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간은 쯔빙글리, 루터, 칼빈 같은 종교 개혁자들에 의해 '마귀가 만든 악기' 혹은 '악마의 도구'라고 혹평을 받던 때도 있었다. '오르간'하면 얼굴이 빨갛고 이마에 뿔이 두 개 달리고 손에 삼지창을 쥔 마귀가 생각나던 때도 있었던 것이다.
오르간과 교회의 인연
가톨릭 교회에서는 사도들의 뒤를 이어 교회를 이끌었던 사도들의 제자들, 그리고 그 제자들의 가르침의 맥을 잇는 6-7세기까지의 인물들, 그들 가운데서도 특히 삶과 저술을 통해서 정통신앙을 수호하던 이들을 교부(敎父)라고 부른다. 그 교부들은 영혼을 고양시키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아름다운 성가를 매우 중요시하였다. 이에 반하여 악기음악에는 매우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고대 관악기들도 거부하였고 더욱이 사치스럽고 사람의 감정을 녹여 자극하는 오르간은 말할 것도 없었다. 유스티노(St. Justinus, 103-168)는 모든 악기를 교회에서 추방하였다. 음악가들에게는 음악을 버리지 않으면 세례를 주지 않았다. 예로니모(St. Hieronymus, 347-420)는 모든 악기들을 사악한 것이라 했다. 아를르 공의회(314년)는 모든 배우나 광대들을 파문하였는데, 오르간 연주자나 기타 연주자들도 배우중 하나로 취급되었다.
한편 오리게네스(Origenes, 185-253)는 시편 150장 해설에서 하느님의 교회를 하나의 오르간으로 비유해서 설명했다. 여러 개의 음색(stop)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명상적이면서도 활동력이 왕성하여야 하는 교회의 특징이 오르간이라는 악기를 통해서 잘 설명되기 때문이었다. 그레고리오 대교황(Gregorius Magnus, 540-604)은 오르간을 거룩한 설교의 표상(sancta praedicatio)이라고도 했다. 교부들의 오르간에 대한 반응을 전체적으로 평가한다면, 오르간에 대한 저항감에도 불구하고, 이 여러 부품들이 모여서 조화와 화음을 표현하는 악기에 대하여 감탄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과정은 암흑 속에 가려져 있으나 어느 때부터인가 갑자기 오르간은 오직 교회의 악기로만 취급되고 세속 악기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 시대가 왔다. 아마도 칼 대제의 셋째 아들인 왕 루드비히(Ludwig der Fromme, 778-840)에게 오르간을 직접 제작해 준 베네치아 출신 신부 그레고르(Gregor)가 자기 제자들에게 제작 기술을 가르쳤고, 수도사들인 제자들은 서양의 초기 오르간 제작자 구룹을 형성했으며, 당연히 이 아름다운 악기를 전례에 사용하고자 하는 커다란 유혹을 받았을 것이다. 아무튼 어떤 공의회의 결정이나 혹은 교황 칙서도 없이 14세기에는 교회의 거룩한 악기가 되었다. 교회의 권위는 오르간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걱정스런 눈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물론 그 전에 교황 요한 8세(Johannes, 872-882)가 바이에른 지방 프라이징 교구의 대주교 한노(Hanno)에게 오르간과 그 연주자들까지 로마로 보내달라는 주문을 한 일이 기록에 있지만, 그것은 음악교육을 위한 것일 뿐이었다. 915년에는 아톤(Atton)이라는 한 공작이 수도원을 지어 봉헌하면서 오르간까지 설치해주었다는 기록이 있고, '성 오스왈드의 생애'라는 책에는 992년도 기록에 성당에 아름다운 오르간을 봉헌하였는데 그 소리가 황홀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에 성당마다 오르간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스콜라 철학의 대가요 중세 가톨릭 교회의 최대 신학자로도 꼽히는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오르간을 '영혼을 천상으로 이끄는' 아름다운 악기라고 찬양하였다. 그보다도 1827년에 밀라노에서 개최된 시노드(Synod, 공의회보다 한 단계 낮은 가톨릭 교회 회의)에서 오르간은 유일한 전례악기로 인정되었다. 물론 여기에 반대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이 때부터 오르간이 가톨릭 교회의 공식 악기로 지정되었다.
16세기의 마르틴 루터나 칼뱅, 쯔빌글리등의 반란을 통한 프로테스탄트 교회 분리는 오르간에게도 수난의 시기를 가져왔다. 특히 청교도들은 모든 성상들을 파괴하고 스테인드글라스도 깨뜨렸으며, 오르간을 악마의 악기라고 부르면서 헐어내어 불질러버렸다. 하지만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오르간은 다시 예배당의 전면에 설치되면서 예배당의 유일한 장식(裝飾)겸 예배용 악기로 자리잡았다. 그리하여 오르간 역사에 유명한 북독 오르간 악파를 형성하는 바탕이 되었다.
가톨릭 교회의 오르간에 대한 애정은 전통적으로 각별하였다. 반종교개혁의 일환으로 있었던 트리덴틴 공의회가 교회음악의 표준 모델로 그레고리오 성가와 무반주 다성음악(Polyphony)을 최고로 삼았던 로마악파의 전통을 받아들였지만, 그래도 오르간은 교회 전통악기로 지정하였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도 전례헌장에서 그 정신을 계승, 확인하고 있다. 라틴 교회에서 파이프 오르간은 전통적인 악기로서 크게 존중되어야 한다. 그 음향은 교회 의식에 놀라운 광채를 더하고, 정신을 하느님 및 천상에로 힘차게 들어올릴 수 있다.(전례헌장 120항)
◇ 대성당 안에 있는 파이프 오르간

◇ 오르비에또 성체의 기적 성당안의 파이프 오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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