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1월 15일 (수)
치유하시는 예수님
오늘의 말씀 : 요한복음 5:1-9 찬송가: 472장(구 530장)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중심 단어
예수, 베데스다, 병자
주제별 목록 작성
38년 된 병자
2-3절: 베데스다 못 가에 누워 있었다
5절: 서른여덟 해 동안 병자였다
6절: 예수께서 찾아와 주셨다
9절: 예수께 고침을 받았다
도움말
도움말
1. 베데스다(2절): ‘자비의 집’ 또는 ‘넘치는 물’이라는 뜻으로, 예루살렘 성 양문 곁에 있는 간헐천이다. 양문은 제사드리는 자들이 희생양을 갖고 이곳을 통해 예루살렘으로 들어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예루살렘 북동쪽에 위치했다.
2. 혈기 마른 사람(3절): 사지가 마르고 마비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말씀묵상
병자의 간절한 소망
예수님은 베데스다에서 38년 된 병자를 보셨습니다. 그의 절망과 고통을 알고 계신 예수님은 “네가 낫고자 하느냐”(6절)라고 물으심으로 절망적이던 병자에게 치유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갈급하고 간절한 소망이 있을 때, 주님의 능력은 시작됩니다. 누워서 38년을 지낸 그는 인간적인 모든 소망이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이는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7절)라는 병자의 말에서 잘 드러납니다.
하지만 ‘인간의 절망은 하나님의 출발’이라는 말처럼, 기적은 모든 인간적인 노력을 포기하고 전능자의 도움만을 간절히 구할 때 일어나기도 합니다. 반면에 스스로 구원하고자 하거나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자랑하는 한, 주님의 영광은 결코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38년 된 병자의 고통을 긍휼히 여기신 예수님은 그의 간절함을 보시고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8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짐과 동시에 38년이나 누워 있던 병자가 일어났습니다(9절).
우리를 지으신 주님은 우리가 스스로를 아는 것보다 우리를 더 잘 알고 계십니다. 또한 우리가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포기하고 어둠 속에 방치해 둘 때에도 주님은 우리를 위해 당신을 버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잠잠히 주님을 바라고 신뢰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소망은 오직 주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38년 된 병자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베데스다에서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무슨 날이었습니까(9절)?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여러분은 절망적인 순간이 닥쳤을 때, 가장 먼저 무엇을 합니까?
2. 여러분은 모든 일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제공:프리셉트
<오늘의 묵상>
예수님이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
성전 양문 곁 베데스다 연못으로 내려가시다가 행각에 병자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신다
그들은 연못의 물이 움직이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그들의 유일한 소망이었다.
천사가 가끔 연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면 먼저 들어가는 자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된다는 것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거기서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주목하신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38년 동안 한 번도 기회가 오지 않았다는 것인가? 그들에게 왜 이런 전설 같은 이야기가 유일한 소망이 되었을까?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왜 치유의 역사가 ‘선착순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가? 그렇다면 두 번째 들어가는 사람은 치유를 받지 못한다는 말인가? 왜 이런 불공평하고 더럽고 치사한 이야기가 그들의 유일한 소망이 되었을까?
병자들은 날마다 ‘희망고문’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슨 장애인 달리기 시합도 아니고 언제 물이 동할지 모르는 상황에 세월만 허비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도 그것이 이 병자들에겐 유일한 소망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께서 38년 된 병자에게 물으신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의 대답은 ‘네! 낫기를 간절히 원합니다!’가 아니라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는 피해의식 속에 빠져있는 말을 한다.
그렇다면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 앞에 이 사람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네 낫기를 간절히 원합니다!’라는 소망 이전에 ‘네! 물이 동할 때 나를 들쳐 없고 달려가 연못에 제일 빨리 넣어 줄 건장한 보호자가 필요합니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성전 미문에 앉아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며 돈 줄 것을 기대했던 앉은뱅이처럼 은근히 기대했을 것이다.
‘그래! 걱정하지 마라! 이제 내가 그 역할을 감당해 주는 사람이 되어 줄 것이다!’ 이것이 38년 된 병자의 복음이었을 것이다.
병 낫기를 간절히 원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물이 동할 때까지 같이 옆에서 기다려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이 동하면, 물이 동하면...’모든 초점이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씀으로 그의 필요를 채워주신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일어설 수 없다는 생각에 갇혀 있는 영혼에게 ‘네! 스스로 일어나라!’는 것이다. 그때 기적이 일어난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이 날은 안식일이니’
38년 된 병자는 전설 같은 이야기만 믿고 살아가는 영혼이었다. 그 생각에 갇혀 자신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이 모르고 날마다 연못 옆에서 희망고문을 당하며 세월을 보내며 살아가던 불쌍한 영혼이었다. 그런 영혼에게 예수님은 그 영혼을 살리며 진짜 필요를 채워주는 이웃이 되어 주셨다.
오늘 나도 예수님 앞에 내가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내 생각에 갇혀 다른 것을 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수님을 그저 내 필요를 채워주는 분으로만 생각하고 기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고객의 민원 때문에 맘고생이 심한 아내를 위해 기도하면서 다시 묻게 된다. 아내에게 아니 우리 부부에게 진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네! 물이 동할 때 나를 들쳐 없고 달려가 연못에 제일 빨리 넣어 줄 건장한 보호자가 필요합니다!’
라고 기도하는 나에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 하셨으니 그 말씀을 의지해서 일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베드로처럼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했던 그 믿음이 필요하다.
사랑의 주님. 두렵고 떨리는 마음, 복잡하고 힘든 마음에 물이 동할 때 나를 들쳐 없고 달려가 연못에 제일 빨리 넣어 줄 건장한 보호자를 찾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일어서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씀을 붙잡고 일어설 때 성령께서 저의 손과 발목에 힘을 주시어 일어서게 하옵소서.
그래서 저도 피해의식속에 사로잡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조차 모르고 막연하게 주어질 상황을 기대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전하므로 38년된 병자가 일어서는 역사가 나타나게 하옵소서.
진짜 필요한 것을 채워줄 수 있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치열한 경쟁속에 패배의식,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영혼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줄 아는 진정한 이웃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