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파일에서 드러나 사측의 ‘부정 부실’...삼성 “사실 무근”
정재은 기자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사가 실적을 올리기 위해 AS기사의 업무 자료를 조작하고, 본사인 삼성전자서비스가 이를 묵인하거나 동참하는 것으로 보이는 증거가 나와 논란이 예상된다.
<미디어충청>이 입수한 녹음파일에 따르면, 협력사 측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제품 재수리 비율, 즉 제품 무상 수리 건을 낮추기 위한 방법을 썼다. 사내 전산망(E-ZONE)에서 제품 수리 항목을 변경했을 뿐만 아니라 제품명도 바꾼 것이다. 삼성전자는 자사 제품의 같은 부위가 고장 나 동일 부품이 사용된 재수리의 경우 1년 동안 고객 무상 수리 방침이다.
또한 재수리 제품에 대한 조작 자료는 협력사뿐만 아니라 본사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사의 부정부실 행위를 부추긴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녹음파일에 의하면 협력사뿐만 아니라 본사 관계자도 사내 전산망을 통해 AS기사의 재수리 건 자료를 조작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위장도급’ 의혹이 짙어지는 대목이다.
수리 항목, 제품명 조작...협력사 “실적 때문에 수정할거야”
“10번 수정해도 자료 다 있어....본사는 10년 치 자료 보관"
협력사도 비판하는 삼성전자서비스 자료 조작? 위장도급 의혹 짙어
천안센터 AS기사 정 모 씨는 지난 달 31일 이제근 협력사(삼성TSP) 사장과 7분가량 통화하면서 자신의 업무 자료 조작에 대해 항의했다. 10월 말경 프린터 제품을 ‘재수리’한 건이 ‘특별처리’ 항목으로 수정됐고, 제품명도 다르게 수정됐다는 것이다. 더욱이 수정된 제품명 ‘CLP364W/ZZZ’는 국내에서 유통되지 않는 제품이다.
녹음파일을 보면, 정 씨는 사장 이 씨에게 “재수리 건을 A특별처리로 누가 수정했어요. 제품 모델명도 CLP364인데, CLP364W/ZZZ으로 누가 수정했어요”라고 제기했다. 이어 그는 “나중에 (자료 조작으로) 저에게 불이익이 오면 어떻하죠?”, “모델명을 바꾸는 것은 부정 아니에요? 게다가 없는 제품의 모델명으로 바꾸는 거잖아요”, “CLP364W/ZZZ로 수정한 게 한 두 개가 아녜요. 찾아보면 굉장히 많아요” 등 따져 물었다.
몇 차례 정 씨의 말을 확인하던 이 씨는 “어차피 네가 (수정)한 건 아니니까 문제가 되진 않고, 오늘(10월 31일)까지 협력사 실적 때문에 아마 (수정)할 거야”, “A특별처리면 대행료는 똑같이 나와. 어차피 수정자가 다 나오기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되더라도 너는 문제가 없어”라며 실적 올리기를 위한 자료 조작 사실을 인정했다.
또한 정 씨가 스스로 자료를 수정하지 않았다고 계속 강조하자 이 씨는 건별 자료 수정자 확인이 모두 가능하고, 본사 감사팀도 관련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녹음파일을 보면, 이 씨는 정 씨에게 “내일 아침에 접수번호만 줘. 수정자 확인하는 방법이 내 전산에 다 나오게 되어 있어. 네가 수정한 것만 아니면 문제가 없어”라며 “한 건을 가지고 입력, 수정을 계속 반복하면 리스트가 쫙 나와. 내 전산에서밖에 안 보여. 그러니까 (본사)감사팀은 5~10년까지 데이터를 다 추출해놓을 수 있잖아. 우리(협력사)는 5년 밖에 안 되지만 감사팀은 10년이 가능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씨는 “수정자가 있으면 감사 할아버지가 있어도 문제가 안 돼. 오늘까지만 그것(수정)도 할 거야”, “예를 들어 제3자가 수정을 했어, 그러면 그게 다 나오는 거야. 그러니까 10번 수정하면 10번 다 그게 나오게 되어 있어”고 말해 자료 조작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또한 정 씨가 “모델명 수정은 부정인데, 아무리 본사가 (수정)한다 해도 이렇게 해서는 안 되잖아요”, “수정 권한은 기사에게 있는 것 아닌가요? 만일 기사가 임의로 특별처리로 (수정하면) 나쁜 거고, 본사에서는 실적 맞추려고 특별처리하면 괜찮은 건가요”라고 지적하자 이 씨는 “그렇지. 그건 잘못된 거지”라며 본사를 비판했다.
특히 삼성전자서비스가 노조 조합원을 대상으로 표적감사를 통해 노조를 탄압했다는 주장이 신뢰를 얻는 내용도 나왔다. 이 씨는 전화통화에서 정 씨에게 “이번에 노조 타깃감사도 마찬가지이지만, 000이나 000도 자기가 분명 반납 자재를 이렇게 안 했다고 얘기했거든. 그래서 수정자 조회해서 뺄 건 뺐어”라고 말했다.
이 씨가 언급한 AS기사 중 한 명은 사측이 자료를 조작해 노조 조합원에 대해 표적감사를 진행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아래 관련기사 참고).
“실적 올리기 자료 조작으로 노동자 불이익 받아”
삼성전자서비스 “사실무근...자료 있다 해도 제품 수리비 미입금 건 등”
정 씨는 <미디어충청>과의 인터뷰에서 “제품 재수리 건을 특별처리로 수정하면 재수리 비율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특별처리 비율로 빠진다. 재수리 비율이 높으면 본사 평가에서 협력사가 낮은 점수를 받기 때문이다”며 “AS기사가 제품 수리 후 직접 입력한 자료를 본사와 협력사가 수정하는 것은 명백한 부정부실이다”고 말했다.
그는 제품명 변경에 대해서도 “재수리 비율을 낮추고 실적에서도 빼버리는 결과를 가져 온다”며 “만일 AS기사가 이와 같이 수정했다면 부정부실로 해고 대상이 되었을 것”이라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AS기사들은 본사와의 재계약 연장, 협력사 경영진의 승진 보장과 연봉 상승 등의 목적으로 협력사가 자료를 조작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사의 ‘그들만의 리그’인 실적 올리기 업무 자료 조작으로 정작 노동자는 불이익을 받는다.
3~5년 치 자료를 가지고 진행된 노조 조합원에 대한 표적감사도 마찬가지다. 지난 달 31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최종범 열사도 사측의 표적감사에 시달려왔다.
최종혁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부지회장은 “삼성전자서비스와 협력사는 조작된 자료를 가지고 노동자를 내친다. 노조 탄압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며 “일례로 AS기사 본인이 수정된 10개의 자료 화면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노동자들은 자료 조작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AS기사 이 모 씨는 “제품 수리 건은 일주일만 지나도 일일이 생각나지 않는다. 회사는 노동자가 자료 조작 부정부실을 저질렀다고 잡아 땔 수 있다”며 “올해 7월 노조가 결성되고 나서 AS기사들이 자료 수정을 확인할 수 있는 전산 접근권조차 최근 막아버리는 분위기다”고 전했다.
또한 자료 조작 가운데 제품 재수리 건은 상대적으로 쉽게 조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협력사 실적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노동자들은 주장했다.
이 모 씨는 “본사의 협력사 실적 평가 항목은 재수리 비율, 고객만족도 평가 등 여러 가지다. 실적을 맞추기 위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재수리 건 조작이다”면서 “협력사는 실적을 맞추기 위해 편법이란 편법은 모두 사용한다. 고객만족도 평가를 좋게 받기 위해 협력사가 2년 전에 해피콜 역할을 하는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료 조작은 협력사 사장이 독단적으로 할 수 없다. 본사에서 지시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며 “본사 직원은 전산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실적을 확인하고 협력사에 알린다. 그러면 협력사 사장은 ‘우리 센터만 점수가 떨어졌다’고 AS기사들을 닥달한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서비스 관계자는 본사와 협력사의 자료 조작에 대해 “사실 무근이며, 자료 조작을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본사가 센터별, AS기사별 제품 수리 건 10년 치 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 관계자는 “사실 무근”이라며 “자료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제품 수리비 미입금 건 등이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정재은 기자는 미디어충청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미디어충청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대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