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산 소농가
축협으로부터 축산 소농가를 없앴다는 소식을 접한 지 어느덧 3년이 훌쩍 지나갔다. 그동안 잠잠하여 한시름 놓고 있었는데, 그 사업을 2023년 내년 1월부터 시행한다는 단체 문자를 보내왔다. 허가를 내지 못한 축사는 송아지 출생신고를 받지 않는 건 물론이고 기표를 달아주지 않는다는 강수를 두었다. 희망의 불씨 하나 남기지 않고 잔불까지 물을 부어 소멸시키는 축산 소농가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였다.
시골에서 하우스나 특용작물을 하지 않는 한은 농사만 지어 생활을 이어가기란 어렵다. 도시와 시골의 격차가 줄어든 만큼 생활용품과 일상생활 하는데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비용 등 시골 씀씀이도 도시 못지않다. 그러니 꾸준히 돈이 나오는 무언가가 필요한데 농사지으며 소를 기르는 것이 수입원으로는 안전한 투자라 할 수 있다.
소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골에서는 여전히 큰 재산이다. 소를 다섯 마리만 길러도 일 년 치 나오는 수입으로 목돈을 만질 수 있다. 그런데 정부에서 어떤 조치도 없이 무조건 소를 포기하라니 농촌에 사는 농부에게는 죽으란 말이나 다를 바 없다.
정부에서는 집 마당 외양간에서 기르는 소나 제대로 시설을 갖추지 않은 소 축산농가는 이참에 전부 정리한다고 한다. 신규 축사도 당분간을 내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한우의 수를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다.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솟값이 돼짓값보다 더 하락할 수 있다는 염려에서다.
이 소식을 듣고 나는 한숨이 한 말이나 되었다. 기르는 소를 믿고 남편한테 농사를 줄이자 성화를 부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바심을 내는 나와 다르게 남편의 반응은 시큰둥이다. 과거에는 축사를 못해 배앓이했던 남편이었는데 이참에 축사를 정리할 모양이었다. 정부가 내건 정책에 반기들 마음 접고 일찍부터 주눅이 들어버린 걸까.
남편은 첫배부터 세배까지 내내 쌍둥이만 출산하는 소를 이참에 정리할 거라 말한다. 그리고 한우리에 있는 비육 소를 따로 분리하였다. 남편은 아침, 저녁으로 두 끼만 주던 사료를 점심을 꼭꼭 챙기라고 당부하였다.
남편이 말한 비육을 시작한 소에게 점심을 주러 갔다. 사료를 푸기 위해 바가지를 들자 축사에 있는 6마리 소의 검은 눈동자가 웬 횡재인가 싶어 윤슬처럼 반짝인다. 그리고는 그 시선들이 일제히 나에게 꽂힌다. 이른 봄 가지를 비집고 올라오는 새순처럼 연하디연한 마음을 가진 나는 비육하는 소에게만 사료를 줄 수가 없었다.
현재 수입 제한으로 세계는 곡물값이 오르고 있다. 하루를 멀다 하고 장대 들고 널뛰기하는 사룟값에 축산농가들은 현재 소의 수를 줄이고 있다. 그런데 나는 사료 바가지만 들면 어릴 적 배곯아본 기억이 떠오르고 주책없는 인심이 끼어들고 만다. 그러면서 우리 집 가계부가 사룟값으로 인해 터널이 생기거나 말거나 축사에 있는 모든 소에게 골고루 점심을 푸지게 퍼주고 만다. 그렇게 시작된 사료 바가지 인심을 베푼 지 두어 달이 되어갔다. 그리고 며칠 전 비육 소 나갈 날이 정해졌다고 남편이 통보해 왔다.
고기로 팔기 위해 비육을 시작했지만, 막상 축사에서 나갈 날짜가 정해지면 사람으로는 할 짓이 아니다. 동물이라는 이유로 인간한테 비육 당하고 죽을 날이 정해지고, 정말이지 소가 팔려나갈 때마다 철 수세미로 박박 문지른 듯 내 마음은 너덜거린다. 그것도 모르고 모든 걸 달관한 얼굴을 하고 지그시 눈을 감고 되새김질하는 소. 드럼통 같은 배를 안고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새벽녘부터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남편. 나갈 소를 실으러 오는 트럭이 도착하기 전에 서둘러 아침밥을 먹는다. 모른 척 나는 아예 축사에 나가보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끌려가지 않으려는 소와 기필코 끌고 가려는 사람과의 실랑이를 차마 두 눈으로 볼 수 없었다.
한동안 조용하던 집안이 남편의 등장으로 적막이 깨졌다. 침대에 누워있는 나에게 남편은 소의 무게가 얼마라고 하는 거 같았다. 그러나 남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지금쯤 소는 아마도 이승의 문을 열고 나갔을 것이라는 온통 그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날 저녁이 되어서야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한테 소의 체중을 물어보았다. 남편은 신경질적으로 육백 킬로 겨우 넘는다고 대답했다. 그 속에는 나한테 제대로 소의 점심을 챙겼냐고 화를 내는 거였다. 다른 소에 비해 죽을 날을 받아 놓은 소가 불쌍해 동정을 얹어 두 바지는 더 퍼주었다. 그러나 그 소는 살 보다는 똥을 더 많이 만들어 낸 걸 내 탓으로 돌리냐며 맞받았다. 그 소는 통뼈인 내 체질을 닮았어야 했는데 이미 저승에 입적했음에도 사료만 축내고 가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나는 통장에 찍힌 솟값을 보고서야 솟값 하락을 실감했다. 몇 달 전 팔려나간 거보다 가격 차이가 확연히 났다. 이러니 정부에서 소농가를 없애려고 하는 것이 당연하리라.
일주일이 지나고 나면 다음으로 황소 쌍둥이가 경매장으로 나간다. 그러면 축사는 다른 소로 채워지는 것이 아닌 하나씩 둘씩 빈 곳이 된다. 한때 소 울음으로 번잡했던 곳이 형체만 남긴 채 뒤안길로 돌아설 채비를 서두른다. 과거 마을마다 하나씩은 꼭, 있었던 구멍가게처럼 시골의 정겨운 풍경인 외양간의 모습은 이제 박물관에 가서야 볼 수 있을 것이다. 쓸쓸함이 배어있는 내 어깨를 바람이 토닥이며 지나간다.
2022.12.6.화 요일
첫댓글 쓰린 마음에 뭐라고 위로의 말씀이 없어 죄송합니다~~또 지나 갈겁니다~~^^
다 흐름이라고 생각 하입시다~~^^
소를 먹이는 것은 정말이지 농촌에서 탁월한 선택인데 말이죠. 시대의 흐름이 야속합니다.
소형 슈퍼마켓이 사라지는 거와 다를 바 없지요. 소규모는 대규모에 잡혀 먹기 마련입니다.
소에 대한 연민의 정이 절절히 담겨있군요. 너무 사람 중심으로 사는 행태에 저역시 무척 아프고 반성할 때가 많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인간의 지배 하에서 모든 것이 인간의 생각으로 동물을 부립니다. 소는 참, 불쌍한 존재입니다.
짐승과 정들여 놓으면 자식을 키워 객지로 떠나 보내는 마음과 같지요.
정성들여 키운 소 보내야 하는 이별의 애잔한 마음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송아지를 팔 때도 마음이 좋지 않지만 큰 소를 팔 때는 정말 한동안 마음 잡기가 힘듭니다.
그동안 쌓은 정만큼 떼기까지 그 만큼의 시간이 들더라고요.
정부의 고충을 이해하시면서도 퍽 서운해 하시는군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내외분이 농업 외 직업을 가지셨으니 생계걱정은 덜하시겠습니다.
키우던 가축을 내다 팔적에는 마음이 여린 사람에게는 참 못할 짓입니다.
어린 날 그런 일을 몇 번 겪어보아 공감합니다.
참, 못할 짓 이예요. 어미 소를 파는 것은 더욱 그렇습니다.
시골 출신인 저 역시 공감하는 글입니다.
소는 가축이기 전에 집의 최고 재산이자 가족과 같은 존재지요.
어릴적 소 잔등에 올라타고 들로 산으로 쏘다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옛 추억과 더불어 농민의 애환에 동행합니다.
성필 하심과 더불어 건강 돌보시고 나날이 평안하소서~!^^*~
선생님 글을 잘 읽고 있습니다. 겨울이 되어서도 바빠서 눈 팅만 하다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