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5. 유낙준주교.
24. 여정 3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는 질문에 “예술가이고 싶어요.” “노래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과학자이고 싶어요.” “수도원의 수도사이고 싶어요.” 같은 직업인으로 다다수가 대답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막힘없이 자연스럽게 사는 사람이고 싶어요.” 이 대답을 저는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직업을 가지더라도 막힘없이 살고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최고의 대답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이러한 막힘없이 사는 자연스러움이 잘 보이질 않았습니다.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무적으로 사는데 익숙하고,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도덕적인 책무를 우선시하고, 거대한 일만 생각하고 자신이 없는 생활이었기에 막힘없이 자연스러웠던 적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속 얘기하는 것을 죄책감이 들게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자신이 발견되었습니다. 자신의 속 얘기를 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으로 자신이 없어지는 것으로 여기고 살았던 모습을 발견하기에 이르른 것입니다. 우연히 비밀스러운 자신의 속얘기를 하니까 무진장 자연스러웠던 것이었습니다. 속 얘기를 하면 자연스러운 삶이 되는 것을 알고서부터 조금씩 깊은 속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러움은 알게 되었지만 막힘없이 사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산다는 것이 수없이 장애물을 헤쳐 나아가는 작업임을 알고서부터는 더욱 삶이 막힘없이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어디에서도 분위기를 주도하는 인물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기에 자신에게 적합한 직업이 사제로는 부적합하다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막힘없이 살 수 있을까?
땅을 차지하고 하늘나라를 소유하면 큰 부자이니 막힘없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위로와 자비와 만족을 받으면 용기가 충천하여 힘있게 살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을 뵙고 하느님의 아들이 되니 지혜자로 살아 막힘없이 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막힘없이 사는 여덟가지의 복인 팔복(마태5:3-10)의 비결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과 함께 사는 것이 막힘없이 사는 길이고 비결입니다. 세상의 유혹이 많아서 하느님과 함께 살게 하지 못할 조건들이 너무나 가까이에 많이 존재합니다. 그런 악마의 유혹이 온 천지에 깔려 있는 세상에서 하느님과 함께 지내도록 이끌어준 사람을 하느님께서 제게 보내주셨음에 감사를 바치는 마음입니다. 이 세상에서 평가하는 영광과 명성의 덧없음을 일깨워주는 사람을 그 시간에 보내주셔서 악마의 덫에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해주신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제 능력으로는 막힘없이 살 수 없고 오직 하느님의 힘을 받아야만 막힘없이 살수 있습니다. 성가를 부르면서 죄가 씻기는 것을 많이 경험한 신앙생활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가를 자주 불러 죄로 막힌 자신을 막힘없이 살게 이끌어 준 것이 성가였습니다. 성가를 작곡하거나 작사하신 분들과 이문도 남기지 않고 성가책을 만들어 공급하시는 출판사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해거름에 고기를 먹고 아침에 떡을 실컷 먹고 나서야 너희는 나 야훼가 너희 하느님임을 알게 되리라(출애16:12). At twilight they will have meat to eat, and in the morning they will have all the bread they want. Then they will know that I, the Lord, am their God.”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이야말로 성가정의 거룩한 시간중의 거룩한 시간입니다. 저녁에 고기를 먹고 아침에 밥을 먹고 나서야 이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심을 알고 하느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은 찬미를 바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할 생활의식입니다. 그래서 성가정은 식구들이 모여 식사 때의 기도를 매우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배고플 때의 기억을 하게 하고 성가정을 배고프지 않게 만들어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심에 감사기도를 바치게 되고 배고픈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게 되는 자리가 바로 식사의 기도시간입니다. 동시에 성령께서 식구들의 하루일과를 주장하셔서 식구들을 악마로부터 보호해 주시기를 하느님께 청하게 됩니다. 제 할머니는 모든 식구들을 모아놓고 밥을 잡수시기 직전에 정성을 다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모든 식구들과 한민족을 위하여 길게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만나를 주소서(13). 만나 없이는 이 거친 광야에서(14) 앞으로 가려는 자도 뒷걸음을 치게 됩니다(단테의 “신곡중” 11곡 13-15절).” 천안 남관리의 새벽별교회가 할머니의 기도로 땅을 바쳤고 할머니의 기도로 지어진 교회입니다. 지금도 할머니의 타령조의 기도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들려오는 듯 합니다. 할머니의 신앙이 큰어머니의 신앙으로 이어지고 큰어머니의 신앙이 조카인 제게 이어지고 제 신앙이 딸인 보리테레사에게 이어지고 테레사의 신앙이 밤에스터와 새벽베로니카에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보리테레사는 자신의 일상사를 하느님께 이야기를 나누는 기도의 신앙생활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렇게 하느님이 주신 자비심 덕분에 신앙이 막힘없이 후손에게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고 있고 뛰어나고 싶은 욕망에 온통 쏠려 있을 때 제가 잡을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 한분 뿐이었습니다. 신당중앙교회에서 김지철전도사를 만난 것과 밀알기수들을 만난 것은 하느님을 중심으로 사는 길을 경험하게 해 준 신앙의 토대가 된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전통을 익히게 된 곳은 성공회 대전주교좌성당입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기도를 익히게 되었는데 대도代禱 전통입니다. 음간(성공회에서는 음간이라고 하고 가톨릭에서는 연옥이라 함)의 영혼들이 이승에 남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소천하신 할머니의 영혼이 늘 우리 식구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아들 제레미가 할아버지와 함께 저희 식구들을 위하여 하느님께 청하는 기도를 늘 하시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승에 남아있는 우리는 돌아가신 영혼들이 빨리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대도代禱(개신교에서는 중보기도中保祈禱라고 부릅니다)를 바치고 행동으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별세기일과 설과 추석명절에 데도를 바치는데 별세자의 이름들을 부르는데 그 부르는 사제의 소리로 돌아가신 영혼이 다시오는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 시간이 가장 엄숙하고 거룩한 시간이 되어 모두가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작고 하얀씨 같고 벌꿀로 만든 과자맛이 나는 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먹을 만큼만 거두어들인 것을 만나Manna라고 불렀고, 하느님이 이집트에서 너희를 이끌어낼 때에 광야에서 먹여 살린 양식인 만나를 증거판 앞인 야훼 앞에 보관하게 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보여주도록 하였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정착지에 이르기까지 40년동안 만나를 먹었습니다(출애16:13-36). 하느님이 주신 십계명을 돌에 새긴 증거판을 중심으로 세워진 곳이 성당입니다. 그 증거판 앞에 만나를 보관하게 되었고 지금은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인 성체를 모셔둡니다. 성체를 먹어 영하는 그 영성체의 모습이 기도하는 사람으로 최고의 기도자세라는 것을 성공회에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성체 하는 신앙인으로 산다는 것이 너무 좋았고 기뻤기에 성공회가 참교회임을 강하게 주장하는 삶이 된 것입니다. 예배의 최고 절정이 영성체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라고 봅니다. “그대들의 명성은 왔다가는 풀잎의 빛깔과 같으니, 풀이 땅에서 힘겹게 돋아나게 하는 태양이 색깔을 바꾸지요(단테의 신곡에서 11곡 중 115-117절).” 오직 하느님만이 우리 인간의 색깔을 바꾸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만이 제 인생의 색깔을 아름답게 칠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대학교를 다닐 때 어떤 기간동안에 학교교정에서 교정 밖으로 나오는 것이 매우 힘들때가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잡조(짭새)들이 교정에 많이 들어와서 학생회의 리더들을 감시하는 때였습니다. 도서관 앞과 학생회관 앞에서 연일 시위에서 연설을 하던 저였기 때문에 교정에서 교정 밖으로 나갈 때에는 매우 조심하던 때였습니다. 앞에 세명, 곁에 한명, 뒤에 한명의 학생들이 붙어 저를 안전하게 교정 밖의 안전처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얼굴만 보았지 이름도 모르는 학생들이 학생운동의 리더라는 이유로 저를 안전하게 피신시키는 학생동료들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때에 악마들이 나를 올가미에 잡아넣으려고 할 때 천사들이 저를 호위하여 안전처에 데려다주는 것처럼 느끼면서 뭔가 독립운동을 하는 비장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느님은 제게 학생운동을 하게 함으로 인해서 하느님의 일꾼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선경험하게 하신 듯 합니다. 그 경험들이 떠오릅니다. 큰길로는 다니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잠행하는 사람으로는 뒷길로 다녀야 한다고 배운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움직여야 하는 것을 먼저 배우게 된 것입니다. 또한 버스를 탈 때에는 가장 늦게 타고 내릴 때에도 가장 늦게 내린다는 원칙을 지녔습니다. 내 뒤에 누군가가 붙어있는지를 늘 확인하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미행자를 따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이 후에 하느님의 복음을 전파할 때 사람들을 챙기는 습관이 되어 환대의 원칙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일꾼을 세우기 위해서 각종 다른 많은 경험을 하느님께서 하도록 하신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때는 실명을 부르지 않고 가명을 사용했고 특히 전화가 도청되어서 전화시에는 늘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저는 가락이라고 했고 다른 친구는 병원이라고 불렀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을 익혀 교만하지 않는 생활을 지니게 된 것입니다. 병원의 가명은 지금 동네에서 유명한 내과의사로 지내고 가락은 뉴욕과 런던에서 해금연주를 하며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곳곳에서의 경험을 하느님의 도구로 선용하시는 것을 보고 하느님이 보내 주신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고 동시에 늘 하느님께 감사를 바쳤습니다. 여러 경험을 통하여 세상의 색깔을 사라지게 하시고 하느님의 색깔로 입혀 주신 하느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