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는가 싶더니 오늘은 겨울이 성큼 다가온듯 춥습니다. 이런 날에는 동검도채플도 적막합니다. 찾아오는 이가 적어 혼자 커피 마시며 한강 작가의 시집을 읽고 있습니다. 아무데나 펼쳐 읽다가 이런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나의 인디언식 이름은 펄펄 내리는 눈의 슬픔입니다. 눈이 펄펄 내리면 온동네 강아지들도 다 뛰쳐나와 기뻐하는데 어찌 이 작가는 슬픔을 말하고 있을까요? 나는 본래 낙천주의자라 어떤 고통도 가난도 질병도 심지어 죽음도 나를 불행하게 할 수 없다고 떠들고 다닙니다. 나는 행복도 불행도 점염성이 강해 나의 불행은 나와 가까운 이웃들을 불행으로 점염시키는 죄라고 생각하여 어찌하든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하며 살려고 합니다. 잘 생각해 보면 행복해야할 이유가 수백가지도 넘는데 눈 앞에 닥친 몇가지 어려움으로 불행해 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나는 늘 자신에게 내가 받은 복을 세어보라고 주문합니다. 나는 사람들이 불행이라고 여기는 것들조차도 그 깊은 뜻을 헤아려 보면 축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거라는 생 각을 합니다. 그런 내가 오늘은 정직하게 슬픔에 대해 생각해 보려합니다. 하느님은 나를 어떻게 보실까요? 너는 참으로 사랑스런 나의 아들이다. 너는 내 마음과 내 뜻이 너의 삶 속에 완전히 실현된 나의 걸작품이다. 나는 이런 모습과는 정반대입니다. 나의 근원적 자아를 돌아보면 나는 하느님이 나를 창조하신 본래의 모습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기쁨이라기 보다는 하느님의 아픔이며 슬픔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면 나를 보고 기뻐하며 웃기 보다는 안타까와 슬퍼하며 눈물을 흘릴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자신이 창조한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보며 하느님은 눈물을 흘리고 계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눈물의 왕이십니다. 자신을 저버리고 사랑을 잃어버린 우리들의 죄로 인해 비참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과 병들어 신음하는 지구를 보며 하느님은 비처럼 눈물을 쏟고 계실 것입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나도 하느님처럼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들 곁으로 다가가야 할톈데 나는 뻔뻔스럽게 나의 행복을 노래하며 매일 축제의 잔치를 벌리며 살았습니다. 하느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당신처럼 지금 우는 이들과 함께 하며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