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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기고를 통해 필자는 울산 동구의 심각한 재정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울산시 보통교부금 확대 등 의존재원의 확충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입을 늘리는 노력만큼이나 세출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는지 함께 점검하는 일도 중요하다.
최근 알려진 것처럼 동구는 2026년 본예산에 공무원 인건비조차 12개월이 아닌 10개월분만 편성하고, 나머지 2개월분은 추가경정예산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방자치단체가 공무원 인건비조차 본예산에 모두 담지 못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회계상의 문제가 아니다. 그만큼 동구 재정이 벼랑 끝에 서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지방재정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주민들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다. 예산이 부족하면 도로 보수는 늦어지고, 골목길 가로등 교체는 미뤄지며, 생활 SOC와 복지사업도 영향을 받는다. 결국 예산은 행정의 문제가 아니라 주민의 일상이 된다. 그래서 어려운 재정일수록 한 푼의 예산도 어디에 쓰이는지 주민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일수록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예산 삭감이 아니다. 한정된 재원을 시대 변화에 맞게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지혜다. 주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우선순위를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먼저 노동복지기금을 살펴보자. 이 기금은 조선업 불황으로 노동자들의 생활안정을 돕기 위해 2023년 설치됐다. 당시에는 충분한 필요성과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HD현대중공업은 사상 최대 수주와 실적을 기록하고 있으며 조선업은 일감 부족이 아니라 인력 부족을 걱정하는 시대가 됐다.
그럼에도 동구는 일반회계에서 매년 10억 원이 훨씬 넘는 예산을 출연해 기금을 계속 확대하고 있다. 노동복지를 축소하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의 삶은 더욱 두텁게 보호되어야 한다. 다만 공무원 인건비조차 본예산에 모두 편성하지 못하는 재정 현실이라면 이제는 지방정부 혼자 부담하기보다 노동복지의 가장 큰 수혜를 받는 지역 대표기업도 사회적 책임의 차원에서 기금 조성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 기업과 지방정부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야말로 지속 가능한 노동복지의 길이다.
고향사랑기부금 역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고향사랑기부금은 단순한 재원이 아니다. 타지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출향인들의 애정이며, 동구를 응원하는 국민들의 따뜻한 마음이다. "우리 고향이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보내온 소중한 기부금인 만큼 그 쓰임 역시 보다 많은 주민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기부금은 대부분 청년 노동자 공유주택 월세 지원사업에 활용되고 있다. 청년 주거안정은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다. 그러나 고향사랑기부금의 취지는 특정 계층 지원에 머무르기보다 동구 전체의 발전과 주민 복리 증진에 있다. 아이와 청년, 어르신은 물론 골목상권과 문화, 관광, 생활환경 개선 등 보다 다양한 분야에서 주민들이 함께 변화를 체감할 수 있을 때 기부자의 뜻도 더욱 빛날 것이다.
동구의 재정은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어려울수록 새로운 사업을 늘리는 것보다 기존 사업의 우선순위를 점검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행정이 책임져야 할 영역과 기업이 함께 부담해야 할 영역을 구분하는 것 역시 지속 가능한 지방재정의 출발점이다.
재정을 아끼자는 것이 아니다. 더 가치 있게 쓰자는 것이다. 주민의 세금은 결코 가벼운 돈이 아니다. 누군가는 새벽부터 일해 번 돈이고, 누군가는 생활비를 아껴 낸 세금이다. 고향사랑기부금 역시 동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마음이 담긴 선물이다. 그렇기에 예산은 더욱 신중하게, 더욱 많은 주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사용되어야 한다.
공무원 인건비조차 모두 확보하지 못하는 현실이라면 이제는 기금도 시대 변화와 재정 여건에 맞게 다시 설계해야 한다. 그것이 주민의 신뢰를 얻는 길이며, 한정된 재원을 가장 가치 있게 사용하는 길이다. 재정이 어려울수록 행정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원칙에 더욱 충실해야 한다. 그것이 지속 가능한 동구를 만드는 가장 책임 있는 행정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