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산 산행기
대한건축사등산동호회에서 주최하는 구봉산 산행에 참가하기 위해 교대역으로 나갔다. 해가 짧은 겨울철에는 깜깜한 방중이어서 출발지로 가는 것이 밤을 설치는 것 같았는데 해가 길어져서인지 조금 여유롭게 느껴졌다.
예정대로 7시 정각에 출발했다. 도시를 벗어나니 차창 밖이 자연풍광으로 변했다. 서울건축사등산동호회 안경희회장이 행사를 시작하는 인사말을 했다. 이어서 서울시 건축사회 김재록 회장, 대한건축사협회 박성준 부회장, 오영섭 감사 등이 연이어 인사말을 했다. 인사가 끝나고 내가 근래 쓴 시 ‘아카시아 꽃’을 낭송했다. 죽암휴게소에 들러 차에서 내리니 아카시아 꽃향기가 풍겼다.
통영대전고속도로를 거쳐 10시 구봉산 주차장에 예상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 전국각지에서 회원들이 타고 온 버스가 주차장에 들어서 있었다. 배낭을 챙긴 다음 간단히 몸풀기를 하고 행사 현수막 앞에서 단체 사진 촬영을 한 다음 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구봉산은 9개의 기암 봉우리가 연이어 솟아 있는 산이다. 산 이름도 그런 연유로 붙여진 듯 했다.
포장된 진입로를 가다 산길로 접어들었다. 이정표에 구봉 정상이 2.7km 운장대가 10.7km로 쓰여 있었다. 여기에서 호남의 명산으로 꼽히는 운장산까지 등산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초입의 완만한 길이 갈수록 가팔라졌다. 내려오는 차 안에서 행사가 시작되는 오후 1시 전에 산행을 마치기 위해 역량이 닿는 사람은 다 완주하고 가급적 4봉쯤에서 원점 회귀하자고 했었는데 나는 전 구간을 다 마칠 생각으로 빠른 걸음으로 올라갔다.
조금 오르다 보니 앞쪽에 경남지역 회원 분들이 가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전국 행사 때마다 보아온 김진수, 조성복, 이철식 건축사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했다. 조금 더 오르다 다시 경기지역 회원들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앞서 올라가다 이번엔 부산 회원들을 만났다. 직전 산행대장을 역임한 이원만 건축사도 보여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거기서 조금 위쪽의 조망데크로 오르니 왼편으로 지나갈 봉우리들이 시원스레 바라보였다.
올해가 시작 된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덧 6월 초순을 지나며 봄에 여리게 피어나던 새싹들이 자라서 이제는 제법 성숙한 티를 띠었다. 내려올 때 차창 너머로 보이던 논에도 여린 모들이 자라서 포기를 벌여가고 있었다. 나뭇잎들이 무성해지면서 땅속뿌리에서 빨아올리는 수분도 많아졌을 것이다. 그리고 촉촉해진 잎들이 대기를 적시며 산에 그윽한 운치를 돋우고 있었다.
잠시 풍광을 감상하고 2봉과 1봉 사이로 오르다보니 전북회원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회장이 전북소속이어서 함께 수고가 많았을 것 같았다. 지나치며 인사를 건네고 진행방향 뒤쪽에 있는 1봉에 올랐다. 데크 전망대에 서니 산행을 시작한 주차장과 주변 산세가 넓게 펼쳐보였다.
다시 정상석 쪽으로 올라와 화구를 펼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건축사 회원과 다른 일행들이 다가와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하면서 나에게도 인사를 건네주었다. 여성 한분이 다가와 전에 모악산에서 만났던 최성근건축사 부인이라며 인사를 해서 감사했다. 대전의 여성 회원 분은 평소 글을 쓴다며 내가 그리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갑자기 헬기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구조 헬기가 출동한 것 같았다. 다른 일행이 올라오면서 건축사 회원을 구조하러 뜬 거라고 했다. 평소 자주 오르는 북한산에서 헬기가 출동하는 광경을 많이 목격해서 구조대가 왔으니 안심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올라온 회원 두 분이 전망대 쪽에 자리를 잡은 다음 막걸리 한잔과 방울토마토 1개, 오이 한 토막 등 안주까지 챙겨서 갖다 주었다. 사람이 뜸해져서 주변이 조용했다. 마지막 봉우리가 높이 솟아 보였지만 봉우리 사이 거리감은 잘 느껴지지 않았다. 9봉까지 가려면 갈길이 멀었다. 그래도 빨리 걸으면 행사에 참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부부가 정상석 앞에서 사진을 찍고 전망대 쪽으로 갔다. 아무도 없이 조용한 상태에서 무아지경에 빠진 것처럼 그림에 집중하게 되었다. 잠시 후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방금 전 그 부부가 내가 집중하는 것에 방해되지 않으려고 숨죽이며 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빙그레 웃었다. 서둘러 화구를 챙기고 2봉으로 향했다. 1봉과 2봉 사이 오르고 내려가는 계단이 많았다. 봉우리들이 마치 봉수대처럼 솟아 있었다.
잠시 후 2봉에 도착했다. 1봉보다 높이가 더 높아서 진행할 능선이 바라보였다. 계속해서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3봉을 지났다. 봉우리 사이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다. 아까부터 보이던 정자가 있는 봉우리에 오르니 4봉 표지석이 놓여 있었다. 거기서 서울회원 일행이 식사를 하고 있다가 나에게 밥을 먹고 가라고 권했다. 하지만 지체하기 어려워 권하는 술 한 잔과 안주를 입에 넣고 다시 길을 나섰다.
4봉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다가가니 긴 구름다리가 보였다. 그 앞에서 다시 아까 오르며 보았던 경남 회원들을 만났다. 다른 지점에서도 다른 경남회원분들을 만났던 것 같아 물어보니 오늘 참가자가 100명이나 된다고 했다.
구름다리를 건넌 곳이 5봉 꼭대기였다. 그리고 바로 뒤쪽으로 6봉이 가까이 연이어 서 있었다. 그 너머 7봉은 깎아지른 절벽 옆으로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게 되어 있었다. 7봉을 지나 8봉 정상에서 사진을 찍고 돈네미재로 내려섰다. 8봉과 9봉 사이에 있는 그 안부에서 행사 진행 회원이 9봉은 못 올라간다며 내리막길로 안내를 했다. 오를 수 없는 봉우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시간이 맞지 않을 거라는 뜻이었다. 내가 금세 다녀오겠다고 하면서 서둘러 올라갔다.
9봉은 지금까지 지나온 봉우리들과 달리 독립적으로 높게 치솟아 있어서 오가는 거리가 멀었다. 급경사 길을 쉬지 않고 빨리 오르기가 만만치 않았다. 한참 후 앞쪽에서 아가씨 둘이 내래오고 있어서 얼마나 남았는지 물어보니 15분쯤 더 가야된다고 했다. 위쪽이 트여보여서 그 위로만 오르면 끝날 것 같았는데 그 너머로 더 오를 곳이 있는 것 같았다. 스스로 마음을 여유롭게 갖으며 계속해서 걸었다. 늘 그렇듯이 한걸음 한걸음 옮기다 보면 어느덧 정상에 다다르게 된다.
12시 54분 구봉산 정상(1002)에 도착했다. 옆쪽에 설치된 안내판을 보니 덕유산 등 여기서 조망되는 큰 산들이 사진에 나타나 있었다. 여기서부터 곰작이산을 거쳐 운장산(1,125.8)까지 이어지는 산맥은 운장분맥으로 불린다.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갈래 나뉜 금남호남정맥이 영취산-팔공산-주화산으로 이어지고 주화산에서 다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으로 나뉘는데 이곳은 금남정맥 운장산에서 갈래 뻗어 나온 산맥으로서 이 일대가 진안고원으로 불린다. 그리고 연석산(925)-운장산-구봉산으로 이어지는 산맥 구간을 호남알프스로 부르기도 한다.
구봉산 산운(山韻)
김석환
구봉산 정상
구봉에 올라보니
탁 트인 시야에 담긴
사방 산세가
끝없이 너울져가네
초여름 녹음에 젖은
푸른 산운이
촉촉한 감촉을
드넓게 감싸들고
저 멀리
아스라이 이어진
백두대간이
오래전 비 맞으며
웅크린 마음으로
지났던 때를
떠올리게 하네
산허리 감아돌아가는
용담호가 산천을
적셔주고
앞 능선 너머에
솟은
마이산 봉우리는
귀를 쫑긋 세우며
산운을 듣네
20230610
*산운(山韻) : 산의 아취, 정취
진안군은 북쪽으로 전라북도와 충청남도 경계가 맞닿은 논산시와 금산군, 동쪽으로 무주군, 남쪽으로 장수군과 임실군, 서쪽으로 완주군과 접해 있는 고산 지역이다. 구봉산 정상에서 보이는 용담댐이 금강의 상류인데 그 물길 너머로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지나고 있다.
금남정맥은 주화산-운장산-대둔산-계룡산-부소산으로 이어지며 금강과 만경강을 가르고 호남정맥은 주화산-내장산-무등산-조계산-백운산으로 이어지며 섬진강을 감싼다. 전북지역 안에서 큰 산을 별로 의식하지 않아 왔다. 진안에는 마이산(687.4)이 유명하지만 높이는 이 곳 구봉산이 훨씬 높다.
주변 지리를 확인하면서 사방을 둘러보다 보니 앞쪽 능선 너머로 귀를 쫑긋 세운 것 모습의 마이산이 보였다. 그 산은 독자적인 형상이 뚜렷해서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다시 안내판에 나타난 아스라이 보이는 덕유산을 확인하면서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걸었던 때가 떠올랐다. 구봉산은 그 이름으로부터 아홉개의 봉우리 경치를 보러 오는 것으로 생각되기 쉬울 것 같지만 진안고원으로 호칭되는 지리적 의미가 더 크게 다가왔다.
12시 59분 하산을 시작했다. 서둘러 올랐던 길을 되돌아 한참 내려가다 보니 아까 길을 물어보았던 아가씨들이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시 인사를 건네니 어떻게 벌써 갔다 왔느냐고 했다.
잠시 후 돈네미제에 도착해 아까 안내를 해주던 회원이 가리키던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행사 시간을 의식해 빨리 걸었다. 내리막길은 오를 때보다 힘은 덜 들지만 무릎에 충격이 더 많이 생길 수 있어 조심할 수밖에 없다.
1시 39분 좌측에 호수가 있는 날머리 포장길에 당도했다. 댐에 갇힌 호수에 산 그림자가 비춰서 물빛이 진초록 빛깔이었다. 거기를 지나오면서 뒤돌아보니 오늘 걸은 봉우리들이 한눈에 보여서 뒤에 오는 다른 지역 회원 분에게 알려주었다. 계속 걸어 나오다 보니 점점이 집이 보이고 그 뒤로 농경지가 펼쳐보였다.
1시 57분 아까 내렸던 주차장에 당도했다. 최총장이 때맞춰 전화를 해서 거기 기다리는 여섯 분과 함께 행사장으로 버스를 타고 오라고 했다. 내가 아홉 개 봉우리를 다 들러 내려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주차장에서 행사장까지 거리가 6km나 되었다.
2시 10분 행사장에 도착하니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넓게 설치된 천막 앞에 단이 놓여 있고 그 위에 임원진이 앉아 있었다. 잔디 운동장을 가득 채운 천막은 지역별로 나눠 표지가 붙어 있었다. 서울 회원 자리는 맨 끝이었다.
단 앞을 막 지날 때 전라북도 도지사가 환영사를 했다. 그리고 이어서 전국 각 지역 회장들이 인사말을 했다. 뒤쪽 배식대로 가서 줄을 서는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려보니 마산의 신종복 건축사였다. 오래전 전국 산행에서 만난 후로 이런 행사 등에서 오랫동안 인사를 나눠온 분이어서 반갑게 인사하며 악수를 나누었다.
식사를 받아 자리로 오다보니 바로 이웃 천막에 충북 회원들이 보여 다가가 인사를 했다. 오래전부터 서울회원들과 산행 교류를 해온 분들이라 늘 반갑다.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아까 헬기 뜬 소식을 들었다. 행사를 파하고 다시 버스로 가면서 아는 분들을 만나 작별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20230610
첫댓글 구봉산 산행기 잘읽었습니다.
저는 시간이 없어 오르지 못한 곳을 글을 읽어보니 다녀온것 같네요
구봉산 산운 시 가 더해저 운치가 있네요.
감사합니다.
큰 행사에 임하시느라 시간이 촉박하셨을것 같습니다.
9봉에서 멀리 트이는 시야와 마이산, 그리고
하산길에 만난 신록의 풍광이 다채로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