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말씀은 일명 “최후의 만찬”, 즉 예수님의 마지막 식사 이야기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최후의 만찬을 그린다면 어떤 장면을 넣으시겠습니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자신의 그림에 예수님을 팔자가 그릇에 같이 손을 넣은 사람, 즉 가룟 유다가 바로 그 사람이라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을 비교하여 보면 마지막 만찬의 순서가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떡을 먹고 잔을 마십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은 잔을 마시고 떡을 먹습니다. 이것은 성경 저자들이 유대인 파 중에 누구의 전통을 따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예수님 당시에 대표적인 유대인 파는 셋입니다. 바리새파, 사두개인파, 에세네파입니다. 바리새인파, 사두개인파는 유월절 음식을 먹을 때 잔을 마시고 떡을 먹습니다. 에세네파는 떡을 먹고 잔을 마십니다. 그러므로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는 성만찬, 마지막 만찬은 에세네파식입니다.
유대인들은 잔을 마실 때, 네 번 잔을 부딪치고 다음 섹션을 진행합니다. 왜 네 번일까요?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중약속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즉, “백성의 소리를 들었다, 끌어냈다, 새로운 땅으로 인도한다,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25절을 보면 잔을 세 번 하시고 네 번은 안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새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이는 장차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다시 잔을 채워야 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성만찬, 마지막 식사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떡과 잔이 아닙니다. 그 순서가 아닙니다. “먹는다”, “마신다”가 중요합니다. 유대인 배경에서 “먹는다”는 율법을 의미하고, “마신다”는 실천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떡을 먹는다는 것은 그 가르침을 먹는 것이고, 잔을 마신다는 것은 그 가르침대로 살아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성만찬, 마지막 식사에서 강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2:19절을 보면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현대 교회는 이 말씀을 지키기 위하여 성만찬을 행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기억해야 하는 것은 성만찬을 행할 때마다, 떡과 잔을 받아들 때마다 예수님의 가르침 대로 살지 못한 것에 대한 진정한 회개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겠다는 결단의 시간이어야 합니다.
24절을 보면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출애굽기 24장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장면이 나옵니다. 출애굽기 24:6절을 보면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립니다.
모든 하나님과의 언약에는 피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모세, 그리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에는 짐승의 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우리의 언약, 즉 새언약에는 예수님의 피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세워진 언약의 공동체는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그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희생 제물이 되어서 날마다 산제물로 드려져야 합니다. 우리가 성만찬을 통하여 예수님의 살인 떡과 예수님의 피인 포도주를 먹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 희생제물이 됨을 통하여 우리가 죄사함, 구원을 얻었습니다. 죄사함, 구원을 받는 우리는 다시 우리가 희생 제물이 되어서 산제물로 드려져야 합니다. 우리 몸을, 우리 삶을 드리는, 그래서 우리 일상 자체가 늘 예배가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피로 세워진 언약 공동체에 속한 우리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