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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머니가 떠난 지 삼 주기가 되는 날이다. 우리 남매들은 어머니 산소에 모두 모였다. 산소에는 조부모와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먼저 간 사촌 형제들의 무덤이 함께 있다. 우리는 무덤의 잡초를 뽑고 석 병에 색 고운 꽃을 꽂았다. 돗자리를 깔고 준비해 온 제수 음식을 차려놓고 생전의 어머니를 추도했다. 간단한 추도식을 마친 뒤, 우리는 어머니의 살림살이가 남아 있는 농장에서 다시 모였다.
어머니는 자신이 죽을병에 걸렸다는 것을 인지하신 뒤, 나에게 몇 가지를 부탁하셨다. 가장 먼저, 어머니가 살고 있던 집을 매각해 아들 몫을 정하고, 딸에게 일부 나누어 주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큰딸에게 남겨줄 것이 없어 미안하다고 하셨다. “너도 젊은 시절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때는 나도 너희 동생들 챙기느라 네 힘든 건 돌아보지 못했다”
괜찮다고 하는 나에게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안방 베란다에 가면 간수 뺀 소금이 있는데, 너희 집에 한 포대 가져다 두어라” 나는 이런 상황에서 무슨 소금을 가져가느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의 짜증 섞인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큰딸이라고 뭐 해 준 것도 없고 줄 것도 없다. 시쁘게 여기지 말고, 오 년 넘게 간수 뺀 거다. 한 자루 꼭 가져가라. 소금은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
어머니는 병상에 계시는 동안 여러 번 “소금 가지고 갔나?” 하고 물으셨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가져갔다고 대답하며 소금 한 자루를 집으로 가져왔다. 소금 자루를 집안으로 들인 것은 내 생애 처음이었다. 결혼해 살림을 시작한 이후로는 어머니가 간수 뺀 소금을 비닐봉지에 담아 해마다 주셨고, 소포장으로도 받아왔기에 소금 자루가 필요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작년에는 그 소금으로 배추를 절여 김장했고, 프라이팬에 두툼하게 깔아 새우를 구워 먹기도 했다. 문어를 살짝 데쳐 참기름에 찍어 먹기도 했다. 각종 요리에 두루 사용했다. 결혼한 딸에게도 ‘간수 뺀 할머니표 소금’이라며 나누어 주었다. 오늘도 어머니의 추도 음식에는 어머니의 소금이 들어갔다. 그 소금은 매일 우리의 밥상에 오르고 나는 매 끼니 어머니를 떠올리며 간을 맞춘다.
어머니가 두 번째로 주신 것은 오랫동안 사용하던 낫이었다. 병명을 알고 난 뒤, 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쇠해 갔다. 이생에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삶을 정리하려는 마음이 급해 보였다. 살아온 날들을 더듬으며 꼭 전하고 싶은 말들을 큰딸인 나에게 들려주셨다. 어느 날, 베란다에 있는 낫을 가져가라고 하셨다. 그 낫은 아버지 때부터 텃밭 관리에 쓰던 것으로, 어머니 집 베란다에 놓여 있었다. “텃밭에서 제일 힘든 건 잡초다. 뿌리가 깊은 잡초는 호미로는 안 된다. 낫 끝으로 잘라야 한다. 그 낫은 아버지가 쓰던 것으로 자루가 가볍고, 부싯돌에 갈아 써서 날이 좋다. 칼날처럼 쓰기 편하다” 텃밭 일은 힘으로 하는 게 아니라 요령이라며, 몸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라는 당부도 덧붙이셨다.
나는 웃으며 큰딸에게 소금과 낫을 유산으로 주는 것이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엷은 미소를 띠며 말씀하셨다. “큰딸인데 재산 한 뭉치 주어야 하는데, 부탁만 하네” 하면서 쓸쓸히 웃으셨다. 그러면서 틈틈이 음식 조리법과 농작물을 심고 가꾸는 법을 일러 주셨다.
어머니의 또 다른 유산은 어머니가 떠난 뒤 남은 살림살이였다. 육 남매와 손주들까지 합치면 한 부대나 되는 식구를 먹이기 위해 쓰였던 살림이다. 아무리 줄이고 줄였어도 적을 리 없었다. 우리는 주인 잃은 그 살림살이들을 내가 가꾸는 주말농장으로 옮겼다.
어머니의 생활 흔적이 밴 침대와 이불, 대야와 소쿠리와 수저, 평소 애지중지하던 커피잔까지, 큼직한 살림살이들이 내 농장을 지키고 있다. 형제들은 주말이나 특별한 날이면 농장에 모여 생일 파티를 하고 시간을 보낸다. 그때마다 우리는 어머니를 이야기한다. “상추 자라는 걸 보면, 너희들 어릴 때처럼 새잎이 그렇게 사랑스럽다” 텃밭을 가꾸며 하셨던 어머니의 말을 떠올리며, 나는 이 농장을 더욱 아낀다. 어머니의 손때 묻은 낫으로 먹거리와 잡풀을 가려내고, 간수가 잘 빠진 소금으로 음식의 간을 맞춘다.
소금과 낫밖에 줄 것이 없어 미안하다고 하신 어머니께 말하고 싶다. 어머니가 남긴 것은 물건이 아니라, 인생을 잘 살아가는 지혜였다고. 떠난 뒤에도 어머니는 여전히 내 밥상에서는 소금이 되고, 텃밭에서는 낫이 되어 곁에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