서 나가고 있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