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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평안하옵신지요.
님께서는 여러 사람이 궁금해 하시는 것을 그들을 대신하여 질문해 주셨습니다.
그럼으로써 그 모든 분들이 알 수 있도록 성경의 바른 의미를 제공해 주시려는 마음이 참 아름답습니다.
이에 다음과 같이 답변을 드립니다.
먼저 님의 질문을 보겠습니다.
“본문 - 마태복음 16:24 - 은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들이 예수님을 시험코자한 질문 속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처음으로 말씀 하실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이 하실 일을 말리는 가운데 베드로를 꾸짖으시며 이 말씀을 하신 것이지요. 그럼 여기서 하신 말씀이 자기부인과 자기십자가를 지라는 말씀 인대요. 그렇다면 우리들에 삶 속에서 우리들이 져야할 십자가는 무엇이며 우리가 부인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요?? 잘못알고 있으신 분들을 위하여 수고 좀 부탁드립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님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마태복음 16:24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하여 하늘에서 오는 표적을 요구하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조심할 것을 말씀하신 후,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오셨을 때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신앙고백에 있게 하시고, 그때부터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겪게 될 일인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실 때 그 일이 결코 예수님에게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만류에 있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지금 하고 있는 말과 행동이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고 있는 일로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에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하신 말씀의 한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보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님은, 예수님이 하신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라고 하신 말씀을 우리들의 삶 속에서 우리들이 져야할 십자가는 무엇이며 우리가 부인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의도는 거기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의도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앞서 설명을 드렸습니다만,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했던 것에 대해 제자들에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시는 것에서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류하는 말을 하는 것에서 그 - 그리고 제자들 - 에게 있었던 예수님이 하시는 일 앞에서 사람이 하는 일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를 드러내신 후에 하신 것임을 먼저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이 하실 일에 대하여 들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죽음을 당하신 후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하나님의 일을 받들어 가는 길에 예수님을 따름에 있는 제자는 이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것, 곧 예수님에게 있었던 ‘하나님의 일’은 없고, 도리어 베드로 - 제자들 - 에게 있었던 사단이 배후에서 하고 있는 일인 ‘사람의 일’이란 무엇이겠는지요. 베드로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겪을 고난을 생각해서 갖는 걱정과 염려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만류했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베드로가 왜 그처럼 예수님을 만류했었는가 하는 이유가 드러납니다. 그가 그처럼 예수님을 만류한 것은 예수님이 겪을 고난을 생각해서 갖는 걱정과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표면적인 것입니다. 그것의 직접적인 원인이 베드로의 속마음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를 부인하고'에서 말해지고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여야 한다는 말은 자기의 전존재를 포기하라는 뜻으로 자기를 버려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를 버려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이니까 이 말의 숨은 의도는 자기를 버려야 할 뭔가인 '자기를 위하고'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곧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숨은 의도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다음의 말씀에서 확인이 됩니다. 그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인데,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 16:25-26)에서 말씀되고 있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죽음을 당하는 것에서 자신들의 목숨도 잃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하여 자기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이죠. ‘예수님을 위하여’ 만류한다는 것에는 사실은 ‘자기 목숨을 위하여’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목숨을 위하여’, 곧 자기 목숨을 생각해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겪게 될 일을 만류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있는 이 본심을 드러내시고는 이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으로 ‘자기를 부인하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지만 ‘누구든지를 주님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자기 부인’이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에서 주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에서 말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는 이런 일이 따르기 때문에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를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일의 생각에 제자들의 목숨이 있게 하실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비롯해서 제자들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을 만류할지라도 하나님의 일을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정하신 일인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물이 되실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제 삼일 만에 예수님을 다시 살리심으로 예수님을 따른 모든 자들의 주가 되심으로 그들을 위한 속죄 사역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와 함께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부인’에 있는 것에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이기에 이와 같이 말씀하셨겠는지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에게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란 자기 십자가를 날마다 지는 것에서 실현이 됩니다. 그래서 누가는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란 말 앞에 '날마다'를 추가하여 말했습니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입니다(눅 9:23).
여기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게 하시는 것은 그들에게서 ‘자기 부인’에 있게 하시는 것으로 있는 일입니다. 제자에게서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그들의 본능과 본성에서 발휘되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심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것으로 있는 것이며,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에 있음에서 우리가 지는 십자가는 그리스도이신 예수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예수님이 베푸신 세례에 의해서 예수님과 함께 묻혀서 그분과 더불어 죄에 대하여서는 죽은 자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으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 같이 하나님의 생명에 대하여서 산 자가 됩니다(롬 6:4).
이는 예수님을 따름에 있는 것에서 능력있게 발휘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함으로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는 죄에 대하여서는 죽은 자가 되게 하시는 것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는 그 육체에 자기 십자가를 날마다 지는 것에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육체에서 나오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됨으로 또한 비로소 날마다 자기 부인에 있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좇음에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이제 이것이 님의 질문에 대하여 어떤 답변이 되겠는지요. 예수님이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라고 하신 말씀에서의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우리들의 삶 속에서 어떤 것이겠는지요. 어디에서 본 것인데, “자기 부인은 나를 버리는 것이다. 나의 옛사람, 나의 육신의 생각인 거짓과 미움과 욕심을 버리는 것이다”라고 하였는가 하면,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나를 죽이는 것이다. 나를 온전히 버리는 것이다. 물질에 대한 욕망을 버리라는 뜻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대체적으로 ‘자기 부인’을 자기 희생적인 헌신, 자기를 낮추는 삶 등으로 말하는가 하면,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을 박해와 그와 같은 것에 따른 고난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 등으로 말합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고 죽기까지 하셨으니 우리도 주님을 위해서 그렇게 살자는 식입니다. 그렇다 보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가 본래의 의미와는 다르게 왜곡이 되어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에 욕심을 갖지 말고 물질, 시간, 몸, 생명 모두를 주님께 바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해하고서, 그렇게 해 나가는 것으로 교회에도 열심히 다니고 헌금도 많이 하고 자기에게 맡겨진 교회 일도 충성스럽게 해나가고, 기도도 하고 전도도 하고....이런 저런 일을 참 많이 해 나갑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의 본의는 예수께서 우리 자신의 골수와 그 진액을 짜내고 빼낼 것을 요구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설사 그런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되지도 못합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인간은 ‘자기를 위하여’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조차 이용하려드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말이죠. 예수께서는 언제나 육체의 욕망을 좇는 자기를 위한 본능에 충실한 것이 인간인 사실을 드러내시면서, 그래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그 정체를 발가벗겨 훤히 드러내시고, 그러한 우리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따르게 해주시고 있음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날마다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에 있게 해 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그 뒤를 따라가는 것에서(참조. 계 14:4), 즉 우리를 어디로 가게 하시며 그래서 어디로 있게 하시든지 간에, 그래서 우리가 어떤 삶에 있는 현장에서든지 간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있는 것에서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게 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을 무엇에서 보며 그 진의를 이해해야 하겠는지요.
그것은 말입니다. 지금 님과 그리고 님이 본 답글을 통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말해주고자 하는 분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있으며,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에 있는 자들에게 날마다 있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 내어놓으셨으며, 또한 삼일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들의 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해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능력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이 이적을 날마다 일으키십니다.
이제 지금까지 설명하여 답변드린 것을 간단히 맺겠습니다.
님이여,
아무든지 예수님을 따르려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 예수님을 따를 것이니,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서는 아무든지 예수님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즉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요,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그런 자를 보면 그는 대체 어떤 자이겠는지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에 있는 자이죠.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있어서 예수님을 따름에 있는 것이니 말입니다.
이 일을 누가 이루는 것이겠는지요. 예수님을 따름에 있는 그 입니까? 아닙니다. 아무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지 못합니다. 육체의 본능과 본성에서 나오는 죄성에 의하여 자기 욕망을 좇아 사는, 곧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그래서 도무지 하나님의 일의 생각에 있지 않는, 그래서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없는게 사람의 실체인데 그러한 그에게서 예수님을 따름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다" 라고 하신 말씀은 예수께서 이루십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죽임을 당한 후 제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셔서 온 세상의 주가 되심으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자신 안에 불러 모으시고 죄에서 구원하시며 예수님이 어디로 가든지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에 있는 자가 되게 하심으로써 말입니다.
이에 따라서,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에 있는 자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에 있는 자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서 날마다 예수님을 따름에 있는 자입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우리가 오늘도 예수님을 따름에 있으면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게 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게 하는 예수님의 함께 하심을 보며 예수께서 그와 같이 자신의 주가 되심에 감사하며 기뻐하면 됩니다.
그러한 것을,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이런 저런 어떤 행함, 그 일을 하는 무엇인가를 통해서 자기 부인에 있으려 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려고 합니다. 그러한 그에게는 그것이 그의 자랑과 의가 될뿐이지 결코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에 있지를 못합니다. 그는 그 일을 한 것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내세우며 자신이 한 그것으로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으며 그 한 것에 따른 자기 목숨 - 영생 - 을 구하며 걸맞는 상급을 받으려고 할 뿐이니 어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지요.
님이여.
이상으로 답글을 마칩니다.
본 답글이 님에게도,
그리고 님이 도움을 주고자 하는 그 모든 분들에게도
과연 도움이 되며 유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에 대한 올바른 이해 속에서
그리스도이신 예수께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려 견고히 잘 서 나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목사님!
맞습니다 예수그리스도 통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것에 한정된 사랑이 아님을 다시한번 알게 하심에 감사 합니다
하나님이 한번 택한 자기백성은 끝까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 두시고 구원에 이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많은 사람이 바른 진리를 접했으면 좋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