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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동영상은 휴가후 올려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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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자 집사님의 지난주 말씀소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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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전 11장 9 월 11일 설교 화일입니다. 다운받으셔셔 들으실 수 있습니다.
2011 09 11 주일예배
흩어진 성도들의 사역
이대환목사
이들은 사정상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이들은 계속해서 개척자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길과 사람들을 개척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사나요? 부지런히,열심히 사는 것은 분명히 맞습니다. 새로운 영역을 사는 것이 아니라 밥 먹고 일하러가는 일상을 열심히 살고있습니다. 때로는 체력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열심히 삽니다.
끈임없이 열심히 살아서 해바라기씨를 까먹고 삽니다. 그리고 또 집을 나와서 계속 챗바퀴를 열심히 돌리며 일 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성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내 삶에 대해서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다람쥐를 보면서 “나 같구나..” 성실하기는 하지만 챗바퀴를돌려서 내 배를 꺼트린 것 밖에요... 열심히 먹고 열심히 자고, 열심히 뛰면서 세월이 가는 겁니다. 그리고 가장 안전한 우리 안에서... 그들의 삶이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내가 만들어 놓은 안전울타리를 넘어서 새 세계로 나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성실하다고 생각하면서 나의 한계와 위치를 고정시켜 놓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가치 있는 인생이라고 위안을 삼습니다. 그게 바로 우리의 한계입니다. 한계라고 하는 것이, 사람의 한계가 있을까요? 우사인 볼트... 인간의 한계를 도전하라. 우리드링 어릴때는 사람은 아무리 달려고 9초 안에 못 들어갈꺼라고 했습니다. 요즘은 얼마지요? 인간에 한계에 얼마나 더 도전할 수 있는가. 그렇지만 계속해서 갱신하면서 도전을 이루어내고 있습니다.
0.1초를 앞당기기 위해서 인간의 옷에 대해서, 인간의 상체에 대해서, 환경에 대해서.. 숱하게 많은 노력이 진보해가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점점 더 하고있습니다. 볼트가 신는 신발은 한 켤레에 100만원이 넘는다고합니다. 볼트는 양말없는 신발을 신고 다닌다고합니다. 양말을 신으면 패드효과가 생겨서 탄력이 살아진다고 합니다. 한번 달릴때마다 그 신발을 벗어서 던져준다고 한다면서요. 한계는 스스로 정하는 마음의 벽입니다.
최근에 보았던, 미국에 벨을 만드는 연구소에 회장이 된 김종훈씨라는 분이 밤에 텔레비전에 나왔습니다. 미국의 400대 부자로 들어갔습니다. 이 사람은 한국에서 너무너무 가난해서 살 길이 없어서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처음에 살던 곳은 흑인 빈민촌에 들어가서 살았습니다. 처음에 그 곳은 감옥처럼 생긴 마을이라고 합니다. 이분은 그렇게 가난한 마을에서 살면서 악착같이 노력했습니다. 교통사고로 죽을뻔로 여러번 있었구요. 그러다가 98년도에 10억 달러 ( 1조) 에 매각했습니다. 미국 최고의 상류사회로 올라갔습니다. 하루에 2시간씩 자면서, 햄버거와 피자를 그렇게 많이 먹었대요. 피자의 장점은 먹으면서 할 수 있잖아요. 그 사람 칭찬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우리 마음 속에는 한계를 미리 설정해둡니다. 나는 뭐가 나빠서 못해, 무엇을 못하기에 할 수 없어.
육상 게임에서 다리가 없지만 스프링을 끼고 대회에 참여한 선수가 있었지요. 여러분의 한계는 무엇입니까? 설정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행 11:19, 개정)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이들이 흩어져서 복음을 전하는데 마음속에 벽이 있습니다. 헬라인들이 겁이 납니다. 나는 믿지 않아요. 기독교 싫어요. 예수 믿나요? 교회 가나요? 구찌가방이 비싸잖아요. 정품이 많습니까? 짝퉁이 많습니까? 중국산으로 건너온 명품가방, 로렉스 시계... 그렇다고 이 것들이 가짜만 많나요? 그것은 즉 진짜가 그 가치 만큼 귀하는 의미입니다.
당신이 그래서 바로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고. 교회만 다닌다고 하면서 실상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지않는 엉터리 신자가 되어서, 담대하고 당당하게 말해야합니다. 우리가 가진 스스로의 한계들을 인정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나의 한계보다 더 큰 것은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행 11:20, 개정)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구브로에서 믿는 어떤 헬라인들이,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그들 중 몇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었는데... 그들 중 몇 사람이 안디옥에 와서 헬라인에게도 말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전도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까지도.
맑은샘교회의 장점은 러시아사람도 와 있습니다. 여러분은 눈을 더 넓혀가셔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열망의 내용이 무엇인가하면, 우리의 눈이 닫혀져있고 폐쇄성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못 벗어납니다. 다른 종류의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헬라인에게도 전도했는데 그들도 예수를 믿었습니다.
어제 아침에 어떤 분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우리 아이가 카잔에 가 있는데, 그 곳에 있는 선교사에게 연결을 시켜달라고. 그래서 당신부터 소개를 하라고 했더니, 총신에 75회 졸업생 누구라고 하는데... 검색해봤더니 없었어요. 그래서 밤에 선교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소개를 시켜주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경계합니다.
나쁜사람은 없습니다. 나빠진 사람은 있습니다,
수혈을 많이한 친구가 이런 말을 합디다. 수혈을 많이하면 성격이 바뀌는 것 같아. 본인의 주관적인 경험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구분은 안됩니다만은. 다른 세계를 경험하니까 성격이 바뀐다는 거에요. 순박한 시골 청년을 도시에두면 성격이바뀝니다. 그의 환경의 특수성 때문에 그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져서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삶에 새로운 길을 여시고. 새로운 삶, 가치관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도전하시기를 바랍니다.
(행 11:21, 개정)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행 11:22, 개정)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행 11:23, 개정)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이방인이던지 어느 누구이던지 복음이 그들에게 들어가고,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면. 주의 손이 여러분의 육체와 삶에 얹혀지면. 저가 일어나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주의 손이 한 영혼에 머물면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게됩니다.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당신의 손길을 내 영혼에 머물게하소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들어가고. 진심으로끌려다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처음에야 다 끌려 나오겠지요. 나오면서 하나님을 배워가면서 알아가면서 하나님 앞에 행할 것이 무엇인지 마음의 중심을 정해야합니다. 내가 이제는 주님을 전심으로 따르겠다고 마음을 작정하고 신실하게 따르십시오. 예배에 나오거든 신실하게 따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손기링 여러분의 삶에 살아있다는 것이 사건으로 보여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내 삶에 부분 부분에 은혜가 느껴질 것입니다. 손을 많이 댄 분재는 값어치가 올라가게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의 얼굴에도 손을 많이 대면 예뻐집니다.
예수님이 그 모든 것을 치료하셨나요?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들어 지나가시더니. 많은 사람들이 웅성웅성 따라다니고 있습니다. 바구니를 두고 동전을 구걸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바구는 박차고 일어나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구원하소서’ 이 사람은 소경이고, 돈도 없고, 구걸하는 한계가 뚜렷하고, 한계로 똘똘뭉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자기의 한계인 깡통을 발로 차고 뛰었습니다. 소경이 뛰는 것이 가능합니까? 얼마나 깨지고 얼마나 부딪쳤을까요? 예수님께서 그를 돌아보았습니다.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다 치료해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나는 당신의 터치를 원하나이다. 그렇게 나아왔을 때에 눈이 열려지고, 길이 열려지고, 예수님은 구제사업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모든 병든 사람을 다 고쳐주는 허준같은 사람이 환자를 치료하느랴 과거도 놓치는 그런 사람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이 치료한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서 은혜를 갈 구하면서 나오는 사람들을 그들을 주님은 치료하셨습니다. 이 사람들을 살펴보십시오.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을 구하게되면 역사는 일어납니다.
(행 11:24, 개정)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어떤 사람을 착하다고 하나요? 착하다는 것은 다른사람을 돌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착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신자의 특징 일번은 다른 사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공부만 해서 미친사람을 보셨나요? 몸이 에너지를 쓰지않았기 때문에 시차적응이 안된겁니다. 아까 말한 그 김사장님은 미국에서 프랑스로 건너가서 시차적응? 힘들면 런닝머신을 뛰어 땀을 쫙빼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볼도면 내가 살게되어 있습니다. 이번 추석때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돌보십시오,
두 번째,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늘 하나님을 의식합니다. 거지와 목사의 공통점... 오라는데는 없어도 갈 곳은 있다. 그리고 가면 먹을 것을 준다. 목사도 심방가면 먹을 것을 주잖아요. 오라고 하지 않는 곳에 가십시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행 11:25, 개정)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행 11:26, 개정)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세 번째는 양육하는 사람입니다. 일년간 사울을 데리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양육을 합니다. 찾아가고, 성경말씀을 나눕니다. 제자들이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듣게되는 첫 번째 내용이 이 것입니다.
첫째 다른사람을 돌보는 사람, 둘째 성령과 지혜 , 믿음이 충만한 사람,, 세 번째는 오라고하지 않아도 찾으러 가는 사람...
핸드폰을 바꾸었는데 ,그 놀라운 기능, 카카오톡... 오래동안 연락이 끊겼던 사람들의 이름이 뜨더라고요. 번호만 넣어놓으니까 사람들이 이름이 저절로 뜨더만요. 터치하고 노트하면 전화오고, 그리고 상담하고 이야기하다보면 변화가 이루어지고. 카카오톡으로 사람들을 찾고 방문하고 이야기하십시오. 카톡을 하던지 메일, 편지를 보내던지 찾아가던지... 카톡으로 먼저 시도해서 만나는 것 까지... 주일 날 교회만 나오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친구에게 할만큼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의 이름으로 말하십시오. 그 사람들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를 많이믿으니까 그 땅에 사역자들이 필요했습니다. 많은교사들이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러 찾아갔습니다.
(행 11:27, 개정)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행 11:28, 개정)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그 이웃사람들을 위해서 부조를 보냈습니다. 헌금을 모아서 그곳에 보냈습니다. 서로 후원한 것입니다. 이쪽은 말씀이 있으니까 말씀을 전하고. 이 쪽에서는 그들이 흉년이 들어서 먹을게 부족하다고 하니까 헌금을 보내고..
(행 11:29, 개정)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행 11:30, 개정)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 바나바는 원래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사람이고, 사울은 예루살렘으로 처음 올라갑니다. 시골에서 노래하던 사람을 서울 kbs에서 불러서 한 스테이지를 하게되었다. 시골 동네 가수가 중앙 kbs에 데뷔한다고 하지요. 사울이라는 사람이 중앙무대에 데뷔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들에게 필요한 말씀을 보내주고. 이러한 섬기는 삶이 일어났어요. 그랬을 때에 거기에 자식들이 가장 중앙무대로 데뷔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충실한 성도로써 교회와 성도를 섬기는 일에 힘쓰십시오.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훌륭한 리더가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가정예배 드리십시오.
그리스도인으로 데뷔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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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백집사님의 간증을 다시 들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셨습니다. 다음주일은 누구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